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스무살이야
작년 이맘때쯤에 가정폭력 신고가 들어가서
시설에서 살다가, 지금은 서울 상경 준비중이야
나는 개인적인거지만..!!
엄마가 진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해
친아빠는 정말 사람같지 않은 사람이었거든
맨날 얻어맞고 뭐 억지로 문신까지 당했대
그런 거 있잖아 자기 이름 새겨놓고 하는…
나중에 목욕할 때 물어보니까 이름을 너무
크게 새겨서 다른 문신으로 덮어놨다더라
그래서 자긴 목욕탕은 못 가겠다고 했었어
나는 아버지였던 분들이 총 세 분 계시고,
중간에 엄마의 남자친구분도 한 분 계셨어.
그냥 익숙해질 만 하면 아빠가 바뀐 건데,
좀 크고 나선 그걸로 엄마랑 굉장히 자주 싸웠어
그럴거면 나를 왜 낳았냐
감정적으로 응원이 되어주지도 못하고
맨날 욕하고 소리지르고 어릴 땐 때렸었고
자식 생각을 하긴 하는 거냐 내가 그 환경에서
얼마나 힘든 줄 아냐 이혼을 밥 먹듯이 하냐…
하면서.
고등학교 2학년 땐 처음 엄마를 신고했었어.
과거의 일들 같은 거. 근데 보육원에서 잠시
지내던 나는 적응이 너무 힘들어서 결국 집에
돌아갔어. 엄마는 내가 처음 한번 실수한 건
용서해줄 수 있다고, 앞으로 조사받을 땐
전부 네 실수고 잘못 기억한거라 말해야 한다고
했어. 마음에 걸렸지. 실수? 내가 신고한 걸
한번 봐줄 수 있는 실수라고 생각하는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난 공부도 막 잘하진
않았고 당장 먹고 살 능력이 없었어. 부모님이
있어야 했어. 그 뒤론 정말 엄마가 시킨대로
진술했고, 엄마는 40시간 정도의 상담 처분을
받았어.
진짜 힘들더라 그때. 상담사가 돌아가면 맨날
죽고싶다고 하면서 술을 마셨어 엄마는.
이게 소용이 있는 상담일까 싶었어
그런데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엄마가 한결같이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거야.
차라리 정말 나쁘기만 한 사람이었으면
죄책감도 없이 실컷 미워하고 저주했을텐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날 때려도 다음 날 맛있는 밥을 차려주고
뱃속에 왜 생겼냐 같이 농약 먹고 죽을까 말한
다음 날에는 같이 옷 사러 갈까 산책갈까 말을 했어
내가 우울증으로 힘들 때 동네 구경을 나갔다가
늘 도와주겠다고 넌 잘 할 거라고 안아줬어
그 다음 며칠 뒤엔 또 술 마시고 물건이 날아다녔고
고함이랑 욕이 집안에 가득했어.
외식하다가 어디서 태도가 그렇게 건방지냐길래
차에서 내려서 혼자 울었어.
너처럼 우울증에 정신과 다니는 어떤 애가
살인했다던데 너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니냐고
진지하게 물어보더라. 내가 대체 그런 말들에
뭐라고 답해야 돼.
그래도 나는 엄마를
나름 구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엄마한테 재능이 있으니 이런 쪽으로 일해봐라
말도 하고, 동생 유치원 오고가는 건 내가 대신
다녀오고 고양이 케어하고
나름 할 수 있는 것들은 해왔어 도와줄 수 있는
쪽으로…막 알바도 하던 참이었고.
그러다 엄마의 생일 때, 새아빠랑 다투고
격해졌는지 막 소리를 지르고, 동생 앞에서
자학적인 행동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죽을지
나한테 물어보더라고. 동생은 울다가 웃었다가
정신 놓은 애처럼 반복하고. 너무 괴로워서
아는 선생님 한 분께 알렸더니 그 분이 대신
신고해주셨어. 계단을 내려오는데 팔이랑 목에
상처가 가득한 엄마가 울면서 따라내려와선
경찰한테 설명해. “제가 남편이랑 좀 다퉜는데…”
하면서. 그리고 난 시설로 갔어. 그 뒤로 한번도
엄마를 본 적 없어.
