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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걔에게 반하게 된 건, 아마도 불가항력적인 사랑이었을 거라고.
그래서 내가 걔를 사랑하게 된 거라고.
*
안녕? 난 곧 500번째 고백을 하러 가는 닝이야.
이거 스스로에게 쓰는 격려 겸 일기인데, 내일은 꼭 고백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일기 아닌 일기를 적는 이유는... 흠... 500번째 고백이 실패하면, 이제 더 이상 걔한테 고백하지 않을 거거든.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어.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그 나무가 과연 성한 상태겠냐고.
물론... 걔는 날 눈꼽만치도 신경쓰지 않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성한 상태는 아니겠지. 지금까지 자그만치 499번이나 찍혔는데... ㅠ
걔한테 왠지 미안해지는 기분이야... ...
흠, 흠! 어쨌든 500번째 고백 실패하면! 이제 고백도 안 할 거고, 걔 좋아하지도 않을 거야.
이건 다짐이자 포부! 화이팅 닝!
일단 내 짝사랑 일대기부터 여기 좀 써놔야겠다.
사실 하루하루 일일히 세진 않았지만... 쨌든 500번째라 그런지 뭔가 기념비적인 느낌이거든. ㅎㅎ
혼자서 볼 건데 이렇게 주절거리려니까 너무 부끄럽다... 그래도 그냥! 기념비적으로 하는 거니까!
그리고 고백 성공 기원 겸! 내일은 꼭 내 고백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500번째라 걔는 아무런 감흥도 없을 거고, 아마 또 거절할 테지만...
내 짝사랑이 시작된 건 고등학교 입학식 날! 나 고등학교 입시 엄청 잘해서, 성공적으로 끝마쳤잖아. ㅎㅎ
시라토리자와 일반 입시가 얼마나 어려운진... 너랑 나, 우리 둘 다 알고 있지... (흩날리던 시험지들...)
그래도 우리 엄청 잘해냈잖아! 과거의 닝, 그리고 지금의 닝!
시라토리자와 학원 입학이라는 우수한 결과!
몇 번이고 자축하며 학교 들어갈 날만 기다렸는데,
학교에서, 그것도 학교 첫날에 내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될 줄이야.
걔 맨 처음 봤을 때 기억난다. 걔랑 나 1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는데, 입학식 때 걔가 내 뒤에 서 있었어.
나는 얼굴이라도 조금 익혀두려고 요리조리 살펴보는 중이었고...
그러다가 걔랑 눈이 마주쳤는데, 뱉은 말 한 마디가
우와.
이 감탄사 하나였어 ㅋㅋㅋㅋㅋ
진짜 얼떨결에 시선 마주친 거라서, 얼떨결에 튀어나간 감탄사였는데. 걔는 그때부터 아마 날 이상하게 봤던 거 같애
근데 뭐... 진짜 그럴 수밖에 없었어. 걔 진짜! 진짜 예뻤거든!
남잔데 그렇게 예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진짜 한참을 넋 놓고 바라봤던 거 같아.
근데 걔가 딱! 한 마디 하는 거 있지.
- 앞에 봐.
나도 모르게 네, 네! 하고 답하고 앞에 봤는데 ㅋㅋ 그때부터 막 심장이 뛰기 시작했어...
심장 고장난 줄 알았어. 목소리도 어쩜 저렇지? 입학식 내내 집중 못하고 계속 뒤에 힐끗힐끗 눈길만 주고.
약간... 다들 사랑에 빠졌을 때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이 있잖아.
근데 나는 그것도 아니고 그냥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터질 듯이 들려온 거밖에 기억이 안 나.
벚꽃이나 이런 요소들은 커녕 그 황량하지 그지없는 강당에서 심장이 너무너무 크게 뛴 거.
교실로 이동해서 자기소개하는데도 걔밖에 안 보였어.
- 시라부 켄지로입니다.
아, 쟤 이름이 시라부 켄지로구나. 시라부 켄지로, 시라부 켄지로. 들은 순간에 외우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몰라.
