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딸랑-
풍경이 울린다. 자비 없이 내리쬐는 햇볕과 고막이 터질 듯이 울어대는 매미떼 덕에 잔뜩 심기가 불편해졌던 내 마음을 달래 주는 듯하다.
하지만 청량한 풍경 소리에 한껏 시원해졌던 내 기분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지민아!"
나보다 2살이나 어리면서 뻔뻔하게 '지민아-'라고 외치며 내가 앉아 있는 마루로 눈가의 주름을 한껏 단 채, 웃으며 뛰어오는 전정국을 보면 얄미워서 저 눈가 주름을 쭉 잡아당겨 버리고 싶었다.
눈가에 주름이 많으면 바람둥이라는 소리가 있던데, 딱 전정국을 보고하는 소리인 듯하다.
온몸이 녹아 버릴 듯이 더운 여름에도 항상 입엔 옵션으로 쭈쭈바를 물며, 자전거를 타고 실실 웃으며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이쁜 여자 어디 있나 탐색을 하고 다니는 아이이니깐.
난 그런 정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동네 이쁜 여자들을 탐색하고 온 건지 전정국의 이마와 머리 끝부분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지민아-가 아니라 지민이 '형'이야. 엄연히 너보다 2년 먼저 태어난 형님이란 말씀이야. 이게 까불고 있어."
"2년 먼저 태어나신 우리 지민이는 2년 늦게 태어난 정국이 보다 성장이 느린 가봅니다. 몸집이나 키우고 형님 소리 듣기 바라. 지민아."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내 말이 우습다는 듯이 맞받아치는 그의 말을 듣고 난 주먹을 쥐었다. 주먹을 쥔 지 별로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꽉 쥔 내 손에는 땀이 나는 것 같아 기분이 더더욱 나빠졌다. 이 더러운 기분을 그대로 내 주먹에 담아 전정국 얼굴에 내리꽂을 생각이었다.
그때 휘파람을 불며 능청 떨고 있는 전정국의 옆에 아까 들고 온 듯한 가지런히 놓인 수박 하나와 하드 서너 개가 보였다. 내 시선이 어디로 가 있는지 눈치챈 전정국은 '아-' 소리를 내며 수박과 하드를 나에게 건네었다.
"내가 너 먹으라고 수박이랑 하드 사 왔다! 나 착하지?"
이번에는 봐준다. 전정국. 다음엔 얄짤없어.
---
전정국은 금세 수박과 하드 2개를 해치우고 내 눈치를 보며 선풍기를 자신의 쪽으로 해 놓고 마루에 벌러덩 누운 채 나에게 여전히 덥다며 징징거렸다.
"지미이이나아-"
"지민이 형."
"나 이대로 말라서 죽어버릴 것 같아."
지민이 '형'이라고 '형'을 강조하는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깡그리 무시하고는 자기 할 말만 하는 전정국을 조용히 노려보다 손바닥으로 누워있어 훤히 드러나는 정국의 이마를 찰싹- 소리 나게 힘껏 내리쳤다. 이건 그냥 때리라고 멍석 깔아준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것에 보답하겠다는 듯이 한번 더 힘껏 내리쳤다. 찰싹-
매미 우는소리와 이마를 때리는 소리가 겹쳐져 더욱 찰졌다. 정국은 아픈 신음을 내며 일어났다.
나는 매우 뿌듯해하며 남은 하드를 마저 할짝 핥았다.
"아-! 왜 때리는 거야? 아프잖아!"
"......."
나는 대답 대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것은 전정국의 대한 나의 소심한 복수였다.
눈을 조용히 흘겨 전정국을 쳐다보았다. 벌게진 이마를 씩씩대며 손으로 쓱쓱 문지르고 있는 정국은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그래도 어쩌겠어. 형이라고도 안 불렀으면서 말까지 무시한 전정국 잘못인걸. 난 애써 합리화하며 정국의 시선을 무시했다.
정국은 나를 노려보다 이내 다시 벌러덩 눕고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나도 그런 정국을 따라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햇빛 덕에 자연스레 눈은 찌푸려져 눈가에 주름이 생겼다.
8월의 하늘은 생각보다 딱히 별 볼일 없었다. 그냥. 그냥 평소보다 좀 더 파랬을 뿐이었다.
나는 하늘을 보는 것을 그만두고 정국에게 시선을 두었다.
쓸데없이 잘생겼네. 짜증나.
난 정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정국이 좋았기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 하지만 진짜인걸. 난 저 아이가 너무 좋아서 매일 짜증이 났으니깐.
항상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저 아이에게만은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멋진 형아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왜. 왜 날 항상 동생 취급만 하는 걸까.
