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하다 못해 살을 에어버릴 듯 날카로운 겨울 바람에 옷깃을 꽉 여미고 해변가를 거닐며 고요한 파도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철썩거리며 해변가를 흔드는 파도소리는 저 먼 바다서부터 일렁이며 다가와 이내 11월 바다의 차가움 속 한 배경이 되었다. 발을 해변가 모래사장에 살짝 파묻었다 들어올렸다. 발 위에서 흘러내리는 고운 모래는 발등에서, 발 옆으로 그리고 다시 모래사장으로 떨어졌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했을까 문득 마음 한켠에서 사각거리며 차오르는 공허함에 공중에 들린 오른발을 힘없이 떨어뜨리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쓰러지듯 모래사장에 주저앉자 내 마음 속에 차오르는 공허함처럼 모래는 사각이며 내가 앉은 자리 주변으로 양 옆으로 밀려났다. 모든 것들은 새로운 것에 의해 밀려나고 비껴난다. 아쉽고 놓아주기 싫고 슬프지만 자연히 그렇게 되거나 한번쯤은 그 새로운 것에 흔들려 본래의 자리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는 것, 그 것이 나는 언제나 가슴이 아팠다. 오래 된 것, 익숙한 것, 편해진 것은 꾸준한 사랑을 얻지만 새로운 것은 뜨거운 관심을 받는다. 그 관심이 이내 꺼지고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리도 가슴 아파하는 것이겠지. 익숙한 무언가는 사랑을 독점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 사람 그리고 사람의 마음. 그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영원한 독점이 될 수는 없었다.
주머니에서 코팅 된 갈대잎 책갈피 하나를 꺼내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래, 한때는 이런 작은 풀잎 하나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향한 마음이 영원하리라 믿었던 그 때가 있었다. 깊은 애정, 갈대의 꽃말. 서로의 손을 꼭 맞잡고 이파리 두 장을 꺾어내 서로 한 장씩 주고받으며 유치하지만 풋풋하게 서로만을 바라보던 그때가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을 곰씹을 수록 입 안에 쓴 맛이 가시처럼 따끔하게 입 안에서 불편하게 맴돌았다. 아직도 뱉기는 아쉽지만 삼키기는 아픈, 한 없이 사랑스럽고 멋있기만 하던 네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버린 것이 마음이 아팠다.
"...잘지내지?"
당연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갑게 부서지는 파도소리 뿐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나마 너를 생각하는데, 네 머릿속에는 아니 마음 저 깊은 아주 작은 한켠에라도 나에 대한 것들이 남아있을까. 술자리에서 잘근대며 곰씹을 안주거리로라도 떠올려질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나를 기억하고 떠올려준다면. 내가 너를 생각하는 아주 작은 그 만큼만이라도 나와의 시간을 돌이켜준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겠니. 갈댓잎 옆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나를 위해 써준 그 시를 읽어내리며 가슴 속에서 절절하게 차오르는 소리없는 슬픔을 삼켰다.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
타쿠안. 누구의 시점인지는 나도 안정했으니 각자가 판단ㅇㅇ..
그냥 저 시랑 타쿠안 생각만 하고 쓴 조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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