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장 두통
쉬었다 갈께요.
카메라가 꺼지고 동민은 한숨을 내 쉬었다. 몇 시간 전 부터 아프던 머리는 여전히 지끈거렸다. 녹화장 안에서 두통에 시달리는 일이야 지니어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었지만 오늘은 유달리 그 강도가 심했다. 동민은 아무도 없는 창고방으로 가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이대로 쉬는시간이 다 지나도록 버텨 볼 생각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쉬고 있으면 머리가 깨질듯한 이 고통이 가라 앉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그 새를 못 참고 이쪽 방으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동민은 방 안을 들여다 보는 진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냥 나가라고 손짓을 했지만 진호는 기어코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왜 그러고 있어 형. 머리아파?
응
숨겨도 소용이 없겠다 싶어 동민은 순순히 사실을 말했다. 진호는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동민에게 성큼성큼 다가 와 서슴없이 손을 뻗었다. 차가운 손이 이마를 만지는가 싶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얼굴이 이쪽을 들여다 본다.
열은 없는데. 많이 아프면 약이라도 먹지.
안가져왔어 오늘.
대충 대답하며 동민은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아 보여도 이상한데서 묘하게 눈치가 빠른 진호와 함께 있으면 피곤했다. 지금처럼 피하고 싶은 순간에도 진호는 알면서도 결코 물러서 주는 법이 없었다.
나한테 있는 약이라도 먹을래?
뭔데
타이레놀
부스럭거리며 진호는 테이블 위에 바지 주머니와 가넷 주머니를 탈탈 털기 시작했다. 코디가 오늘 입혀 준 옷일텐데도 주머니에서는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구겨진 영수증부터 시작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탕껍질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마지막으로 먼지와 함께 껍질에 싸여있던 타이레놀 한 알이 굴러나왔다. 진호는 먼지를 떼어낸 약을 동민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먹어.
아이씨. 지금 장난해? 먹고 죽으라고?
자세히 살펴보니 얼마나 오랜 세월을 주머니에서 주머니로 옮겨다녔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약이었다. 심지어 타이레놀의 레놀이라는 글씨는 너무 오래된 나머지 지워져서 보이지도 않았다.
아이 안죽어. 어짜피 약도 없다며. 그냥 먹어!
손사래를 치며 진호는 억지로 자기가 먹던 쥬스까지 동민의 손에 기어코 쥐어줬다. 진호는 다시 주섬주섬 테이블에 펼쳐놓은 물건들을 주머니 안에 우겨넣기 시작했다. 손에 들린 끈적거리는 쥬스와 약을 번갈아가며 보던 동민은 머리가 점점 더 아파오는것을 느꼈다. 눈 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두통은 심해지고 있었다. 이게 다 홍진호 때문이라고 이를 갈며 동민은 부들부들 떨었다.
아 왜 안먹고 그러고 서 있어. 내가 먹여줘?
가만히 서있는 동민이 불만이었는지 정리를 하다 말고 진호가 이쪽을 홱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로 진호는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동민은 얼른 약 껍질을 까 입에 털어넣고 쥬스를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진작 그럴것이지. 형 이제 나한테 빚진거다?
뭐? 야 너 진짜..
원래는 가넷으로 받으려고 했는데 약 한알에 백만원은 너무 심한 것 같아서. 걍 다음번에 밥이나 사.
테이블 정리를 끝마친 진호는 벙찐 동민을 뒤로 하고 손까지 흔들며 행복한 표정으로 창고방을 나가 버렸다.
야 홍진호 이 사기꾼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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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장 화해
여름 밤은 눅눅하고 어두웠다. 술 기운 때문인지는 몰라도 진호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갈 때 마다 열이 확확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밤의 홍대는 언제와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이 거리에는 극명한 명암이 존재했다. 화려한 불빛이 축축히 젖은 길 위를 핥는 곳이 있는가 하면, 빛이 한 줌도 들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도 있었다.
동민이 있는 곳은 어두운 골목길 중에서도 꽤나 깊숙한 안 쪽이었다. 진호는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골목 끝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저 끝만 돌면 동민을 만날 수 있었다. 우연히 이 곳을 들린 척 거짓말이라도 쳐 볼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떨어냈다. 골목 끝을 돌자마자 진호는 함께 온 일행을 배웅하고 뒤돌아 선 동민과 눈이 마주쳤다. 생각 할 새도 없이 진호는 다가가 동민의 팔을 틀어 쥐었다.
누구야?
너..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약속장소까지 기어코 찾아 올 줄은 몰랐는지 동민은 꽤나 놀란 표정이었다. 진호는 아랑곳 하지 않고 동민의 팔을 틀어 쥔 손에 힘을 가했다.
내가 지금 만난 사람 누구냐고 묻고 있잖아.
아는 동생. 내가 저번에 말했던 그 사업한다는 친구.
