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스포 주의] 함께 살아간다는 윤리, 조용한 자비로 완성되는 용서의 감각 <미세리코르디아> 🎭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25/07/16/17/2a5adb43ce75a2c056a07128e9d5efd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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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명: 미세리코르디아
🗓 날짜: 2025년 7월 16일 (수)
🕑 러닝타임: 오후 1시 50분 ~ 오후 3시 44분 (104분)
📌 장소: 용산아이파크몰 CGV
🌟🌟🌟⭐ (3.5/5점)
"죄를 지닌 인간을 배제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려는 윤리적 태도와, 그 관계 안에서 피어나는 조용하고도 깊은 자비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 낯선 귀향, 그러나 익숙한 불안
미세리코르디아>는 프랑스 남서부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돌아온 한 남자 '제레미'의 내면을 천천히 해부하는 영화다. 그는 한때 자신을 제빵사로 길러준 은인 '장-피에르'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고, 고인의 미망인 '마르틴'의 집에서 잠시 머문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설정은 곧 불편하고도 은밀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무뚝뚝한 얼굴 뒤로 감정을 숨기는 인물들, 지나치게 조용한 마을, 어디선가 응축되어 터질 듯한 공기. 미세리코르디아>는 공포영화처럼 시작하지 않지만, 이보다 더 불안한 감정이 서서히 관객을 감싼다. 죽음을 애도하려 돌아온 제레미는 마을에 잊고 있던 욕망과 기억, 그리고 죄책감까지도 함께 끌고 온다.
🌫️ 욕망의 모호한 경계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진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사건을 중심에 두지 않고, 그 사건을 둘러싼 감정과 욕망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미세리코르디아>의 인물들은 모두 말수가 적고, 관계는 느슨하면서도 어떤 미묘한 긴장감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르틴'은 남편을 잃었지만 무너지는 대신 조용히 삶을 이어가고, '뱅상'은 제레미를 경계하면서도 어디선가 질투와 분노를 품고 있다. 제레미는 그런 그들과 다시 관계를 맺으려 하지만, 스스로가 품고 있는 욕망과 불안으로 인해 점점 더 불안정해진다.
영화는 이 욕망을 단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 감정이 인간을 얼마나 외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레미가 마르틴을 향해 느끼는 감정, 그리고 뱅상과의 격렬한 충돌은 모두 그가 억눌러온 욕망의 형태들이다. 미세리코르디아>는 이 모호함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깊이 있게 보여주며, 우리가 외면했던 내면의 진실을 조용히 꺼내어 놓는다.
🔥 죄책감이 아닌 고백으로 완성되는 영적 서사
미세리코르디아>의 가장 뛰어난 점은 죄와 구원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일반적인 이야기라면 제레미는 살인을 저지르고, 그 죗값을 치르며 속죄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길을 택한다.
우발적으로 뱅상을 죽인 제레미는 죄책감에 휩싸이지만, 완전히 고백하지도, 도망가지도 않는다. 그를 보호하는 건 교회의 법이 아니라 '신부'다. 이 신부는 단죄자가 아니라, 조용히 그의 곁을 지키며 말 없이 자비를 건네는 존재다. 영화의 후반부, 절벽 위에서 마주한 신부와 제레미의 장면은 직접적인 대사 없이도 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신부는 법의 판단을 유보한 채, 제레미의 존재를 침묵 속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 침묵은 말보다 더 확고한 연대의 표현이며, 죄를 심판하는 대신 품어내는 인간적인 자비의 힘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신의 구원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으로부터 비롯된 자비의 순간이며, 종교를 넘어선 더 깊은 인간성의 표현으로 다가온다.
⚖️ 선악의 이분법 너머,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윤리
미세리코르디아>가 깊은 울림을 주는 까닭은, 이 영화가 '윤리'라는 주제를 진부한 도덕 교훈이나 도식적인 응징의 방식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영화는 아주 섬세하고 낯선 방식으로 윤리를 재정의하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윤리'는 더 이상 범죄를 처벌하거나 규범을 지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제레미'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뒤 죄를 숨기고, 그로 인해 고통받지만 처벌은 받지 않는다는 전개는 전통적 윤리 기준에서는 납득되기 어려운 전개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감독 알랭 기로디는 윤리를 '규칙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방식'으로 옮겨 놓는다.
