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얘랑 사귀기 시작한 건 아마 7년 전쯤이었을 거임. 초등학교 때 만난 게 처음이고, 처음엔 진짜 둘이 치고박고 울고 많이 싸웠는데 중학교까지 같이 올라와서 진짜 큰일 났다 하고 있었음. 그래도 나에 대해 잘 알아주는 건 얘밖에 없었고, 내가 무슨 일 있을 때면 귀신같이 알아준 것도 임영민이었음.
중2 됐었나, 갑자기 애가 급 성장을 하기 시작하더니 키가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음. 그냥 친구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임영민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지고 얼굴이 빨개지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중2 사춘기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얼른 이 감정을 지우려 점점 임영민이 말을 걸어도, 같이 가자고 해도 무시하기 바빴음 덕분에 나와 임영민과의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고 둘이 마주쳐도 인사도 안 하는 상태까지 가게 되었음.
그렇게 1년이 지나 중3이 되었고, 거의 남처럼 살던 우리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게 된 계기가 있었음.
비가 올 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해서 우산은 커녕 택시비도 챙겨오지 않은 탓에 갑자기 찾아온 장마 속을 뚫고 뛰어갈 수밖에 없었음. 부모님은 맞벌이셨기에 데리러 올 상황이 아니었음. 거기다가 우산 빌려달라고 할 친한 친구도 없었기에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가방을 머리에 대고 뛰어가려는 찰나
"……."
임영민이 내게 우산을 씌워주었음. 하필 습기 때문에 눅눅해진 앞머리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것 같은 얼굴이어서 창피했는데, 하필 왜 하필이면 임영민이 꼭 이럴때... 비 맞고 갈까봐 우산을 씌워준 애한테 꺼.지라고 해버렸음. 그저 난 좋아하는 감정이 아예 사라진 것도 아닌 데다가 이렇게 제일 창피한 순간에 마주친다는 사실이 짜증 났음.
"야 너 진짜 왜 그러냐. 내가 너한테 잘못한 거 있어? 있으면 말을 해 어?"
갑자기 자신을 무시한 내가 이해가 되질 않았던지 내 어깨를 잡고 그동안 계속 참고 참았던 화를 내기 시작했음. 한 번도 얘가 화를 낸 걸 본 적이 없는데 혹시라도 내가 상처 받을까봐 꾹꾹 억누르며 말을 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음. 미처 좋아해서, 라고 말은 하지 못하고 땅만 바라보며 눈에 맺혔던 눈물을 떨어트렸음.
"아니 왜 울어."
내가 울어서 당황한 건지 한참을 방황하다가 결국엔 우산을 내려 나를 꼭 안아주었음.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더 이상 너를 친구로 볼 수 없는데. 머리는 안 된다고 하는데 마음이 따라주질 않았음. 축축한 빗물 냄새에 섞여 흐르는 포근한 냄새가 내 얼굴을 점점 분홍빛으로 바꿔놓기 시작했음.
"이유나 좀 들어보자, 너 왜 나 피하냐? 진짜 너한테 잘못한 거 있어?"
오랜만에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도 어색했음. 그냥 신호등 초록불로 바뀌면 '가자' 정도? 그러다가 집에 거의 다 도착해서야 영민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음. 갑자기 자신을 무시해버린 내가 이해되지 않았던지 말 안 해주면 큰일 날듯이 물어보기 시작했음. '좋아해서'라고 말하면 겨우 말 몇 마디 시작한지 몇 분 만에 다시 아무것도 아닌 사이로 돌아가게 될까봐 무서워서 묵묵히 걸음을 바삐 했음.
"아 뭐 때문에 그런 건데! 나도 좀 알 건 알자."
"아 너 좋아해서 그랬어! 됐냐!"
계속 끈질기게 물어오는 영민이 짜증나서 결국엔 해선 안 될 말을 하고야 말았음. 한참의 정적이 시작되었고, 이건 내 인생 중 가장 흑역사가 될 일이라 생각이 들어 벌써부터 눈 앞이 캄캄해졌음. 절대로 영민을 쳐다볼 수 없었고, 그저 침묵 속에서 조용히 걸음을 하는 수밖에 없었음.
"얼른 들어가, 감기 걸려."
내일 보자,의 말과 함께 영민과 헤어졌고, 방금 전 일 때문에 내 자신에게 멈출 수 없는 욕을 하며 집에 들어와 벽에 머리를 박았음. 내가 왜 그랬을까 왜 말했을까. 내일 학교는 어떻게 가지. 내일 학교 가지 말까.
별에 별생각을 하며 조금 전 한 말을 후회하고 있었을까.
반갑지 않은 문자 알림음이 울렸음.
'지금은?'
지금은, 지금은? 지금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영민 때문에 심장은 더욱 빨리 뛰기 시작했음.
'지금은 나 안 좋아해?'
"……좋아해."
차마 문자 답장은 하지 못하고 말로만 좋아한다고 대답했음. 대답하면 영영 얘 못 볼까봐.
'나는 너 좋아해.'
'그러니까 답장 좀 해줘.'
7년 전 풋풋했던 시절
영민과 연애는 이렇게 시작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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