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그들이 처음 만난 이후로 경훈은 종종, 그렇지만 꾸준히 -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을 붙이고 있던 그 시점에도, 서로를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라고 여기게 되었을 무렵에도, 경훈이 수많은 여자친구들에게 번번이 차이고 올 때에도, 마지막 여자친구가 품에 안겨준 갓난아기를 멀뚱히 품에 안고 현민을 찾아왔을 때에도, 심지어 현민의 고백을 받고 교제를 시작했던 그 무렵에도 - 말했었다. 나는 스물일곱에 죽을 거야. 그때마다 현민의 질타 섞인 눈초리와 매운 손바닥이 뒷통수에 따라붙었지만, 경훈은 그 엉뚱하고도 오싹한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커트 코베인도, 지미 헨드릭스도, 제니스 조플린도, 짐 모리스도 다 스물일곱에 요절했어. 그러니까 난, 스물일곱에 죽을 거야.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젊음을 잃지 않았을 때. 처음엔 식겁하고 경훈의 마음을 돌리려 애쓰던 현민도 종래엔 저 또,라이 새,끼 또 미,친 소리 하네, 하고 가볍게 넘기는 수준이 되었다. 잊을 만하면 꺼내는 말을 무겁게 여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부성애가 넘쳐흐르는 경훈이 제 금쪽같은 아들을 두고 훌쩍 가버릴 일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스물일곱이 되었다.
-
현민아.
왜 불러, 김경훈.
나 좀비 바이러스래. 그것도 말기.
그래, 좀비 바이러ㅅ, 뭐?
순간 머리가 하얘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음 아닌 죽음,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형벌. 현민은 단순히 전해 들은 것만으로도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정작 당사자인 경훈은 현민의 손을 잡고 다독이며 마치 책이나 뉴스에서 본 타인의 얘기를 하듯 덤덤히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자꾸 손끝이 파래져서 병원 갔더니 큰 병원 가서 검사 받으라고 하더라고. 길면 두 달 정도 살 수 있대. 아직 뇌까진 안 퍼졌는데,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나 봐. 그 동안 핀 담배 때문이라는데... 진작에 좀 끊을 걸 그랬다, 그치. 나 죽으면 우리 준이 좀 부탁해, 아가. 알았지? 당부를 할 때나 토라진 현민을 달랠 때 나오는 특유의 다정한 목소리. 현민은 울컥, 속에 있던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느낌에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
너 죽으면 나는, 흑, 나느은... 나는 어떡하라고 미, 친 새, 끼야... 어? 의지할 데라곤 이 넓은 세상에 너뿐인 나는... 그러게 내가 진작에, 끅, 담배 좀 끊으라고, 흐, 그랬잖아...
횡설수설 흐트러진 말들을 쏟아내던 현민은 결국 평소처럼 제 등을 토닥이는 경훈에게 안겨 울고 말았다. 나 일주일 정도 시간 있어. 우리, 남은 일주일 알차게 보내자. 마지막으로 우리 현민이가 해주는 밥도 먹고, 바다도 보러 가고. 나 벚꽃 보고 싶었는데... 치료 받아서 증상 많이 약해지면 외출 시간도 받을 수 있대. 나 괜찮아지면 둘이서 벚꽃도 보러 가자. 응? 울지 마 현민아, 눈 부으면 못나져. 일주일 뒤면 네 얼굴도 마음대로 못 볼 텐데, 그렇게 못난 모습만 보여줄 거야 나 마음 아프게? 연신 훌쩍이는 현민을 끌어안고 토닥이며 달래는 경훈의 목소리도 올라오는 눈물을 애써 삼킨 듯 푹 잠겨 애달프다. 겨우 그치려던 눈물이 다시 터지고, 우는 현민을 달래려 내내 진땀을 흘리던 경훈도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
