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좀."
연주는 신경질을 내며 현민을 노려보았다. 아니, 내가 건들려고 한 게 아니라 엘리베이터가 완전히 정원이라서 조금만 움직여도 닿는 걸 어떡해! 현민은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겠어, 일개 아르바이트생 주제에 그저 고개나 조아려야지. 현민이 죄송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푹 숙이자, 연주는 시선을 돌려버린다. 마침내 15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어서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한다. 연주와 현민도 내린다. 연주가 앞장서서 걷고, 현민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로 연주의 뒤를 따라 사무실로 향했다.
이번 주 내내, 연주는 사사건건 현민에게 시비를 걸었다. 업무 측면에서는 딱히 시비걸 것이 없었는지 사소한 것으로만. 쓰레기통 비워라. 용지 떨어지면 바로바로 넣어놔라. 전화가 걸려오면 받지 말고 다른 사원들을 불러라. 연주의 짜증 섞인 높은 목소리에, 현민도 덩달아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뭐, 여기까진 어찌어찌 참는다 치자. 그런데 그 다음에 연주가 내뱉는 말이 아주 가관이었다.
"이런 건 기본이에요. 학교에서 안 배워요? 아 맞다, 다니다 말았지. 그래서 뭘 모르는구나."
...저기, 여자 한 대만 세게 때린다고 해서 재판 받지는 않겠죠? 나 미성년자인데, 딱 한 대 정도는 판사님들이 봐주지 않을까요? 현민은 이 말을 들을때마다, 들고 있는 파일로 연주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 말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것뿐. 연주는 흥! 하며 도도하게 현민에게서 멀어졌다. 연주가 사라지고 나면 현민은 홀로 사무실 밖에서 화를 삭혔다. 가끔 연승이 다가와 위로해준답시고 현민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현민씨가 좀 참아. 연주씨가 이상하게 학벌에 좀 민감하거든. 자기가 학벌이 좋아서 그런다나. 심지어는, 애인까지 학벌 보고 만난대."
지금 사귀는 애인이 해외 명문대 출신이라던데. 연승의 말에 현민은 그런 게 어딨어....라며 우울하게 중얼거린다. 아무튼 현민씨 일 잘하고 있으니까 힘 내! 연승이 위로를 해도 현민의 우울함은 가실 줄 몰랐다. 지금은 연주 한 명이 이럴 뿐이지만, 앞으로 계속 사회생활을 하면서 현민의 학벌로 걸고 넘어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고등학교 중퇴라고 하면 사람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문제아 하나일테니. 미래에 자신이 겪을 수모와 능욕은 이것보다 더 심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현민은 머리가 아프다. 안 그래도 회사 아르바이트 하느라 미술 실기건 검정고시건 공부할 시간이 없는데, 난 어떡해야 하지.
"......기분 전환이나 할 겸, 성규 형한테 전화나 해볼..."
"현민씨 잠깐만 이리와서 도와줘요!!"
"아, 예!"
하여간 이 회사에서는 잠깐도 못 쉰다니까. 현민은 꺼냈던 핸드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래서 현민은 보지 못했다, 액정이 켜지며 성규에게 전화가 온 것을.
하아, 성규는 짜증스럽게 핸드폰을 아우터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다섯시간 째 연락이 안 되는게 말이 돼?"
안 그래도 기분 안 좋은데, 현민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게 속상한 성규였다. 오늘은 성규가 그 동안 온 힘을 쏟아 만든 앨범을 제작사에게 평가받는 날이었다. 말이 앨범이지, 대여섯 개 남짓한 씨디 한 장은 성규가 보기에도 약간 초라했다. 하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성규 혼자 작사, 작곡, 레코딩까지 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으리라는 기대에, 성규는 부푼 가슴을 안고 제작사로 달려갔었다. 그런데 실장이라는 사람은 성규의 면전에다 대고 딱 잘라 말했다.
