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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락펴락 ver
정국이는 n 년 째 포토그래퍼로 활동 중임
근데 말만 있어보이는 포토그래퍼임 시X
소속에 묶여있는 계약직으로 가난하게 활동 중이라
자유고 뭐고 하나도 없음.
오라면 가야하고, 찍으라면 곱게 예쁜 사진 찍어줘야 함.
정국이 말로는 가난하게 시작해줘야 나중에 크게 성공한다고는 하는데....
그래 내가 내 남편 믿어줘야지 누가 믿어주냐, 하고
나중엔 전정국이라는 이름이, 전정국이라는 사람이
크게 성공할거라고, 굳게 믿어주었음.
근데 이게 벌써 몇 년이 될 줄이야...
"이번엔 또 어디냐."
"서울."
"서울?"
"이번엔 프로젝트라 집에 오래 못 들어올 거야. 한.. 두달 정도."
"아 네, 마음대로 하세요. 언제는 안 그랬던 척하네."
이번엔 또 어디로 호출 당했나 했더니
그 먼 땅까지 가서 셔터를 누르신다고 함.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이젠 그런가 보다 하고 마음을 놓았음.
그래도 겉으론 백번 이해한다 하지만
속에서는 차마 꺼낼 수 없는 비속어들이 한가득 자리 잡고 있었음.
"어쭈 뭐 하냐?"
"탄소야, 한동안 못 볼 텐데 우리 뜨,"
"웃기지 마 나 피곤하다."
"탄소야."
"…."
"저기요 아줌마."
"뭐? 피 터지고 싶냐?"
정국은 나보다 2살 연하고, 올해로 결혼 5년 차임.
주위에서 진짜 결혼한 부부 맞냐고 한 35834394번은 물어본 거 같은데
애만 없다 뿐이지 정말 사랑해서 결혼한 거 맞음.
지금도 사랑하고,
표현 방법이 서툴고, 남들과 달라서 친구처럼 보일 뿐
그럭저럭 현실적인 결혼 생활을 하고 있음.
너무 현실 적이라서 탈이라는 거지.
사실 요즘 들어 이런 생활이 지친다는 생각도 살짝 들기 시작했음.
"보고 싶어서 어떡하지?"
"하이고, 보고 싶어서 죽겠는 사람이 맨날 쏘다니냐?"
"어쩔 수 없잖아."
"그래 어쩔 수 없겠지 너 맨날 그 소리잖아."
"탄소야."
"너 이제 자리 잡을 때 됐잖아."
"기다려줘."
"응 기다려주잖아, 지금도 기다리고 있고. 근데 정국아."
"…."
"나 너무 힘들다."
"0탄소."
"잘게."
그동안의 설움이 갑자기 폭발되며
전정국한텐 개불도 통하지도 않는 화를 내버렸음.
항상 내가 화내면 전정국은 깨우치는 것 하나 없이
나만 더 화가 쌓인단 말이지?
차라리 서로 때리고 부시고 소리치면서 싸워보고 싶다 좀.
맨날 일방적으로 나만 이렇게 서운함 표출하면 뭐 해,
정국이 팔을 쭉 뻗고 반쯤 앉아있어서
자연스럽게 정국의 팔 위에 머리를 놓고 누워버렸음.
'화는 났지만 너 믿어, 잘해라 개XX야.' 라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누나."
"..?"
"왜 그래, 우리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응?"
"곱게 자라 좀."
"나 그냥 믿어주라 내가 더 노력할게 탄소야."
"누가 너 안 믿는데?"
"예쁘다."
정국이 팔베개를 하고 누운 나를 돌려 안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정리해주었음.
그리고 정국은 예쁘다는 말을 끝으로 가볍게 입을 맞춰왔음.
근데 왜 점점 깊어지냐 너.
"매일 연락 할거니까 바람 필 생각하지마."
"와 전정국 선수 치는 거 봐라, 내가 할 소리거든?"
"다녀올게 탄소야."
"너 내가 영상통화 걸었는데 클럽이기만 해봐 죽인다."
"아, 씨 들켰네."
"죽어 진짜."
"사랑해."
퇴장도 요란하게 하는 정국이 그다지 밉지가 않았음.
그래, 저번엔 세 달도 기다려준 적 있는데
두 달이 뭐 대수이나 싶음.
한, 한 달하고 이주쯤 되는 날이었나?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났더니
정국에게서 새벽에 한 통에 문자가 여러개 와있었음.
'야 여기 사람들 미,쳤어.' AM 4:39
'연장 계약이야.' AM 4:39
'아니 뭐래.' AM 4:42
'프로젝트 연장이래.' AM 4:43
'나 한 달 더 걸릴 듯.' AM 4:43
'때려치울까.' AM 5:21
'아 탄소야.' AM 5:30
'일단 진정해.' AM 5:31
'욕하지 말고 일단 이거보면 전화해.' AM 5:32
포토그래퍼에 관심이 없는지라
그쪽 사람들이 무얼 어떻게 일하는 지도 당연히 몰라서
그냥 멋있는 배경 보이면 딱딱 몇 번 찍고.
