이 글을 읽기 전에 당부드릴 말씀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며, 저의 의견은 절대적인 평가가 절대 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러므로 제가 실망스러웠던 앨범에 본인이 좋아하는 음반들을 넣었어도 절대 불쾌하시지 마시거나 흔들리지 마시고 계속 좋아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음악은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1. Linkin Park <One More Light>
Rateyourmusic 평점 : 1.42/5.00
린킨 파크의 7집이자,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앨범입니다. 처음 린킨 파크가 선공개 싱글로 'Heavy'를 내놓았을 때 그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1, 2집을 제외하고는 앨범마다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선보이던 린킨 파크는, 헤비한 면이 엿보였던 저번 앨범 <The Hunting Party>에서 또 다시 판을 180도 뒤집어 팝 앨범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린킨 파크의 팬들은 이 갑작스러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가장 비판받았던 부분은 무엇보다 린킨 파크가 해오던 '린킨 파크스러운 느낌'이 이 앨범에서는 전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린킨 파크의 오랜 팬이었던 저도 처음 듣고서는 '노래는 좋은데.... 이건 린킨 파크가 아닌 다른 뮤지션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는 그런 느낌이잖아?'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노래들은 적당히 팝스러워서 듣기 좋고 짜임도 나름 괜찮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런 무난한 음악을 린킨 파크라는 밴드가 했다는 것이죠. 뉴메탈로 대변되던 1, 2집 시절의 모습까지는 바라진 않았지만, 그 동안 해왔던 음악적 실험에서 벗어난, 너무나도 흔한 팝 앨범을 내놓을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그런 팝스러운 변화마저 '린킨파크의 음악적 실험'이라고들 말합니다.)
사실 이 음반을 선정하는 것이 조금 꺼려렸습니다.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One More Light>은 올해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앨범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는데요. 바로 올해 7월 20일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자살로 세상을 뜨게 된 것 때문입니다. 한 때 정말 좋아하던 보컬이자 저의 음악적 영웅이었던 그의 죽음은 저에겐 단지 남의 일이 아닌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큰 사건이었습니다. 절친한 친구의 지인이 세상을 떠나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그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던 'One More Light'의 가사는 그대로 고인이 된 체스터를 향한 것이 되어버렸죠.
체스터가 떠난 후 앨범의 가사들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지금의 일을 예견하기라도 하듯이 의미심장한 가사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몰론 지금의 사태와는 다르게 싸워나가겠다는 의지의 가사들도 있었지만...) 비록 호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체스터 베닝턴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옅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있는 앨범입니다.
<One More Light>이 세상에 나왔을 때, 이 앨범에 호평을 한 매체는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고, 모든 수치상으로는 올해 최악의 앨범 1위에 속했지만, 정작 대부분의 매체들이 자체적으로 선정한 연말결산에서 최악의 앨범에 선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앨범의 혹평에 대해 괴로워하던 고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One More Light

2. Arcade Fire <Everything Now>
Rateyourmusic 평점 : 2.51/5.00
앨범마다 역대급 명반을 만들어냈던 세계 최고의 인디밴드 아케이드 파이어의 5집이자, 메이저 레이블에서 내는 첫번째 앨범입니다. 개인적으로 내한 공연 1순위로 바라는 밴드이자, 앨범이 나오길 기다리며 나올 때마다 무조건 필청하는 정말 좋아하는 밴드입니다. 1집 <Funeral>과 3집 <The Suburbs>는 그 해 뿐만이 아니라 21세기 통틀어서 최고의 앨범으로 뽑히며, 특히 3집은 그래미 올해의 음반상까지 수상했습니다. 몰론 저에게도 이 둘은 인생명반입니다. 2집과 4집 역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5집은 호불호가 많이 갈렸습니다. 여전히 좋은 평가를 한 매체들도 많았지만, 전체적인 평가는 그 동안의 아케이드 파이어의 명성에 걸맞지 못하다는 얘기였죠. 3년마다 앨범을 내던 아케이드 파이어가 1년 더 늦은 4년 후에 새 앨범을 냈는데도 그 퀄리티는 공을 들인 기간에 비해 좋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가장 혹평을 받은 부분은 앨범 중간 부분인데요, 여기서 전체적인 힘이 확 빠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동명의 곡인 2번 트랙 'Everything Now'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비유를 하자면 '5분의 강렬한 섹스와 나머지 40분의 현자타임' 같은 음반이었습니다. 그나마 서브 보컬 레진 샤사누의 소름돋는 팔세토 창법이 돋보이는 'Electric Blue'가 어느 정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곡, 'Everthing Now'만으로 이 음반은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개인적으로 아케이드 파이어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트랙입니다. 올해 가장 많이 들은 노래 중에 하나이고요. 디스코 리듬을 차용해서 (앨범 프로듀서가 다프트 펑크 멤버이기도 했고) 마치 ABBA스러운 느낌을 내려는 시도도 좋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음반은 꽤나 좋은 앨범입니다. 단 하나, 이전의 앨범보다는 못하다는 것이 <Everything Now>에 실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Everything Now

