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https://instiz.net/name_gs/576935주소 복사
   
 
로고
인기글
공지가 닫혀있어요 l 열기
전체 게시물 알림
시카고타자기 하백의신부 왕은사랑한다 비밀의숲 학교2017 쌈마이웨이 수상한파트너 군주 맨투맨 듀얼 크라임씬 터널 힘쎈여자도봉순 피고인 내일그대와 미씽나인 셜록 밥잘사주는누나 비정상-그취 뷰티인사이드 오나의귀신님 하늘에서내리는 백일의낭군님 손더게스트 보이스2 미스터션샤인 보이스 라디오로맨스 슬기로운감빵생활 이번생은처음이라 당신이잠든사이에 사랑의온도 청춘시대2 구해줘 메이즈러너 운빨로맨스 또오해영 무한도전 태양의후예 음악·음반 시그널 치즈인더트랩 응답하라1988 닥터스 그녀는예뻤다 쇼미더머니 후아유 도서 킬미힐미 더지니어스
혹시 미국에서 여행 중이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세 번째. 폭풍의 증권 시장 암전게임 오픈 패스



폭풍의 증권 시장


1.

 

 

  삐, 삐, 삐, 삐, 띠리링-. 어두컴컴한 새벽, 정적을 가르고 들려온 경쾌한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이어 유현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불이 하나도 켜져있지 않아 어두컴컴한 거실의 전등을 켜자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유현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는 현민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현민의 모습을 본 유현이 ​입 꼬리를 씨익 올리며 현민에게 다가갔다.


"여태껏 안자고 나 기다렸어?"

"……."


  유현의 움직임에 따라 현민이 눈동자를 굴렸다. 입가에 미소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유현은 현민의 앞에 앉아 통통한 현민의 양 볼을 붙잡았다. 계속 유현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던 현민이 두 눈을 피하며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큰 행동은 아니었지만,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었다. 내려올 줄 모르던 유현의 입 꼬리가 살짝 파르르 떨리는 듯 했다.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

"또 밥 안 먹었지? 그러니까 살이 빠지지."


  계속 그 자세로 있는 것도 용하다. 나 왔을 때 바닥에 쓰러져 자고있을줄 알았는데. 허공에 멈춰있던 손을 어색하게 내린 유현이 능청스레 말을 이어갔다. 아침에 차려놓고 간 음식은 손도 대지 않아 처음 모습 그대로 차갑게 식어있었다. 현민이 대답할 생각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유현은 계속해서 현민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아, 맞아. 발목은 괜찮아?"

"괜찮겠습니까?"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질문에서 대답이 돌아오자 유현의 얼굴에 또 미소가 피었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를 듣자하니 유현이 없는 사이 꽤나 많이 울었던 듯하다. 그 목소리를 들은 후에야 현민의 눈가가 붉다는 것을 눈치 챈 유현이었다.


"많이 아플 텐데 왜 그러고 앉아있어. 편히 앉아."

"누구 좋으라고요. 별로 형한테 보여주고 싶은 광경은 아닙니다."

"나한테 안 보여주려고 계속 힘들게 무릎 꿇고 있었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그런 발칙한 생각을 한 게 나한텐 더 흥미로운데. 웃는 얼굴로 말하는 유현의 목소리에 살기가 어려 있었다. 그를 느낀 현민의 몸에 소름이 돋기 무섭게 유현이 강제로 현민의 발목을 붙잡고 확 끌어당겼다. 발목에서부터 올라오는 고통에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현민의 한쪽 다리가 어느 새 유현의 무릎 위에 올라가 있었다. 현민은 갑작스런 고통에 놀란 건지 입술을 꽉 깨물며 유현을 노려보았다. 큰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담겨 툭 건들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했다.


"아, 미안."

"……."

"그러니까 왜 형 머리 위에서 놀려고 그래."


  재수 없게 진짜. 나긋나긋하게 웃는 얼굴로 말하며 유현이 현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뒤에 처음으로 표정을 굳히고 하는 말은 현민을 단번에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언제나 모두에게 다정하던 형이 대체 왜 갑자기 이리 돌변했는지 현민의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두 눈 가득한 눈물을 삼키며 입술을 더 세게 깨물 뿐이었다.

  잔뜩 굳어있는 현민의 모습을 보고 유현이 웃음을 터트리곤 현민의 머리를 헝클였다. 서로의 몸이 맞닿아있는 곳에서 현민의 몸이 떨림이 느껴졌다. 유현은 제 무릎 위에 올려져 있는 현민의 다라를 잡고 살짝 틀어 발목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어우. 아프겠다, 야."

"……."


"누가 발목 아킬레스건을 다 끊어놨대. 가녀린 발목에 생채기 낼 데가 어디 있다고."

"...많이 뻔뻔해지셨네요."

"누군진 모르겠는데 참 똑똑한 것 같아. 안이래. 놨으면 또 그 똘똘한 머리통 이리저리 굴리면서 진작 도망쳤을걸. 이러니까 아무데도 못가고 얼마나 좋아. 그렇지, 현민아?"


  현민은 저가 유현의 물음에 대답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해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유현 또한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닌 것 같았다.

  유현이 너덜너덜해진 현민의 발목 뒤쪽을 살살 문지르자 현민이 다시 한 번 입술을 꽉 깨물며 미간을 좁혔다.

  그러다 입술도 너덜너덜 해질라. 그렇게 말한 유현이 나머지 손을 뻗어 현민의 입술을 매만졌다. 현민은 입술을 더 이상 깨물지는 않았지만 한 번 찌푸려진 인상은 다시 펴질 생각을 안 했다.


"너 어떡하냐. 여기는 다치면 자연 치유도 안 되는데."


  내가 평생 데리고 살아야겠네. 유현이 무심하게 말을 툭 내뱉곤 현민의 다리를 본인의 무릎 아래로 내려놓았다. 유현의 그 말을 듣자 현민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차올랐다. 현실을 자각하고 급격하게 느껴진 서러움 때문이었다. 혹시나 이게 꿈은 아닐까 하고 현민이 두 눈을 지그시 감자 눈물 한 줄기가 또르르 흘러내렸다. 이를 본 유현은 그저 현민의 머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울지 마, 현민아. 왜 울고 그래. 누가 보면 내가 울린 줄 알겠다?"


  한 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현민이 주먹을 꽉 쥐어 손톱이 살을 파고들자 유현이 현민의 손을 겹쳐 잡으며 눈두덩이 위에 입 맞추고 다시 품에 안았다. 그에 더 서러워진 현민은 유현의 품에 파고들며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이리도 따뜻하던 형이, 아직도 이품은 이리도 따뜻한데.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됐나.

 

 

 

 

 

 

 

2.

 

 

"형, 안녕하세요!"

