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잘래요?”
결국 호텔 방 안 까지 못 이기는 척 끌려온 정국이 실소를 터뜨렸다. 사실상 정국과 지민의 사이는 그닥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적대적인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 최근 승진그룹의 새로운 후계자랍시고 언론매체에 수 십 번 얼굴을 비추며 일순간에 떠오르기 시작 한 정국은 지민의 온갖 신경계가 제 멋대로 날뛰게 만든 장본인일 수 밖에 없었다. 사지도 온전한 친손자가 두 눈 부릅 뜨고 여기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건만, 어디 출처 모를 곳에서 나타난 놈이 저가 서 있어야 할 단상에서 두꺼운 얼굴을 하며 뻔뻔히 서있는 것 이었다. 그니까, 여지껏 고이고이 모셔놓으며 정성스레 손질해 두었던 참치 한 마리를, 웬 도둑 고양이 한 마리가 눈 깜짝 할 사이에 훔쳐갔다 이 말이다. 물론 이 까무러치고도 남을 배경지식을 지금 상황에 대입 시켜 무작정 이해 해 보려 한다면 그건 그저 막장 삼류 멜로 영화에 불과했다. 박지민이 저런 저급스러운 발언을 한 이유는, 결코 박지민이 삼류인간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 설마 아까 그 말 때문에.”
“… ….”
“지민 씨 생각보다 화끈하시네요?”
입꼬리를 쌜쭉 올린 정국이 지민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이런, 미친. 지민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욕을 겨우 집어 삼켰다. 아까 그 말이라고 한다면, 불과 30분 전에 전정국의 입에서 나왔던 세상 제일 저급스러운 말이었고, 그와 동시에 이 일의 화근이었다. 축하회 내내 윤회장의 곁에서 떠날 줄 모르던 놈이 저를 발견하곤 늙은 거북에게 ‘잠시.’ 라는 뜻의 목인사 하나로 금세 제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 이었다. 처음 주고 받았던 대화는 분명 날이 서 있었지만 여느 보통 대화들 만큼 무난했다. 반갑습니다. 실제론 처음 뵙네요. 뭐 이 따위의 말 들. 그 뒤부턴 점점 형식적인 대화 루트에서 벗어나는가 싶더니, 누가봐도 공격적인 말투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대화의 마침표는 전정국이 아주 말끔하게 찍어버렸다. ‘나랑 한 번 자면, 이 자리 돌려줄 수도 있고요.’ 라며. 아주 말끔하고도 더럽게 말이다.
“전 그냥 장난이었는데. 어지간히 급하셨나보다.”
“…허.”
“이 자리 되찾는 게 그 쪽 몸보다 더 중요한가봐요?”
“저기요 전정국 씨.”
“뭐, 지민 씨 같은 사람이라면 저야 땡큐죠.”
“이런 미친,”
“나랑 진짜 잘래요?”
일순간 진득하게 눈을 맞춰오며 허리를 숙이는 정국에 지민은 뒤로 주춤하고 말았다. 안그래도 벽 쪽에 서 있던 탓에 짧은 보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셔츠 한 장만 걸친 지민의 등이 찬 벽에 딱 붙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큰 사냥개 앞에서 잔뜩 경계 태세를 갖춘 듯 한 지민의 표정이 꽤나 볼만해 정국은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처럼 실소를 터뜨렸다. 고작 몇 분 사이에 공 수 역할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 같음이 의외로 흥미로웠다. 애초부터 공과 수는 완벽하게 짜여져 있었지만 서도.
“박지민 씨.”
“내 이름 부르지 마.”
꼬박 꼬박 존댓말을 쓰던 말투에도 이젠 빗금이 생겼다. 제 자존심을 있는 대로 짓밟아 버린 정국에게 조금의 호의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라도 저 자신이 전정국보다 한참 아래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를 바라보는 눈빛엔 조금의 일렁임도 없었다. 분명 저가 뒷걸음질 쳤을 때, 잔뜩 흔들렸던 눈빛을 한참 위의 시선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이렇게까지 분할 수도 없었다.
“나는 이 자리 별로 욕심안나요.”
“… ….”
“지금은 그 쪽이 더 흥미롭거든.”
일부러 지민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이곤, 통통한 귓볼에 민망한 소리를 내며 그제야 굽혔던 허리를 펴는 정국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올곧은 시선은 한 치의 일렁임이 없었고, 입꼬리만 슬쩍 올리는 것이 아닌 꽤나 밝은 웃음을 지으며 곧장 나가버리는 것. 그는 생각보다 훨씬 더 영악하고, 교활하며, 음흉한 사람이었다고. 어느순간 발갛게 익어오른 제 오른쪽 귀를 부여잡으며 지민은 생각했다.
뭘 쓴건지도 모르겠다..엉망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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