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garettes After Sex - John Wayne
사쿠사는 닝이 미팅 있던 그 날 닝의 예상대로 동기들한테 끌려나온 것이었음. 사쿠사는 배구하니까 술 진짜 거어어어어의 안 마시고 이렇게 술집에 사람 많은 건 싫은데 걍 끌려나와 앉아있는 것이었음.
사쿠사가 닝과 가게 입구 앞에서 마주친 건 사쿠사도 화장실 갔다오는 길이었기 때문이었음. 당근 속으로 엄청 당황한 사쿠사. 근데 사쿠사는 닝이 사쿠사를 보고 딱 첫눈에 그렇게 싫은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속으로 욕을 뱉었을 거임.
사쿠사는 닝한테 불만이었던 게 연애 초기부터 꽤 있었음. 자기한테 미리 얘기 안 하고 남자 선배 동기들 낀 술자리에 나가는데 그거부터 너무 좀 그랬음. 그래도 닝이랑 있는 시간 자체는 진짜 편하고 좋았다. 거기에 닝이 나중에는 술 약속 있으면 미리 잘 알려주고 그래서 좀 그럭저럭 넘어가줬음. 하지만 여전히 술자리를 나가고 남사친들하고 연락하는 비율이 안 줄어서 사쿠사는 내심 기분 상하고 있었을 거임.
그래서 닝을 다시 봤을 때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그런 닝과의 마찰들이었음. 그래서 속으로 짧게 한 마디 욕했을 거임. ...X발, 왜 여기서 마주치냐, 이러면서.
그러곤 무심한 "척" 가게 안으로 들어가겠지. 사쿠사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동기들 왜 화장실 갔다가 똥 씹은 표정이 돼서 돌아왔냐며 오는 길에 전여친이라도 만난 거나며 막 놀려댈 거임. 사쿠사 그 때부터 진심 기분 잡쳐서 걍 빨리 집에 가려 그럼. 그럼 동기들 수근수근 헐 진짜인가 하다가 사쿠사 자리 박차고 일어나는 거 보고 에이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시 끌어앉히겠지. 뭐...그 동기들 중에 코모리가 있다고 치고(급 투입^^;) 코모리 덕에 사쿠사 탈주 막음.
사쿠사 또 코모리가 있어서 테이블에 끝까지 앉아는 있는데 동기들 하는 얘기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옴. 동기들 그런 사쿠사 기분 진짜 리얼 안 좋아보이니까 야야 걍 빨리 일어나자 하면서 일어나고 2차 갈 놈들만 남아서 2차로 빠지기로 함.
그렇게 나가는 길에 사쿠사 비좁게 통로 지나가다가 닝이 이 시즌만 되면 꽤 입고다니던 엄청 특이한 코트가 의자에 있는 테이블 어쩌다 보고 저기가 닝이 있는 테이블임을 알게됨. 안에서 남자여자 깔깔깔 웃는 소리 들리는 거 보니, 뭐, 또 술 마시는 거나...미팅이겠지. 미팅이라 추측하는데 또 머릿속에서 짜증이 확 남. 왠지 모르겠음.
사쿠사 동기들이랑 헤어지고 자기랑 마찬가지로 2차 안 가는 코모리랑 같이 역까지 걸어감. 코모리는 대충 사쿠사가 왜 그러는지 눈치를 깐 상태였음.
"기분 풀어. ...애들이 알고 그랬겠냐."
진짜로 농담이 아니고 왔다갔다 하다가 역시 닝을 본 것같은 코모리가 사쿠사 짜증난 거 좀 누그러뜨려줄려고 말을 꺼냄. 근데 사쿠사 말 없음. 그런 사쿠사를 안쓰럽다는 미소를 지으며 보다가 다시 이야기하는 코모리.
"뭐 너도 지금은 잘 지내고 있고, 마주친 건 좀 운이 없었지만."
