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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이 무언가를 받는 시늉을 하더니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엿 고마워~ 잘 먹을게!
‘야, 경수야. 펜 좀.’
‘야, 교과서 같이 보자.’
‘야, 경수야. 샤프심 빌려줘.’
‘야, 경수야.’
‘경수야.’
경수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백현은 분명히 없었는데 자꾸 헛소리가 들리는 시점에까지 이르렀다. 어제 변백현에게 너무 시달린 탓이었다.
경수는 오늘 짝에게 눈빛으로 애원했다. 제발 변백현이랑 자리 바꾸지 마.
짝이 눈빛으로 말을 했다. 난 변백현에게 맞기 싫어.
백현은 경수의 옆 짝 의자를 툭툭 발로 쳤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내가 눈이 잘 안 보이는데, 자리 좀 바꾸자. 어? 짝이 소리 없이 일어났다.
야, 앉아. 괜찮아. 진정시키려는 경수의 말에 짝이 조용히 두리번거리면서 눈치를 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가 불안한 듯 엉덩이를 떼었다.
백현이 픽 웃었다. 내 말 안 들려? 백현의 발이 다시 짝의 의자를 건드렸다. 아까보다 센 강도였다.
알겠어, 백현아. 짝이 버벅거리면서 일어나더니 짐을 들고 빠르게 자리를 피해주었다. 백현은 그 곳이 원래 자기 자리인냥 털썩 앉았다.
“학교 폭력으로 신고할 거야.”
응, 그래. 귀찮은 듯 대충 대답을 한 백현이 책상에 엎어졌다.
“야, 요새 너 괴롭히는 애들 없어?”
“있어. 매일 스트레스 받아서 뒤질 것 같아.”
“누구?”
백현의 작은 눈이 나름 동그랗게 커졌다.
“너.”
경수의 대답에 백현의 눈이 다시 작아졌다. 작아진 눈이 또 웃는다.
“난 너 안 괴롭히는데?”
“됐어, 말을 말자.”
짜증 섞인 경수의 말에 백현은 잠시 머리를 도록도록 굴렸다. 아마 또 관심을 끌 소재를 끌어오는 모양이었다.
왜 샤프 모양은 이런 걸 가지고 다니냐, 이 샤프에 달린 동물이 널 닮아서 못생겼다, 이 지우개는 더러운 게 꼭 네 마음 같다 같은 유치한 말들. 변백현은 아직 애였다.
관심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강아지를 닮았다. 저 좀 봐달라고 양말을 물고 낑낑 늘어지는 개.새.끼.
하지만 예상 외로 뜬금없는 말이 나왔다.
“이재국한테는 사과 받았어?”
“걔한테 내가 왜?”
너 머리에 공 날렸잖아. 백현의 말에 잠시 경수는 골똘히 생각했다. 그런 적이 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니, 안 받았는데.
시끄럽던 백현의 입이 갑자기 다물렸다.
한 아이가 들어와서 백현에게 소식을 알렸다. 이번 수업 시간 끝나고 학생부실로 내려오래.
이번에는 엿 먹으라는 식으로 학교 폭력 상담 종이를 넣지 않았는데 왜? 왜 호출되지.
“야, 도경수.”
“왜.”
“얼굴에 상처 있어도 여전히 잘생기지 않았어?”
여자애들이 나 진짜 좋아해. 내 번호 줄까? 묻지도 않은 자랑에 핸드폰 번호를 가지라고 웃으면서 협박까지 한다.
“내가 도경수인데, 무슨 볼일 있어?”
“저기, 그. 어….”
다시 폰 게임을 시작한 백현이 화면을 보고 실실 쪼갰다. 이번에는 내가 꼭 깬다.
이야, 다 뒤졌어. 경수 앞에 서 있는 남학생이 이상하게 백현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저번에 줄 새치기해서 미안.”
“새치기? 언제? 나 요새 급식 잘 안 먹었는데.”
“3개월 전에. 그러니까, 18일.”
3개월 전? 예전 일로 이렇게 사과를 하러 온 건가. 경수는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백현이 옆에서 또 킬킬대고 있었다. 아마 순위를 깼나보다. 그래. 경수가 짧게 대답하자 남학생이 다시 말을 했다.
