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꼭 틀고, 느리게 읽어 줘!)
타닥타닥,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타쿠야와 위안 사이의 침묵을 채웠다. 위안은 가만히 타쿠야를 보았다. 세상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인정해야 할 현실이 존재했다. 위안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타쿠야는 그런 위안에게 다시금 상기를 시켜 줄 뿐이었다. 형, 이건 현실이에요. 타쿠야의 모습은 위안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것처럼 들려서, 위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동안 모르는 척했던 두려움이 비로소 공기 중에 스며들었다.
“미안해, 타쿠야.”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미안하다는 말 하는 거 아니래요.”
위안은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 두 눈을 깜빡였다. 곧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타쿠야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위안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타쿠야가 위안의 손을 잡았다. 타쿠야의 손은 힘이 하나도 실리지 않은 채였다. 위안은 타쿠야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타쿠야가 자신의 손을 잡은 순간부터, 위안은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겨우 버티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위안을 감싸고 있던 생각과 이성이 무너지고 있었다. 슬픔이라는 단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눈물을 따라 비집어 나왔다.
“저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타쿠야는 잡고 있던 위안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위안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가 가득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런 실타래가. 이제는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위안 역시도 무너지고 있었다.
“왜 울어요.”
위안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타쿠야를 바라보았다. 타쿠야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씩씩하게 웃고 있었다. 바보 같아. 위안은 중얼거렸다. 타쿠야는 그것을 들었지만 여전히 미소를 띤 채였다. 사실 바보 같은 건 오히려 위안 쪽이었다. 타쿠야는 이렇게나 멀쩡하게 웃고 있는데, 위안은 웃을 수가 없었다. 위안은 타쿠야에게로 다가갔다. 둘 사이의 간격이 점차 좁혀졌다. 타쿠야는 위안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위안은 타쿠야를 바라보았다.
“형, 한 번만, 딱 한 번만 안아 보면 안 돼요?”
타쿠야는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타쿠야가 웃으며 팔을 벌렸다. 위안은 앉아 있는 타쿠야와 눈높이를 맞추려 다리를 굽히고 허리를 숙였다. 타쿠야는 그런 위안을 안았다. 서로에게 꽤 불편한 자세였지만 그것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쿵, 쿵, 타쿠야의 심장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다시 눈앞이 흐려졌다. 앞에 있는 사물의 형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약한 모습, 보이기 싫은데. 위안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는지 타쿠야는 그저 위안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온 병동을 울리던 빗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좋아해요. 많이 늦었지만, 지금까지 한 순간도 형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그렇게나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타쿠야의 그 말은 위안의 온몸을 아프게 매질했다. 위안은 목 놓아 울었다. 참으려 했지만 더는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위안을 보며, 타쿠야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라는 말은 못 하겠어요. 제가 원래 욕심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저보다 덜 좋은 사람 만나요. 제가 형한테 가장 좋았던 사람이고 싶으니까요.”
“타쿠야, 제발…….”
“건강해요. 꼭 행복해 줘요.”
위안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위안을 안고 있는 그의 손은 불안정하게 떨렸다. 바보 같다. 정말 바보 같다고 위안은 생각했다. 내가 너 없이 살 수 있을까. 뭉클한 열 덩어리가 심장을 아프게 태웠다. 어쩌면, 강한 척하려고 한 것은 위안이 아니라 타쿠야일지도 몰랐다.
“우리 꼭 다시 만나요.”
말도 안 되는 언약이라는 것을 두 사람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위안은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비는 거의 멈춘 후였다. 지독한 장마가 끝나가고 있었다.
* * *
창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이 짙다. 위안은 자신의 손을 뻗어 달력의 오늘 날짜를 만졌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를 한 것에는 별 이유가 없었다. 반팔에 반바지, 햇볕은 뜨거웠지만 동시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이상한 기분에 위안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가면서도 위안은 어색함에 몸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괜한 발걸음인가 싶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다가도, 마음먹은 일은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버스 정류장까지 다다랐다.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칭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이 시리도록 따가운 햇볕이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하늘이 푸르게 맑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안내판을 따라 위안은 그저 걸었다.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몸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위안을 감쌌다.
가만히 걷고 또 걸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위안은 묘석 앞이었다. 허리를 숙여 묘석을 손으로 만졌다. 차가운 돌의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위안은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타쿠야, 오랜만이야.”
자신의 목소리임에도 이질적으로 들려왔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목소리가 떨렸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입을 열자 가슴께가 먹먹해졌다.
“벌써 네 달이 지났어. 너 없는 동안 한국말을 더 배웠어. 그동안 타쿠야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는데 한국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서 못 했던 말들이 많았거든. 늦었지만 이제라도 배우고 싶어서.”
위안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머리로 생각하고 내뱉으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애써 씩씩한 척하려 미소를 지었지만 입술이 잔뜩 일그러졌다.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위안은 계속해서 말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네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네가 없어도, 자꾸만 시간이 흐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위안의 말이 드문드문 끊겼다. 그만 멈추려고 해도 한 번 터진 눈물을 따라 계속해서 말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하지 못 했던 말들을 한꺼번에 토해내고 있었다. 그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이 계속해서 따라 나왔다. 그는 울고 싶지 않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이상하지. 너 없는데… 넌 없는데… 계속 시간이 흘러…….”
시간이 흘러. 시간이, 계속 흘러 가. 위안이 타쿠야의 묘석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그의 목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목적지도 없이 떠돌던 그의 말은 자신에게 내려 앉아 상처를 헤집었다. 이제 괜찮을 거라 생각해 이곳으로 왔지만, 아직 그의 마음속에 있던 상처는 그대로였다. 위안만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위안을 가장 아프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괜찮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울고 있는 위안의 등을 따라, 바람이 그를 어루만졌다. 타쿠야, 타쿠야. 그리움과 외로움이 한 데 어우러져 그의 이름을 불러댔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저 바람을 타고 실려 오던 기억과 추억이 위안의 곁에 오래도록 머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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