준을 경훈의 부모님께 맡겨놓고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경훈의 말 한 마디에 우발적으로 떠난 일주일짜리 여행이었고, 그렇기에 숙소는 당연히 바다가 보이는 펜션이었다. 방 하나에 대강 짐을 풀자마자 그들은 입술을 맞댔다. 그것이 생의 마지막 입맞춤이라도 될 듯 끈적하고 간절한 것이었다. 혀가 섞일 때 현민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현민아, 나 안 죽어. 꼭 나아서 네 곁에 다시 돌아올 거야. 울지 마. 단호한 경훈의 목소리에도 눈물은 멎지 않았다. 다시 부딪힌 입술 새로 울음소리가 먹히고, 숨이 멎을 듯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 숨이 차 불안정하게 히끅거리는 현민을 사랑스럽다는 듯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엄지손가락으로 볼을 살살 쓸어내렸다. 퉁퉁 부어오른 네 개의 눈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그 뒤로는 물론, 곧 바로 베드 인이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다급하게 셔츠를 벗고 몸을 맞댔다. 투둑, 단추 두어 개가 뜯겨나가는 소리가 생경했지만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버벅대는 손들이 서로의 버클을 풀고, 장난스러운 웃음이 따라붙는다. 살과 살이 맞닿아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 이렇게 따뜻한데, 대체 왜. 다 잠긴 목소리로 현민이 중얼거렸다. 눈 앞에 나 두고 딴 짓 할 거야? 부루퉁해진 경훈이 투덜거리며 급작스레 현민의 브리프 속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제 것을 말아 쥔 까끌한 손 때문에 현민은 아, 외마디 신음을 뱉으며 몸을 잘게 떨었다. 복수하겠다는 듯 부러 천진하게 웃으며 경훈의 것을 맨들한 천 위로 살살 문질렀다. 평소와 다름없는 순서였지만 좀 다른 것이 있다면 물건이 채 빳빳하게 서기도 전에 남은 손을 입 안에서 적셔 뒤로 밀어넣고 있었다, 라는 것. 흥미롭게 구경하다가도 힘들어하는 현민을 오래 지켜보지 못한 경훈이 뒤를 풀어주고 나서는 실로 오랜만의, 삽입. 천천히 밀고 들어오는 경훈의 것을 못내 버거워하면서도 스스로 허리를 들썩이며 받아 낸 현민은 숨이 툭툭 끊어지는 목소리로도 경훈을 재촉했다.
김ㄱ, 경훈아, 아흐, 빨리, 움직여 줘, 응?
조금만, 조금만, 현민이 익숙해질 때까지 조금만, 속으로 바를 정을 오백 개쯤 그리며 참던 경훈의 이성이 끊기고, 강해지는 추삽질에 허덕이면서도 현민은 샐쭉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 밤새 몇 번이고 몸을 섞었다. 지친 현민이 밀어내면 경훈이 들러붙고, 그만하자 싶어 경훈이 몸을 빼면 현민이 올라타는 식이었다. 맨몸으로 서로를 끌어안고 동이 트는 것을 지켜보며 그들은 벅차게 웃었다.
일주일 간 쉼없이 뒹굴었다. 눈이 맞으면 입술을 맞대고 손을 맞잡고 끈덕지게 달라붙어 몸을 섞었다. 그 끝에서 현민은 번번이 눈물을 보였다. 맨살로 축축한 머리통을 끌어안고 다독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경훈 역시 반복되는 수순이었다. 이레째 되는 날 현민은 유독 격하게 경훈을 받아들였고 집착했으며 정신을 잃도록 울었다. 끊긴 정신을 부여잡고 눈을 떴을 때, 경훈과 그의 짐은 사라지고 없었다.
-
경훈이 격리병동에 입원한 이후로 현민은 사람의 꼴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피폐하게 시간을 보냈다. 꼬박 두 주가 지나고 찾은 유일한 낙이 있다면 유치원에 종일 맡겨뒀다가 해 질 무렵에야 집에 들어오는 준을 돌보는 일이었다. 경훈을 꼭 닮아서는 제 옆에 붙어 그날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떠드는 자그마한 아이를 보고 있자면 제가 애 엄마라도 된 것 같아 마음의 안정을 얻다가도 가끔 경훈이 생각나 조금 서러워지기도 했다. 어쩌다 눈물이라도 보이는 날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현민을 꼭 껴안는 어린 손, 고사리 같은 그 손을 마주 보듬어 줄 때마다 현민은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으며 경훈을 기다렸다.
손 꼽아 기다리던 면회일이 사나흘이나 남았을까,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 무렵 현민의 귓전을 때린 것은 왕왕대는 텔레비전이 다급하게 전달하는 속보였다.
긴급 속보입니다. 좀비 바이러스의 감염자들이 병동에서 탈출하고 있습니다. 내부 관계자의 소행으로 보이며, 국민 여러분께서는 최대한 신속히 안전한 실내나 지하 벙커로 피신하시고 비상식품을 구비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알립니다.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병동에서 탈출하고 있습,
뚝-
텔레비전의 신호가 끊기고, 현민이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역시나 경훈이었다. 탈출한 말기 환자들에게 혹시 당하진 않았을까, 위험에 빠지지 않았을까.
