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아 우리,”
“싫어요.”
“…나 아직 아무말도 안했어.”
“싫다고,”
“… ….”
“분명히 말했어요 저.”
무슨 말을 꺼낼 지 뻔히 알고 있었다. 요즘 들어 눈에 띄게 연락이 뜸 했던 것부터 어쩌면 일말의 신호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어느 연인들에게나 쉽사리 찾아올 그 흔한 권태기라는 것도 없었다. 숨소리만 들어도 서로인지 알아 챌 정도로 둘은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있었고
매일 보는 얼굴임에도 질릴 틈이 없었다. ‘이 세상 그 어느 연인들보다 열렬히 사랑했다?’ 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두 사람 다 yes! 를 외칠 정도였다.
정국과 지민의 4년은 그랬다. 한 시라도 서로에게 소홀해 질 틈이 없었던, 빈 구석 없이 서로로 꽉 채워져 있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둘의 절정은 조금 늦은 시기에 찾아왔다. 아마도 지민이 암 말기라는, 조금 믿기 힘든 상황을 선고 받았을 때 부터 였다.
지민은 원체 저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산 만한 제 고통보다 고작 새끼 손톱 만한 남의 아픔을 더 위했다. 그걸 정국이 모를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더욱 싫었다. 분명 언젠가는 찾아 올 상황이겠거니, 싶었던 때가 생각보다 너무도 빨리 찾아온 것이었다.
“네가 아픈 건 정말 싫어 정국아.”
누구는 이 상황이 좋겠냐고, 다문 입 사이로 내뱉고만 싶었다. 아무리 직접적인 발언이 없었대도 분명 이별통보임을 알아 챌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이
정말이지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돼? 지금이 좋아. 굳이 헤어져야 할 필요 없잖아. 대체 왜? 수많은 질문들이 떠오르고
하고싶은 말이 많았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지민의 팔을 보니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정국은 지민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지민이 지금 얼마나 떨고 있을 지, 얼마나 아플 지, 또 얼마나 슬플 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도 형 아픈 거 싫어요.”
“…응.”
“아픈 건 진짜 너무 싫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 ….”
“그냥 형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최선이니까.”
“… ….”
“그 뿐이에요.”
“…정국아.”
“아프지 마요.”
지민은 정국의 말에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 눈빛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이 가득 고여서, 제 눈에서 마저도 무언가 흘러버릴 것 같았기에.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나와버렸다. 결국엔 정국이 또 한 발 물러섰다. 매번 이런식이었다.
4년이란 시간 동안 서로를 너무 잘 알아버린 게 원망스러울 정도로 정국은 지민을 너무도 잘 알아버려서. 이것이 분명 서로에게 득 될 것 하나 없다는 걸 안대도
지민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또 혼자 고민하고 아파할 것이니까. 제 탓이 아닌것도 본인 때문이라고 자책하며 스스로 구렁텅이에 빠져 버릴테니까.
처음으로 정국은, 저와 지민이 사귀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본인 때문에 지민이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없으면 그만이었을 저의 존재 때문에 쓸데없이 신경 쓰며 아파하는 지민인 것 같아서.
그리고 그 순간 정국은 발걸음을 멈추며 허탈한 듯 웃어버렸다. 4년이란 시간동안 저와 지민은, 너무도 많이 닮아가고 있었구나, 싶어서.
-
이제 곧 정국을 밝혔던 등불은 서서히 꺼져갈 것이다.
서로를 위해 열렬히 타오르기 시작했던 불씨였다면,
이젠 서로를 위해 점차 멎어들어갈 것이다.
그 것은 서로의 어둠을 밝혀내고 싶었던 모순된 종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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