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웃는 도경수는 처음 봤다. 내가 본 최초의 미소 훗날, 잊게 될까 봐 수백 수천 번 세세하게 그려내고 또 그려내게 되는. - 나는 다신 혼자 있지 않을 거거든. 김종인이 만들어 준 이 좋은 세상에서도 불행할 수는 없지. - 나는 기도했다. 나의 이 비행으로 김종인을 자유롭게 해달라고. - [나 한국말 가르쳐줘. 제일 예쁜 단어로. 널 좋아해, 는 한국말로 어떻게 말해?] 술에 취한 종인이 벽에 기대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종인은 잠시 여자의 머리통을 그렇게 만지작거리다 입을 열었다 -도경수. 생전 처음 들어본 한국말에, 여자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그러고는 종인의 말을 따라 했다. 물론 세 글자 모두 엉망으로 발음됏다. 종인이 여자의 손을 들어 여자의 입술을 훑으며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도.경.수. - 너랑 키스하면 하트가 입으로 쏟아지는 기분이겠다. - 그럼에도 나는 그 비행기를 보면서 빌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이 도경수에게로 향하고 도경수는 그 모두를 일상처럼 감싸 안게 해달라고. - 누군가 나에게 고등학교 시절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김종인의 눈빛. 오세훈의 손짓. 변백현의 목소리. 그리고 도경수. - 도경수의 미소가 그 어느 때보다 밝다. 세훈은 그런 도경수의 작은 얼굴을 부드럽게 만져준다. 세훈이 무언가를 저토록 조심스럽게 만지는 풍경을 본 일이 없다. 나는 생각을 바꾼다. 누구도 사라지지 않았다. 김종인도, 오세훈도, 도경수도 각자의 자리에 있다. 나도 그렇다. 김종인은 이런 미래를 직감하고 도경수와 오세훈을 비행기에 태운 것이다. 나는 김종인이 미래에서 보고 왔을 이 모습을 바라본다. 아주 오래. - “어떻게 됐어?” 변백현이 물었다. 빗물에 젖어 염색약 냄새를 물씬 풍기는 오세훈이 얼굴의 빗방울을 손바닥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다 내 꺼야.” 천둥이 쳤다. 땅도 가를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천둥이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귀를 막거나 하늘을 보지 않았다. - 안 된다. 흔들리지 마. 죽으면 안 돼. 너는 겨우 열여덟 살이다. 앞으로 남은 많은 날들을 생각해. 그래도 죽고 싶다. 백현이와 세훈이를 생각해.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다. 이런 우정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 태반이야. 그래도 죽고 싶다. 어머니를 생각해. 어머니가 너에게 쏟는 그 사랑을 생각해. 그래도 죽고 싶다. 누나를 생각해. 이제부터 네가 갚아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 그래도 죽고 싶다. 도경수를 생각해. ㅆ발. 나는 영원히 살아야 해. 내가 없으면 안 돼. 갓개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