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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의장 방시혁은 케이팝이 맞선 장벽을 인식하고 그것을 가장 먼저 월장하려 한 인물이다. 서구에서 팬덤 형 음악의 닫힌 경계를 넘어 대중과 만나기 위해선 K-POP의 'K'를 떼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이브가 케이팝 노래의 영어 가사 비중 확대를 이끌고 서구 현지화 그룹의 씨앗을 뿌려 온 배경이다.
하지만 〈케데헌>과 ‘APT.’를 보면 방시혁의 예견은 의심스러운 것이 됐다. K를 떼자는 것은 서구의 주류 팝 문화와 경계를 지우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때 서구문화와 변별되는 K의 고유성도 흐려진다. 오히려 K를 더 공세적으로 각인할 때 새로운 반향을 울릴 수 있다고 증명한 것이 최근의 조류다. 그것이 바로 ‘APT.’이고 〈케데헌>이다. 두 작품은 아직 서구에 소개되지 않은 한국의 도상들, 아파트 문화와 무속 신앙을 전면에 진열하며 신선하고 이채로운 감각을 끌어냈다. 거기에 전통적인 팝음악의 양식과 팝스타와의 콜라보, 서구에 익숙한 히어로 무비 서사와 애니메이션 뮤지컬을 연출해 글로벌한 보편성을 결합한 케이스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방시혁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K를 떼어 내자던 그가 BTS의 앨범에 아리랑을 삽입하고 광화문에서 공연하는 것을 추진했으니 말이다. 아리랑과 광화문이야말로 말 그대로 K를 상징하는 가장 오래되고 원색적인 도상이지 않은가. 하지만 서술했듯이 ‘ARIRANG’은 〈케데헌>과 같은 센세이션에 도달하지는 못 했다. 작품과 도상이 결합하고 흥행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방시혁의 소망대로 BTS 덕분에 전 세계 아미들이 아리랑을 부르는 장관이 재현된다고 해도 그것은 어떤 결과에 머무는 그림이다. 〈케데헌>에 비해 한국적 도상과 텍스트와의 결합이 얕고 작위적이라 그 도상이 원인이 되어 글로벌 흥행의 상승효과를 일으키진 못하고 있다.
BTS의 컴백은 케이팝 시스템의 최전선과 한계지점을 동시에 드러낸다. BTS는 자신들이 개척한 광대한 영토에 안주하지 않고 그 둘레에 쳐진 장벽을 넘어서려 했지만 충분히 성공했다고 말하긴 힘들어 보인다. 서구 대중과 만나는 통로 역할을 하기엔 넷플릭스 컴백 공연 중계만으론 충분치 않았고, 아리랑과 광화문은 기대만큼의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여기엔 BTS가 케이팝에서 가장 우뚝한 그룹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역설이 있다. 케이팝 팬덤을 제외한 서구 대중은 현지에서 서브컬처로 인식되는 케이팝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 BTS는 케이팝을 대표하는 이름이 너무 뚜렷하게 새겨진 나머지 케이팝의 한계에서도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BTS가 남은 커리어 동안 이 역설을 돌파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그것을 돌파하는 데 케이팝 세계화의 다음 단계가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하이브 의장 방시혁은 케이팝이 맞선 장벽을 인식하고 그것을 가장 먼저 월장하려 한 인물이다. 서구에서 팬덤 형 음악의 닫힌 경계를 넘어 대중과 만나기 위해선 K-POP의 'K'를 떼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이브가 케이팝 노래의 영어 가사 비중 확대를 이끌고 서구 현지화 그룹의 씨앗을 뿌려 온 배경이다.
하지만 〈케데헌>과 ‘APT.’를 보면 방시혁의 예견은 의심스러운 것이 됐다. K를 떼자는 것은 서구의 주류 팝 문화와 경계를 지우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때 서구문화와 변별되는 K의 고유성도 흐려진다. 오히려 K를 더 공세적으로 각인할 때 새로운 반향을 울릴 수 있다고 증명한 것이 최근의 조류다. 그것이 바로 ‘APT.’이고 〈케데헌>이다. 두 작품은 아직 서구에 소개되지 않은 한국의 도상들, 아파트 문화와 무속 신앙을 전면에 진열하며 신선하고 이채로운 감각을 끌어냈다. 거기에 전통적인 팝음악의 양식과 팝스타와의 콜라보, 서구에 익숙한 히어로 무비 서사와 애니메이션 뮤지컬을 연출해 글로벌한 보편성을 결합한 케이스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방시혁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K를 떼어 내자던 그가 BTS의 앨범에 아리랑을 삽입하고 광화문에서 공연하는 것을 추진했으니 말이다. 아리랑과 광화문이야말로 말 그대로 K를 상징하는 가장 오래되고 원색적인 도상이지 않은가. 하지만 서술했듯이 ‘ARIRANG’은 〈케데헌>과 같은 센세이션에 도달하지는 못 했다. 작품과 도상이 결합하고 흥행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방시혁의 소망대로 BTS 덕분에 전 세계 아미들이 아리랑을 부르는 장관이 재현된다고 해도 그것은 어떤 결과에 머무는 그림이다. 〈케데헌>에 비해 한국적 도상과 텍스트와의 결합이 얕고 작위적이라 그 도상이 원인이 되어 글로벌 흥행의 상승효과를 일으키진 못하고 있다.
BTS의 컴백은 케이팝 시스템의 최전선과 한계지점을 동시에 드러낸다. BTS는 자신들이 개척한 광대한 영토에 안주하지 않고 그 둘레에 쳐진 장벽을 넘어서려 했지만 충분히 성공했다고 말하긴 힘들어 보인다. 서구 대중과 만나는 통로 역할을 하기엔 넷플릭스 컴백 공연 중계만으론 충분치 않았고, 아리랑과 광화문은 기대만큼의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여기엔 BTS가 케이팝에서 가장 우뚝한 그룹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역설이 있다. 케이팝 팬덤을 제외한 서구 대중은 현지에서 서브컬처로 인식되는 케이팝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 BTS는 케이팝을 대표하는 이름이 너무 뚜렷하게 새겨진 나머지 케이팝의 한계에서도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BTS가 남은 커리어 동안 이 역설을 돌파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그것을 돌파하는 데 케이팝 세계화의 다음 단계가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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