'다 좋은데, 대중성이 없네. 간이 전혀 안 된 요리는 사람들이 입 안에 넣어봤자 뱉을 뿐이지.'
뭐, 열심히 만든 티는 나네. 수고했어요. 그 말뿐이었다. 성규는 대체 내가 한 시간 넘게 걸려 와서는, 이런 혹독한 말을 들어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고 싶은 음악이 아닌, 듣는 사람들만을 위한 음악이라. 씁쓸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속삭이는 듯한 음악은 전혀 돈이 되지 않는단다. 그놈의 돈, 돈, 돈!! 돈이란 놈이 뭐길래 여러 방향으로 발목을 잡아채는지 모르겠다. 무거운 마음으로 제작사를 나온 성규는 울고 싶어졌다. 그동안의 시간이 물거품이 된 건가 싶어, 가만히 씨디 케이스를 내려다본다. 지금 너무 화가 나서 냅다 던져버리고 싶다. 그러나 가슴으로 낳은 아이처럼 소중한 내 첫 씨디인데, 도저히 손에서 떠나보낼수가 없다.
"...조금만 다듬으면 되겠지. 집에 가서 수정 작업 해야겠다."
쓸쓸한 목소리로 성규는 가방을 열어, 씨디케이스를 조심스럽게 넣었다. 집에 가서 보자, 우리 아이야. 케이스는 달가닥 소리와 함께 빈 가방 안으로 떨어진다. ...기분도 안 좋은데, 현민이한테 전화나 해볼까?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네 시다. 성규는 문득 네시쯤 잠시 한 숨 돌렸다는 현민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 쉬는 시간이려나. 성규는 현민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1분이 넘어가도록 성규 귀에 들리는 것은 거슬리는 통화연결음 뿐이었다. 아니, 대체 회사에서 알바가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출근하자마자 연락이 끊겨? 성규는 기분이 상해, 핸드폰을 외투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또 시작이네, 이따가 현민이 집에 오거든 진지하게 얘기해봐야겠다. 성규는 굳은 표정으로 집으로 향한다.
"오빠, 잘생겼어요오!!!"
잘생긴 주연 배우는 소녀팬들이 열광하자, 멋진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보인다. 준석도 그를 보며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우, 우와. 머, 멋있다. 그러자 경훈도 준석을 보지 않고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러게. 하하하! 다른 좌석의 사람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이지만, 이 둘 사이의 분위기는 처음 만난 사람들보다 더욱 어색한 기류만이 가득하다. 아, 어색해 죽겠다. 준석은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만난 경훈은, 준석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말도 제대로 못 걸고, 곁눈질로 흘끔거리면서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했다. 어, 어서 영화관 들어갈까? 그런데 그건 준석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얼굴 보기 전까지는 화도 내보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마구 따지려고 했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심장이 쿵쾅거려서 말을 못하겠다. 결국 그 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영화관으로 바로 와 버린 둘이었다.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 있을 때는 서로 허공만 바라보며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이준석, 마인드 맵을 생각하자...! 마인드 맵!! 그렇게 다짐을 하며 준석은 경훈을 바라봤지만.
"저, 저기. 그 날."
"응?"
"........부터, 오랜만이네."
이런 소리나 입에서 튀어나온다. 준석은 자신의 입을 세게 후려치고 싶었다. 이런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지, 경훈은 먼 곳을 쳐다보며 그러게, 란다. 이런 뻘스러운 말에 대답해주지 마라. 창피하니까.