입학식 얘기만 했는데도 메모장이 한가득 채워졌다... 어차피 나만 볼 건데, 좀 더 주절거려도 되겠지? ㅠㅠ
나중에 누군가 보면 좀 부끄럽긴 하겠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추억팔이용이니까!
입학식 날 이후로 시라부랑 친해지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
한 달 동안 내내 옆에서 뭐 좋아하냐고 물어보고, 어떤 거 잘 하냐고 물어보고.
인터넷에 '새학기 친구랑 친해지는 법' 이런 거 검색을 얼마나 했는지... 적으려면 30박 31일은 해야 할 듯.
듣기로는 걔가 배구하는 거 좋아한다는 것 같길래 배구도 찾아보고, 룰도 알아보고. 배구로 말도 걸고...
그런데도 얼마나 쌀쌀 맞던지! 진짜 진심 평생 긍정 라이프로 살아온 나, 닝한테 너무 가혹했어
입학식 때까지만 해도 걔가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줄 몰랐는데. 말로 사람도 죽이더라고...
후우,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지!
무의식중으로 나는 깨닫고 있었나봐. 아마도...? 내가 쟤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그것도 엄청 많이! 아주 많이!
그래서 그냥, 다른 방법으로 시라부와 친해져(?) 보기로 했어.
매일매일 좋아한다고 하기! 진심이고, 그거면 닿을 거라고 생각했어. 물론 엄청 한심한 눈으로 쳐다도 보겠지만 ㅁㅡㅁ
그리고 이 다음 날부터 걔한테 좋아한다고 하기 시작했어. 결과는 대실패였지만...
- 시라부!
- 어?
- 좋아해!
- ?
- 왜?
- ...뭐?
아직도 첫 대화가 기억에 생생하다... 뭐 어쩔?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시라부와 얼어있는 나...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아, 그래. 이런 느낌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무서운 거야! 그래서 아, 큰일났다. 친구 먹기는 무슨 절연당하게 생겼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근데 내가 걔에 대한 마음이 너무 커진 게 느껴지는 거야.
고등학교 다닌 1달 내내... 오로지 걔한테만 올인해서 주변에 온통 시라부인 거야.
그래서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혀 보자! 이런 느낌으로 계속하기로 했어.
- 시라부 좋아해!
- 바빠.
- 시라부 뭐해? 나 너 좋아해!
- 공부.
- 시라부, 오늘 배구부 연습 가?
- 어.
- 나 너 좋아해, 알지?
- 몰라.
- 시라부 좋아해! 오늘은 완전 진지. 나랑 사귈까?
- 바빠.
- 시라부 나랑…
- (한심한 눈…)
- ……오케이!
솔직히 지금 보니까 엄청 무모하고 엄청 무례하지만... 그때는 너무 좋아해서 뭐 어떻게 됐었나 봐.
물론 지금도 엄청 좋아하긴 하지만... 좋아해서 그만둘 거라고 다짐했으니까!
근데 나 벌써 거절 당할 걸 생각하고 가네 ㅠㅋㅋㅋ
근데 뭐, 거절 당하는 거 기정사실화니까 걔 좋아하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라도 남겨놔야지.
진짜, 진짜 많이 좋아했어.
물론 지금도 좋아해! ... ... 곧 과거형이 되긴 하겠지만...
어떤 말을 남겨야 할 지 모르겠다.
시라부 켄지로, 좋아해. 엄청 많이!
아마 이제 곧 그만둘 거야.
1학년, 2학년 모두 다 너랑 같은 반.
우리 운명 아닐까? 했었는데, 아마 운명보다는 그냥 친구였나봐.
그래도 난 반 친구 1로도 만족할래.
일일히 세보진 않았지만...
너 좋아한다고 고백하기 시작한 날부터 벌써 499일이 지났어.
내일이면 500번째인데,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나는.
"시라부."
"어."
"나 할 말 있어. 오늘은 진짜 진짜 진짜 진지해."
"말해 봐."
"좋아해.…진짜 많이 좋아해."
"그래서?"
"나랑 사귈래?"
"아니."
예상과 1도 다르지 않게
차였다.
그렇게, 짝사랑 겸 외사랑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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