연락은 했어. 1년치 통신비를 내주기로 했었거든.
3월 기준으로 내년 3월까지도. 근데 새아빠가
요금 내주길 싫어하는 눈치길래 내가 내면서
지냈었어. 엄마도 날 차단했었고.
번호 바꾸고 개명도 하면서 어제 한번 연락했어.
내주기로 했던 게 있으니까 돈은 입금해달라고..
그리고 아직도 오해하는 것 같은데 당신 인생
힘들게 만든 건 당신이라고.
나 솔직히 답장 올 줄 몰랐어. 근데 바로 왔어.
아빠가 회사 관두고 돈이 없어서 오십만 보내줘도
되냐고, 보내주고 톡 보낸다고.
그리고 오늘 진짜 받았어. 엄마 이름으로 찍힌
오십만원 입금. 엄마랑 인사했고…
그냥 좀
눈물만 나왔어
하염없이 계속, 솔직히 지금까지도.
엄마는 내 원래 이름의 뜻이 뭔지 까먹었댔어.
내가 뱃속에 생겨서 자기 인생이 힘들어졌댔어.
같이 죽자고 하거나, 우리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난다고 했었어. 내가 아픈 게 미안해서
울다가도 자기 악에 받쳐 울면서 나한테
비난을 퍼부어. 나도 같았지. 나도 똑같았어
나도 솔직히 엄마한테 잘한 거 없을지도 몰라.
똑같이 소리지르고 똑같이 욕했으니까. 똑같이
상처줬으니까.
근데 확실한 것들은
내가 지금 그랬던 것들로 인해서 자책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거야.
엄마가 나를 사랑했다는 거야. 동시에 내가 없길
바라기도 했다는거야.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거고.
엄마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해주지 않고 나를 격려해주지 않고
듣기 버거운 톤으로 온갖 절망적인 말을 다 꺼내는
약한 모습의 엄마가 싫은거였어
사실 정말 걱정 돼
안 그래도 돈이 없다는데
아직 사건 진행중이고 감옥 갈 수도 있다는데
엄마가 동생과 자신을 책임지며 잘 살아갈까?
없는 형편에 내가 더 없게 만들었나 싶고.
한편으론
원래 내주기로 했던 돈이고
스무살 되면서 부모 지원 하나 못 받았고
연락도 만남도 할 수가 없게 되었고
엄마가 저지른 일이 학대가 된다는 것도 맞고
내가 다 잊고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대
좋은 부모가 못 되어줘서 미안하대
이제서야
처음으로 듣는 말을.
난 예술을 하고 싶은 사람이야
글쓰고 음악하고, 그렇게 나를 표현하는 걸 좋아해.
영화 영상에도 관심이 많고.
한때 난 엄마의 희망이 되고싶었어.
나중에라도 내가 자리잡고 돈을 많이 벌면
엄마랑 서울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
이젠 나 혼자 서울 상경을 하고, 엄마 얼굴은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하고, 다시 같이 밥 먹거나
티비볼 순 없지만.
엄마한테 건강하라고, 집 나온 뒤로 연락 보낼 때
화낸 건 속상해서 그런 거였다고, 잘 지내라고
분명 말했어.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대화를 끝냈어.
나는
그저 엄마가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면서
이젠 엄마를, 엄마랑 있던 나쁜 일을 잊고
내 삶을 살아도 되는 걸까?
그래도 되는거겠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족을 꾸려 살 수 있을까.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이, 자책하다가도 억울한
내 감정이 아직도 적응이 안 되고 힘들어.
행복하게 살아도
괜찮은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