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생(妓生, a gisaeng girl, a singing and dancing girl)
이라는말은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호칭이야
(중국이나 일본은 기생이란 말 자체가 없어)
보통 서양도 성노리개,매춘부같은 말밖에 없잖아? 단어만 봐도 보는 관점이 얼마나 틀린지 알수있겟으?
기생은 계급은 천민이지만 마음은 양반이라는 말처럼
신분과 다르게 교양인으로 대접받는 특이한 계층이였어
기생을 해어화(解語花) 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대
조선시대의 기생들은 주로 관기(官妓, 관청에 속한 기생)였는데 종합예술가이자 기능인이였어
기녀 (技재능 기女계집 녀), 라고 해서 연회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였는데
춤 노래 등 실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테스트를 봤다고 해
여기서 성적이 계속 좋지않으면 서울에 있는 기생도 함경도 같은 변방으로 쫓겨나기도 했어
기생은 보통 정년이 50세까지인데 (제일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는 17~25까지야)
지금의 50세가 아니라 조선시대 때 50세이니 나이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가?
이건 단지 기생이 성적인 존재로만 부각된게 아니라 기능인의 역할이 더 컸었다는거지
“비록 신분은 천민이었지만 상대하는 이의 격에 맞게 가무(歌舞), 시(詩), 서(書), 화(畵)의 재능과 지조(志操), 지략(智略), 의협(義俠)의 덕목을 두루 갖춘 교양인이었다”
위에 써있는 것 처럼 기생들은 노래, 춤에 능해야 하고 악기도 잘 다뤄야 할 뿐 아니라
학식도 갖춰야 하고 시를 짓고 서화(글과 그림)를 할 줄 알면서
말씨나 행동도 고상하고 교양있게 써야해
왜냐면 보통 고위관직이나 유생등 지식수준이 높은 자들이나 상류층을 주로 대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상대가 되려면 당연히 수준들이 높아야겠징
그래서 동기(12살 정도의어린기생) 때 장악원에 들어가서 몇년에 걸쳐 교육받고 훈련을 받아야
비로소 기생이 될 수 있었어
여기서도 단지 몸을 팔기 위한 직종이 아닐뿐더러
전문성이 필요했다 라는 걸 알 수 있지?
기생은 단지 하고싶다고 되는게 아니였어
물론 양반들은 기생들을 기능인으로만은 보지않아서
연회에서 본 관기에게 반해 가끔 집에 데려다가 잡아두거나
첩으로 삼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고 해 ...ㅋ
이것때매 나라와 항상 씨름을 했대
나라에선 관기를 제발 돌려보내라고 하고
양반들은 점고 (명부에 점을 하나하나 찍어서 수를 조사하는것) 할 때만
살짝 돌려보냈다가 다시 데리고 오는 등의 꼼수를 썼다고 ..
예외도 있었는데
변사또가 춘향이보고 수청을 들라고 하잖아?
이처럼 변방의 외관직으로 나간 관직자들은 가족과 떨어져 오는 경우가 많기때문에
수청기라고 해서 잠깐동안 데리고 살 수는 있었다네ㅋ
(물론 춘향이는 기생이 아니기 때문에 수청들라고 한 변사또가 나쁜놈이지)
*
기생들은 직책도 다양하고 품위나 급에 따라도 종류가 여러가지야
그중에서 등급으로 1~3패까지 나뉘어져 있는데
일패 (=양반기생이라고도 불림) - 조선말부터 생긴 옥당기생과 임금님 앞에만 나가서 노래와 춤추는 기생 *옥당기생은 임금이 특별히 관작을 내린 관기를 말해 (기생중의 특권층) -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을 읽은 사람이라면 초선이 생각날지도 ? ㅋ
이패 - 관아나 재상집에만 출입하는 기생 (가끔 밀매음을 하기도 했어)
삼패 - 품위있는 일반적인 기생이 아니라 잡가나 부르는 유녀 (=창기)