"...오현민?"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새 학기에 복학하니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눈앞에 보였다. 내가 알기로는 분명 그 해 19살로, 고등학교에 있어야 정상이었는데. 네가 왜 여기 있냐 물었더니 너는 해맑게 웃으며 특유의 밉지 않은 능글거림으로 형 보고싶어서 일찍 끝마치고 같은 학과 들어왔습니다, 라고 대답했었다.

  나이 차도 있고하니 평생 같은 학교를 다닐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조기졸업하고 하필이면 내 학교, 내 학과에 입학할 줄이야. 한 치의 거짓 없이 순수하게 웃어오는 네 미소가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됐음을 기뻐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 때 불편한 마음이 더 컸다. 어릴 적부터 당해왔던 수많은 비교에 대한 두려움. 사실 그게 더 컸다.

  사실은 약간의 자격지심 같은 거였다. 한 동네에 살아 비교 대상이 많이 되며 자라왔기 때문에. 난 워낙에 남에게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던지라 인정받기위해 노력해서 어떠한 결과를 일궈내면, 너는 항상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나보다 더 짧은 기간에, 나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 일쑤였다. 너만 없었다면 어딜 가든 최고 소리를 듣고 자랐을 내가 너라는 그림자에 감춰져 돋보이지 못한다는 것은 나로선 아주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 그래서 내가 널, 많이 싫어했었다. 증오했었다. ...그래, 그랬지.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간혹 가다 내가 경쟁에서 너를 이긴다 하더라도 넌 그냥 축하한다며 내게 손을 내밀 뿐이었다.

  이겼는데도 뭐가 그리 슬퍼 눈물을 흘리고 졌는데도 뭐가 그리 기뻐 방긋거리는지. 그때 내 입장에서는 절대 널 이해할 수 없었고, 사실은 아직도 널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다.

  내 인생은 너를 이기는 것이 전부였는데, 너의 인생에서 나와의 경쟁은 그저 수많은 사건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도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네가 더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네 얼굴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원체 남에게 관심이 없는 성격인 나에게 친구라고 칭할 수 있을만한 관계의 사람은 너밖에 없었다. 내가 자리에 멈춰 가만히 서 있을 때마다 너는 항상 나에게 먼저 다가와 환하게 웃어주곤 했다. 그리고 너의 그 미소는 매번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우리는 공통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너는 항상 나를 이해했고 나는 항상 널 이해하지 못했다.

  너에게선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티가 났다. 너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또 그만큼의 사랑을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남에게 사랑받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남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처음으로 받아본 너의 조건 없는 사랑에 익숙하지 못했다. 사랑을 받으려면 항상 무언가를 이루거나 내가 상대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조건 없이 받은 사랑은 나를 굉장히 당황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래서 전혀 싫지 않으면서 계속 너를 밀어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내가 계속 밀어낸다고 해서 밀려나갈 네가 아님을 확신했기 때문에.

  아, 그러니까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난 너를 증오하면서도 애정했고, 또 질투하면서도 항상 고마워했다. 네가 내 주위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너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이 아닌 특별한 관계에서 오고가는 특별한 무언가.

  감히 내가 너를 좋아했었다고 말할만한 감정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만은 확실했다. 현민아, 우리의 관계는 '애증'이란 단순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3.

 

 

"헤이, 김유현!"

 

"...?"

 

"하이."

 

 

  아직 강의가 시작하기 한참 전인지라 널널한 강의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연주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던지라 반가워 웃으며 반기니 이쪽으로 걸어와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랜만이네."

 

"그러게. 아. 그것보다 너, 이번에 학년 수석으로 입학한 새내기랑 친분이 있다는 소문이 돌던데."

 

"학년 수석?"

 

"어. 전에 누가 너랑 걔랑 얘기하는 거 봤다고 하더라고? 걔 이름이 뭐였냐, 오현민?"

 

"...아, 오현민? 수석 입학했대?"

 

"응응. 뭐야. 진짜 아는 사이? 친해? 이야, 너는 도대체 안 친한 사람이 누구냐. 이젠 자기 없을 때 입학한 새내기까지 접수해?"

 

"아니, 친한건 아니고. 그냥 아는 사이. 같은 동네 살았어서."

 

 

  에이, 뭐야. 김샜네. 흥미가 떨어진 건지 연주가 입술을 삐죽였다.

  우리 둘의 대화소리 말고는 조용한 강의실을 다시 한 번 둘러보는데, 아무도 없고 단 둘이 있다는 것을 깨닳자 갑자기 어색함이 느껴졌다. 그냥 아무나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가 들어온 것까진 아주 좋았는데, 하필이면 들어온 사람이 바로 너였다.

 

 

"헐. 야, 쟤 오현민 아니야?"

 

"……."

 

 

  제발 이 쪽으로 오지마라. 오지 마라. 네가 들을 리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쳤다. 그리고 넌 나의 외침을 정확하게 빗나갔다.

  들어오자마자 나를 발견하곤 내 쪽으로 웃으며 다가오는 너에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네가 말을 걸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원래 너에게 대하던 것처럼 널 철저하게 무시하고 밀어낼까 하고 옆을 바라보니 연주도 너를 알아보곤 나를 쿡쿡 찔렀다.

  ..그래, 아무리 네가 싫다고 해도 네가 없을 때 쌓아온 내 이미지를 너 때문에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형, 안녕하세요! 학교에서 벌써 두 번째 보네요?"

 

"학교에서 보니까 더 반갑다, 야. 앞으로 자주 보겠네?"

 

"..이야, 말로만 듣던 조합을 실제로 보니까 되게 현실감 없네. 입학하고 한 번도 수석 놓친 적 없는 사람이랑 입학하자마자 수석 차지한 사람이랑 짝짜꿍하니까 엄청 재수 없어 보이는 거 알아?"

 

 

  내가 너보다 확실히 더 낫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나이밖에 없었고, 또 그 나이를 어디로 먹었느냐 하면은 나의 감정을 철저히 숨기는 능력으로 다 갔다고 할 수 있겠다.

  어린 김유현은 사람과 엮이는 것을 싫어하고 남에게 관심이 없어 모두에게 철벽을 쳤다면, 지금의 김유현은 여전히 사람과 엮이는 것을 싫어했지만 사람들 사이에 끼려 노력했고 여전히 남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모두에게 다정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으나 매일을 거듭할수록 내가 상상하던 완벽한 나의 모습에 가까워짐을 느꼈다. 너 때문에 이룰 수 없던 나의 모습을 네가 사라져서야 이뤘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하기는 했지만.

 

  완벽하게 완성된 내 인생에 너 하나 들어왔다고 모든 것이 다시 망가질 리 없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내 마음은 그러지를 못했다. 너의 등장에 내 가슴이 크게 요동쳤다.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누군가 내 위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내 마음을 다 꿰뚫어본다는 듯 행동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래서 나는 절대 티를 내지 않을 자신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이런 내 마음을 네게 들키지 않을까 불안해했다.

