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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100l
이 글은 10년 전 (2014/2/09) 게시물이에요


  

  

  


  


  


  

ㄱ 오백 조각 | 인스티즈  


  


  


  


  

지옥을 거슬러 구원자가 왔단다.  


  

이제 진짜 지구가 망하려나 보다.  


  

그 당시의 백현은, 정말이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  


  

 시커먼 바닷물이 회백색의 건물 벽면을 부술 듯 세차게 파도를 만들어내며 부딪혔다. 바다를 감시하듯 비추는 빛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칠흑같은 밤이었다. 요새의 밤을 지키던 백현이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그러나 차단된 시각덕에 극대화 된것은 청각이었다. 물론 들리는것은 언제나 같았다. 넘실거리는 파도소리. 어둠을 찢어내듯, 괴이하다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울음 소리들. 순간 소름끼치는 악몽속에 빠진 기분에 백현이 황급히 다시 눈을 떴다. 새삼 엄습하는 긴장감에 백현이 옆구리에 매달린 긴 총을 재차 꽉 쥐었다. 짠 바닷바람에 어렴풋이 피비린내가 섞여 있는듯한 착각이 일었다.   


  

찬란했던 역사속에서 지구의 왕으로 군림했었을 인간은 어느새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 옛날 대부분의 사람이 예측했던 절망의 미래는 이제 최악의 시나리오로만 이루어진 마치 한 편의 영화같은, 그러나 어엿한 현실이 되었다. 괴생명체. 옛날의 사람이었으면 코웃음을 흘렸을 그 단어가 이제는 인류를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실재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다. 아마도 바다에서 태어났을 그 저승사자들은 섬지역 부터 시작해 지구상의 인간들을 마구잡이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불어나는 수면의 높이와 덩달아 늘어나는 그것들에 인간이 두 발을 붙일 수 있는 곳은 점점 줄어들어 가기만 했다. 그 어느날부터 시작되어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는 상황에 인간들은 아무런 대책없이 우왕좌왕 흩어지고 죽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을 억지로 이어가는것에 인간은 인간 스스로를 동정하며 비웃고 있었다. 그 심연에서부터 내재된 절망감은 지옥과 가장 가까이 맞닿은 바로 이 곳 인류의 마지막 요새를 지키는 사람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 그 요새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에 나와있는 백현도 수긍하는 바였다. 상황이 악화됐으면 됐지 인류가 모두 멸망하기 전까지 이 저주는 끝나지 않을것이라고. 모두들 자신의 목숨이 다할때까지 종말이 미뤄지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 어…? "  


  

그때, 한참을 난간에 기대어 밤바다를 바라보던 백현이 놀란 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형체를, 눈을 가늘게 뜨고 확인하던 백현의 눈동자가 점점 당혹감으로 크게 뜨여졌다. 저게 뭐야. 헐레벌떡 바닥에 굴러다니던 망원경을 줏어들고 눈에 들이댄 백현이 저도 모르게 단발마의 탄성같은 것을 흘렸다. 어…, 어. 말도 안돼…. 망원경안에 담긴 것은 온통 새카만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고 도통 믿기지 않는 낡은 조각배. 그리고 그 조각배 위에 서 있는자는 제 또래쯤 될 법한 남자였다. 어떻게 저기서, 인간이. 순간 먼저 이성을 앞질러드는 경계심에 일단 옆구리의 총부터 집어든 백현이 망설임 없이 총구를 남자에게로 향했다. 스코프를 조이며 남자를 조준하던 백현은 문득 스코프 너머로 남자와 눈이 마주쳤음을 느꼈다. 그대로 서늘해지는 등골을 느끼며 백현이 덜덜 떨리는 팔을 진정시키려는 순간,   


  

" 거기, 너. "  


  

귓가로 파고드는 목소리에 질겁한 백현이 가까스로 치미는 비명을 삼켰다. 바로 옆에서 귓속말이라도 하듯이 가까웠던 목소리에 백현이 비틀대며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주위에는 분명 아무도 없었다. 백현이 멍하니 남자쪽을 바라보았으나 곧 고개를 내저었다. 이 목소리가 자신과 멀리 떨어져있는, 저 남자의 목소리일리는 없었다. 그럼, 날 부른건 누구란 말이야? 잔뜩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첸을 부를까 고민하던 백현은 재차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그대로 빳빳이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 날 봤지? "  

