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per Kites - Don't Keep Driving
1편: https://www.instiz.net/name?no=29944900&page=1&category=3&
2편: https://www.instiz.net/name?no=29957669&page=1&category=3&
3편: https://www.instiz.net/name?no=29962712&page=1&category=3&
4편: https://www.instiz.net/name?no=30077932&page=1&category=3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빈자리를 느껴갈 때 쯤 둘 중 상대를 더 강하게 찾는 쪽은 닝이었음. 미팅날 본 이후로 계속 신경쓰였는데 그 디저트 카페에서 마주친 이후로 갑자기 향수병이라도 도졌는지 사쿠사가 맨날 생각나서 미.치겠음. 어딜 가도 다 사쿠사랑 갔던 데여서, 꼭 그런 것만 같아서 미.치겠음. 혼자 다시 짝사랑 시작한 기분 같고 답답해 죽을 것 같음. 사쿠사랑 사귀기 전에도 이렇게까지 끙끙대본 적 없는데, 사귀던 당시에도 이렇게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더 미칠 것 같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음.
먼저 연락해볼까? 라는 생각을 진짜 85930480 번 했는데 구질구질해보여서 못 하겠음. 아니, 사실은 구질구질하게 보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닝이 연락을 시작할 용기가 없었음. 과거 라인 기록 다 지워버려서 라인 걸려면 다시 완전 새로 시작해야해서 사쿠사한테 1:1 채팅 걸기 들어가면 아무 기록도 없는데 그걸 보니까 너무 막막한 거임...차단 안 먹은 게 용하지... .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지....어떻게 첫 라인을 보내야하지...이런 생각할 때마다 사쿠사랑 옛날에 라인했던 거 생각나고 막 그러면 또 사쿠사가 자기 아프다고 걱정해줬던 거나 왠일로 먼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문자같은 걸로 애정표현 해줬던 거나 막 생각나서 또 눈앞이 흐려짐. 분명 라인으로도 꽤 신경전 벌이고 싸울 뻔하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라인으로, 실제로 만난 일들 중에 엄청 서운했덨 게 꽤 있었는데 그런 건 잘 기억이 안 나고 서로 직접 만나서 얼굴보고 얘기 좀만 하면 사르르 풀렸던 것 밖에 기억이 안 남. 힘든 얘기 하면 나서서 썩은 표정 지어가며 그건 또 뭐하는 새X 냐면서 같이 욕해줬던 거나 기분 좀 풀라고 안아줬던 거 밖에 떠오르지 않고 그리워 미.칠 것 같음.
근데 닝 사쿠사랑 헤어지고 나서 정말 차분한 상태에서 잘 생각해보니까 자기가 사쿠사한테 사쿠사가 하지 말라고, 좀 자제해달라고 얘기했던 싫어하던 행동을 좀...많이 했던 것 같아서(그래도 자아성찰은 할 줄 아는 착한 사람...) 더 먼저 연락할 염치가 없음.
친구들한테 얘기해봐도 더 절박한 쪽이 매달리는 거지, 한 번 해봐, 라는 결론이 많아서 하 그럼 진짜 연락해볼까...고민하지만 그러면 또 진짜 나 혼자 매달리고있는 것 같아서 또 눈물만 쏟아지고 그러면서 또 자기가 잘못한 거 생각나고 못하겠음. 이미 너무 늦은가 싶기도 하고...어쩌지...어쩌지...하면서 밖에서는 밝은 척을 하지만 친한 친구들을 만나거나 집에 돌아오면 우울해지는 나날들의 반복.
사쿠사는 딱 그거임. '소중한 건 주변에 있을 때는 그 가치를 몰랐다가 사라져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닝이랑 사쿠사가 헤어진 시기가 한창 대학 배구(닝 사쿠사 둘 다 대학생 땅땅땅ㅇ) 시즌이 시작할 시기여서 닝이랑 대판 싸우고 기분 나쁘게 헤어졌지만 그런 데에 신경을 집중할 겨를이 없었음. 물론 신경이 안 쓰였다고 하면 당연 거짓말이지만, 그런 것보다는 하루가 연습, 연습, 연습이었기에 닝의 빈 자리를 느낄 여유가 없었던 거임.
그러다가 시즌이 마무리 되고 마음이나 머리나 좀 빈 공간이 생기니까 그 공간에 원래 크게 자리잡고있던 닝이 사라진 게 훅 다가옴. 닝 생각하면 자기가 스트레스 받았던 일도 많았지만, 그것보다도 자기가 닝을 만날 때의 안정감이 컸었음. 귀찮게 굴지도 않고, 이상한 언행도 안 하고, 취향이 맞는 게 많다거나 그런 편은 아니었지만 그냥 품성이 잘 맞았음. 동류여서 죽이 맞았다기 보다는, 닝이라는 퍼즐조각하고 사쿠사라는 퍼즐조각을 맞춰보면 어디 어긋나는 부분 없이 딱 들어맞는 느낌으로.
