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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년 전 (2016/1/24) 게시물이에요
[안녕하십니까! 찌는 듯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각 구장에서는 경기가 삑-] 

"뭐야!" 

 

슌이 밥그릇을 든 채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텔레비전이 꺼진 원인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눈동자가 내 얼굴에서 내 손에 들린 리모컨까지 내려갔다. 

 

"아직 안 나갔었어?" 

 

슌이 겸연쩍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모컨을 식탁 위에 두었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떻지? 마주본 슌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보니 그다지 좋은 표정인 것 같진 않다. 

 

"지금 나갈 거야." 

"저녁 먹고 와?" 

"아니. 날 저물기 전에 올 거야." 

 

둘이서 살면서 슌이 식사를 책임지고 있었다. 돈은 내가 전부 대주고 있으니 그 정도는 해야지. 문제는 맨날 덮밥만 한다는 게 문제였다. 오늘은 가츠동일까 가라아게동일까 고민하며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자 라디오가 자동으로 켜졌다. 

 

[-구장에서 열린 시합에서는 도세이 고교 삑-] 

 

아나운서의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채널을 돌렸다. 차안에는 잔잔한 클래식이 흘렀다. 클래식 듣는 거에 취미가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방금 그 방송보다는 듣기 좋았다. 클래식 한 곡이 끝날 때까지 나는 멍하니 운전석에 앉아있어야 했다. 

 

한참을 차를 몰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니. 그 근처에 도착했다.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주변을 맴돌다가 겨우 차를 세웠다. 내려야, 하는데. 떨어지지 않는 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식은 땀이 흐르는 얼굴을 쓸어내리고 겨우 차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부터 남학생들의 앳된 목소리가 무어라 소리를 치는 게 들린다. 아마 야구부겠지. 잠시 머뭇거렸지만 어차피 지금 야구부 중에 나를 아는 이는 없을 거다. 괜찮을 거다.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나서야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겁쟁이라고 스스로를 질책하며 교문으로 들어섰다. 

 

몇 년만에 오는 거지. 그렇게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졌던 고교야구가 허무하게 끝이 나고,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었다. 8년? 9년? 머리를 비우려 노력하며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가기 싫은 마음과 가고 싶은 마음이 부딪혀서 머리가 어지럽다.  

 

운동장 구석에서는 야구부 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토기가 치민다. 가능한 야구부의 반대편을 바라보며 걸었다.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목소리가... 

 

"아베?" 

 

갑자기 뒤에서 내 이름이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얘가, 어떻게 여기 있지? 

 

"아아, 그게 나는, 일하는 데가 원래 화요일에 쉬거든. 쉬는 날에 맞춰서 오다보니 좀 늦어졌어." 

 

묻지도 않았는데 하나이는 먼저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러고 보니 하나이, 엄청 오랜만이 보는 거구나. 하나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머뭇거리며 오른 손을 내밀었다. 

 

"잘...지냈어?" 

 

나는 대답없이 그 손을 잡았다. 우리는 잠깐동안 말이 없었다. 하나이는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왜 그동안 연락을 무시한 건지. 왜 한 번도 만나주지 않은 건지. 왜 야구부에 찾아오지 않은 건지. 침묵을 깬 것은 하나이였다. 

 

"가자." 

 

하나이가 앞장서서 걸었다. 그곳은, 한 구석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때 애들이 문자로 보내준 대로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문자로만 듣고 와보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그 문자에도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었다. 

 

하나이의 뒤를 따라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나는 그곳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게, 마치, 그 애의 얼굴인 것 같아서. 

 

"고개 들어. 오랜만에 만나는 거잖아." 

 

몇 달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었는데, 고작 고개를 드는 것조차 힘이 든다. 천치가 따로 없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이제와서 도망칠 곳도 없지 않은가. 

 

꽃과 편지 정도만 있는 줄 알았던 그곳에는, 다른 여러 가지 물건들이 더 많이 놓여 있었다. 3학년 때 입었던 선수복, 글러브, 야구공, 그리고 작은 사진 한 장. 

 

"내가 말해봤자 위로도 뭣도 안 되겠지만. 아베." 

 

그때부터 줄곧 말하고 싶었다며 하나이가 내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난 하나이 쪽을 보지 않았다. 나무로 만든 명패가 국화꽃으로 둘러쌓여 있다. 꽃은 얼마 전에 바꾼 것인지 만개해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사진이. 

 

"네 잘못이 아니야." 

 

갑자기 사진이 흐려진다. 나는 눈물을 떨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나이를 만난 순간부터 어그러졌어. 하나이가 내 이름을 부르기 바로 직전, 그 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던 그 순간에, 나는 차로 돌아가려고 했단 말이야. 일부러 기일을 피해서 온 건데. 운이 나쁘다, 정말. 

 

미안해. 사과는 차마 말로 소리낼 수가 없어서 속으로 삼켰다. 나는 눈을 내려 다시 그 사진을 보았다. 그날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3학년,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려던 때였다. 야구부 전체가 구장 앞에 모여 앉는 데에만 한참이 걸렸다. 소동 끝에 사진을 찍은 뒤, 네가 말했다. '3학년들끼리도 따로 한 장을 더 찍자'고. 그래서 찍었던 사진이었다. 

 

웃고 있다. 사진 속의 네가 내 옆에 앉아서 웃고 있다. 

 

내가 원망스럽지 않아? 내 탓이잖아. 차마 그땐 그렇다는 대답이 무서워서 묻지 못했다. 지금은 진심으로 묻고 싶다. 차라리 너에게 원망을 듣기를 바란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할 거였다면 아직 너에게 용서를 비는 게 가능했던, 그때 했어야 하는 건데. 아직 네가 병실에 있었던 그때, 야구부 애들이 집으로 나를 찾아와서 함께 가자고 했을 때,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후회가, 연민이, 죄책감이, 아픔이, 눈물과 함께 흘러내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사진을 품에 안고서 한참을 울었다. 하나이는 아무런 말없이 어깨에 손을 올려주었다. 

 

 

 

 

 

 

미하시, 장난 그만 치고 앞에 봐. 

 

타지마와 장난을 치던 걸 말리면서 내가 말했었다. 그러자 네가, 카메라 렌즈가 아니라 나를 보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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