 

 

"김유현, 뭐야. 안 친하다면서 왜 이렇게 사이가 살가워. 하기야, 네 붙임성에 안 친한 사람이 있었을 리 없지."

 

"형이 저희 안 친하고 했습니까? 와, 너무하네요. 우리 항상 붙어 다녔잖아요. 안 그래요?"

 

 

  붙어다닌게 아니라 네가 일방적으로 나한테 붙었겠지. 아무래도 너에겐 모든 일을 좋은 쪽으로만 기억하는 기억 조작이 일어난 것 같다. 뭐, 어렵게 만든 내 이미지가 너로 인해 깨지는 것을 피해야하는 나로선 그 편이 더 이득이긴 하다만.

  대충 웃으며 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앞으로 일어날 피곤한 일들이 예상이 되는 듯해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진짜 넌,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4.

 

 

"오늘 메뉴 별로네요. 그렇죠?"

 

"……."

 

 

  내가 아무리 가식으로 둘러싼 사람이라지만,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본래의 습성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친한 사람이 있어도 절대 어디를 다닐 때 누군가와 함께하는 법이 없었고.

  ...그런데 왜 지금 내 앞에 네가 앉아있나.

 

 

"형, 비엔나소시지 좋아하세요?"

 

"그냥, 뭐."

 

"아. 아니 그냥 싫어하시면 제가 먹으려고 그랬죠."

 

"...너 먹어."

 

"감사합니다―♬"

 

 

  정말 무섭게도 정신차려보니 너와 늘 함께하고 있었고, 더 무서운 건 내가 거기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거다.

  내 식판에 있는 소시지를 집어가며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는 너를 보고 나도 모르게 같이 입 꼬리가 올라간 것을 깨닳고 내 자신에게 소름이 돋았다.

  말로만 듣던 미운정이란게 진짜로 있는 건지, 아니면 그것과 별개의 다른 감정인지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너와 함께 있을 때 이제는 불안하다기보단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또 따뜻해진다는 것이었다.

  정말 내 자신이 어이가 없고 이해가 안 됐지만 아무튼 그랬다.

 

 

"어, 헐 벌써 일어나요? 나 아직 다 안 먹었는데? 설마 먼저 가십니까? 아 기다려요."

 

"안 가. 앞에서 기다릴게. 빨리 먹고 나와."

 

"아휴, 깜짝 놀랐네. 금방 먹습니다!"

 

 

  ...하, 나도 내가 지금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5.

 

 

  시간은 어느 새 흘러 너와 알 수 없는 관계로 지내 온지 일 년 남짓. 죽일 듯 싸웠던 사람과도 시간이 흐르면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고 했던가. 나 또한 내가 널 언제 증오했냐는 듯 굉장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나의 열등감을 다시 폭발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글쎄 내가, 시험을 망쳤다.

  그러니까 내 말은, 시험을 망쳤다고. 내가. 정확히 말해서, 한 번도 수석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는 김유현이 시험을 망쳤고, 자연히 또 수석을 놓쳤다.

 

  시험이 끝나고 네가 다가와 웃으며 시험 잘 봤나고 묻는데, 지난 일 년간 그리도 사랑스러워 보일 수 없었던 그 얼굴이 극도로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잊고 있던 불안감이 온 몸을 휩쓸었다. 묻어놨던 열등감이 정신을 흔들었다. 꽉 쥔 두 손에선 땀이 나고, 눈동자는 갈 길을 잃었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었지만, 영악하기 짝이없는 내 머리는 빠르게 굴러가며 이 사태의 변명이 될 원망의 대상을 찾았다.

  그리고 길을 잃었던 눈동자가 너를 바라보았다. ..찾았다.

 

  사람들은 비교하기를 좋아했다. 흥미로운 비교대상을 얻은 사람들은 너와 내가 지나갈 때마다 수군거리기에 바빴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내용은 뻔했다.

  절대 무너지지 않던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감정을 숨기는 데에 도가 튼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내 몸은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머리가 내 말을 잘 듣는 것도 아니었다. 한 번 무너진 멘탈은 다시 복구될 생각을 안 하고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갔다. 이성보단 감정이 나를 지배했다.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나는 이 일이 너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지만, 그를 부정했다. 급기야 지난날에 받았던 수모와 잊고 있던 트라우마까지 다시 떠오르고 그 모든 일의 화살을 너에게 돌렸다.

  너 때문이다, 너만 나타나면 내 인생이 꼬인다.

  너만 없었더라면 나는...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네가 내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내 손에는 칼이 들려있고, 반대쪽 손에는 네 발목을 쥐고 있었으며, 주변은 피로 흥건했다. 잔뜩 너덜너덜해진 네 발목이 눈에 들어왔다. 가히 충격적인 모습이었지만, 왜인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항상 내 위에 있던 존재가 한없이 약해져 내 아래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것은 말로 이룰 수 없는 쾌감이었다. 충동적으로 홧김에 저지른 행동치고는 꽤 마음에 들었다.

  열등감에 휩싸여 너를 증오하는 내가 이 상황에 만족하는 것은 당연지사고, 너를 애정하는 나 또한 내 곁을 절대 떠날 수 없는 너의 모습에 미소 지었다.

  그래. 어쩌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6.

 

 

"...형."

 

"어? 뭐야, 나한테 할 말 있어? 뭔데?"

 

"계속 생각해봤는데, 형이 왜 저를 싫어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똑똑하네. 말 안 해줘도 다 알고. 아, 넌 원래 똑똑했지 참."

 

"그런데 형이 왜 절 계속 이렇게 잡아놓는지 이해가 안 돼요. ...차라리,"

 

"차라리?"

 

"...죽이지 그러셨습니까?"​

 

"내가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현민이는 참 똑똑한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현민이 유현의 집에만 갇혀있던 것도 어느덧 일주일, 유현이 계속 말을 걸어도​ 한 번 대답을 할까 말까 하던 현민이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었다. 현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유현의 얼굴에 잔뜩 화색이 돌았다.

  저가 억지로 끌어올려 앉혀놓은 그대로 쇼파 위에 양반다리를 하곤 앉아있는 현민에게 바로 달려가 그 옆에 앉았다.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고 입술을 오물거리며 힘들게 말을 내뱉는 현민을 유현이​ 눈에서 꿀이 떨어질 듯 바라보았다. 그런 시선을 느끼며 말을 끝까지 마친 현민은 다정한 말투지만 어딘가 서늘한 유현의 어조에 몸을 흠칫 떨었다.

 

 

"저보고 형 주변에서 사라지라면 그렇게 할게요. 뭐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학교 자퇴할까요? 다신 형 앞길 막을 일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발 저 좀 여기서..."

 

"싫어."

 

"....예?"

 

"이유가 단지 그것 하나였다면 네 말대로 여태껏 널 살려둘 이유가 없지. ​차라리 처음에 죽였을걸, 아마도."

 

"그게 무슨.."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어, 현민아."​

 

 

  현민이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간절히 애원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유현은 현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딱 잘라 거절했다.