사실 사쿠사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옆에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미팅 나온 닝 마주치는 순간 멀쩡히 잘 살고있는 듯한 닝을 보니까 갑자기 짜증이 확 끓어오르면서 그런 닝에게 짜증을 느끼는 자신에서부터 자기는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됨.
그리고 케이크 카페에서 닝을 마주치니까 그런 외로움을 지워줬었던 닝이랑 함께 했던 게 촤르륵 떠오르면서 이제는 점점 신경질이 나기 시작함. 왜 닝을 그렇게 보내버렸을까, 하고. 그리고 닝도 미워짐. 왜, 진짜 다른 거 다 좋았는데, 술 좀 그만 마시러 다니라니까, 진짜 그거만 아니어도 좋았는데, 왜 내가 그렇게 한 순간에 너를 보내도 미련 없다고 생각해버리게 행동했어서, 하면서 닝에 대한 원망도 생김. 하지만 그런 애증도 잠시, 결국 그래도 나는 그런 너를 생각보다 많이 좋아했다는 것도 인정함. 너의 빈 자리가 크다는 것도 인정하기로 함.
...좋아, 외로움을 인정하게 되었는데, 근데, 내 옆에 있어줄 사람이, 너를 대신할 사람이 생각 안 나고 왜, 왜 생각나는 사람이 너밖에 없는 걸까. 나는 이렇게 뭔가 빈 것처럼 살고있는데, 너는? 늘 그렇듯이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잘 다니고, 잘 꾸미고...잘 먹고다녔는지 살도 좀 찐 것 같더라. 그 정도로 잘 살고있는, 네 말을 빌려 거슬리는 말만 해대던 내가 사라진 너한테는 내가 필요할까?
결국 본인의 표현을 빌려 네거티브한 게 아니라 신중한 사쿠사는 닝에게 연락을 하지 않기로 함. 그러나 이쪽도 아무 이유 없이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는 경우가 많음. 마치 누군가가 연락하기로 했다는 듯이.
그래, 뭐, 둘은 엄청 서로에게 모든 걸 다 주고 싶을만큼, 라인 답장이 끊기면 애타서 죽을 것만 같은 깨소금과 로맨틱함이 넘쳐나던 커플은 아니었지만, 서로가 있어서 둘이 생각하던 것보다 많이 의지가 되었던 사이였음. 그리고 둘은 지금 그 날, 싸웠던 그 날 좀만 더 내가 쌓인 것만 풀지 말고,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볼 걸, 이별 선언 그렇게 쉽게 하지 말 걸, 혹은 그렇게 쉽게 이별 선언을 받아들이지말 걸, 내가 조금만 더 행동을 바꿨다면 우리는 그대로일 수 있었을까, 하고 후회하고 있음.
***
그렇게 가을 장마는 모두 지나감. 슬슬 일주일에 두 번은 이제 진짜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찬 공기가 만연하는 계절이 다가옴.
하루는 닝이 밖에서 일이 있어서 그거 다 해결하고 해 질 때 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음.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진짜 예뻤음. 마무리 되간다고는 하지만 가을 하늘 아니랄까봐 해가 지면서 구름이 주황과 분홍으로 물드는데 진짜 보고만 있어도 그 수채화로 유려하게 그려낸 것 같은 아련함과 아름다움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음.
사실 막 그렇게 눈물이 고일 정도는 아니었음. 근데 진짜 예쁜 건 맞는데 닝이 그냥 최근 너무 감성적이게 살아서 그런 것이었음. 가을 타나보다, 하고 다 끝나가는 가을을 핑계대며 스스로 합리화 시켜보지만 이유가 너무 명백한 게 어떻게 변명해볼 수가 없었음. 창가쪽 자리에 앉아서 닝이 창문에 머리를 살짝 기대고 할 수 있는 것은 마치 한숨을 쉬듯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것 뿐.
닝 그렇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좀 먹먹한 마음으로 앉아있음. 먹먹하다, 닝한테 제일 맞는 표현인 것 같음. 이제 지쳐가기도 함. 진짜 놓아야 하나? 나만 이렇게 일상생활에 지장 있고 나 자신을 좀먹어 가는 건 아닐까? 그냥...포기하면 편해지려나? 그런데 포기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포기하는 거지? 포기한다고 진짜 내가 다시 원래대로 살 수 있을까? 친구들이 말하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혹시 아니면 어떡하지? 키요, 아니, 사쿠사 그래도...나랑 잘 맞는 사람이었는데, 진짜 이 세상에 사쿠사보다 좋은 사람이 없으면 어떡하지? 미래의 나는 후회하려나? 왜 그 때 사쿠사를 안 붙잡았냐고? 어떡하지?
