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들려오는 "바쁘다 바뻐!" 라는 음성에 고개를 돌려 보니 제 몸만한 시계를 들고 달려가는 토끼를 보았다. 뭐지 저건? 이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몸을 일으켜 따라나섰다. 방송국에 연락해야되나, 인형탈인가 온갖 생각을 하며 따라가는데 어떤 굴 속으로 쏙하고 들어가는 토끼. 굴 속을 유심히 들여다 보지만 깊이가 도대체 어느정도인지 새까만 구멍일 뿐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얼굴을 굴 속으로 들이밀다 중심을 잃었다.
"어, 어?"
깊고 깊은 굴 속으로 난 떨어졌다.
죽는다, 죽는다 를 반복하며 눈을 꼭 감지만 등 뒤로 느껴지는건 푹신함 뿐이었다.
-
"세상에 오랜만이야, 앨리스!"
붉은 머리에 이상한 모자를 쓴 남자가 테이블을 가로질러 내게로 왔다.
"전 닝이에요"
"응, 내 앨리스"
말이 안통하는 인간, 아니 애초에 인간이 맞긴한가? 괜히 이리저리 재려고 노려보니
"으응, 왜그래 나의 앨리스?"
하며 웃는 모자장수였다.
"앨리스라고?"
펑하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가 나타났다.
"난 체셔 고양이야, 앨리스 "
뭔가 둘이 닮았다. 어딘가 얄미운게.
-
"흐응, 너가 앨리스라고?"
"하, 네..."
난 앨리스가 아니고 닝이다! 라고 대꾸할 의지를 잃은건 이미 오래전이다. 게다가 눈앞에 하트 왕에게 아닌데요, 하고 대꾸했다간 목이 날아갈 것도 같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흥미롭다는 얼굴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지만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음, 내가 싫어서 박히는 살기가 아니라 살기위해 생긴 본능적인 살기. 뜬금이지만 미쳐버린 하트 왕은 잘생겼다. 그것도 매우매우. 근데 응, 무섭다. 아까 처형! 외치며 손수 검으로 제 병사를 죽이는 모습에 미친거 맞구나 확인했다. 나보고 이 인간이랑 맞서 싸우라고? 돌았구나 텐도 네놈이. 돌아간다면, 돌아갈수 있다면 텐도의 모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덤으로 쿠로오 이 자식은 털을 다 밀것이다.
-
"왜 먹지 않는거야? 입맛에 안맞아?"
"아 좀 그런..."
"그렇다면 요리사들을 전부 처형 시켜야겠군"
"잘먹겠습니다"
이 왕은 내게 무슨 속셈이기에 잘해주고 있는건가, 나는 이 사람의 차가운 다정에 소름이 돋았다. 눈물을 머금으며 고기 한조각을 입에 밀어넣었다.
"앨리스,"
"? 네"
"앨리스~"
"?? 네"
"나의 앨리스"
"???"
말장난 하냐, 몇번이고 나를 부르며 혼자 꺄르르 웃고 있는 왕이었다. 니 미쳣니? 라는 눈빛으로 왕을 바라보자 "응, 좋아서. 드디어 돌아왔구나. 나의 앨리스" 라 말했다. 모자장수도, 체셔 고양이도 심지어 하트 왕도 날 아는데 왜 나만 몰라. 그리고 사람 앞에 소유격 붙이지 말아주라, 난 내꺼야.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고기와 함께 삼켰다.
-
시뮬로 앨리스 소재 너무너무 쓰고 싶은데 내가 과연 시뮬을 들고 올까? 그렇게 부지런하지 못한 나라서 조각조각 후다닥(심지어 퇴고도 안하고) 쓰고 남기고 있다... "내 앨리스" "나의 앨리스" 라는 말이 영화에서도 너무너무 좋았는데 흑흑. 근데 앨리스 내용이 이제 기억이 안나... 다시 책을 정독하고 영화를 보고 그러고 짜기에는 나는 늙고...게으르고...아무튼 그래요...근데 쓰고는 싶은 양심없는 욕심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