  어느 새 유현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던 현민의 눈동자가 심하게 동요했다. 온 세상을 다 이해할 수 있는 줄만 알았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 이유란 게, 도대체 뭡니까?"

 

"방금 그 말 안 하는​ 편이 더 나았을 텐데. 괜히 나 자극해서 뭐하려고."

 

"진짜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도대체 나한테 왜..."

 

 

  감정이 북받쳐 오르자 현민이 습관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유현은 그런 현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어떤 일은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어.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았을걸, 하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일 텐데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냐고​ 현민이 되묻기도 전에 유현이 현민에게 거칠게 입을 맞췄다. 현민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유현을 밀어냈지만, 며칠 간 단식투쟁을 했던 현민이 유현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유현의 손이 자연스레 현민의 옷 속으로 향하고 그에 따라 현민의 저항이 더 심해지자 유현이 반대쪽 손으로 현민의 발목 뒤를 힘주어 눌렀다.

  이 상황을 도저히 피할 수 없음을 짐작한 현민이 망연자실했다.

 

  현민에게서 입을 뗀 유현이 두 눈을 질끈 감은 현민을 보고 살풋 웃었다. 양 손을 올려 현민의 두 볼을​ 잡고 다시금 현민의 입술에 짧게 쪽, 하고 입 맞췄다.

  질끈 감았던 두 눈을 뜬 현민과 이례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두 눈이 마주치자, 몇 초간 눈을 맞추던 유현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까, 나 좀 자극하지 말라고 현민아."

 

 

  유현이 방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다 보고서도 현민은 처음 그 자세로 굳어있었다.

  이유를 알려달라고 했지 그걸 행동으로 알려줄지 누가 알았겠냐고.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채 복잡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세를 고쳐 쇼파에 웅크려 누운 현민이 생각에 빠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관계란 말인가. 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정의할 수 없는 관계였다.

  입술이 닿고 혀가 설켰던 느낌이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아 현민이 제 입술을 매만졌다. 굉장히 거부감이 들면서도 또 역하지는 않은 이 느낌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감히 저의 감정이 상대와 같은 감정이라고 말할만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지금 우리의 관계는 절대로 어떠한 단순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 앞으로도 평생.​ 

 

 

 

 

 

 암전게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 이 곳은 쥐 죽은듯 조용하다. 마치 연극에서 다음 장면을 기다리고 있는 것 처럼 왠지 모를 적막감이 흐른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 공간에 한 남자가 덩그러니 서있다. 초점 나간 눈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던 남자는 이윽고 정신을 차렸고,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다 제자리에 주저 앉는다. 결국, 이렇게.. 무릎을 굽힌채 쭈그려 앉은 상태로 고개를 숙여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생각에 빠진다. 큰 사고로 어렸을때 부모님을 잃은 진호에게는 홀로 있는것이 당연한 일이였다.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이 하나씩 자신을 떠날것이라는 불안함이 늘 진호를 혼자로 만들었다. 그 불안함과 초조함은 진호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점차 커지고있었다. 언젠가는 그 어둠이 자신을 뒤덮을거라 생각했었지만 그게 오늘이 될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마음을 추스리며 고개를 들었지만 보이는 것은 칠흙같은 어둠 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고 진호는 이내 또 다시 좌절감에 휩싸였다. 이제 정말 모든게 끝이구나 싶은 진호는 꾹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어떡하지..."

 

 

진호의 눈에서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외로움에 익숙해졌었다면, 무뎌졌었더라면 이 곳에 홀로 남겨지지도 않았겠지. 이 곳을 만들어낸것은 분명 자신일터, 한없이 바보같고 나약한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때 아무도 없을것이라 생각했던 이 곳에 진호가 아닌 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낯선 음성에 놀란 진호가 눈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 곳에서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날 기다렸다고? 진호는 낯선 음성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뒤이어 들려올 말을 기다릴뿐이였다.

 

 

-저는 당신이 이 곳을 환하게 비춰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원래처럼.

 

 

진호는 당황스럽다는 기색을 내보이며 머리속으로 혼란스러운 이 상황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하는데? 그건 당신이 찾아야합니다. 돌아오는 단호한 대답에 진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제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시선을 향했다. 내가? 나처럼 나약한 사람이. 어떻게. 무슨 수로.

 

 

 

-제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시간은 10분입니다.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쉽겠지요?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방법으로 10분내로 이 곳을 환하게 밝혀주세요. 그럼 행운을 빕니다.

 

 

 

정체모를 남성의 말이 끝나자 진호의 머리위에 빨간글씨로 [10:00]이라는 글자가 새겨졌고 이내 타이머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멍하니 타이머를 쳐다보던 진호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빠져있던 진호의 머리속에 한 남성의 형상이 떠올랐다.

 

 

'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거든 '

 

 

몇달전부터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던 동민이 자신에게 건낸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한다는것이 두려웠던 진호는 동민을 몇번이나 밀어냈다. 하지만 그런 진호의 거절에도 끊임없이 진호를 찾아왔던 동민이다. 

 

 

' 어떤 상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받아야 하는거야, 내가 도와줄게. '

 

 

비가 오는날이면 우산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던 사람,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해주고 힘들어할때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던 사람. 진호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다시 한번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미 동민이 진호의 옆에 있는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동민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동민을 받아들이면 나중에 찾아올 이별에 또 한번 상처받을까봐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지 않았던게 아닐까. 

 

 

진호는 이 어둠에서 벗어나 동민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의 손을 잡고 싶다 생각하며 손을 뻗은 진호는 손에 무언가가 만져짐을 느꼈다. 스위치다. 세상에 모든 정답은 항상 자신의 주변에 머물고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뿐이다. 진호는 이 어둠이 끝나길 바라며 스위치를 눌렀다.

 

 

 

 

 

 

 

 

 

고요한 분위기가 흐른다. 진호가 눈을 뜨고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낯선 이물감에 제 팔을 보니 링겔이 자리잡고 있었다. 꿈이였나, 내가 언제 병원에 왔지.. 주위를 둘러보던 중 문쪽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인기척에 문을 바라보았다. 

 

 

" 아, 그만 좀 해요! "

" 현민씨 삐졌ㄷ... 어! "

 

 

티격태격하며 진호가 있는 병실로 들어오던 의사가운을 입은 두 남자가 침대에 앉아있는 진호를 보며 잠시 당황하더니 키 큰 남자가 진호를 향해 달려왔다. 깨어나셨다!!