결국 배우들의 감사인사도, 영화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경훈과 준석은 서로 옆에 앉아 눈치만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두운 공간에서 나란히 앉아있는데, 주인공들의 진한 연애씬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경훈은 순간 준석과의 밤을 떠올린다. 허리에 힘을 줘 안쪽 깊숙히 쳐올리면, 입을 벌리고 고개를 있는대로 뒤로 꺾은 채 신음을 내지르던, 야릇한 얼굴. 하아, 위험하다. 더 생각하다가는 완전히 서 버리겠다.. 경훈은 그렇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열기를 가라앉히느라 속으로 애국가를 불러야만 했다. 간신히 가라앉았을 때는, 화면에는 엔딩 크레딧이 수놓아져 있었다. 이게 뭐람. 공짜 티켓이어서 다행이지, 돈 내고 봤으면 완전히 돈 낭비 아니야. 경훈은 입을 비죽이며 슬쩍 준석의 쪽을 바라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크레딧을 바라보는 걸 보아하니, 준석도 경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나저나 이제 어떡해야 하지? 이대로 집에 가는 건 아니잖아..
"저, 준석아?"
"어, 어?"
"저기, 괜찮으면........"
"..........."
"...레드가넷 가자!! 진호랑 동민이 형 있대!"
이 김경훈 바보야!!! 기껏 둘이 있게 됐는데 왜 그 인간들한테 가냐!! 경훈은 마음 속으로 자신을 저주했다. 준석아 제발 아니라고 해. 싫다고 해. 차라리 근처 카페나 가자고 말해줘 제발... 그런데 다음 순간, 준석은 응! 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대답을 하자마자 준석도 자기 자신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뭘 응이야, 둘이 이야기할 시간도 모자란데 그 인간들한테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전혀 상황이 진전이 안 되잖아!! 그러나 마음 속 사정이야 어떻든, 대화를 이렇게 진전시켜버린 것을 어찌하랴. 둘은 곧 택시를 잡아타고, 레드가넷으로 향한다.
"........니가 제정신이냐."
동민은 이를 악물고 가만히 으르렁거린다. 내가 니네 둘이 있으라고 시사회 표 준거지, 영화 잘 보고 다시 여기로 기어들어오라고 준 줄 알아? 경훈은 입을 비죽 내민다. 그럼 어떡해요, 둘만 있으면 어색해서 전혀 말을 못하겠는걸! 동민은 고개를 저으며 맞은편에 앉은 준석을 바라본다. 준석은 시선을 맥주잔에 처박은채로, 애꿎은 기본 안주만 조금씩 씹어먹고 있다. 답답한 놈들. 경훈은 애써 밝은 목소리로 진호를 찾는다.
"그나저나 진호 여기 있다 했잖아요. 어디 갔대?"
"잠깐 누구 데리러 갔다온대."
"누구? 오현미.............읍!"
"입 뜯어버리기 전에 그 이름 부르지 마라."
현민의 이름을 미처 다 뱉어내기 전에, 동민은 경훈의 입술을 움켜잡는다. 으븝, 으브븝!! 경훈이 버둥대자, 동민은 손을 슬쩍 놓는다. 그리고는 손에 묻은 경훈의 침을 준석의 손에 스윽 닦는다. 맥주를 마시던 준석은 동민의 터치에 놀라 눈을 둥그렇게 뜬다. 너한테는 좋은 거야, 뭘 그리 놀래. 동민의 말에 준석은 물론이고 경훈도 당황한다. 이걸 더럽다는 식으로 받아쳐야 할지, 아니면 가만히 있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 준석이다. 경훈은 그저 왜 그래!! 라며 동민의 팔을 찰싹 때리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셋이 이러고 사이좋게 놀고 있는데, 동민은 저쪽에서 진호가 걸어오는 것을 발견한다. 이제 오네, 라며 진호를 바라보던 동민은 진호가 데리고 오는 사람을 보며 얼굴을 굳힌다. 급격하게 굳어져가는 동민의 얼굴을 보던 준석은 그 원인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진호와 손을 잡은 사람을 보며 놀란다. 어!
"의사 선생님!"