혹시 탈출한 환자들 사이에... 그가 있진 않을까. 급히 옷을 찾아 입고 준을 근처에 거주하는 경훈의 어머니에게 맡긴 뒤 현민은 혼란에 빠져 웅성거리는 인파를 거슬러 곧장 경훈이 격리되어 있을 병원으로 뛰었다.
-
현민아, 내가 그랬지. 스물일곱,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죽고 싶다고. 내 꿈, 네 손으로 이루면 더 좋겠다. 네가 죽여주라. 네 손으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그 흉측한 것들 속에 섞이게 두지 말고, 사랑해 오현민. 꼭, 살아남아.
야금야금 좀먹히는 정신을 애써 붙잡고 더듬더듬 경훈이 남긴 마지막 말은, 겨우 그거였다. 진짜 끝까지 또,라이 새끼... 눈물에 푹 젖은 얼굴을 숙인 채 총을 쥐고 부들부들 떨던 현민은 신발이 아스팔트 바닥에 끌리는 거친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경훈의 안에서 좀비의 자아가 깨어나고 있다. 그렁그렁한 눈물이 앞을 가리는 와중에도 빌어먹을 머리는 계산을 마치고, 이내 아까 보여주었던 인간의 이성은 아마 마지막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맞는다. 기회는 단 한 번, 경훈의 의식이 완전히 잠식되는 그 찰나.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을 천천히 치켜든 현민은 경훈의 몸이 뒤로 훅, 꺾이는 순간에 총을 난사했다. 탕, 타앙, 탕탕, 탕,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고 그 중 두어 발은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에 맞아 가지들을 흔들었다. 그 중 경훈의 머리를 관통한 한 발. 도출한 계산대로라면 인간 김경훈의 생명은 아무런 고통 없이 꺼졌을 것이다. 따가운 눈가를 아무렇게나 문지른 현민이 경훈의 시체로 천천히 다가갔다. 도저히,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아수라장이 된 서울도, 죽은 경훈도, 경훈을 죽인... 제 손도. 하지만 무섭도록 새빨간 경훈의 피는 진짜가 맞았다. 총에 맞아 흔들린 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이 피에 절어 흘러가고, 현민은 그 놀랍도록 이질적인 장면에 가만히 시선을 붙이고만 있었다.
이지러진 달의 귀퉁이에서 나비가 날아와 피에 젖은 꽃잎에, 축축하게 일그러진 현민의 얼굴에, 경훈의 눈을 서툴게 덮은 작고 뭉툭한 손에 앉았다 사그라졌다. 나비의 날갯짓이 실바람이 되어 둘의 머리칼을 헝클이고, 벚나무에 앉아 꽃잎들을 이리저리 흩뜨렸다. 눈물에 찌든 꽃잎은 꼭 경훈이 바랐던 죽음처럼 지독히도 아름다웠다.
-
+사족) 좀비 바이러스가 암처럼 난치병으로 자리잡고 있는 세상. 좀비 병동 따로 있고, 암처럼 바이러스가 온몸에 퍼지면 말기 판정 받고 말기 환자만 모아놓은 병동에 따로 격리 조치 보호자도 굉장히 운 좋은 경우에만 면회 가능 병이 심화될수록 많은 시간을 팔다리 묶여서 보낸다. 심장 박동이 멈추는 것을 죽음으로 인지하는 다른 병과는 다르게 인간의 이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 찰나를 죽음으로 인지하고 처리하는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발작이 점점 심해지고 지속 시간이 길어지면 보호자에게 일방적 통보 후에 쏴죽이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화장시켜 지정된 납골당에 봉인하다시피 둔다 어떤 미치광이 의사의 계략으로 서울에 위치한 좀비 병동 안 모든 좀비 바이러스 환자가 풀려남 그 수가 적지 않아서 서울은 아수라장이 되고 최대한 많은 시민을 대피시킨 다음 출입을 통제시켜서 버린 도시가 되는 서울... 이라는 세계관으로 옛날에 썼던 글 리네이밍했어 살도 좀 보태고! 혹시나 이 글이 삭제된다면 부족한 글 완전하게 내용 채우러 간 걸 거야 덜 바쁘고 덜 피곤할 때 더 다듬고 내용 채워서 돌아올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근데 과거의 나야 둘이 어떻게 첫날에 뗶뜌를 하고 일주일 내내 떡을 쳤는지는 알려주고 가야 할 거 아니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왈칵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