예쁜 모델들 몇 번 딱딱 찍으면 끝인 줄 알았던 일이
무슨 세 달 씩이나 잡아먹는지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음.
"야 전정국."
"어."
"한달 연장? 장난 하냐?"
"아니 ㄴ,"
"넌 진짜 그냥 밖에서 살아라."
"야 0탄소!"
"멀리까지 출장 나가서 사진 찍느라 고생 많고, 다시는 보지말자."
"야! 누나!"
"짜증나 진짜."
일, 그래 일, 그놈의 일.
요즘 계속 몸도 안 좋고, 여러모로 힘든 일이 많은데
옆에 남편까지 없다고 생각하니
스트레스가 배로 늘었음.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조금만 더,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정국의 문자를 보자마자 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었음
거기다가 때려치운다니,
지금 때려치울까라는 말이 나와?
몇 년을 쏟아부었는데, 몇 년을 기다렸는데 어? 그 몇 년을 너무나도 쉽게 말하는 정국이 미웠음.
'미안해.' PM 6:01
'일 끝나면 바로 갈게.' PM 6:03
'탄소야.' PM 7:47
'전화 좀 받아라.' PM 8:05
'뭐 해' PM 9:21
'자?' PM 11:59
"내가 답장을 하나봐라."
정국에게 핸드폰이 불타오르도록 문자가 쉴 틈 없이 계속 왔음.
근데 답장해준 건 0
맨날 화난 척하면서 바로바로 풀리니까 정신을 못 차린 거 같아
이번엔 진짜 세게 나갈 생각이었음.
...그래...그랬는데...
아무리 계산해봐도 어제 오늘 안에 생리를 하는 게 맞는데
나 왜 안하지?
아, 설마.
아, 설마.
아무리 오류가 많다고 해도 일단 혹시 모르니까
설마하는 마음으로 약국에 들려 임테기를 사서 테스트를 해보았음.
"아 전정국 도움 안되는 놈, 병원가게 생겼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임테기엔 너무나도 정확하게 두 줄이 찍혀있었음.
정말 고맙게도 서울에 가기 전 내게 선물을 하나 주고 갔던 거였음 ^^
"0탄소! 왜이렇게 연락을 안,"
"야 이 나쁜 놈아!"
"미안해..나도 일정 바뀔지 진짜 몰랐어."
"너 나 괴롭히려고 결혼했지."
"미안해 탄소야."
"전정국."
"응."
"정국아."
"응 탄소야."
"아, 아니야 끊어."
"어? 야 탄소ㅇ,"
왜 이렇게 말을 못 꺼내냐 하면.
5년이 괜히 5년이 아님.
둘 다 애를 막 미,치도록 예뻐하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얼른 내 자식 낳아서 키우고 싶고,하는 마음이 없었음.
남자라면 번식 본능을 가질 법 한데 전정국은 그런 것도 없어 보이고,
뭐..암묵적인 이유로 서로 2세 계획에 대해 꺼내지 않았음.
아직 나이도 창창한 20대고, (만으로 지만..ㅎㅎ)
전정국은 저렇게 맨날 밖으로 쏘다니는 데
여기서 애까지 생긴다면 정말 큰일 날 거라고 생각했었음.
근데 이렇게 계획도 없이 일이 벌어지다니..
하, 진심으로 정국을 때리고 싶었음.
오늘 엄마랑 병원에 같이 가서 확인을 해봤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임신 6주라며 웃으셨음.
나 이제 엄마 되는 거야?
좋지도 싫지도, 나쁘지도 괜찮지도,
짜증 나지도 기분 좋지도,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이 어정쩡한 기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
그냥 정국이 하루빨리 와줬으면..
"정국아."
"어."
"언제 와.."
"..너 울어?"
"안 울어."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나 혼자 아니야 빨리 와."
"혼자가 아니라고?"
"나 홀 몸 아니라고! 빨리 오라고! 나 힘들다고!"
"어?"
"너 아빠 된다 정국아."
"어?!"
지금 정국의 표정은 안봐도 뻔했음.
분명히 멘붕에 빠져있겠지.
일단 일은 이미 벌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가 문제인데,
정말 심~히 걱정됐음.
"그래..일단 내가 말 잘해서 최대한 빨리 갈게.."
"진짜?"
"응 진짜."
"정말이다?"
"응 정말로, 그러니까 괜히 감기 걸리게 옷 다 벗고 있지말고 껴 입고 있어라 좀 알았지?"
"..넌 날 너무 잘 알아."
몸조리 잘 하고 있으라는 말을 끝으로 정국은 전화를 끊었음.
나름 신경써서 말 해준 걸 잘 알고 있기에
은근 기분이 좋아 전화를 끊고 한참동안 혼자 흐뭇하게 웃었음.
"0탄소! 보고 싶었다!"
"아! 왜 오자마자 뽀뽀하고 그래!"
"너가 예뻐서 그러는 거 잖아."
그렇게 임신 10주가 되는 날, 보고 싶던 정국이 컴백홈을 하였음.