 

 

" 환자 괴롭히지말아요! "

 

 

제 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쳐다보는 키 큰 남자와 그 옆으로 달려와 그에게 타박을 주는 귀엽게 생긴 남자를 번갈아보는 진호였다. 아, 경훈쌤 얼른 가서 보호자분 빨리 오시라고 연락 좀 해주세요. 현민의 말에 경훈이 넵!하며 웃어보이곤 병실을 뛰쳐나갔다. 그런 경훈을 보던 현민이 한숨을 쉬곤 진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 어.. 괜찮으세요? "

" 아, 네. 근데 어떻게 된일인지.. "

 

 

진호의 물음에 현민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환자분 8일전에 저희 병원에 오셨어요. 환자분이 타셨던 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져서 사고가 났었거든요. 외상은 크게 없는데 의식이 없으셔서 머리에 이상있으신지알고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요! 보호자분도 일주일째 밥도 제대로 못 드시고 간호하시다가 오늘 잠깐 나가셨어요. 연락하러갔으니까 곧 오실거에요. 현민의 말을 들은 진호가 생각에 빠졌다. 8일동안 의식이 없었다니, 내가 그 꿈속에 8일이나 있었던 것이였나. 현민이 생각에 빠져 얼굴이 일그러지는 진호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괜히 말했나..  그때 요란스럽게 문이 열렸다.

 

 

" 보호자분! 그렇게 문 세게 열면 안돼요! 진정하세요! "

 

 

병실로 들어온 남자는 경훈과 진호가 그렇게 보고싶어했던 동민이였다. 현민은 신경쓰이지 않는지 병실로 들어온 동민은 앉아있는 진호에게 달려와 진호의 손을 잡았다.

 

 

" 홍진호 "

 

 

멍하니 동민을 쳐다보던 진호가 동민의 말에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보고싶었어.. 둘의 재회를 보고있던 현민이 경훈의 손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병실을 빠져나왔다. 

 

 

" 아! 왜 그래요 감동적인 장면인데! "

" 우리는 빠져주는게 맞는거에요 얼른 따라와요 "

 

 

현민과 경훈이 떠나고 진호와 동민 둘만 남은 병실에는 진호의 서러운 울음소리만 가득 차있다. 자신에게 기대오는 진호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는 동민이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진호의 울음소리도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동민을 보며 진호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힘들게해서 미안해.. 평소 자신에게 차갑게 굴었던 진호의 입에서 나온 미안하다는 말에 놀란 동민이 진호의 이마를 짚으며 말을 이어갔다. 머리가 많이 다쳤나. 평소답지 않게 왜이래. 그리고 미안하면 아프지마. 당황하는 동민의 모습에 진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 나 게임하고 왔어, 게임하면서 많이 배웠어. 생각도 많이 바뀌었고 "

 

 

게임? 뭔 소리를 하는거야. 머리를 많이 다친건가. 동민은 속으로 진호의 말에 의문점을 가졌지만 오늘은 가만히 듣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진호는 영문도 모르고 자신을 쳐다보며 갸우뚱 거리는 동민을 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지난 밤 꿈처럼 어두웠던 진호의 마음에 불이 켜졌다. 이제 그 불이 다시 꺼지지 않길 바라는 것 뿐이다. 하지만 진호는 생각한다. 그 불은 더이상 꺼지지 않을 것 이라고. 긴 연극이 마침내 해피엔딩이라는 막을 향해 달려가고있다.


 

오픈 패스



비가 세차게 내렸다. 쏟아지는 비를 온 몸으로 그대로 맞으며 현민은 절망했다. 아마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사기는 많이 떨어졌다. 일반인들은 저들이 왜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들에게 부당함이랑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변화와 혁신은 이미 만들어진 이 세계에 겨우 적응한 자신들을 망가트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현민은 답답함을 느꼈다. 교육 수준을 높아져만 가는데, 의식 수준이 참담했다. 이것은 문맹이나 다름없었다. 무지의 결말. 아마도 그것은 멍청한 시민들 위에 군림할 멍청한 사람들일 것이었다.

주변에 쓰러진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이미 이들은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는 가족이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현민도 그들과 같은 사람 중 하나였다. 가진자들은 변화를 두려워했다. 결국, 나설 사람이라고는 이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들 뿐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아마 이들도 그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저들은 이곳에 모일 운명이었다는 것을. 현민도 펜을 들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펜 대신 총을 들 날이 있을 거라고.

현민은 다행스럽게도 총알이 날아드는 현장에서도 펜을 들었다. 타고난 그의 비상한 머리는 유용하게 쓰였다. 정작 현민은 직접 나서지 못 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나, 그의 머리로 짜낸 전략이 제일 적은 희생을 만들고, 또 전쟁을 여기까지 이끌었다는 데에 부정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정부의 위협을 가장 많이 받고 있지만 현민은 잘 살아남고 있었다.

비가 뚝뚝 떨어지자 사람들이 모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거리에는 현민 혼자 있는 것만 같았다. 갈 곳이 없는 저희에게 갈 곳이 되어준 이 공간을 지키고만 싶었다. 하지만 저희는 너무나 약했고, 정부는 너무 강했다. 특히 언론의 힘이라는 것은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판단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들어진 보도 자료들은 그들이 판단하지 않아도 되게 했다. 즉, 정부는 그들의 판단 능력을 없애버린 것이었다. 

누가 생각해낸 것인지 안봐도 뻔했다. 결국, 현민과 만났어야 했던 사람. 현민이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보고 싶어 지는 사람. 현민이 이를 갈았다. 벌어진 입술 틈 사이로 빗물이 들어왔다. 꼭 마셔서는 안 될 독약같은 느낌에 현민이 입에 들어온 빗물을 뱉었다. 결국 정부는 성공했다. 반란군은 이제 굉장히 곤란한 처지에 놓여있었으니, 반은 성공한 것이었다. 이제 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명분 뿐이었다. 

먼저 반란군을 칠 수 있는 명분. 어느 역사에서나 봐 왔겠지만 명분이라는 것은 중요했다. 그것이 비록 허울뿐인 것이라 해도, 후대에 변명거리를 남겨놓아야 했다. 서로 그것이 없어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가운데 저희는 너무 지쳤다. 아마 이것이 정말로 그들이 원한 것일지도 모르지. 현민이 쓰게 웃었다. 내일이라도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질 지도 몰랐다. 비에 온 몸이 젖었다. 살짝 도는 한기에 현민이 허름한 천막으로 들어갔다.


현민아, 왜 비를 이렇게 맞았어?
…답답해서. 
너는 다른 거 걱정하지 말랬잖아.
내가 걱정 안하면 형들 목숨은 누가 걱정하는데요? 걱정해줄 누군가가 있기는 해요? 나라도 걱정해야 한 명이라도 살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모두 미련 없어. 그러니까 걱정말고 넌 네 걱정이나 해. 얼른 옷 벗어놓고 씻어. 감기걸리겠다.


경훈의 말에 울컥한 현민이 그를 지나쳐 지하실로 향했다. 현민이 지나온 길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현민은 온 몸이 무거웠고, 머리가 부서질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온 평생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은 자신들이건만. 결과는 이딴 식이라니. 현민이 이를 갈았다. 뒤에서 경훈의 기척이 느껴졌다. 애써 모른 척 현민이 와이셔츠를 벗었다. 왜요. 


