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은 정국의 사소한 습관까지도 알고 있었다. 정국은 의외로 단순한 사람이어서 감정을 숨기지 못했고 수많은 감정들은 여러 습관으로 흘러 나왔으니까. 부끄러울 때는 목을 긁으며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고 화를 자주 내지는 않았지만 화가 났을 때는 허리춤에 두 손을 올린채로 지민을 응시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 거짓말을 할 때는 입술을 깨물었다. 가장 후자의 습관은 근 두달동안 지민이 알게 된 정국의 습관이었다. 연애 초반때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으니.
"오늘 시간 있어?"
"아니."
"나 오늘 너랑 밥 같이 먹고 싶은데. 저녁에도 시간 없는거야?"
"나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돼. 좀 바빠. 다음에."
다음은 없을 것이다. 정국의 입술에 잇자국이 살짝 남았다가 사라졌다. 지민은 코가 시큰해졌다.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정국은 정말 단순한 사람이었다. 거짓말을 하지 못했고, 화가 나면 그대로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지민은 그런 정국의 단순함이 좋았다. 지금은, 그런 단순함이 아팠다. 표정만 봐도 정국이 제 얘기가 얼마나 지루한지 느껴졌다. 정국은 잘나가는 회사원이었다. 지민은 프리랜서라는 이름을 달고 집에 있지만 사실상 백수나 마찬가지였다. 20대의 후반, 둘은 아프게 어긋나고 있었다. 정국이 회사에 가면 지민은 소파에 앉아서 그가 없는 시간을 공허하게 보냈다. 작업을 해보겠다고 노트북을 들고 앉았으나 째깍째깍, 초침소리가 귓전을 때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 눈물이 찔끔 났다.
정국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지민은 눈물이 많았다. 정국은 눈물이 많은 지민을 좋아했다. 넌 감정이 많은 사람이라서 좋다, 표현에 서툴었던 정국이 지민을 바라보며 말했었다. 지민은 그 단순한 고백이 좋았다. 정국이 아플때도, 화가 났을 때도 지민은 울었다. 내가 너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건 우는 것 뿐이다. 지민은 그래서 더 울었다. 그래서 지친걸까.
정국과 지민은 제작년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다. 둘다 어엿한 성인이 된지 5년째였고, 집에서도 터치를 하지 않다보니 자연스레 같이 살게 되었다. 그렇게 지민이의 작은 집에는 정국의 짐이 하나 둘 늘어났다.
"지민아, 우리 결혼할까?"
2년전, 지민을 안은 채로 정국은 말했다. 지민은 그 순간에도 울었다. 거창한 프로포즈는 아니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었으니까. 그때, 정국은 지민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 결혼하자, 우리.
"근데 결혼하면 우리집에서 계속 사는건가?"
"아니, 더 좋은데로 가야지."
"난 너랑 있으면 좁은데도 좋아. 붙어 있을 수도 있구-"
"물론 침대는 작을 수록 좋지. 당장 사러갈까?"
2년전의 고백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미완-이다. 당장 침대를 보러가자는 정국의 말을 들을껄 그랬나. 지민은 섭섭했지만 티내지않았다. 제 왼손에는 예쁜 반지가 있었고 지금은 준비 기간이니까. 정국이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테니까. 청소나 하자, 화장실에 들어간다. 정국이의 면도기가 세면대에 떨어져있고 칫솔도 널부러져 있었다. 정리하기도 싫을 정도로 빨리 나가고 싶었을까. 괜한 생각을 했다 싶어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본다. 이렇게 하면 잡생각이 가실꺼야.
오후 3시, 지민은 휴대폰을 계속 들여다봤다. 카톡- 하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고 바로보는건 자존심이 상하니 1분 정도 기다렸다 쉼호흡을 하며 카톡창을 켰다. '뭐하냐?' '데이트?' '시간 있으면 나와. 밥쏜다 ㅋ' 준비를 했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의미없는 태형의 카톡이었다. 휴대폰을 던졌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새벽 3시까지 휴대폰을 붙잡고 사랑을 속삭였던 때가 있었는데. 같이 산 이후로는 딱히 휴대폰이 필요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생각날 때마다 연락해주던 정국이었는데, 지민은 섭섭했다. 섭섭한 마음을 티내고 싶었다.
"..여보세요."
"정국아."
"나 바빠. 회의해야되는데."
"...넌 나 안보고싶어?"
베개에 얼굴을 파묻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정국의 숨소리가 들렸다. 내가 귀찮은걸까. 평소의 지민이었으면 미안해- 라며 전화를 끊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지민은 심심했고 공허했다. 있잖아 정국아, 나 떼쓰는거 맞는데, 니가 보고싶어서 그래. 넌 나 안보고 싶어? 지민은 정국의 보고싶다는 대답을 기다렸다. 그 대답 하나면 된다. 어서 대답해라. 대답하기 까지의 몇초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지만 그 대답하나면 괜찮았다. 정국은, 더 원망스럽게도 '나 회의 들어가야돼. 미안. 다시 전화할게' 라는 말을 남긴채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종료되었습니다] [01:43] 1분 43초간의 통화. 보고싶어, 라는 네 글자의 대답을 듣기 위해 나는 몇시간을 기다려야할까. 정국의 마지막 말의 글자 수를 세어본다. 나쁜놈, 그 말 할 시간에 대답해주겠다.