보통 우리가 황진이같은 기생을 초일류 기생이라고 해서 명기라고 부르잖아
명기는 지조가 있고 정조관념(정절)이 강해서 상대방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풍류나 멋이 없는 사람은 상대하기를 꺼려했지만 (가끔 골탕도 먹였어)
돈이 없어도 풍류를 알고 인품이 훌륭하여 상대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먼저 다가가기도 하고 때로는 장래성 있는 젊은이를 뒷바라지 하기도 했대
근데 왜 예능인으로 불리던 기생들이 지금에 와서는 창녀라는 인식이 더 강해졌을까?
그건 바로 씹어먹어도 시원찮은 일본놈들 때문인데 ㅋ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기생의 이미지는 완전 왜곡되어 버렸어
일제는 조선을 강제로 점거하면서 '기생단속령'과 '창기단속령'이라는 지침으로
기생들에게 일본제국 군대와 일본인을 위한 매춘을 강요했고
'공창제도' 라는걸 만들어서 매춘부랑 예인집단이던 기생을 한꺼번에 묶어버렸어
(공창제도가 뭐냐고? 허락맡고 창녀질하는거 = 공인된 창녀ㅋ)
거기에 일본의 게이샤 문화가 유입되면서
기생이라는 이미지가 점점 일본의 윤락녀 이미지와 같아진거지
왜 일본이 이렇게까지 했을꺼 같아?
자기네 게이샤보다 수준 높은 예능인들인 기생을 없애서 조선의 수준을 낮추고 싶었거든^^
일제의 치밀하게 계산된 문화침략 중의 하나였어
ㅋ 썩을것들
기생의 예악문화를 일본새끼들이 성적 대상으로 변질시켜버려서
기생 = 유녀 로 전락해버렸고.
조선총독에서는 물산공진회나 박람회 같은게 있을 때마다 기생들을 단골 메뉴로 동원시키도 했어.
우리나라 전통문화예술을 전승하는 기생들을 수많은 요릿집에서 술안주 처럼
음악, 춤으로 살아가게 만들고
권번이란걸 만들어서 입회금과 매달 회비를 받고 가입시켜서 '기생인가증'을 주고 통제시켰어.
* 혹시나 헷갈릴까봐 말해주는데 일제가 관기를 멋대로 해체시켜버리자
기생들이 기생조합(기생조합에서 항일운동을 하기도 했어)을 만들었는데 그걸 일제가 권번으로 바꿔버린거야
그리고 차츰 매춘을 주된 업으로 하는 창기 수준으로 전락하도록 유도하였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역사적인 문화예술조차 천대하게 되버린
어처구니 없는 상황까지 오게된거지ㅋㅋㅋㅋㅋㅋㅋㅋ
지네나라에서 게이샤는 예인집단으로 일본 전통문화의 상징처럼 떠받들고
세계에다 홍보까지 하면서
남의 나라의 기생은 한낱 웃음과 몸을 파는 유녀로 전락시켜버리다니 .몽키새끼 주제에
권번도 나중에는 2차세계대전 당시 민족말살정책 아래에 강압적으로 폐지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전통예술을 하던 기생은 사라져버리고 그냥 몸만 파는 유녀만 남게 되었어

기생 노옥화, 윤농월, 이난향, 이화향



기생 오산월







기생 김농주
패셔니스트가 요기잉네 ㅋ
일제시대때 노래 등이 뛰어났던
유명한 기생들은 음반을 내기도 하고
민간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어
지금의 연예인과 비슷한 개념

기생 노은홍


기생 장연홍 - 미모와 지조로 유명했던 기생
21살 때 상하이로 유학갔어

기생 현매홍, 김옥엽
**
익친에다가 잠깐 쓴건데 이렇게 생정까지 올리게 될줄은 몰랏넹 ㅎ
생정쓰라고 해준 익친인들아 고마워
사실 나도 단편적으로밖에 잘 몰랐는데
너희들한테 얘기해주려고
주요한 얘기들만 정리하고 편집하면서 쓰다보니까
몰랐던 부분도 알게되고 공부가 됐어
이건 정말 빙산의 일각일뿐이야
우리가 이렇게 일제에 의해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되찾아오려면
똑똑해지는 수 밖에 없어
많이 알고있어야 하고 공부해서 다시는 이런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해야돼
일본놈들도 혼내줘야하고!
그니까 우리 열심히 공부하자♥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