너는 너만 지켜. 제발.
나도, 지킬 수 있어요!
무시하는 거 아냐. 네가 죽어버리면 우리는 끝이야. 알아? 네가 우리를 이끌고 있는 거랑 똑같다고. 현민아, 네가 사는게 우리가 사는 거야. 알았어?


현민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짜 쉬어. 경훈이 뒤돌아 나갔다. 현민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축축한 바지가 달라 붙었다. 경훈의 말은 틀린게 없다. 틀린 거라고는 제 어린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책상에 앉아있다고 해도, 이 전쟁에 많은 공헌을 세운 현민이었다. 제가 죽으면 이들도 아마 손을 쓰지 못 하고 죽어버리겠지. 하지만 현민은 제가 직접적으로 나서지 못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제가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기를 들지 못 하는 자신이 어떨 때는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현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여지껏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했다. 어린 아이 하나 지켜줄 힘이 없었다. 이미 죽어버린 그들이 생각났다. 이미 이 전쟁으로 인해 연인을 한 번 잃었고, 부모 같았던 이들도 여러 번 잃었다. 특히 연인보다 더 현민을 괴롭게 했던 죽음은 현민을 잘 따랐던 아이의 죽음이었다.

그게 한 1년 전이었으니까, 이 전쟁도 꽤 오래 되었다. 현민은 스물스물 떠오르려고 하는 기억에 머리가 지끈 거렸다. 그러니까 현민의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아이의 이름은, 경훈이었다. 경훈.

공교롭게도 수장의 이름과 같다며, 참 예쁨을 많이 받던 아이었다. 경훈과 현민도 매우 아끼던 아이였다. 특히 그 아이는 머리가 참 좋았다. 그래서 현민과 같은 사람이 될 것이라며 하루종일 현민을 쫓아다니곤 했다. 현민은 귀찮다며 떨어지라했지만, 내심 그 아이를 참 많이 좋아했다. 학교랍시고 지어놓은 연약한 천막에서 칠판도 없어 어떤 어른이 다듬은 나무에 종이를 걸어놓고 가르쳐 준 영어도 제일 잘했다. 현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습격이었다. 아니, 무차별적인 학살이었다. 불 꺼진 방에 들어가 누구든지 죽였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리자, 아이도 헐레벌떡 눈을 떴다. 다행히 공격하는 사람은 몇 사람 되지않았다. 거리가 아비규환이었다. 아이는 그대로 현민의 집으로 달렸다. 현민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었는지, 그가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러다 잡혀 죽임을 당했다는 것. 그게 다였다.

나중에 경훈의 입을 통해서 들은 사실은, 그들은 모두 현민을 죽이기 위해서 나온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었다.

현민은 그 일 이후로 꼬박 일주일을 앓았다.


현민이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욕실이라 해봤자 작은 욕조와 금방이라도 고장이 날 것 같은 샤워기가 전부였지만, 이것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민이 한숨을 쉬었다. 지독했다.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을까.



-




현민을 뒤로 하고 본부로 간 경훈이 책상을 부서져라 쳤다. 전세가 불리해졌다. 현민이 눈에 띄게 불안해졌다. 모은 사람들은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져갔다.

현민, 한 사람 조차 안심시키지 못 했다. 아니 사실 제일 불안해하고 있는 것은 자신일지 몰랐다. 이 모든 사람을 지켜야하는 것은 현민의 몫이 아닌 자신의 몫이었다. 자신은 꼭 최소의 희생으로 대의를 완성시켜야 했다. 그렇지만,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면 이어질 수록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이 사실이었다. 사람이 더 필요했다. 우리를, 이 세상을 구원할 사람들을.

무턱대고 사람들을 모집했다간 언젠가 현민이 말했던 것처럼 정부군이 섞일 위험이 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사람을 모을 수는 없을까. 경훈이 고심했지만, 특별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이 자리는 제게 너무 벅찬 자리였다. 자신은 현민처럼 똑똑하지도, 동민처럼 신중하지도, 진호처럼 패기가 있지도 않았다. 

경훈의 주먹이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책상이 볼품없이 찌그러졌다. 시간이 없었다. 가만히 있다간 그냥 죽는다. 경훈의 눈이 번뜩였다. 자신이 남들보다 제일 잘하는 것을 내세울 것이다. 연습과 모든 전략을 망쳐버리는 것. 상대가 원하는 결말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경훈이 웃었다. 게임을 제대로 망쳐보자. 혼란 속에 그들은 웃을 수 있을까. 




-



우리는 5일뒤에 전쟁을 일으킨다.
미쳤어요? 당장 5일 뒤까지 어떻게…. 불가능해요. 지금 나가면 마을을 지킬 인원도 없어요!
응, 현민아. 우리 이제 끝을 볼 때가 온 것 같다.


군사든, 민간인이든 모두 모아서 나간다. 거기다 우리는 돌아가지 않고 정부의 정문으로 올라갈 거야. 경훈의 단호한 말에 현민이 흥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장! 경훈이 눈짓을 하자 옆에 서있던 군인들이 현민을 잡아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현민이 허, 하고 웃었다. 지금, 제 정신이기는 해요?


우리는 이미 시간을 너무 많이 끌었어. 이대로 가다간 그냥 죽어. 우리는 판을 뒤집는 게 아니라, 판을 날려버릴 거야. 내가 잘하는 거 알잖아. 현민아. 트롤짓.
정신차려요. 정문으로 진입한다면 민간인 사상자들은 어떡하고요?
우리는 그들을 최대로 이용해야해. 나도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어.
민간인들까지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정부군을 본다면, 그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 
형이 하려는 행동이 그들과 뭐가 달라요? 정신차려요. 그렇게 까지 해야해요? 그냥 조금 더 수를 모아서…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내가 이 말을 쓸 줄은 몰랐는데. 근데 그렇게 되더라. 현민아. 


그 때 들었을땐 진짜 엿같았는데… 하, 현민아. 너는 날 알잖아. 내가 왜 이런 말까지 하는 지 모르겠어? 경훈의 말에 현민이 더이상 입을 열지 않고 경훈을 노려보기만 했다. 경훈은 이미 단단히 결심한 것 같았다. 현민의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버스를 타고 퇴근하던 아버지, 마트에 장을 보러가던 어머니, 학원 가는 학생들… 그들이 무슨 죄에요.


나라를 잘못 태어난 죄.
형….
현민아, 어차피 우린 그들을 다 지키지 못해. 그리고 너도 알잖아. 처음 우리를 버린 건 그들이었어. 
합리화하지마요. 난 이런 계획에 동의할 수 없어. 알아서 해요. 내 협조는 기대하지 말고.
어차피 넌 하게 될거야. 이게 최선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 


현민이 대답없이 일어났다. 경훈은 대화 내내 현민이 그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운 태도였다. 현민이 아랫 입술을 꽉 깨물고 밖으로 나갔다. 아, 그리고 형. 이건 정확하게 말해야죠.


