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밀림속에 우뚝솟은 거대한 바위가 시선을 압도한다. 바위의 요새는 그 존재 자체가 신비롭다.
이곳은 6세기경 절벽 위에 세워진 사자산이라는 고대 성채의 유적들로 이루어져 있다. 성채가 세워진 암석절벽은 경사가 급하며 상단부가 양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정상부의 해발고도는 349m이며, 주변 평야를 기준으로 한 높이는 180m에 이른다.

477년에 다투세나 왕의 장남 카샤파는 동생 목갈라나에게 왕위가 돌아갈 것을 우려해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
평민 출신 어머니를 둔 자신과 달리 동생은 왕족 출신 어머니를 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동생의 보복이 두려웠던 카샤파는 바위산 위에 궁전을 세웠다.

그러나 11년 후 인도에서 군대를 이끌고 온 이복동생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자살한다. 동생이 오는지 내려다보며 늘 불안해했던 왕은 동생의 침략을 막기 위해 입구를 하나만 만들었다.

정상까지 계단은 1200여개다. 정상에 오르려면 거대한 사자(sinha)의 벌어진 입처럼 생긴 입구와 목구멍처럼 생긴 좁은 통로(giriya)를 거쳐야만 한다.
시기리야라는 이름은 사자산 꼭대기로 연결되는 통로 모양에서 유래되었다.

시기리야는 5세기 카사파 왕조 때의 수도로 고고학적으로 특히 가치 있는 유적지이다.
시기리야 요새는 예술가이자 정신이상자이기도 했던 카사파왕이 부왕을 죽이고 왕좌에 오른 뒤 후환이 두려워 바위 꼭대기에 세웠다는 궁전터이다.

암벽의 높이는 200m. 이곳이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은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시기리야 벽화 때문이다.
시기리야 벽화는 왕의 시녀들의 시중을 받고 있는 압사라라는 요정들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이 '시기리야의 숙녀들'은 당초 50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훼손돼 18명만 남아 있다.

시기리야 벽화 아래쪽에는 '미러 월(mirror wall)'이라 불리는 회랑 벽이 있다.
달걀 흰자와 꿀, 석회 등을 이겨 칠했다는 '거울벽'에는 역대 왕조의 흥망을 노래한 서사시와 시기리야 벽화의 여인을 칭송하는 시들이 가득 새겨져 있다.
이 시들은 신할라어로 씌여진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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