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은 좋았다. 문제는 학벌만 좋았다. 클래스에 걸맞는 등록금을 위해 정말 죽을 듯이 일을 해야 했고 못 해 본 알바가 없을 정도로, 안 그래도 마른 몸이 더욱 야위어 갔다. 주변에서는 그렇게까지 그 학벌이라는 것에 매달려야 하냐고 만류를 했지만 여기는 대한민국 아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고생이 조금이라도 필요한 법이었다. 그게 김유현이 선택한 생존법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니 형편은 꽤 괜찮아졌다. 그렇게 매달리던 학벌을 이용하니 수입이 들어왔고, 그 수입은 지금까지 있던 모든 일에 대한 보상처럼 달았다. "내가 봤을 땐 쟤 언젠가 쓰러진다." "언젠가는 뭐야, 조만간. 아니 아니 곧." "왜 형들이 난리예요?"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준석과 진호는 안부를 나누는 게 아니라 유현이 언제 쓰러질까에 대해 내기를 하고 있었다. 그를 한심하게 여겼지만서도 그렇게까지 자신의 모습이 위태로운가 싶어 손목을 쳐다보았다. 깡말랐다. 그냥 그 단어면 설명이 됐다. 징그럽다면서 술잔을 들이미는 진호의 표정에 진지한 걱정이 섞여 있었다. "연승이 형 한의원 좀 데리고 가야지 아주." "아이, 진짜 괜찮다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괜찮아?" "물론이죠. 진짜 힘들었던 것도 옛날이라니까?" "너 보면 옛날로 돌아가는 기분이니까 하는 말 아냐. 물론 그 옛날은 한 보릿고개 정도 말하는 거야." 말을 말자. 대화를 포기한 유현은 제 몫의 술을 전부 비우고는 쓴 신음을 뱉었다. 술에 약하지만 이 사람들이 그 사정을 봐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유현은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아직 모자라요. 더 많이 벌어야지, 최대한." "진짜 독하네~ 뭘 해도 성공해 넌 백포, 빽, 백프로." "콩 완전히 갔구만. 아, 너한테 소개하고 싶은 사람 있었어. 이제야 떠올랐네." 준석은 잔뜩 붉은 얼굴을 한 진호가 술잔을 들려는 것을 막으며 명함 하나를 유현에게 건넸다. 하얗고 단정한 명함에는 정말 간단한 사항만이 적혀 있었다. 이름이... "김경훈? 누군데요?" "어, 종합학원 하나 차린다는데 영어 파트에 한 명 필요하다 해서. 아마 세게 줄 거야. 금수저거든." "종합학원이면 초딩들 가르치는 거 아니에요?" "아니, 고등학생만. 한번 얘기나 해 봐, 자세한 건 형도 모르, 아 그만 좀 기대고 그냥 자라고 홍진호!" 준석은 진호의 머리통을 잡아 테이블에 고스란히 내려놓았다. 요즘 힘들다고 맨날 마셔서 약해졌어 이 형이. 준석이 이해하라는 듯 말하지만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페이도 괜찮을 거라 했고, 같은 남자에, 어차피 고등학생이면 한참 공부에만 매달릴 때라 귀찮을 일도 없을 것이었다. 연락 한번 해 볼게요, 고마워요 형. 웃으며 지갑에 명함을 끼운 유현은 다시 잔을 채웠다. "저기, 김유현 씨 맞죠?" 연락을 취한 것도, 만남으로 이어진 것도 순식간이었다. 아직 한가한 단계인 건지 남자는 그 답 빠르다는 진호보다 답이 빨랐고 바로 사전미팅 단계로 들어섰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쫓아간 시선에는 잘생기고 키도 큰 훤칠한 남자의 모습이 담겼다. "아... 예." 유현은 제가 예상한 것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경훈의 모습에 잠시 말을 잃었다. 학생들이 공부는커녕 선생님들 뒤꽁무니만 따라다닐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티는 내지 않고 여러 생각에 잠겨 있던 유현은 제 앞에 앉는 경훈을 향해 비즈니스식 웃음을 보였다. "다시 인사할게요. 김유현입니다, 스물일곱 살이고 지금은 학생들 과외 몇 명 하면서 정착할 자리 찾고 있어요." "어? 제가 한 살 어리네요?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 아뇨, 아직 안 될 것 같아요." 당황의 연속이었다. 스물여섯 살이면 군대도 다녀왔을 텐데 갓 졸업한 나이 아니야? 유현의 표정에서 당황스러움이 묻어나오는 것을 보았는지, 경훈은 능글맞게 웃으며 덧붙였다. "조기 졸업이요. 저 무능한데 돈으로 학원 세우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 가 아니라 제가 언제 뭐라고 했어요?" "눈빛이 딱 그건데요. 그나저나 되게 제 스타일이다. 형이라고 부르게 해 줘요~ 네? 페이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진짜 잘해 드릴게." "뭐가 이렇게 빨라요, 지금 확정된 거예요?" "원래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그래도 될 것 같아요." "왜요?" 직설적이라는 평을 살면서 많이 들어왔던 유현은 자신만큼이나 직설적이고 당돌한 사람을 처음 만남으로 인해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제 스타일이시거든요, 형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 반응 괜찮으면 뒤에 올게 ㅎㅎ 오랜만에 써서 기분 좋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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