그들이 버린 건 우리지. 형이 아니에요. 알아요?
그래도 형은 그러지 말았어야지.


현민이 천막을 벗어났다. 현민의 말이 맞았기 때문에 경훈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경훈은 태생부터 이들과 달랐다. 경훈의 아버지는 정부의 고위직을 맡고 있었고, 경훈에게는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했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소개시켜준 여자에게 단번에 사랑에 빠졌을 만큼. 그러나 경훈의 약혼자를 전쟁으로 잃었다. 아버지는 그것이 반역자들의 소행이라며 군인들을 전쟁으로 내보냈다. 경훈은 그 말을 믿었다. 눈물을 흘리며 경훈은 총을 들었다. 그 날도 손에 피를 묻히고 들어온 날이었다. 아마 그때 안방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경훈은 여기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경훈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시작은 달랐지만 끝은 같을 테니까, 




-



현민이 눈을 떴다. 낯선 풍경이었다. 초라한 제 집의 익숙한 천막이 아니었다. 현민이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다 눈에 보이는 인물에 현민이 이를 으득, 갈았다. 내가, 네가 왜 여기있어. 유현은 여유롭게 차를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고상한 척하더니, 이젠 납치도 하시네요.
우리가 좀 급해졌거든. 


이제 놀아줄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유현의 말에 현민이 비웃었다. 노골적인 적대의 표시였다. 그런 것쯤 이미 예상했다는 듯 유현이 현민에게 제 앞을 가리켰다. 앉아. 현민이 딱 잘라 말했다. 


저희도 버릴 시간이 없네요. 가보겠습니다.
가봤자 개죽음인 거 너도 알잖아?
죽어도 네 앞에선 안 죽어.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해. 아, 혹시 경훈이 믿는거야?


부잣집 도련님이 전쟁놀이에 심취하신 것에 너까지 목숨을 걸면 어떡해. 또 뒤통수 맞으려고? 유현의 말에 현민이 유현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쥐었다. 경훈이 형이 너 같은 줄 알아? 

유현이 현민을 가볍게 밀어냈다. 현민이 밀려난 것인도 몰랐다. 유현이 구겨진 셔츠를 두어 번 털었다. 이제 너도 그만하고 돌아와. 그 좋은 머리를 왜 썩혀. 이제 나 정도면 너 바로 올라올 수 있어. 그리고, 이제 우리 다시 시작하자.


누구 맘대로 다시 시작이라는 말을 짓껄이는 거에요?
예전엔 내가 잘못했어. 어려서, 어려서 그랬어. 
저기요. 나 형 때문에 여길 나온 게 아니에요.


내 태생이 거지같다는 이유로 나를 무시하던 멍청이들이 지긋지긋해서, 갈아엎으려고 그랬지. 이 정부는 미쳤어. 댁은 이해 못 하는거니까, 날 이해하려고 들지도 말고, 날 말리려고도 하지마요. 내 갈 길은 알아서 가니까 충고도 하지말고, 회유도 이제 안 통해요. 알았어?


협박은 통해?
가진게 없어서 협박이 가능하겠어요?
너네가 이틀 뒤에 온다는 걸 내가 알아.
…하.
이틀 뒤에 온다면, 뭐 승리할 지도 몰라. 다들 전쟁같은 거에 관심끈지 오래거든. 그래서 나에게 시간이 없는 거고.
결론.
나는 네게 이 나라를 줄게. 너는 널 나에게 줘.


다시 나에게 와. 현민아. 이제야 알았어. 돈과 명예, 지식. 너보다 덜 소중해. 어? 유현의 말에 현민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다 이런 말에 흔들리는 자신이 한심했다. 몇 달 동안이나 빨지 못 해 퀘퀘한 냄새가 나는 이불에서 잠을 잘때도,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제 작전이 먹혀들어갈때도, 정부의 작전으로 반란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할때도, 지긋지긋하게 유현이 떠올랐다. 유현은 제가 평범한 대학생일때의 연인이었다.

지금의 현민에게는 아주 먼 옛날같은 그 때였다. 현민이 아직 이 세계를 잘 몰랐을때,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을 그 순진했던 때. 그 때 학교에서 유현을 알게 되었다. 저와는 시작점부터 달랐던 사람. 유현은 결핍이라는 것을 몰랐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당연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이면 무시하고 다녔다. 그럼에도 현민과 그가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건, 현민이 그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유현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현민이 아파지는 이마를 손을 짚었다. 유현이 다가왔다. 현민은 일어나서 나가지도 못 했다. 피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유현이 현민에게 입을 맞췄다. 현민은 그저 유현이 하는대로 가만히 있었다.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현민이 자신을 다독였다. 자신의 욕심이 아닐거라. 


아직 나 좋아하지?
… 약속, 꼭 지켜줘요. 
도와줄게. 내가 도와주면 100% 이겨. 


아직 둘다 그대로였다. 결국 아무도 서로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보고싶었어요… 나도. 

현민이 침대 위로 끌려갔다. 



-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요? 
미안, 나도 너한테 이만큼 진심인지 몰랐어. 
나도 사실 형이 나한테 진심일 줄 몰랐어요.
전쟁이 끝나면, 여행가자. 어디로든.


유현의 말에 현민이 베개에 고개를 묻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이 그런 현민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현민이 기분 좋은지 웃었다. 나른했다. 사실, 현민은 꿈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제 앞에 유현이 있고, 전쟁이 곧 끝난다는 게 아직까지 믿기질 않았다. 제가 바라던 삶이 이뤄질 것이다. 현민이 유현을 바라보았다. 

쾅!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유현이 다급하게 일어났다. 형이 보고 올게. 기다려. 현민이 불안한 눈동자로 유현을 좇았다. 유현이 제 방 문을 열고 나가기도 전에 누군가 문을 열었다. 김유현! 흥분한 경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훈이형?


오현민 어디다 숨겼어. 어?
네가 현민일 왜 찾아?
대답이나 해. 어디 있냐고!
경훈이 형!
오현민?


경훈이 한 눈 판 사이에 유현이 제 쪽으로 향해있던 총을 쳐 떨어트렸다. 총이 멀리 떨어졌지만, 경훈은 그것을 주울 생각도 하지 않고 현민을 쳐다보기만 했다. 애한테 뭔 짓을 한거야? 경훈이 금방이라도 유현의 멱살을 잡을 듯이 얘기했다.


뭔 짓이라니.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벌써 잊은 거야. 경훈아?
그, 형. 유현이 형이 도와준대요. 우리 전투! 100% 승산이 있다고….
이미 전쟁은 시작됐어.
네? 분명히 그 날로 부터 5일 뒤라고 했잖아요!
네가 없으면 5일이나 3일이나 똑같잖아. 지금 우리는 정부의 바로 앞까지 도착했을 거다.
형….
우리와 정부의 문을 열러 같이 갈건지, 김유현과 함께 패스할 건지 마음대로 해. 


