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에 대한 정보 사공(司空)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4,307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효령(군위) 단본이다. 효령 사공씨(司空氏)의 시조는 당나라 희종(僖宗) 때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지낸 사공도(司空圖)이다. 사공도는 897년(신라 효공왕 1년)에 황소의 난을 피하여 일가족과 동료 7학사를 데리고 신라로 동래(東來)하여 당문화(唐文化) 보급에 앞장섰다. 난이 평정되자 사공도는 당으로 돌아갔고 남은 가족들의 후예가 사공씨의 계통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그 후의 계대(系代)가 불분명하여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봉익대부(奉翊大夫)로 판의시사(判儀시事)를 지내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효령군(孝令君)에 봉해진 사공중상(司空仲常)을 1세조로 한다. 사공중상의 아들 사공실(司空實)이 1353년(공민왕 2) 문과에 급제하여 광흥창사(廣興倉使)와 대호군(大護軍)을 지내고 한림박사(翰林博士)로 문장(文章)과 덕행(德行)을 떨쳐 「동방명현록(東方名賢錄)」에 수록되었다.[1] 사공실(司空實)의 아들 사공민(司空敏)은 고려 우왕의 장인인 최영(崔瑩) 장군의 사위다. 사공민(司空敏)은 공민왕과 창왕 대에 걸쳐 사복시정(司僕寺正)과 삼사 부윤(三司府尹)을 지내고 숭록대부(崇祿大夫)로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으나 고려의 국운(國運)이 기울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鄕里)로 돌아가 절의(節義)를 지켰다.[2] 사공민(司空敏)의 사위는 남양 홍씨 창사공(倉使公) 홍계강(洪季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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