오자마자 꽉 안으며 뽀뽀를 해오는 정국의 얼굴을 억지로 밀어
눈을 마주쳤고, 눈을 마주치는 동안
정국은 허리에 둔 손을 땔 생각조차 없어 보였음.
"사랑해 탄소야."
"뭐래."
"나 일하는 데 좋아서 미.칠 뻔했잖아."
정국이 특유의 행복하다는 표정에
나 또한 기분이 좋아져서 웃어버렸음.
제발! 좋은 엄마 아빠 되자 우리.
이러다가 돼지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식욕이 완전 폭발했을 때 쯤이 아마 8개월 쯤이었을 거임.
새벽에 미,친듯이 배가 고파서 눈이 떠졌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슝-하고 지나가는 생각
저번에 분명히 정국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공책을 읽으려니까
정국이 몸까지 날려가며 공책을 읽는 걸 막은 적이 있었음.
여자랑 교환일기라도 쓰시나?
문득 궁금해져서 몰래 훔쳐보기로 했음.
{전정국 작업 일기} 육아 사진첩
2017년 oo월 oo일
부산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30년을 넘게 살았는데 이런 아름다운 곳을 몰랐다는 게 충격적이다.
사진에 예쁘게 담은 만큼 다음엔 아내랑 같이 손잡고 눈으로 예쁘게 담고 와야지.
그리고 우리 아가랑도 손잡고 오는 날이 오겠지.
2017년 oo월 oo일
초음파 사진을 들고 찍어보았다.
색다른 조합이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다.
회사에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생명의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이라고 둘러 때지 뭐.
태명을 생각해보았는데 아무래도 생각이 안 난다.
내가 정하면 탄소가 또 장난치지 말라고 화내겠지?
조금만 기다려라 아가야, 이 아빠가 멋진 태명 지어 줄테니.
2017년 oo월 oo일
항상 내가 찍어보고 싶었던 사진이다.
드디어 오늘 꿈을 이룬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와우, 그나저나 오늘 탄소가 이 일기를 볼 뻔하였다.
아직 별로 쓰지도 못했는데 망할 뻔..
아쉽지만 이 일기는 우리 귤이만 볼 거니까!
귤아 엄마한테 나중에라도 절대로 보여주면 안 된다?
2017년 oo월 oo일
아내가 부쩍 잠이 많아진 거 같다...식욕은 안 늘어나는데
왜 잠만 늘어나지?
귤이가 많이 안먹어서 튼튼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된다.
근데...
귤아 엄마 자는 모습도 예쁘지?
2017년 oo월 oo일
오늘은 일이 너무 바빠서 깜빡하고 탄소에게 전화를 못해줬다.
아, 내가 미,쳤지
딱히 말로 화는 안 냈지만 표정에 '나 삐졌어요.'가 떡하니 쓰여있었다.
이럴 때 항상 느껴지는 거지만, 내가 너무 못난 남편인 거 같다.
항상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다.
2017년 oo월 oo일
늙은 부부의 뒷모습은 참 많은 세월 얘기가 담겨져있는 것 같다.
우리도 저렇게 오래 사랑할 수 있었으면.
오늘은 아는 분께 아내가 임신했을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을 들었다.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었고, 몰랐던 사실들도 알게 되었다.
엄마란 참 대단하구나,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얼른 집에 가서 탄소 꼭 안아줘야지.
우리 귤이도.
2017년 oo월 oo일
우리 귤이가 벌써 8개월이 되었다.
엄마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다가 얼른 나와주었으면..
엄마 힘들게 뱃속에서 발로 막 차고 그러면 안 된다 귤아!
오늘은 우리 귤이가 좋아하는 바다 풍경 사진을 찍어보았다.
태교로 내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유난히 바다 사진을 볼 때마다 귤이가 반응을 하는 것 같았다.
귤아 얼른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자.
사랑해
감동+행복=눈물
아마 일어날 때면 눈이 퉁퉁 부어있을 거 같음.
"탄소야 당근주스 아예 한 박스로 사줄까?"
"뭔 한 박스 타령이야."
"너 맨날 당근주스 당근주스 그러잖아."
"먹고 싶은 게 언제 또 바뀔지 몰라."
"아...그래?"
"야! 너 또 양말 뒤집어서 넣어놨지!"
"아, 맞다."
"뒤집어서 넣으면 안에 머리카락이랑 먼지랑 다 껴있어서 세탁 하나도 안된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야 좀!"
"깜빡했어요 누나."
과일을 깎아준 뒤 빨래를 하러 베란다에 갔더니
옆에서 계속 깐족대며 당근주스 타령을 하는 정국이었음.
빨래를 계속해서 꺼내다가 뒤집어져 있는 양말이 나왔음.
정말 최소 5000번도 더 말했을 텐데 아직까지 습관이 안 고쳐진 거 보면
그 의지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음.
"탄소야."
"왜."
"탄소야."
"왜."
"탄소야."
"아, 왜!"
"사랑한다고."
전정국은 참 미워할 수 없는 남편인 거 같음.
(텍파 공유하려고 글잡 준비는 하고 있는데... 너무 두려운 곳이야.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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