지민은 놀이터로 나왔다. 정국의 체취가 가득한 집에서는 그의 생각에 잠들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정국조차 없는 집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4년전에는 어떻게 지냈었나. 지민은 오늘따라 옛생각을 많이 했다. 오늘 하루동안의 정국이와의 대화는 짧디 짧았다. 아, 권태기구나. 지민은 깨달았다. 지민은 그동안 4년간의 연애가 길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정국과 함께할 평생에 비해 4년은 짧디 짧았다. 처음으로 그 시간들이 정국에게는 길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야?"
정국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안 울고 싶었는데 정국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부터 났다. 아침부터 평소와 같은 듯 다른 정국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동안의 설움이 북받쳤다. 권태기라는 걸 인지해서 그런지 정국의 목소리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놀이터."
"갈게."
"오지마. 너 오면 나 갈거야."
"어딜 가."
갈 곳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몰라."
"기다려. 갈게."
입술을 앙다물어 보지만 눈물이 났다. 소리치며 울고 싶었다.
"싫어. 안기다려."
"지민아."
"정국아, 나 쪽팔려."
"..."
"누구 좋아하는거, 예전에는 진짜 예쁘고 좋은건 줄 알았어. 나 근데 지금 너무 쪽팔려. 나만 좋아하는 것 같아. 힘들어."
"..."
"...끝낼까."
"박지민. 딱 기다려."
지민은 정국이 올 때까지 한참을 울었다. 지민은 자신의 끝내자는 말에 화가 난 듯한 정국 덕분에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우리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구나. 지민은 그런 스스로가 한심했다.
정국이 숨을 몰아쉬는 게 느껴졌다.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너는 지금 화가 났을 것이다. 허리춤에 두 손을 올린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겠지. 허공을 한번 응시했다가, 나를 봤다가, 어이가 없어 실소를 내뱉고는 다시 한 번 나를 보고 한숨을 쉬겠지. 지민은 정국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국을 안다는 이유로 정국을 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민은 지금 정국을 보고 싶지 않았다. 놀이터 우레탄에 발을 끄적이며 정국의 신발 코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애석하게도 정국은 지민과 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옛 생각이 났다. 지민과 정국이 사귀기 전, 정국은 학과 동기 중에서 알아주는 꼴초 였다. 여자 동기들은 정국이 담배를 피는 것을 보며 담배 피는 남자의 섹시함에 대해서 논했다. 지민은 정국의 섹시함이 좋았으나 담배가 섹시한 것은 아니었다. 동기 중 친한 친구들끼리 바다에 놀러갔을 때도 정국은 여전히 담배를 들고 있었다. 지민은 제가 이래라 저래라 훈계할 입장이 아니었기에 잠자코 술만 마셨다. 정국이 지민을 집에 데려다 주고 놀이터에서 담배 한 개비를 물 때, 지민은 입을 열었다.
“담배 안 피면 안 돼?”
“...그래.”
정국은 생각보다 순순히 담배를 껐다. 지금은 보기 힘든 놀이터 모래바닥에 발이 푹푹 빠졌다. 정국의 다 닳은 신발 코에서 모래가 흘러내렸다. 꽁초 버리고 올게. 꽁초만 버리고 온다던 정국은 그렇게 아끼던 담배 한 갑을 모조리 버리고 왔다.
사귀고 나서 그 일에 대해 물어봤었다.
“그 때 무슨 생각으로 그랬었어?”
“뭐가?”
“아니, 그 때 니가 담배를 몽땅 다 버리고 왔잖아.”
“아, 그때. 몰라, 그냥 그러고 싶었어. 우리 지민이가 시키니까?”
“에- 뭐야.”
헤실헤실 웃고 있을 때 정국이 말했다. 그 전부터 널 좋아했는데, 니가 시키니까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너도, 나도, 그 전부터 좋아했었나보다.
“반칙이야. 지금 그 신발 신고 오는거.”
“지민아.”
“어느 장단에 맞춰야 돼? 끝내자는 말에 한달음에 달려와서 이러고 있는 너, 아니면 하루 종일 연락 한 번 안하는 너?”
지민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정국이 없을 때는 비죽비죽 흘러나오는 눈물이 왜 이럴 때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건지. 지민은 무서웠다. 주변 커플들은 권태기가 오면 다 깨졌다더라. 권태기가 올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지민인데 막상 권태기라고 생각하니 이 쯤 되면 깨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국아. 나 너가 낯설어.”
가끔은 어색하기도 해. 정말이었다. 지민은 정국과 함께 있는 순간 순간 까닭모를 어색함을 느끼기도 했다. 4년동안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저 혼자 쫑알쫑알 떠들고 있을 때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정적은 소름 돋을 정도로 어색했다. 지민은 알고 있었다. 정국은 좋은 사람이기에, 기다리고 있는 것임을.
“헤어질까?”
그래도 잡고 싶었다. 헤어지자, 가 아니라 헤어질까. 정국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고 싶었다. 그리고 지민도 기회를 받고 싶었다. 정국이 묘한 눈으로 지민을 쳐다봤다.
내 고자손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
아까 잘못 올렸다가 깜짝 놀라서 바로 지웠다 ^ㅁ^
이제 진짜 끝... 정국이의 묘한 눈이 의미하는건 무엇..!?
ㄱ결론을 이쁘게 짓고 싶었는데 내 능력이 안따라줘서 해피하게 못쓰겠어 ㅋㅋㅋㅋㅋㅋ
탄소들이 해석해서 읽ㅇ길...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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