" 으악…… ! "  


  

놀라 총까지 떨어뜨린 백현은 다리에 힘이 풀리기전 간신히 난간을 붙잡아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 백현이 떨리는 시선을 여전히 시커멓게 울렁이는 바다, 그 속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남자에게로 두었다. 정말… 저 남자가 나한테 말을 하는건가? 하지만, 하지만…, 들릴리가 없잖아. 혼란스러움에 백현의 표정이 점점 이상하게 구겨져갔다.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 누구야…. "  


  

난간에 매달린 백현이, 혼잣말을 하듯 어지러운 심경을 뱉어냈다.   


  

" 네 앞에 있잖아. "  


  

그러나 그런 백현을 비웃기라도 하듯 즉각 되돌아온 대답에 당황한 백현이 발작하듯 어깨를 떨었다. 정말 저 남잔가? 내 말도 들리는 건가? 꿈같은 상황에 멍청히 볼을 꼬집어보던 백현이 총 대신 다시 망원경을 주워들었다. 훨씬 더 가까워진 남자는 확실히 자신을 보고있었다. 그 시선을 코 앞에서 마주하고 말한다는 착각과 함께 백현이 다시 입술을 열었다.    


  

" 너, 뭐야…? "  

" ……. "  

" ……. "  

" ..구원자? "  

   

느릿하게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백현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 비슷한것을 흘렸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허무맹랑한 단어였다. 구원자라니. 무슨 말도안되는. 현실감 없는 지금의 상황속에서도 패배감과 절망감은 백현을 무섭게 뒤덮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남자를 조소하던 순간, 백현의 귀에 한번 더 남자의 목소리가 박혔다.   


  

"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할 열쇠를 쥐고있어. "  

" …… "  

" 문을 열어줘. "  


남자의 말에 백현은 떨리는 입을 억지로 열어 말을 이었다.   


  

" 못 믿어…, "  

" 증거라도 보여줘? "   

" 증거? …… 그,그래. 맞아. 네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증거를 보여, 헉, "  


  

그러나 순간 일어난 상황에 백현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경악에 물든 백현의 눈동자가 멍하니 남자쪽으로 향했다. 수면위로 떠오른 끔찍한 형체가 남자를 집어삼킬듯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평생에 저렇게 큰 것은 처음이었다. 귀를 찢을듯이 울리는 울음소리에 백현은 저도 모르게 몇걸음 뒤로 몸을 물렸다.   


  


  


  

  

ㄱ 오백 조각 | 인스티즈  

" 놀라지마. "


  

그러나, 이어진 상황은 더더욱 믿기가 힘들었다. 나직하게 울려퍼지는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무섭게 울리던 괴물의 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멎은것이다. 그 덕에 백현은 순식간에 사라진 소음안에 묻혀있던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먼저, 밑에서도 괴물의 소리를 들었는지 다급하게 백현을 부르며 밑에서 제 쪽으로 올라오는 대원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또 언제나와 같은 파도소리가 백현의 머릿속을 메웠다. 그리고,  


  

" 이 정도면 됐어? "  


  

여유로운 남자의 음성과 함께 천천히 수면아래로 추락하는 괴생명체의 모습을, 백현은 그야말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이 되어 바라보고 있었다.   


  

" 백현아…! …… 이, 이게 뭐… "  


  

그제서야 막 올라온 첸이 백현의 어깨를 붙잡은 동시에, 백현의 손에 들려있던 망원경은 힘없이 늘어진 백현의 손을 벗어나 바닥을 뒹굴었다. 백현아! 괜찮은 거야?! 완전히 정신을 놓던 순간까지 제 몸을 흔들어대던 첸 그 자식이 어렴풋이 뺨을 갈긴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 굴욕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붙잡지 못한 정신속에서도 자신이 구원자며 문을 열어달라던 남자의 목소리는 마지막까지 백현의 귓가에 남아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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