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티즈앱 근데 형, 그거 알아요?
한참 시끄러운 회식 자리에서 현민이 동민에게 물었다. 오늘 녹화의 주역인 경훈은 아까부터 진호랑 주량배틀 한답시고 소맥을 주는 대로 달리더니 반쯤 맛이 가 있었다. 현민은 온 몸이 새빨개진 경훈을 곁눈질로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뭔데?
아직 눈이 또릿한 동민은 현민이 앉은 쪽으로 깊숙이 몸을 숙였다. 눈치가 빠른 현민은 부러 비밀이라도 말하듯 은밀히 속삭였다.
경훈이 형. 억울한 일 있으면 옷 벗고 바닥에 누워요.
세트장에서 게임을 할 때에도, 술자리에서도 동민과 현민은 항상 죽이 잘 맞았다. 뇌공유라고 해야 하나. 척하면 척이었다. 두 사람의 능력은 특히 술자리에서 누군가를 합작해서 놀려먹을 때 제일 빛을 발했는데 오죽하면 PD가 진지한 예능인 지니어스에서 그걸 다 들어낼 수 밖에 없음을 한탄 할 정도였다. 동민은 메뉴판을 들어 입을 가리며 지니어스 세트장에서 현민에게 지시를 내리듯 조용히 물었다.
그거..확실 한거야?
네, 형. 확실해요. 저번에 경훈이형네 집에서 잤었는데 저랑 십이장기해서 털리고 자기 필승법이 이렇게 어이없게 털릴리가 없다면서 제가 사기 쳤다고 옷 벗고 발광했다니까요.
그래. 그럼.
동민과 현민은 어느새 만취상태인 경훈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진호는 저절로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아 오늘의 타겟은 김경훈이구나. 맨날 나만 놀려대더니 이것들이 타겟을 바꿨구나. 굴욕의 대상만 아니라면 진호 역시 장오연합의 ‘오늘의 놀림감’ 합작에 협조 할 의사가 있었다.
동민의 지시와 함께 작업은 시작되었다.
형, 경훈이형. 저번에 저한테 십이장기 지고 옷 벗고 난리 쳤던거 기억해요?
뭐? 내가? 나 그런 적 없는데?
평소 같았으면 펄쩍 뛰며 아니라고 부인할 경훈이 이상하게 오늘은 침착했다. 물어 본 사람이 무안해질 정도로 차분한 표정으로 경훈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조용한 정적이 흐르자 동민은 앞에 놓인 술잔을 손 끝으로 두 번 두드렸다. 저 신호. 진호는 울분에 차 부들부들 떨었다. 술잔을 한 번 치면 약한 압박, 두 번 치면 타겟에게 강한 압박을 가하라는 신호였다. 술을 원샷하면 이제 그만 놀려라, 현민이 술 잔에 술을 따르면 바톤터치. 진호는 동민과 현민 사이에 오고가는 신호를 다 능숙하게 알아 보는 자신이 못견디게 싫었다. 그만큼 진호는 두 사람의 가장 놀려먹기 좋아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에이 형. 또 그런다. 기억 안나는 척 하지 말구요. 저번에 저한테 떡발리고 사기 아니냐면서 깽판 부렸잖아요.
아니? 나 진짜 그런 적 없는데? 너 이상하다. 나 너랑 십이장기 한적도 없어.
경훈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도리어 현민이를 이상한 놈 취급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현민은 앞자리에 앉아있는 동민에게 눈짓으로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설마 현민이가 거짓말 하겠니?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긴데.
현민이의 SOS 신호에 이번엔 동민이 나섰다. 그러나 여전히 경훈은 흔들림 하나 없이 ‘옷벗고 깽판 침’ 에 대한 혐의를 부인했다. 오히려 역정을 내며 경훈은 자기를 몰아가는 동민에게 적극적인 방어공세를 펼쳤다.
하. 형은 현민이가 죽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잖아요. 맨날 편애하고.
야, 편애라니. 그리고 죽으로 메주를 쑨다가 아니라 콩으로 메주를 쑨다겠지.
그래그래. 경훈이 그만 놀려. 설마 경훈이가 그러케까지 미친 짓을 했겠어?
이번에 당황한 건 동민이었다. 저 현민이 편애 문제만 나오면 당황하는 꼴이란. 진호는 눈꼴시다는 표정으로 동민을 야렸다. 대신 나서서 분위기를 정리하며 진호는 자칫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장오연합의 작전을 은근슬쩍 지지했다.
미친 짓이라뇨? 진호형도 진짜 웃긴다. 지금 저 두 사람 말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왜 이러는거야 얘는. 난 니편 들어준거야.
경란이 누나에게 배웠는지 경훈은 힘껏 정색을 하며 도리어 놀리기 시작한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쯤 되면 보통 동민이 작전 중지 신호를 보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민은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시원하게 원샷했다. 진호가 달래려고 어께를 주물러도 경훈은 진심으로 기분이 상했는지 홱 손을 쳐냈다. 눈치 빠른 현민이 나서서 마무리 멘트를 쳤다.
알겠어요 형. 그만 놀릴게요. 뭐 중요한 건 형이 깽판친게 아니라 저한테 십이장기 패했다는 거니까요.
순간 술자리에 얼음같은 정적이 흘렀다. 이제 얼굴뿐만 아니라 귀까지 새빨개진 경훈이 고개를 돌려 현민이를 죽일 듯 노려봤다.
뭐라고?
진호는 속으로 한숨을 내 쉬었다. 현민이가 마지막 도발만 하지 않았어도 분위기는 좋게 정리 되었을 것이다. 경훈이의 표정을 보니 오늘도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회식을 끝내기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이마 드립을 치고도 아직도 반성을 못했던 거니 현민아. 이제 이 얼어붙은 분위기를 정리할 최후의 수단은 동민의 플래티넘 카드드립 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민은 오늘은 내가 쏠께 라며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 형. 그냥 그렇다고.
내가 언제 너한테 패했어? 그날 니가 나한테 사기 친거지?
그랬다. 사건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고 있었다. 반쯤 지갑을 꺼냈던 동민조차 넋이 나간 채 이 흥미진진한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까 나랑 십이장기 한 적도 없다고 한건 형이잖아.
내가? 언제? 그래 엄밀히 말하면 한 적도 없지. 그건 십이장기가 아니라 사기장기였으니까.
경훈은 이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민이를 한대 칠 기세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 현민은 조금만 더 경훈이 밀어 붙이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벌써부터 긴장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언제 사기쳤다고 그래. 형이 나한테 진거지.
뻥치지마! 너가 아무리 카이스트 지니어스라도 내가 과외까지 받아가며 얻어 낸 필승법을 그렇게 간단히 깰 수 있을 것 같아!?
화가 나 길길이 날뛰던 경훈은 결국 단추를 하나 둘 풀더니 셔츠를 벗어 바닥에 패대기 쳤다. 현민은 경훈이 뻥치지 말라고 깽판치며 옷을 하나 둘 벗는 꼴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결국 진호와 동민이 뜯어말려 경훈은 마지막 남은 한장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지만 그날 회식은 두고두고 지니어스 출연진들 가운데서 좋은 안주거리로 화자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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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취방 하도 정전이라 올려보는.. 장오 찌민이라고 쓴건데 그런듯 아닌듯.. 한 애매한 이 이야기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