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
“ 왜. ”
“ 저 이 부분 잘 모르겠는데요. ”
제법 멀끔한 얼굴을 가져선 그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앉아 있는 내 앞의 타쿠야를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참을 인을 머리에 새겼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망할 놈은, 며칠 전에 내가 중국어 강사로 있는 이 학원에 오직 ‘나를 보기 위해서’ 중국어를 배울 필요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등록한 테라다 타쿠야라는 이상한 녀석이다. 툭하면 모르겠다고 나를 불러내질 않나,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는지 낮이고 밤이고 몇 십번을 카카오톡을 보내질 않나, 심지어 내 인스타그램은 어디서 듣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찾아서 맞팔을 강요하질 않나.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한 놈이였다. 나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샤프를 챙겨서 타쿠야의 자리로 향했다. 잔뜩 찌푸리고 있는 내 얼굴을 본 타쿠야는 다리를 꼬고 손으로 볼펜을 돌리며 철판을 한 100장은 깐 듯한 얼굴로 미소지었다. 정말로 두드려 패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옆 자리에 앉았다.
“ 또 뭐. 또 뭐가 모르겠는데. ”
“ 이 부분 성조를 모르겠어요. ”
모르겠답시고 내게 펼쳐놓은 것은 중국어 초급반을 듣는 학생들도 다 아는 아주 쉬운 것이여서 기가 막힌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 표정변화가 재미있는지 타쿠야는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 너 대체…. ”
“ 중국어 너무 어려워요. ”
그럼 듣지마, 이 자식아!하고 뒷통수를 후려칠 뻔 했지만, 내 생각대로 행동하기엔 당장 학원에서 짤릴 수 있음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잘했어, 잘하고 있어 장위안. 몇번이나 나를 위로하면서. 땀에 젖은 손바닥을 대충 바지에 문질러 닦은 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평소 수업시간엔 제대로 안듣고 장난만 치는 녀석이 내가 찾아가서 설명해주면 제법 진지한 태도로 들어서 뭐라할 수가 없다. 수업시간에도 이 반만 해줘도 참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
“ 아, 이제 알겠네요. ”
“ 아 이제 알겠네요? 너 이렇게 쉬운 것도 모르면서 고급반엔 대체 어떻게 들어온거야?! ”
“ 말했잖아요, 너, 아니. 선생님 보러 왔다고요. ”
“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니가 어떻게 날 알고 여길 찾아와? ”
“ 됐어요, 됐어. ”
내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하고 빤히 타쿠야의 얼굴을 쳐다보자 당황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살짝 보이는 귓가가 새빨개져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자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좀 황당해져서 타쿠야를 올려다 보니 얼굴도 귀처럼 빨개져 있다. 무슨 첫사랑에 빠진 수줍은 소녀 같은 행동을 취하는 녀석을 보니 기분이 조금 이상하다. 타쿠야는 아, 정말! 하고 나를 보고 소리치고 바닥에 발을 쾅쾅 구르더니 이내 밖으로 나가버렸다. 분명 내 얼굴은 진 멍청한 표정일 것이다. 정말, …뭐야 저 녀석?
*
“ 오늘은 여기까지만, 아까 집어준 부분 다시 한번 복습하고 오세요.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기 위해 교재를 대충 가방에 넣었다. 칠판에 적은 필기를 혼자 지우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 서길래 고개를 돌려 보니 타쿠야였다. 타쿠야는 나를 곁눈질로 힐끔 보더니 칠판 지우개로 내가 닿지 못하는 칠판 위쪽을 지우기 시작했다(녀석은 나보다 키가 약 10cm는 더 크다).
“ 뭐야? 화낼 때는 언제고. ”
“ 저 화 안냈는데요? ”
“ 웃기시네. ”
뭐라 한 소리 더 하려다가, 이내 열심히 필기를 지우는 녀석의 모습에 그냥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사내녀석이 계집애처럼 굴긴. 그래도 또래얘들보다 어른스러운 모습보다 이렇게 어린아이의 모습이 더 보기 좋았다. 고등학생 주제에 나보다 다섯살은 더 먹은 것 같이 행동하는 타쿠야는 어색했다.