갑작스러운 경훈의 말에 현민이 혼란스러운 듯 했다. 현민이랑 동행할테니, 안내해. 유현의 말에 경훈이 피식하고 웃었다. 누가 누구랑 동행을 해?


이제 와서 위하는 척 하지마. 예전부터 재수없었던 거 알아?
왜, 너도 하는데 나는 안돼? 내가 다 말해준다고. 원한다면 내가 문도 열어주지. 네 아버지께 가는.
필요없다고 하지 않았나?
나도 네가 미치도록 싫지만, 참고 있는거야. 사람들 다 죽이고 싶어? 너랑 오현민까지 전부 다?


나라면 그러지 않을텐데. 유현이 비아냥거렸다. 그런 둘을 보고 있던 현민이 무언가를 알아챈 듯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전 그럼 오픈하고 패스할게요. 


뭐?
나는 일단 정부를 뚫으러 갈거에요. 도와줄거죠. 유현이형?
당연하지.
경훈이형. 일단 전쟁부터 끝내고 싸우자고요.


지금 중요한 건 둘끼리 으르렁 거릴 때가 아닌 것 같으니까. 현민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허리가 아팠지만 견딜만 했다. 빨리 가요. 기다리겠다. 수장. 



-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전쟁의 끝이었다. 유현의 도움 탓인지 순식간에  경훈이 피로 얼룩진 의자 위에 앉았다. 사방에서 박수소리가 터지다 이내 울음소리로 변했다. 혁명이 성공했다. 더이상 천대받지 않아도 된다. 경훈이 입을 열었다. 우리 나라는 더 좋아질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이끌었으니까요. 

결국 모두 울음이 터졌다. 눈물이 터질 것 같아 현민이 슬그머니 그 곳을 뒤로 한 채 복도로 나왔다. 소감은?


감격이랄까, 좀 기분이 이상하네요.
소원대로 새 시대를 열었는데도 그것밖에 안돼?
그냥 이상해요. 안 믿기고, 꿈 같고. 
그럼 오랜만에 나를 본 소감은?
진짜 이럴거에요? 진짜 너무해….


결국 울음이 터져버린 현민을 유현이 웃으며 안아주었다. 뭔 말을 못 하겠네. 내가 다 잘못했다니까. 그래서 봐. 다시 왔잖아. 


미안한줄, 알면, 더 잘하라구요…. 
알았어. 알았어. 울음이나 그쳐. 그런데, 너는 가서 한 마디 안해도 돼?
형이 여기있는데, 흐, 어떻게 해요. 형이 우리 훼방 다 놓은 거 저 사람들도 알텐데.
솔직히 말하면, 너때문에 오기생겨서 그런 것도 있어. 네가 너무 잘나서, 그냥 네가 하는 모든 행동을 막고 싶었달까. 
그게 뭐에요!
과거는 따져봐서 뭐해. 내가 다 잘못한 건데. 그치? 
됐어. 이제 그만해요. 
그럼 우리는 우리대로 가볼래?
…어디요.
어디든지. 이제 네가 있으니까. 상관없어. 


유현의 말에 현민이 훌쩍이며 고개를 들었다. 저도요. 




대표 사진
갓1
진짜 감사합니다 합작 와..
10년 전
대표 사진
갓2
와 긏방에 금손갓들 투성이네...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은혜롭다 총대갓도 수고 많았고 글써준 갓들 사랑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글이 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좋으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대표 사진
갓3
진짜 어쩜 이렇게 다들 글을 잘쓰지? 글쓴갓들 모두모두 고마워..♡
10년 전
대표 사진
갓4
쓰니갓...♡ 내사랑 억만개 받아가!! ♡ 아 정말 야근하다 몰래 봤는데 ㅠㅠㅠ너님 진짜 사랑함 ㅠㅠㅠㅠㅠ감사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대표 사진
갓5
금손갓 만만세다 진짜...와...... 그냥 별말 필요없고 진짜 대단하다.....
10년 전
대표 사진
갓6
와 진짜 대박이다.....금손갓들 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이런 글은 어떠세요?

전체 HOT댓글없는글
더지니어스) 오랜만에 블랙가넷 정주행5
06.06 13:00 l 조회 692 l 추천 1
더지니어스) 더지니어스 감독판?이런걸로 다시보고싶다...2
01.22 19:32 l 조회 373 l 추천 2
더지니어스) 지니어스4 다시 복습했는데1
01.09 14:51 l 조회 300 l 추천 1
더지니어스) 오랜만에 재탕했는데1
09.30 02:58 l 조회 270 l 추천 2
더지니어스) 장오 같이 새프로하는건가??ㅠㅠㅠㅠ4
08.30 00:28 l 조회 652 l 추천 1
더지니어스) 즌4 혼자 간만에 정주행 중인데1
08.10 19:24 l 조회 209 l 추천 2
더지니어스) 처음 보는뎅 시즌 몇이젤 재밌어??4
06.13 23:16 l 조회 385 l 추천 1
더지니어스) 유튜브 순회하다가 댓글봤는데 공감ㅋㅋㅋㅋ 3
05.17 02:17 l 조회 447 l 추천 1
더지니어스) 지니어스 온리전 하면 좋겠다4
02.16 00:40 l 조회 448 l 추천 2
더지니어스) 시즌1 좀비게임 첨봤는데 정주행하고싶어... 레전드 편 추천해주라 ㅠㅠ2
02.04 01:48 l 조회 315 l 추천 1
더지니어스) ㄱ한때 파던 종영예능을 다시 보면 안되는 이유: 2
02.04 00:45 l 조회 526 l 추천 1
더지니어스) 룰브레이커 이제야 보는데1
01.24 21:22 l 조회 233 l 추천 1
더지니어스) 결합 아이폰 앱 있어?
12.29 22:50 l 조회 151 l 추천 1
더지니어스) 장콩... ㅠㅠ 2
12.15 20:31 l 조회 518 l 추천 3
더지니어스) 임콩으로 수인물 / 약 오장 5
12.09 23:43 l 조회 815 l 추천 2
더지니어스) 간만에 지니어스 추억 돋는다ㅠㅜ 3
12.01 08:54 l 조회 240 l 추천 1
더지니어스) 혹시 동맹이나 홈 아는갓 19
11.25 03:27 l 조회 540 l 추천 1
더지니어스) 숲들갓 스카이에듀 입성함..!2
11.17 23:18 l 조회 302 l 추천 1
더지니어스) 요즘 온게임넷(오지엔)에서 즌4 재방 맨날맨날 해주는 거 알아??3
11.15 00:38 l 조회 245 l 추천 1
더지니어스) 소사보고 쓰는데2
11.04 01:45 l 조회 277 l 추천 1


12345678910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