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삼국시대 촉의 명장 위연
175년 생으로 손책과 동갑입니다. 그러고 보니 손책이 정말 일찍 죽긴 했군요...
위연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보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유비가 한중 공방전후에 한중을 손에 넣은 후,
장비도 아닌 위연을 조조와의 전선기지인 한중태수로 전격 발탁하자
문무백관이 이를 의아하게 여기며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유비가 두말 않고 공식석상에서 위연에게 '이 중임을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자,
"대왕을 위해 10만의 병사를 조련할 것이며, 적들이 공격해오면 대왕을 위해 그들을 집어삼킬 것입니다."
고 대답하여 좌중이 모두 감탄하며 그 뒤로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위 그림의 인물평은 죄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나온 이야기다..
무슨 유표 부하였다느니, 한현 부하였다느니는
위연을 반골의 상으로 만들기 위한 소설속 뻥이고..
실재 정사에서는 위연은 원래부터 유비 휘하의 부하이다....
제갈량의 북벌때마다 참전... 변변한 장수 하나 없는 촉의 유일한 S클래스 장수였죠...
위연은 제갈량을 수행해 출진할 때마다 병력 1만을 청하고 제갈량과 다른 길로 진격하여 동관에서 만나 한신의 고사를 따르고자 했지만 제갈량이 제지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위연은 늘 제갈량을 겁쟁이라 말하며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수 없음을 한탄했다. -위연전-
5차 북벌 중 위독해진 제갈량은 장사 양의, 사마 비의, 호군 강유를 불러 자신이 죽고 난후 철군할 것을 명했고
위연에겐 후위를 맡겼다. 이때 양의는 비의를 보내 위연의 의중을 파악하게 했는데....
"승상은 비록 죽었지만 나는 건재하오. 승상부의 측근 관속들은 영구를 운구해 돌아가 장례를 치르고 나는 직접 제군을 지휘해 적을 공격해야 마땅하오. 어찌 한 사람이 죽었다고 천하의 일을 내팽게 칠수 있겠소? 더구나 나 위연이 어떤 사람인데, 양의의 지휘를 받아 뒤를 끊는 장수가 되란 말이오." -위연전-

북벌을 자처하고 대군을 끌고나와 대치하는 국가의 일에 자신이 죽었다고 전군을 퇴각시키라는 명령이나,
위연보다 서열과 직책이 낮은 양의에게 지휘를 받으라는 명령 모두
솔직히 위연으로선 따르기 어려운 모욕적인 명령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이 명에 따르지 않은 위연은 이후 복잡한 사건들과 함께 반역자의 오명을 쓰고 마대에 의해 참살당하고
그 일가족마저 모두 죽임을 당함....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등 5호 대장군이 모두 죽은 마당에 촉의 유일한 에이스급 장수였던 위연...
제갈량 사후 혹시나 군을 장악한 위연에 의해 쿠데타라도 일어날까봐 반역으로 엮어서 죽인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퇴각할때 잔도를 다 끊어서 촉군 전체를 퇴각 못하게 만든일, 그리고 양의가 반역했다고 거짓 표를 올린일..
이 두가지가 큰 실책인데... 이것 역시 생각에 따라 반역이 될수도, 아닐수도 있다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반역자의 오명을 쓰고 죽긴했지만,
위연은 반역할 맘 자체가 없었죠......

삼국시대 당시 중국 10개 주

이 그림상으론 3국이 엇비슷한 판도처럼 보이지만...

실재 세력은 이 그림과 같았다.....
어찌보면 참 아쉬운 장수 위연...
제갈량이 쩔쩔 매던 곽회를 양계에서 대파했던 위연...
말년에 이상하게 인생이 꼬인것뿐이지... 반역자는 아니지 않았을까요...
'위연은 원래 노장(老將)으로 전공(戰功)이 있다. 말년에 함부로 날뛰어 자신도 죽고 가족도 몰살되었지만, 장완은 그 본의를 헤아려 양의를 죽이고자 하였을 뿐, 위연이 반역을 도모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당시에 과거의 공로를 생각하여 예를 갖춘 장례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석마의 유적이 후세에 전하는 것도 반드시 이유없는 것은 아니다.'
-- 왕행검의《남정현지》(南鄭縣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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