요환은 세 사람을 발견하더니, 헤헤 하며 웃어보인다. 다들 완전 오랜만이에요! 동민은 요환과 진호의 손이 굳게 맞잡고 있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결국, 그렇게 된 건가. 동민은 진호를 가만히 쳐다본다. 진호는 그런 동민의 눈길을 알아차리고는 애써 동민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뭐야뭐야, 둘이?? 경훈은 호들갑을 떨며 진호와 요환을 손가락질한다.
"야, 사람한테 그렇게 삿대질을 하냐!"
"....저, 진호씨의 애인입니다."
"에?"
준석은 입을 헤 벌리고 진호와 요환을 번갈아 바라본다. 경훈은 그럴 줄 알았어! 라며 테이블을 쾅 친다. 요환은 감사해요, 라고 중얼거리더니 진호와 나란히 앉는다. 동민은 알 수 없는 짜증이 치솟아, 스테이지 쪽으로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리고는 오늘 밤을 함께 할 남자를 찾아 이리저리 시선을 돌린다. 동민이 관심을 옮기던 말던, 경훈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눈을 빛낸다.
"오오오, 언제부터??"
"이번주 월요일. 얼마 안 됐어."
"이야, 진짜 보기 좋다. 부럽다."
부럽다, 라는 말을 뱉자마자 경훈은 다시 후회했다. 입술을 꾹 깨물고 준석 쪽을 흘끔거린다. 진호도 경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석의 쪽을 바라본다. 준석은 자신에게 시선이 서서히 몰리는 것을 깨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와야 겠어. 대체 누구에게 말하는지도 모를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테이블을 벗어난다. 준석의 뒷모습을 보던 진호는 경훈을 노려본다. 뭐야, 둘이 영화봤다며. 진전 없어?
"........응."
"하여간, 한심하다니까."
"왜요? 경훈씨랑 준석씨 뭐 있었어요?"
"있어요, 그런게."
왜 안알려줘요, 나 궁금하게. 요환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진호에게 매달린다. 그러나 진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요환을 떼어내려한다. 비밀이에요, 그보다 좀 놔요. 하지만 진호가 떼어내려 할수록, 요환의 팔은 더욱 강하게 진호의 허리를 감싸안는다. 이거 놔요. 싫어요, 안 놔줄거야. 사랑의 실랑이를 듣던 동민은, 더는 못 들어주겠다며 요환을 노려보았다.
"아주 깨가 쏟아지시네요. 결혼 준비 하셔야겠어요."
"헤헤, 아직 사귄지 얼마 안 됐으니까 이렇게 좋을 수 밖에요."
"얼마 안 사귄거 치고는 상견례까지 했으니, 진지한 교제 아닌가요? 결혼을 염두에 둔."
또 시작이다. 진호는 동민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원래 동민이 틱틱대는 농담을 할 때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개구지게 웃으면서 했었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와락 화를 내면 온 안면근육을 일그러뜨리며 박장대소를 했지. 하지만 요환에 대해서는 다르다. 표정 없이 목소리에는 날을 세운다. 그만해, 장동민. 진호가 으르렁거리듯이 말하자, 동민은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너 임신 전에 결혼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지."
"아, 진짜 그만 좀...!!"
"...더블 데이트 사이에 껴서 불편하다, 난 남자나 낚으러 갈란다."
동민은 벌떡 일어나더니 테이블을 벗어난다. 테이블로 돌아오던 준석은 뭐야, 형 어디가아!! 라고 동민을 붙잡아보지만, 동민은 재빠르게 스테이지의 인파 사이로 사라진다. 뭐야, 저 형 어디가? 준석의 물음에 진호는 한숨을 내쉰다. 언제 한 번 얘기를 해 봐야겠어. 왜 저렇게 애기처럼 유치하게 구는 건지. 진호가 한숨을 내쉬자, 요환은 손을 들어 부드럽게 진호의 뒷머리를 쓸어내린다.
"진호씨 친구들한테 좋은 점수 따려고 했는데, 한 분이 마음에 안 드시나 보네요."
"어유, 신경 쓰지 마요! 우리가 동민이 형 거까지 점수 얹어서 드릴게요!"