진짜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타입의 닝이었지만 최근들어서는 버스에 오르는 한 발짝, 내리는 한 발짝에도 수천 번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 같음. 슬슬 바빠지는 시기가 찾아올텐데 그 전에는 정리, 를 하던 말던 해야할 것 아니냐,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음. 그런데 막상 정리하려니까 정리는 또 어떻게 하는 거지? 하면서 먹먹해짐. 자꾸 돌아오는 결론이 아 나 진짜 걔 좋아했구나 밖에 없어서...에이씨 노을도 예쁜데 걍 울어버릴까 이런 생각도 듦.
강변을 달리는 버스. 아름다운 하늘과 그 하늘을 똑같이 반사하고 있는 넓은 강. 그 때 키요오미랑 맥주 마셨던 거 진짜 맛있었는데. 왜 저번에 동기들이랑 왔을 때 마신 건 그렇게 맛있지가 않았을까. 분명 똑같은 안주에 똑같은 브랜드의 술이었는데. ...아, 자꾸 키요오미라 하는데, 미.치겠네. 아냐 이젠, ...사쿠사.
사쿠사, 어쩐지 한참을 낯설게 느껴지는 그 이름을 되뇌이던 닝. 저기 강가에 같이 서있을 때는, 같이 걸을 때는 한없이 가깝게 느껴졌는데 왜...어쩌다 멀어졌지? 왜 그렇게, 낯선 사이가 되어버린 거지? 정말 다시 돌아가면 안 되는 걸까...? 진짜, 돌아가면 안 될까?
그렇게 고민과 슬픔과 후회로 가득찬 닝을 태우고 달리던 버스가 강변의 한 버스 정류장에 천천히 멈춰섬.
그 때 닝 눈에 팍 들어온 거임.
사람 없는 버스 정류장에 혼자 검정 항공점퍼에 회색 후드티 입고 마스크 쓴 채로 무미건조하게 지나가는 버스-닝이 타고있던-을 흘겨보던 사쿠사가.
키요오미임. 저건 백퍼 키요오미임. 저 혼자 겁나게 큰 키 하고 사람에 따라 위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떡대하고 어딘지 주위까지 칙칙하게 보이게 하는 분위기의 사람, 그럼에도 자기를 반하게 했던 그 분위기의 사람은 사쿠사가 아닐 수가 없었음.
닝 내릴 예정도 없던-원래는 네 정거장 정도 더 남았음-정거장에서 버스 안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교통카드 찍고 급하게 뛰어내림. 왜인지 모르겠음. 머리보다 몸이 먼저 뛰어내림. 그 결과 버스 계단 내려오면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부터 조금씩 후회가 들기 시작함.
왜 내렸지? 왜? 그런데 여기서 안 내리면? 키요오...사쿠사를 이렇게 보낼거야? 정말? 진짜 후회해? 여기서 놓치고 또 새벽까지 핸드폰 붙잡고 고민할 거야? 고민하다가 아까 왜 거기서 안 내렸냐고 자책할 거야? 그러다 또 울면서 잠들 거야? 그걸로 만족하는 거야? 정말로 지금 여기서 뛰어내린 걸 후회하는 거야?
그렇게 자기한테 아까보다도 더 엄청난 양의 질문을 던지며 닝은 내리고, 버스는 느긋하게 가던 길로 움직이기 시작함. 사쿠사도 버스에서 누가 급하게 뛰어내리길래 자연스럽게 시선을 버스 문 쪽으로 옮김. 처음에는 누가 저렇게 급하게 내리나, 하고 그냥 쳐다보던 사쿠사도 내린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후에는 그 자리에서 닝을 쳐다본 그 자세 그대로 멈춤.
터벅,
터벅.
사쿠사에게 떨리는 걸음걸음으로 천천히 가까워져 오는 닝. 지금 자기 표정이 어떤지 모르겠음. 웃고 있을까? 아무 표정도 아닐까? 혹시 울고 있는 건 아닐까? 모르겠어. 단 하나 알겠는 건,
내가 여기서, 내 눈 앞의 사쿠사 키요오미에게, 전할 말이 있다는 것.
(제 비루한 글이나마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ㅠㅠㅠㅠㅠㅠ 아니 이거 왜이렇게 길어져.....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