카사노바처럼 예쁜 여자만 졸래졸래 쫓아다니며 구애를 하는 정국을 보면 짜증이 났다. 내가 떡하니 옆에 있는데. 나는 왜 이쁘지 않지? 아니 나는 왜 여자가 아닌 걸까? 우울하다.
한참을 정국의 얼굴을 보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치는 전정국이다.
"왜 그렇게 쳐다보냐. 너무 잘생겨서? 반했구나. 우리 지민이."
"... 뭐래."
"아니야? 슬프다. 난 지민이한테 반했는데..."
툭- 손에 들고 있던 하드를 떨어뜨렸다. 그 상태로 난 얼음. 우리 둘 사이엔 정적.
"뭐야. 설마 진심으로 받아들인 거야? 순진하구나. 지민이는."
뭐가 그리 웃긴지 손으로 바닥을 치며 푸하하 소리 내며 웃는 녀석을 보자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어쩌자고 그런 농담에 놀라서 하드를 떨어뜨렸을까. 지금 당장 저 마당에 서 있는 나무에 달려가 머리를 박아 죽고 싶었다. 억울했다. 나는 녀석의 농담 하나에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제 속도 모르고 재밌다고 저렇게 웃고 있는 놈을 보니 너무 분하고 억울하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뚝-뚝- 닭똥 같은 눈물이 하나둘 볼을 타고 흘러 허벅지에 떨어졌다.
"지민아? 너 울어?"
내가 우는 것을 보았는지 웃음을 멈추고 누웠던 몸을 급히 일으켜 저에게로 왔다. 왜 울고 그래. 뚝. 정국은 내 볼을 양손으로 잡고, 눈물을 두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다정한 녀석의 손길이 너무 좋았다. 계속 이렇게 나를 다정하게 만져 주었으면 했다. 동시에 녀석이 또 날 '지민아-'라고 부른 것이 생각이 나 분했다. 그래서 그런지 멈춘 줄 알았던 울음이 다시 터졌다.
흐앙- 아까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나는 두 손을 꽉 쥐어 정국의 가슴팍을 때렸다. 정국은 나를 제지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내려다볼 뿐이다.
"지미니 혀이야! 혀-엉! 내가, 내가 형아라고! 끅- 왜 맨날 나 동생 취급 하능겅데! 너 시러! 나빠! 전정국 꺼져버려!
"......."
"그래! 나 진심으로 받아들인 거 맞아! 내가 너 좋아해! 너 좋아하니깐- 그래ㅅ..."
갑자기 부딪쳐오는 전정국의 입술에 내 뒷말은 밖으로 내뱉지 못 하고 그대로 삼켜졌다.
자연스럽게 입안으로 뭉툭한 혀가 들어오고 두 혀가 뜨겁게 얽혔다. 눈물은 멈춘지 오래다. 이게 뭘까. 왜 전정국은 나에게 키스를 해오는 걸까. 그리고 왜 나는 자연스럽게 키스를 받아주는 걸까. 전정국을 이해하지 못 하겠고,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 하였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좋기만 하면 되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팔로 정국의 목을 감았다.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두 입술이 떨었졌다. '아쉽다.'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아니 사실은 많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마 내 귀는 빨개져있을 테지. 정국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그리 재밌니.
"지민아. 아니, 지민이 형."
"... 왜."
"어떡하냐. 이렇게 귀여워서. 누가 이렇게 귀여우래."
"......."
"내가 좋았어요? 우리 지민이 형은 이 전정구기가 많이 좋았구나아-"
"조용해..."
"나도 좋아해. 많이."
나는 손을 내리고 전정국을 쳐다보았다. 정국은 지민아, 얼굴 빨개졌다. 하고 흐흐 웃으며 나를 자신의 품에 가두었다. 녀석의 가슴팍에 얼굴이 묻어진 나는 멍하니 있다 이내 나도 정국의 허리를 감쌌다.
"전정국."
"왜 지민아."
"... 아까 했던 말 다시 해 봐."
"응? 뭐? 지민이 너 얼굴 빨개졌다고 한 거? 아님... 흐- 좋아한다고 한 거?"
"......."
"좋아해. 지민아."
"... 나도."
지민이 형이야. 이 말은 꺼내지 않았다. 이 말을 꺼낼 시간에 전정국이 좋아한다는 소리를 더 듣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 그러니깐 더 해줘. 정국아.
딸랑 딸랑-
풍경이 울린다.
내 마음도 함께 울린다.
역시 망했다... 팬아트를 보고 여름날에 마루에 앉아서
첫키스 하는 국민이들을 보고싶었을뿐...
그리고 풍경이 울리는걸 넣고 싶었을뿐...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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