동민은 진호가 팔을 틀어 쥐고 있는 손을 한번 그리고 거리를 한번 힐끔 이더니 말했다. 저 담담한 목소리로 봐서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동민이 진호에게 뭔가를 숨기거나 할 성격은 아니었다. 알면서도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른 풀에 불을 붙인 것처럼 질투라는 감정은 삼키거나 참아 누르기가 어려웠다. 진호는 주변을 살피는 동민을 어두운 골목 안 쪽으로 더 깊숙이 끌어 들였다.
형. 우리 약속 있을 때 서로 연락하기로 한 거 아녔어?
나 너한테 문자 보낸 걸로 기억 하는데.
안 왔어.
거짓말이었다. 배터리가 나가 핸드폰이 꺼져있어서 문자를 받지 못했을 뿐 동민은 분명 진호에게 연락을 했었다. 어디서 누굴 만나고 있으며 그 만남의 목적까지도. 동민을 기다리다 참다 못해 집을 뛰쳐나온 뒤에나 진호는 그 문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혼자 화가 나 있던 시간들이 허탈했지만 그 것도 잠시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동민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가 벌써 며칠째였다. 동민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고 진호는 집으로 돌아오는 동민을 항상 기다려야 했다. 12시가 지나기 전에 동민은 칼같이 집에 돌아왔지만 그래도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거였다.
안 왔다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주머니에서 동민이 핸드폰을 꺼내려는 것을 막으며 진호는 동민의 어깨를 잡고 벽 쪽으로 몰아 붙였다. 아프다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동민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잠깐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동민은 진호가 한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아서 내버려 두고 있었다. 초반에는 이런 문제로 싸울 때 마다 동민도 불같이 화를 냈지만 결국 진호를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스스로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아낸 것 같았다. 그리고 동민이 이렇게 묵묵히 진호의 화를 받아줄 때 마다 진호는 도리어 역정이 났다.
너 또 술 마셨냐?
진호가 터지기 직전인 화를 애써 눌러 참고 있는 것을 눈치 챈 것인지 동민이 먼저 물어왔다. 차분히 가라앉은 동민의 눈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말하지 않는다면 동민은 아마 진호가 화가 난 이유조차 모를 것이다.
왜 이렇게 아는 동생들이 많아. 이번 주에 형 몇 번이나 약속 때문에 나갔는지 알아? 그럼 나는 뭔데? 나도 그냥 아는 동생이겠네? 내가 왜 맨날 형이 집에 늦게 들어오는걸 기다리는 입장이어야 되는데. 형 주변 사람들은 형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뭐 그런 사람들 밖에 없어?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하..
한숨을 내 쉬며 동민은 고개를 돌렸다. 동민의 진심이 그렇지 않다는 것쯤은 진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 그 진심을 확인 받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었다. 동민은 말 하지 않아도 아는 거 아니냐며 진호가 이렇게 대답을 강요 할 때 마다 대답을 피해 왔었다. 지금처럼.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거나. 그때마다 진호는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기어코 그 대답을 받아 왔었다. 오늘 같은 날에도 끝끝내 진호의 눈을 마주보길 피하는 동민을 보고 있으니 더 이상 참고 있기가 어려웠다. 동민의 어깨를 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내가 말 하고 있을 때는 눈 돌리지 말라고 했지.
진호는 어깨를 잡은 손을 밀어내려는 동민의 손을 붙들어 벽에 고정시켰다. 꼼짝 없이 갇힌 꼴이 되어 더 이상 도망칠 수도 없을 것이다.
미안해.
속삭이듯 동민이 말했다. 진심이었다. 되 묻지 않아도 진호는 알 수 있었다.
자꾸 이러면 저번처럼 형 가둬버릴 거야. 형 전에 사귀던 사람이 감금한 적 있어서 갇히는 거 싫어한다고 했지? 이번엔 물 한 모금 안 줄 거야.
진호야..
동민이 조용히 진호의 이름을 불렀다.
너 그렇게 나를 못 믿냐.
마주친 눈빛 속에서 진호는 느낄 수 있었다. 동민은 정말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진호를 걱정하고 있었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 진호는 동민이 자신이 이렇게 나올 때 마다 상처를 받는 것도, 또 서운해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만큼 진심을 다 했기 때문에 받는 상처라는 것을 알아서 진호는 어느 정도 마음이 누그러진 것을 느꼈다.
아니.
쥐고 있던 손을 내려 진호는 동민의 손등 위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동민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나뿐이라고 말해 줬으면 좋았겠지만 진호는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 하기로 했다. 저런 목소리와 저런 얼굴로 동민이 바라봐 주는 대상은 자신 뿐이 이라는 것을 진호는 알고 있었다.
우리 화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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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쓰레기 글 줘서 정말 너무 미안해. 원래 빨리 댓글로 휘딱 해치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이 두개를 제일 늦게 썼네. 너무 늦게 주는게 미안해서 마지막껀 길게 써줬어. 휴.. 바라던거 아닐 거 같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튼..ㅠㅠ.. 기다려줘서 고마워 갓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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