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상주 상무의 스트라이커 이정협이 10일 경남 남해군 상주 해수욕장에서 군복 하의만 입은 채 K리그 공인구를 들고 바닷가를 힘차게 달리고 있다. /김종호 기자 |
[상병 이정협, 아시안컵 포상휴가 마치고 "복귀 신고합니다"]
"이순신 장군 싸웠던 南海 오니 군기 바짝… 정신무장 되네요
슈틸리케 감독님, 분위기 띄우려 저를 '헤이, 솔저'라고 불렀죠
아시안컵서 떴다고 주전 아냐… 獨리그·월드컵 꼭 뛰고 싶다"
"상병 이정협! 아주 시원~합니다!"
프로축구 상주 상무가 전지훈련 중인 10일 경남 남해군 바닷가에는 칼바람이 몰아쳤다. 체감온도는 영하 5도 정도로 두툼한 외투를 입고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의 활약으로 달콤한 4박 5일 휴가를 받았던 이정협은 이날 "다시 군인 신분으로 돌아온 만큼 정신 무장을 새로 하겠다"며 극기 훈련에 나섰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해전을 벌이셨던 남해 앞바다에 몸을 담그니 전투 상병의 군기가 바짝 드는 것 같습니다!" 두 손으로 바닷물을 끼얹으며 냉수마찰을 하던 이정협은 한겨울 추위를 날려버리는 듯한 포효를 내지르기도 했다.
"호주에 있을 때 가끔씩 자다가 깨면 '지금까지 내가 겪은 게 다 꿈이었나?' 하는 착각이 들곤 했습니다. 옆 침대에 골키퍼 (김)진현이형이 누워있는 걸 보면서 '아, 꿈이 아니라 현실이구나' 하는 일이 반복됐죠. 그만큼 (차)두리형, (기)성용이형, (손)흥민이 같은 최고의 선수들과 한솥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고 매 순간 행복했습니다."
이정협은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호주와의 조별리그 3차전 결승골 장면을 꼽았다. 당시 기성용으로부터 공을 받은 이근호가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렸고, 이정협이 방향만 바꾸는 슬라이딩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프로 생활 2년 동안 수많은 크로스가 제 앞을 그냥 지나쳐갔어요. 크로스가 올라온다는 걸 알고 몸을 던지면 그땐 늦은 거였죠. 하지만 호주전에서는 근호형이 공을 잡자마자 '오늘은 미리 몸을 던진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는데 운 좋게도 공이 제 발을 살짝 스치고 들어가더군요. 그토록 시끄럽던 호주 팬들이 일순간에 조용해졌는데, 앞으로도 그 순간은 잊지 못할 겁니다."
이정협은 이제 '신데렐라'에서 군인 신분으로 돌아왔다. 이정협은 "호주에 있을 때도 슈틸리케 감독님이 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저를 부를 때면 '헤이, 솔저(soldier· 군인)'라고 하셨다"며 "이제 아침 점호를 하고 애국가와 상무가를 부르니 진짜 군대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실감난다"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을 마치고 귀국한 자리에서 이정협에 대해 "그는 소속팀에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선수이고 앞으로 경험을 더 쌓아나가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대회 기간 내내 이정협을 칭찬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박항서(56) 상주 감독도 "대표팀 다녀왔다고 주전 자리가 보장될 거라 생각했다면 착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정협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감독님들의 마음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저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고 어린 선수죠. 자만하거나 나태하지 않고 열심히 해야 대표팀에도 계속 뽑힐 수 있겠죠."
이정협은 향후 목표로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 '월드컵 출전' '슈틸리케 감독님께 보답하기'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제 개인적인 목표인 독일 진출과 월드컵 출전을 이루는 동안 스트라이커로서 많은 골을 넣어 슈틸리케 감독님께 은혜를 갚고 싶어요."
이정협에게도 제대를 기다리는 '곰신(고무신·여자 친구라는 뜻)'이 있을까. 이정협은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라 아직 여자 친구가 없다"며 "얼굴만 예쁘기보단 능력도 있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여자와 연애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협의 전역 예정일은 오는 10월 12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