“ 선생님. ”
“ 왜. ”
“ 오늘…, 어, 약속 없어요? ”
약속 없으면 어쩌게? 바로 대답할 줄은 몰랐는지 녀석답지 않게 타쿠야는 잠시 당황하더니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또 계집애처럼 구네. 늘 능글맞은 모습만 보다가 이런 모습을 보니 중국에 있는 사촌동생 생각도 나고 귀여워보여서 나도 모르게 타쿠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놀랬는지 녀석이 바로 고개를 치켜들어서 따라 놀란 나도 손을 황급히 내렸다.
“ 어, 그게 말이지, 타쿠야. ”
“ …만져도 되요. ”
“ ………. ”
“ 안싫어해요. ”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타쿠야의 귓가와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 얼굴도 아마 녀석의 얼굴처럼 새빨갛겠지. 급속도로 어색해져 버린 공기가 적응이 안된다. 어떡하지,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다시 손을 올려 타쿠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흠칫 놀라더니 이내 녀석은 가만히 서 있었다. 처음 만지는 녀석의 머리카락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마치 값비싼 비단 같아서 매우 느낌이 좋았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동안 타쿠야는 빠른 속도로 필기를 지웠다. 나보다 팔이 길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지우는 속도보다 몇배는 더 빠른 속도였다.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지우개를 털기 위해 머리에서 손을 떼어 내니 타쿠야는 조금 아쉬운 내색을 했다.
“ 이것만 털고 같이 나가자. ”
네,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조금 상기되어 있어서 몰래 조금 웃었다. 좀 귀엽네, 오늘은. 빠른 속도로 지우개를 털고 제자리로 갖다 놓은 다음 가방을 챙겼다. 대충 뒷정리를 하고 학원을 빠져 나오니 평소 나오는 시간보다 20분은 더 늦어져 있었다. 같이 밤인데도 불구하고 온통 번쩍거리는 길을 걸으니 기분이 색달랐다. 매일 혼자 가던 길을 두사람이서 같이 걸으니 좋았다.
“ 난 여기서 지하철 타고 가면 돼. ”
어느새 내가 타야할 역 앞에 다다랐다. 나를 내려다보는 타쿠야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상기되어 있다.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이런 침묵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 선생님. ”
“ 왜? ”
“ …好きだよ。これからずっと一緒にいてくれない ?(좋아해. 이제부터 나와 함께 있어 줄래?)
“ 뭐라고? ”
“ 비밀. ”
“ 너 일본어로 내 욕했지? ”
아 진짜 눈치 없어. 녀석은 바닥을 차며 중얼거렸다. 뭐가 눈치가 없어, 저 자식이.
“ 좋아한다고요. 진짜 눈치 없어. ”
“ …… 어? ”
“ 내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티냈는데. ”
좋아한다고? 나를? 이걸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지, 망설이고 있는 동안에 타쿠야가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자 녀석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더 진하게 맡아지는 타쿠야의 향기에 머리가 어지럽다. 내 어깨를 손으로 붙잡더니, 이마에 입술을 붙였다가 천천히 떼어내고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 장위안, 좋아해요. ”
* * *
처음 쓰는 타쿠안.............ㅎㅎㅎ 거기다 처음 쓰는 달달한 글.....................ㅎㅎㅎ 오징어로 만들어서 미안합니다!!!!!!!!!!!!!!!!
장위안에게 첫눈에 반해서 무작정 위안이 일하는 중국어 학원에 등록한 고딩 타쿠야와 들이대는 타쿠야가 귀찮지만 싫지는 않은 장위안이란 설정으로 썼는데..ㅋㅎ
역시나 똥글이네요....... ㅠㅁㅠ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당
비젬:케이윌-lay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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