그럼 용서해주는 거지? 용서한다고 말해줘, 제발.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응, 그래. 용서할게. 감정없는 목소리도 대충 내뱉었는데도 그 남학생은 허리를 구십도로 숙이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상한 과거 일들로 사과를 하러 온 여럿의 시작이었다.
경수야, 일주일 전에 내가 너 체육복 몰래 입었어. 용서해줘.
사실 내가 5개월 전, 점심시간에 너 몰래 교과서 훔쳐서 본 적 있어. 미안. 용서해주라.
저 그 때 잃어버렸던 샤프 내가 가지고 있어. 용서해줘.
너가 선도부 할 때 나 잡혀서 뒤에서 욕한 적 있어. 미안해.
경수는 이상한 사과들을 받으면서 연신 고개를 기계처럼 끄덕였다. 그래, 용서할게. 그래, 귀찮으니까 이제 제발 좀 하지? 슬슬 짜증이 날 참이었다.
마지막 애는 유달리 말을 잘 못하고 버벅거렸다. 여전히 백현은 폰 게임 중이었지만 그 남자애는 백현의 눈치를 계속 보았다.
“왜 날 보는데? 누가 보면 오해할라.”
남자애는 저번에 몰래 필기를 베꼈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 미안하면 됐어. 겨우 애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재국이랑 싸웠다는데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백현이가 먼저 달려들어서 싸웠대.
지금 재국이랑 서로 화해하고 주동자인 백현이가 남아서 반성문 A4용지로 두 장 꽉 채울 때까지 그 곳에 있기로 했어.
경수가 백현의 반성문을 몰래 보았다. 백현의 손가락 사이로 글씨가 보인다.
경수.
도경수.
눈을 의심했다. 반성문에 왜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지. 혹시나 숨겨진 암호라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스스로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히 이건 경수 와 도경수 라고 쓴 글자이다. 글씨도 변백현을 닮아서 꼬불거리면서 자유분방하다.
담배.
페브리즈.
담배 냄새가 싫다고 말한 날부터 꼬박꼬박 페브리즈를 뿌리는 귀찮은 짓을 생각했다. 사물함에 고이 무셔두는 페브리즈.
우습게도 향이 좋다고 칭찬한 종류로 벌써 세 통이나 썼다. 냄새 질릴 것 같다니까 계속 싱글벙글이었다. 기분이 정말로 좋은 날이면 옷이 축축해질 정도로 뿌린다.
경수야, 어때? 나 이제 냄새 안 나지? 계속 끈질기게 묻길래 그냥 안 난다고 대답을 해주었을 뿐이다. 그래야 변백현은 입을 닫으니까.
담배 냄새가 안 나기는 뭘 안 나. 그냥 백현이 스치면 나는 냄새가 담배 냄새인데. 매일 그렇게 펴대는데 교복에 냄새가 안 베면 그게 더 이상하다.
샤프심.
필기.
공부.
교과서.
이상하게 백현의 시선을 의식할 때면 샤프심이 부러진다. 아마 손에 힘이 들어가서 일 것이다.
특히 공부할 때, 자는 백현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다가 번쩍 뜬 눈에 시선이 붙들렸을 때의 민망함이라던가.
교과서를 베고 자는 백현을 위해서 은근슬쩍 교과서를 옆에 두거나.
안전구역.
백현이 깨기 전에 서둘러 선도부실을 빠져나왔다.
“경수야. 그 때, 축구공 맞춘 거.”
“사과 안 해도 돼. 변백현이지?”
경수의 단호한 물음에 재국이 짧게 긍정의 대답을 보였다. 갈 길은 아직 멀었다. 경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경수야.”
변백현은 항상 일정한 높낮이가 있다. 허스키한 것도 아니고 저음도 아닌 이상한 목소리. 묘한 떨림을 부르는 그 음성.
“말 좀 들어, 개.새.끼야. 응?”
응. 짧게 대답을 한 백현이 또 웃는다. 작은 눈이 휘어졌다.
백도 - 안전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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