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금기는 그것을 넘었을 때 사람들의 일상과 상상력의 한계를 넓혀 줄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런 것과 무관하게 그어질 만하니까 그어진 것이 있다. 전자를 향해선 격려와 관용을 보내 마땅하겠지만, 후자에 관해선 자업자득이란 말밖에 해 줄 게 없다. 비록 혐오 표현이 아니라고 해도 죽은 사람을 농락하며 관심을 적선받는 일이 진취적 도전이나 유쾌한 반란 따위일 리가 없다. 저 두 가지를 구분해 먹지 못하고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어린애 장난처럼 들먹이는 게 한국 힙합의 몰골이다.
래퍼 더콰이엇은 한 유튜브 채널에서 리치 이기에 관해 ‘사회의 금기를 건드리는 것이 힙합이고 젊음이다’라고 코멘트한 적이 있다. 리치 이기는 선배 래퍼들에게 샤라웃을 받으며 힙합 신의 떠오르는 신성이 되었다. 더콰이엇뿐 아니라 팔로알토, 딥플로우, 슈퍼비가 5.23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이들은 활동 연차 일이십 년의 베테랑 래퍼들이며 신에서 OG(Original Gangster, 명망 높은 기성 래퍼를 뜻하는 힙합 속어)로 통한다. 자신들이 지닌 권위로 어린 래퍼의 치기 어린 망동을 지지하고 신 내부의 ‘무브먼트’처럼 승인해 준 셈이다.
리치 이기 사태에서 들여다볼 점은 노무현 대통령 모욕이 혐오 표현이란 것이 아니라, 망자 모욕과 혐오 표현이 병렬된 채 극우적 언행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한국 힙합 신이 그 거점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더콰이엇의 코멘트는 거의 의미심장하다. 고인 모욕과 혐오 표현, 그러니까 ‘일베 문화’는 원래 사회에서 게토화 된 채 암구호 같은 그들만의 놀이로 수행되었다. 지금은 금기를 넘어서려는 시도처럼 예술적이고 사상적인 너울을 덮어쓰고 있다. 말하자면 극우 콘텐츠가 유희에서 규범이 된 것이다. 나아가서 사회정치적 가치관 역시 뒤집히고 있다.
‘일베 문화’는 사회의식과 저항정신처럼 전유되고 있다. 젊은 남성들은 지난 10년간 첨예했던 정파적·젠더적 분쟁을 목격하며 자라났고 그중 어떤 이들은 민주당과 페미니즘에 반감을 품고 있다. 민주화 세력과 여성들이 자신을 억누르는 '기득권'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을 모욕하는 것이 곧 '금기'의 촉수를 건드리는 '야마'라고 믿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힙합의 '저항 정신'을 들먹이거나 힙합은 약자의 음악이라고 강변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저항 정신’이나 ‘약자의 음악’ 모두 오해로 버무려진 개념이라고 해도). 남성들과 우파 세력이야말로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약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상황에서 말이다. 오히려 그들 중 일부는 리치 이기가 '표현의 자유'에 의거해 '저항 정신'을 실천해 왔다고 대꾸할지도 모른다.
리치 이기 사태는 장르 문화의 구역에서 일그러진 가치관이 재생산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 현상이 스타벅스 ‘탱크데이’처럼 도처에서 꿈틀거리는 극우 문화와 공명하고 있다. 망자 모독 논란을 넘어, 이번 사건에서 진정으로 주시해야 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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