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후줄근히 시름에 젖는 날은 동물원으로 간다. 사람으로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짐승에게라도 하소해야지. 난 너를 구경 오진 않았다 뺨을 부비며 울고 싶은 마음. 혼자서 숨어 앉아 시(詩)를 써도 읽어 줄 사람이 있어야지 쇠창살 앞을 걸어가며 정성스레 써서 모은 시집을 읽는다. 철책 안에 갇힌 것은 나였다 문득 돌아다보면 사방에서 창살 틈으로 이방(異邦)의 짐승들이 들여다본다. `여기 나라 없는 시인이 있다'고 속삭이는 소리…… 무인(無人)한 동물원의 오후 전도된 위치에 통곡과도 같은 낙조(落照)가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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