‘신부’는 법과 도덕의 경계에서 제레미를 감싸준다. 그 선택은 종교적 교리나 도덕적 이상을 따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제레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처벌 대신 그와 함께 존재하는 윤리적 실천을 택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정의나 응징의 윤리와는 다르다.
이 영화가 제안하는 윤리적 태도는 ‘이 사람은 죄를 지었으니 배제해야 한다’는 방식이 아니라, ‘이 사람은 죄를 지었지만 여전히 함께 살아가야 할 인간이다’라는 태도다. 이때 윤리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나와 같은 존재로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바뀐다.
이는 현대 사회의 많은 갈등과도 깊게 맞닿아 있다. 사회는 여전히 잘잘못을 나누고, 처벌과 용서를 규칙화하려 한다. 하지만 삶은 늘 더 복잡하다. 사람은 실수하고, 죄를 짓고,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간다. 그럴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윤리는 무엇일까. 미세리코르디아>는 말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가 윤리의 시작일 수 있다고.
'신부'는 제레미에게 죄를 용서하지도, 정죄하지도 않는다. 그는 대신 그 곁에 남는다. 이 선택은 윤리의 원론으로 보자면 모호하고 위험한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삶의 현실 속에서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결정이다. 윤리란 때때로 옳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끝까지 떠나지 않는 일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영화는 조용히 보여준다.
🧩 장르의 틀을 비트는 블랙 코미디적 미학
미세리코르디아>는 드라마이면서도 심리 스릴러이며, 동시에 블랙 코미디의 성격도 지닌다. 이 다양한 장르들이 충돌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유기적으로 섞여 있다. 감독 알랭 기로디는 공포처럼 무거운 상황에서도 인간의 일상적 엉뚱함을 가볍게 덧칠해 긴장과 해방을 반복시킨다.
농부 친구와의 엇박자 대화, 장례식에서의 어색한 감정 표현, 욕망과 상실이 겹치는 장면에서 터져 나오는 기묘한 웃음은 이 영화가 결코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에 안주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는 오히려 관객에게 더 큰 몰입감을 제공하며, 일상과 비극, 욕망과 구원이 항상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 누구도 완전히 죄인도, 성인도 아닌 존재들
이 영화의 인물들은 누구 하나 명확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제레미'는 살인자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인간이다. '신부'는 죄를 덮어주지만, 그것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마르틴'은 남편을 애도하면서도 제레미에게서 무언가를 갈망하고, '뱅상'은 친구를 배척하면서도 과거의 유대를 놓지 못한다.
미세리코르디아>는 이처럼 인간의 복잡함을 단정짓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어떻게든 관계를 이어가려 애쓰는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본다. 모두가 어떤 면에서는 상처입은 채 살아가고 있고, 각자의 욕망을 품은 채 누군가의 자비를 바라거나, 누군가에게 자비를 건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인간을 위한 가장 따뜻한 기이함
미세리코르디아>는 어둡고 불안한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는 신기할 정도로 따뜻한 감정이 흐른다. 영화는 죄를 고발하지 않고, 죄를 지운다고도 하지 않는다. 대신, 죄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함께 살아갈 사람’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결국 연민에 대한 이야기이며, 용서를 주는 이야기이자, 그보다 더 어려운 용서를 받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관객은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풀었거나, 받았던 순간이 있었는지를.
신부는 제레미를 향해 말없이 다가서고,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그 자리에 머무른다. 구원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그 침묵 속에서 또렷해진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삶의 태도를 비춘다. 어딘가에서 실수했고, 후회했고, 또다시 살아가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세리코르디아>는 말없이 손을 내민다.
미세리코르디아>의 마지막 침대 장면은 성적 긴장과 감정적 수용, 죄의 고백 없는 자비, 침묵 속 신체 언어의 교감, 그리고 윤리적 공존의 의지를 통해, 두 인물이 서로를 인간으로 받아들이며 함께 누우려는 존재적 결단을 담아낸 감각적이고도 관계적인 클라이맥스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기도 하기 때문에 마음 깊숙이 스며든다. 끝까지 보고 나면, 이 세계에 아직 자비가 남아 있음을 믿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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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소녀시대 아직도 서로 만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