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스마트폰 카메라의 셔터 소리나 플래시 불빛만 봐도 심장이 요동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아요. 가해자보다 무서웠던 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제가 피해자인데도 끊임없이 상황을 설명하고 변명해야 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2년 전 불법촬영 피해를 겪은 20대 여성 A씨는 사건 발생 후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에게는 셔터를 누른 그 짧은 순간이 '찰나의 호기심'이었을지 모르나, 그로 인해 무너진 피해자의 삶은 지금까지도 고통 속에 멈춰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사건 이후의 삶까지 온전히 되찾을 수 있도록, 제도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실질적인 논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A씨는 지난 2023년 여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게 된 아이돌 가수 출신 배우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 잠든 사이 불법촬영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가해자가 촬영을 시도하던 장면을 직접 목격한 A씨는 즉각 제지했으나, 촬영물이 유포될 수 있다는 극심한 불안에 시달린 끝에 가해자를 고소했습니다.
사건으로부터 만 2년이 지났지만 A씨의 고통과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도 정신과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고 있는 A씨는 불안 장애와 공황 증상으로 일상생활 전반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A씨는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 소리나 플래시 불빛만 봐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든다"며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두려운 날이 많다"고 했습니다.
피해는 직장 생활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A씨는 사건 이후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혹시라도 사건이 알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안 증세로 정상적인 근무가 불가능했던 탓입니다. 약 2년간의 고통스러운 회복 기간을 거친 A씨는 최근에야 다시 이직을 준비하며 조심스럽게 사회 복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시선은 상처를 더 깊게 만들었습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어렵게 피해 사실을 고백했지만, 돌아온 것은 따뜻한 위로가 아닌 날카로운 화살이었습니다. "왜 그런 자리에 갔느냐", "네가 조심했어야지", "자초한 일 아니냐"는 책망과 비난이 섞인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A씨는 "가해자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더 공포스러웠다"며 "피해자임에도 끊임없이 변명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괴로웠다"고 하소연했습니다.
현재 A씨는 형사 절차와는 별개로 가해자를 상대로 한 민사 소송도 진행 중입니다. 그는 "법정에 서는 것 자체가 사건을 다시 마주하게 하는 일이다. 소송이나 정신과 치료비용도 부담이 되고 있다"면서 "고통스럽지만, 소송이 끝나지 않는 한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수사부터 재판까지 장기화된 절차는 A씨에게 심리적 외상뿐 아니라 경제적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안기는 셈입니다.
A씨의 사례는 불법촬영 등 이른바 '디지털 성범죄'가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범죄 발생 이후 이어지는 정신적 충격과 사회적 고립, 경제적 불안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피해자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겁니다.
이런 비극은 경찰청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촬영 범죄 발생 건수는 2023년 6626건에서 2024년 7202건으로, 8.69%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검거 건수는 5675건에서 6020건으로, 6.08% 늘었습니다. 범죄의 증가세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입니다. 검거율 역시 과거 90% 중후반을 유지하던 수준에서 최근에는 80%대 초중반으로 낮아진 상태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촬영 범죄의 특성상 수사와 피해 회복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관계자는 "불법촬영 현장에서 가해자를 특정해 검거하더라도, 촬영물은 이미 온라인이나 개인 기기에 남아 재유포될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가 가장 크다"며 "A씨의 경우도 유출 피해를 우려하면서 고소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가해자들은 '장난이었다'거나 '유포는 안 했다'라며 범죄의 심각성,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동의 없는 촬영' 자체가 피해자의 삶을 파괴하는 중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피해자를 돕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없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인 한계는 여전합니다. 우선 불법촬영 행위 자체만으로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며, 협박 등이 동반될 경우 성폭력처벌법상 '촬영물이용 협박·강요죄'가 적용됩니다. 성평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서는 온라인에 올라간 불법촬영 영상물 삭제 지원과 의료·심리 상담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센터에 접수되는 상담 건수가 불법촬영물 삭제에 압도적으로 몰려있다 보니, 피해자의 장기적인 일상 회복이나 사회 복귀를 포괄적으로 보살피기에는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겁니다. 센터 관계자는 "연간 1만명이 넘는 피해자를 지원하다 보니 유포 차단 등 시급한 사안에 우선 순위를 두고 대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전했습니다.
A씨의 삶은 이러한 '피해지원 사각지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A씨는 "사건이 끝나면 괜찮아질 거라고들 말하지만, 피해자는 그 이후부터 '진짜 혼자'가 된다"며 "누군가는 이 시간이 얼마나 길고 버거운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288142&infl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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