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니면서 쳤던 모의고사에서 국어는 당연히 1등급응 유지했기 때문에 걱정도 안 하던 과목 중 하나였다. 심지어 수능장을 나오는 그 때까지도 내가 그 정도로 국어를 망친 줄 몰랐다. 당연하게 국어 영어로 맞추려던 최저등급은 팔자에도 없던 수학이 그나마 버텨줘서 겨우 끼워맞추듯 입시관문을 넘었었다. 생각해보면 부족한 게 많았다. 비문학도 꼼꼼히 읽지 않았고, 화작에서도 당연한 걸 실수했다. 내 주관을 너무 넣었다. 수능에 별로 진지하지도 않다 생각했는데 엉엉 울었다. 외식을 가도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그렇게 온 대학은 사실 좀 재밌었다. 새내기라며 귀여움 받는 것도, 어린 어른 대접을 받는 것도, 처음 해본 알바나 새롭게 만난 관계들이나. 그런 것들은 내 수능 국어 등급을 말끔하게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이따금씩 동기들과 추억 팔이나 할 때 ‘우리 때 국어 진짜 너무하지 않았냐’ 하는 말에도 가볍게 맞장구칠 정도로. 내가 선택한 전공은 나름대로 오래 꿈꿔왔던 진로였다. 고등학교 내내 이 과에 오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거리곤 했다. 생기부에 몇 줄 더 넣어보겠다고 선생님들을 졸졸 따라다니고 온갖 대회나 봉사활동같은 것도 빠지지 않았다. 나만 그렇게 산 줄 알았는데 우리 과에 온 반절이 그랬다. 그럼 나머지 반절은 어땠냐면,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했단다. 부모님 말씀 참 잘 듣는 나의 선배 동기 후배들. 그리고 그러한 지원동기는 날 나름대로 으쓱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 중 하나였다. 난 내가 원해서 여기 온 거야. 얼마나 하고 싶었는데. 4학년이 되고 고시공부를 한다며 다들 인강이니 스터디니 연초부터 바빴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공교육에 들어서겠다는 사람들이 사교육에 목을 매달고 스터디를 하려니 알 수 없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중국집 시켜먹으면서 좀 한탄하고 날려보냈다. 여름 쯤이 되면서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싶었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붙여주는 시험도 아니고, 채점 기준도 안 가르쳐주는 양아치 시험. 차라리 수능이 낫지 이게 뭐야. 하기 싫어졌다. 공부를 하다가도 갑자기 짐을 싸서 집에 오곤했다. 엄마 전화를 받기가 좀 미안해졌다.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사람 마음 참 이상했다. 국어 점수가 망했을 때 엉엉 울던 내 열정 다 어디로 갔나 싶었다. 난 원래 이렇게 밍숭맹숭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동기와 수행을 아주 잘 연결짓는 개미같은 학생이었는데. 사실 그 4년 간의 대학생활 동안 깨달았던 거다. 내가 그렇게 좌절했던 국어 점수는 내 인생을 좌우하지 못했다. 고작 국어과외는 거절하게 되는 정도의 영향이었다. 그 정도가 무서워서 난 그렇게 울었나. 수능 점수에서 야기된 뺄셈식의 사고는 아무것도 예측하지 못했다. 나에게 또래멘토링을 받던 우리반 꼴찌는 피부 관리샵을 차려서 돈 많이 번대고, 나보다 더 독하게 공부하던 서울대 내 친구는 결국 공무원을 준비한다. 문제 하나에 울고 웃던 열정 많던 나는 이제 세월아 네월아 책상 앞에서 시간 죽이는 임고생이 되었다. 국어 점수가 대체 우리 인생에 무슨 영향을 미쳤던가.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나. 점수 하나 하나에 좌절하고 자만할 필요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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