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범행이라고 하면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업무상배임죄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부작위’에 의해서도 성립할 수 있다.
타인과의 신뢰관계에서 일정한 임무에 따라 사무를 처리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 법적으로 마땅히 할 것이 요구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이를 배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부작위로 인한 업무상배임을 처벌하려 할 때에 범행 시점을 언제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특정 범행을 기수로 인정하려면 실행의 착수와 결과의 발생이라는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고 최소한 미수로 처벌하려 해도 실행의 착수 시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작위 상태에서는 언제부터 실행의 착수가 있던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대법원은 최근 이와 관련한 한 사례에서 부작위에 의한 업무상배임의 실행의 착수 시기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부작위로 인해 업무상배임죄 미수를 인정하려면 작위의무가 이행되지 않을 때 사무처리의 임무를 부여한 사람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으리라고 객관적으로 예견되는 등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위험이 구체화 한 상황에서 부작위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행위자는 부작위 당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위반한다는 점 및 그 부작위로 인한 손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부작위에 대한 고의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법무법인YK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변호사 김승현 변호사는 “최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설령 작위의무가 인정되는 사안이라 하더라도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위험이 구체화 되지 않은 상태라면 부작위에 의한 업무상배임죄를 인정할 수 없다. 부작위에 따른 업무상배임의 적용은 타인의 사무처리를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루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최근 재판부의 판단 기준을 정확히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