속으로 코모리는 닝도 알아서 잘 지내고있는 것 같고, 라는 말을 삼킴. 사쿠사 여전히 말 없음. 아, 얘 좀 단단히 뭐가 맘에 안 들었구나, 라는 걸 코모리 확 눈치챔. 그 때 막 스이카 찍고 코모리보다 먼저 개찰구 통과하고 나서 사쿠사가 입을 엶.
"도대체 술 마시면 엄청 빨리 어지러워하는 주제에 술은 왜 그렇게 마시러 다니는 거야?"
음? 좀 당황하는 코모리. 여전히 변한 게 없다는 건가? 그래서 여전히 싫다는 건가? 아니면 설마, 닝을 걱정하는 거야...? 하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너무 간 듯한 궁예들까지코모리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며 약간 혼란스러움.
"닝 말야?"
그런데 다시 입 닫아버리는 사쿠사. 아 진짜...나는 아직도 얘가 이럴 때마다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덩달아 어리둥절 해지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몇 년을 겪어서 나름 익숙해진 코모리. 페이스를 무너뜨리지 않고 웃는 얼굴로 자기가 생각하는 거 사쿠사한테 말함.
"원래 닝 그런 모임 자주 나가고 그러지 않았나? 평소의 닝인데 뭐."
사쿠사 코모리 말을 듣더니 또 뭐가 맘에 안 드는지 미간 팍 구김. 아아, 진짜 속을 알 수 없는 놈이네, 코모리 속으로 약간 어이없음과 너무나 사쿠사스러움에 웃어버림. 코모리랑 사쿠사랑 반대편 지하철 타고 가서 사쿠사 코모리한테 나 간다, 라고 완전 짧게 말하고 자기쪽으로 내려감. 코모리도 밝게 잘 가라! 고 하고 멀어지는 사쿠사 잠깐 쳐다보다가 자기쪽으로 내려감. 저 텐션이 오래 안 가야할텐데 생각하면서.
사쿠사 집에 돌아와서 평소대로 씻고 나옴. 다 따뜻한 물로 씻고 나왔는데도 별로 기분이 나아진 게 없음.
이제는 슬슬 이 기분이 진짜 나쁜 건지 정리가 안 되는 건지 혼란스러운 건지 모르겠음. 아까 마주친 닝 얼굴이 다시 떠오름. 간만에 보는 것 같았던 빡세게 꾸민 것 같았던 닝. 진짜 미팅 나간 건가, 하는 생각이 듬. 평소대로 아주 잘 살고 계시는구나. 아직도 술 마시러 다니고, 변하는 게 없구나.
사쿠사는 어째서인지 갑자기 한기가 느껴짐. 창문을 열어뒀나 싶지만 아주아주 잘 닫혀져 있음. 외풍도 잘 안 들어오는 걸 확인 단단히 하고 입주한 신축 건물임. 외풍일 리는 더더욱 없음. 감기가 들려나, 하는 또 기분 나쁜 생각에 머리나 빨리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러 감.
따뜻한 바람이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면서 기분이 한층 나른해짐. 순간 사쿠사의 머릿속에 자기 머리 말려주던 닝이 생각남. 키 차이때문에 자기는 앉아있고 닝이 서서 말려줬었는데 곱슬머리 가지고 장난치길래 하지 말라고 질색하면서 떼어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나쁜 기억이 아니었던 것 같음. ...그보다 그런 건 왜 생각나는 건지 또 가슴 한 구석이 불편하기 시작함.
머리 다 말리고 여전히 답답한 속을 부여잡고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들여다봄. 평소같았으면 대충 보다가 잠들었을텐데 어째서인지 폰이 손에서 쉽게 떨어지질 않음.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듯이.
...기다리긴 뭘 기다려. 스스로한테 그 생각이 미치자 사쿠사 폰 협탁에 던져놓고 바로 잠을 청함. 그리고 잠에 들기 직전 받아들이기 싫었던 사실 하나를 어렴풋이 인정할 거다. 아까부터 계속 되던 이 기분은, 이 한기는 어쩌면 외로움이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