3. The Chainsmokers <Memories... Do Not Open>
Rateyourmusic 평점 : 1.20/5.00
요즘 가장 핫한 일렉트로닉 듀오, 체인스모커즈의 데뷔 정규 음반입니다. 작년 본인들의 새로운 개척로이자, <Memories.. Do Not Open>에서 선보인 음악의 시초가 된 감성 EDM 'Closer'의 대성공으로 일렉트로닉 신의 거대한 히트메이커로 자리잡은 체인스모커즈. 야심차게 그 기운을 이어가고자 올해 정규 앨범을 내게 됐는데요.
'Closer'만큼은 아니였지만 어느 정도 괜찮은 성적을 거둔 곡들 - 콜드플레이와의 콜라보레이션이 돋보인 'Something Just Like This'와 선공개 싱글 'Paris' - 빼고는, 이 앨범에서는 주워갈 수 있는 특색있는 곡이 거의 전무합니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나름 괜찮은데?' 싶었지만 두 번 들으니 금방 질리는 노래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위의 두 곡 빼고는 세 번 이상 들은 곡이 이 앨범에서는 없습니다.
'Closer'의 성공에 도취한건지,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전략을 택한 건지, 앨범의 전체적인 의미는 커녕 모든 곡이 'Closer'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은 자가복제로만 가득찬 앨범입니다. 사실상 이 음반에서 유일하게 건질 수 있는 'Something Just Like This'도 콜드플레이의 정서에 편승했던 것이니 온전히 본인들의 음악성으로 이룬 것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매체에서 뽑은 올해 최악의 앨범 1위, 절치부심해서 다음엔 조금 더 좋은 앨범이 나오기를 희망합니다.
Something Just Like This

4. Imagine Dragons <Evolve>
Rateyourmusic 평점 : 2.00/5.00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용'이라고 불리는 이매진 드래곤즈의 정규 3집입니다. 2집 <Smoke+Mirrors>에서 지독한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려 시원하게 말아먹은 뒤 절치부심한 밴드는 본인들의 록 장르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중독성을 가미한 새로운 느낌의 'Evolve(진화)'를 시도합니다.
다행히도 2집과 다르게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처음에는 반응이 생각보다 뜨겁지 못한 것 같아 2집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마치 1집 때 그랬던 것처럼 서서히 기어올라오는 역주행을 거듭하면서, 'Believer'가 결국엔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차지하게 되었으니까요. 1집의 대성공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이매진 드래곤즈는 여전히 대중들에게 특색있는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몇 안되는 밴드입니다.
다만, 음악적으로 'Evolve(진화)'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가득합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오히려 'Radioactive'를 부르던 시절보다 퇴화한 것처럼 보여졌습니다. 수록곡 'Thunder'는 분명히 엄청나게 중독적이지만 가사가 없어서 알맹이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으며,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최악의 수록곡으로 뽑기도 했습니다. (몰론, 이 곡은 부담없이 듣고 즐기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는 좋은 곡입니다.)
가장 많이 비판받은 부분은 아무래도 앨범의 완결성이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존 1집 때 팬들을 사로잡았던 특색있는 록의 느낌은 여전하지만 3집까지도 여전히 그들이 성공했던 방식으로 곡을 짠다는 것이 팬들의 환호와 동시에 발전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아쉬움을 자아낸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팝스러워진 그들의 변화는 1집만큼이나 충분히 록적이었던 2집에서의 실패 때문에 움츠러든 그들의 생존전략, 팝으로의 음악적 선택. 이에 무조건 비난할 수 만은 없는 듯 합니다. 록은 안 팔리는 장르이니까요. 살려면 어쩔 수 없죠. (눈물)
Believer

5. Eminem <Revival>
Rateyourmusic 평점 : 1.30/5.00
나온 지 2주 밖에 안된, 따끈따끈한 에미넴의 정규 9집입니다. 이 앨범을 선정할 줄은 모르고 들어오셨다가 조금 놀라시거나 거부감이 들 수 있는 힙합 팬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지만, 에미넴의 랩 스킬이 떨어졌다거나 이러한 의심에서 이 음반이 실망스러웠던 건 절대 아닙니다. 여전히 에미넴은 트랙 곳곳에서 'Rap God'의 존재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음반은 지금까지 평가로 봐서는 '랩'만 뛰어난 음반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단연 프로듀싱입니다. '이런 비트에서 랩 우겨넣느라 에미넴도 참 힘들었겠다' 싶은 느낌의 곡들이 너무 많습니다. 앨범에서 정말 가사나 사운드 면에서 완벽하다고 느낀 곡은 단 하나, 'Walk On Water' 뿐이었습니다. 77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중구난방의 프로듀싱, 다 듣고서는 '음... 그냥 뭐 그럭저럭. 다시 듣고 싶지는 않다.'라는 느낌까지 들었으니.
무엇보다 특색 없이 평범하게 흐르는 곡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 이번 앨범의 가장 큰 실패 요인이라고 봅니다. 비욘세를 제외하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귀를 자극하는 피쳐링은 없었으며, 또한 개인적으로 앨범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사운드의 통일성'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무슨 사운드를 중점으로 앨범을 구성했는지 의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올드스쿨, 랩 록, 팝이 다 들어가 있지만, 어쩐지 뭔가 트랙마다 다 따로 놀고 일관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앨범의 제목은 부활을 의미하는 'Revival'이었지만, 어째 이번 음반에서 의도하고자 했던 '랩신의 부활'은 아쉬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합니다.
Walk On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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