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업 (천천히 옮겨낼 예정입니다)
햇살같은 보쿠토 코타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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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Near light
해사하게 웃는 녀석의 모습 뒤에 숨겨진 그늘을 사람들은 알까?
그 그늘 속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남은 건 추락 뿐이라는 것을.
문 틈새로 불어오는 시린 바람을 맞으며 완연한 겨울을 느낀다. 눈을 뜨지 않아도 지금 그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 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손을 뻗어 아직 온기가 남은 그의 빈자리를 쓸어 보지만, 그럴수록 채워지지 않는 갈망만이 더욱 크기를 키워나갈 뿐이다.
늘 완벽한 그. 하지만 그런 그도 오늘 내 곁에 남은 그의 흔적마저 지우고 떠난 건 아닌 듯 했다.
'널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 한 순간이었지만.'
그 말을 하던 그의 표정이 어땠는지, 이제 더는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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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토 코타로. 그에 대해 설명하려면 대체 어디서 부터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겠다.
그와 나의 첫 만남은 약 10년 전 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시미츠 중학교 출신인 그는 내가 아는 한 후쿠로다니 학원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후쿠로다니의 보쿠토 코타로가 배구로 유명하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3학년이 되기 전까지 보쿠토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별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보쿠토라고는 배구부 에이스에, 공부를 썩 잘하지 않는 전형적인 분위기 메이커 정도. 그마저도 급식을 먹을 때나 수업 들을 때를 빼면 연습 경기나 전국 대회같은 이런 저런 이유로 얼굴을 보기가 무척이나 힘든 존재였다. 하지만 운동부 녀석 주제에 등교할 때 구두를 신고 등교한다는 점이 특이해서, 그 부분만큼은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예습을 위해 남들보다 늘 한두시간 정도 일찍 등교하는 편이었다. 새벽 6시라 함은, 보통 번화한 길목을 지날 때조차 나다니는 사람 수가 확연히 적은 시간대였다. 하지만 평소와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선 어느 날, 등교길에 교문 앞 분위기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검은 세단 한대가 서있는 것을 보았다.
"?"
운전석에는 차체 만큼이나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한 눈에 봐도 학부형으로 보일 만한 나이대는 아니라는 것 쯤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문득 그 차에서 내리는 이가 누구일지 몹시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학교로 향하던 걸음을 늦추고, 교문 앞에 멈춰선 차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짙은 코팅으로 뒤덮힌 전면 유리는 뒷좌석에 앉은 이의 실루엣만을 겨우 내비치는 정도였다. 나는 한동안 꼼짝도 않고 제자리에 서서, 뒷좌석에 앉은 이가 어서 차에서 내리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
얼마 안가, 검은 세단의 차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누군가 구둣발로 걸음을 내딛는 광경이 보였다. 심지어 차문을 열고 닫는 행위조차 일절 그의 손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남자에게 가벼운 목례를 건넨 뒤, 제자리에 서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잘 사는 집안의 자제구나.'
예상했던 대로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학부형이 아닌 이십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하지만 차문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모습이 드러나자, 나는 순간적으로 내 두 눈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처음 그 광경을 목격했을 때는 몹시 경악하고 말았다. 뒷좌석에서 내린 이가, 다름 아닌 보쿠토 코타로였기 때문이다. 단장을 마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쭉한 다리로 휘적휘적 교문을 향해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가 정말로 내가 아는 보쿠토가 맞는지 의심 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문 앞에서 마주친 그의 얼굴은 평소의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무표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탄탄대로가 보장되는 사립 명문고 출신에, 전국에서 손 꼽히는 운동부 에이스라는 그의 배경은 그 상황을 충분히 납득이 가게 만들었다.
어쨌거나 그 날 이후로도 나는 거의 매일같이 교문 앞에 선 검은 세단을 마주쳤다. 한달 쯤 지났을 때 부터는, 그가 타고 내리던 차번호를 정확히 기억해 낼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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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정한 갯수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사람이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 보다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덮어쓴 가면의 갯수를 늘려가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 녀석과 나는 3년 동안 같은 반이었다. 우연도 우연이지만,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진학반과 예체능반이 따로 나뉘어져 있지 않은 탓도 컸다. 하지만 그와 나는 같은 반이라는 점 외에 아무런 접점도 없는 사이였다. 늘 공부만 하던 내가 운동부 출신의 활달한 녀석들과 어울릴 만한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각자의 주력 분야가 다르기도 했지만, 애초에 내가 폭 넓은 교우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내 성격은 결코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나는 대게 남들이 이유없이 베푸는 친절이나 호의 속에는 항상 숨겨진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겪어온 바에 의하면, 내 판단이 빗나간 경험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반면에 겉으로 보이는 그는, 나와는 성정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다. 의도치 않아도 그의 주변에는 늘 그와 가까워지길 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던 나와는 대조적으로, 그에게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분명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동성상응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늘 한결같이 밝고 명랑한 보쿠토에게도 어딘가 뒤틀린 구석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내 의심이 확신으로 돌아선 건, 후쿠로다니에서의 마지막 해(歲)가 저물어 가고 우리의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