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그렇게 나와봤자 좋을 건 없어. 어린 아이처럼 굴지 말라고, 항상 말했잖아." 입가에 묻은 휘핑크림을 냅킨으로 닦아내며 유리가 말했다. 평소보다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그걸 알아차린 윤아가 눈썹을 씰룩거리며 벽에 걸려져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10시 20분.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려 하는 유리에게 오전 10시란 꽤 이른 시간이었다. 늦은 감이 없지만 이제 와서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눈두덩이가 꽤 거뭇거뭇했다. 윤아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잔을 들었다.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얼음이 들어간 커피만을 고집하는 윤아의 습관때문에 그 모습을 보는 유리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저건 나이를 쳐먹어도 다른 사람 말은 죽어도 안듣지. 윤아가 잔을 내려놓을 때까지, 유리는 짧게 심호흡을 했다. 항상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편이었지만, 유리는 항상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 1년 전에도 그랬고, 10년 전에도 그랬다. 그래서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후회를 거듭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유리의 지긋지긋한 습관이었다. 윤아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긴장 상태를 놓지 않으며, 인상을 찌푸린 윤아가 조심스레 잔을 내려놓았다. 동시에 굳게 닫혀져있던 유리의 입술이 열렸다. 윤아는 한숨을 쉬었다. "너 언제까지 그럴래? 정수연, 그 년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니 일에 발 벗고 나서 줄 것 같아? 니 사생활이 있듯이, 나도 내 사생활이 있는거야. 니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고, 내가 도와주고 싶어도 여건이 못되면 못도와준다고. 몇번을 말해야 알겠는데?" "아… 근데 언니." "왜." "…언니 진짜 말 많다." "그게 지금 할 소리야?!" 높게 째지는 유리의 목소리에 윤아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카운터에 있던 점원이 크게 뜬 눈을 하고 윤아와 유리를 바라봤다.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하고 쏘아주려던 유리가 그 시선을 느끼고 헛기침을 했다. 세모꼴을 했던 눈에 힘을 풀며 윤아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언니." "아, 또 뭐?!" "그래도 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 도와줄거잖아요." "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야?" 글쎄. 어깨를 으쓱한 윤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보였다. 그 표정에 잠시 가만히 있던 유리가 이내 힘을 풀고 윤아를 따라 미소 지었다.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이었다. 내가 윤율에 빠지다니... 큰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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