요환의 씁쓸한 말에 경훈은 손을 내젓는다. 그, 그럼요 하하! 어색하게 준석은 경훈의 말에 동조한다. 물론 지금도 경훈 쪽을 바라보지는 못하면서.
"야 이준석, 김경훈 옆으로 가."
"....ㅇ, 왜!"
"왜긴 왜야, 지금 우리가 한 쪽에 3명 앉아있고 김경훈 혼자 이 쪽에 앉아있잖아. 보기 이상해, 2대2로 앉아야지."
진호는 경훈의 빈 옆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 동민이 형은 왜 가버려서는..! 준석은 난감하다. 경훈도 진호의 말에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둘의 표정을 번갈아 보더니 요환은 갸웃한다. 둘이 친구였지 않았나? 갑자기 왜 분위기가 이렇게 됐대? 셋의 당황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무시하며, 진호는 준석을 테이블 바깥으로 떠밀었다. 저리 가서 앉아, 커플 옆에서 방해하지말고. 준석은 의자 밖으로 미끄러진다. 다시 자리에 앉으려하자, 진호는 아예 빈 자리에 다리를 턱, 하고 얹는다. 아, 알았다고!
"저쪽 가서 앉으면 될거 아니..............."
"저기요."
준석이 일어나 경훈 쪽으로 걸어가려는 찰나, 갑자기 웬 남자가 준석의 손목을 잡아온다. 마치 매가 사냥감을 낚아채듯, 너무도 빠르게 다가온 터라 진호는 이 남자가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온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경훈은 남자가 덥석 잡은 준석의 손목만 무섭도록 바라보았다. 아, 누구세요? 준석은 남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귀엽다는 듯 준석의 코에 다짜고짜 입을 맞췄다. 뭐, 지금 뭐하는.... 이 당황스러운 대사는 준석의 입이 아닌 경훈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나 남자는 준석만 빤히 바라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 저쪽에서부터 계속 봤는데, 진짜 귀엽네요."
"네?"
"나랑, 갈래요?"
남자는 긴 팔로 준석의 허리를 감싼다. 순간, 준석의 머릿속에는 한 장면이 지나간다. 혼자 외로울 때 누군가 다가와, 집에 데려갔더니 갑자기 공격을 했던. 넘어져서 계속해서 발로 걷어차였던 악몽 같았던 그 밤. 준석은 아직도 뚜렷한 그 기억과 느낌에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무서워서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몸을 미는데, 남자는 더욱 강하게 안아올 뿐이다. 어떡해, 무서워. 싫어, 살려줘. 준석은 작은 목소리로 덜덜거리며 고장난 로봇처럼 내뱉었다. 네? 뭐라구요? 남자는 준석의 중얼거림을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준석의 얼굴 가까이에 가져다댄다. 그 때였다, 큰 손이 남자의 얼굴을 덥석 잡은 것은. 남자는 얼굴이 움켜잡힌채로 뒤로 밀려났다. 그 바람에 준석은 그제서야 휘감긴 두 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경훈은 좀 더 팔에 힘을 주어 남자를 밀고, 자신의 등 뒤로 준석을 숨겼다.
"일행 있으니까 꺼져."
에퉤퉤! 경훈의 손이 입에 닿아, 남자는 불쾌하다는 듯 입을 계속 옷에 닦아낸다. 소금인간인가, 손이 왜 이렇게 짜! 불평을 하더니, 아쉽다는 듯 준석의 쪽을 바라본다. 그러다 경훈이 위협적으로 한 발짝 다가오자, 항복 자세라도 취하듯 두 팔을 들어올린다. 아, 예. 꺼집니다, 지금 꺼져요. 그러면서도 시선을 준석에게서 떼지 않는다. 안 꺼져? 경훈이 위협적으로 말하자, 그는 그제서야 뒷걸음질친다. 그렇게 남자가 인파 속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경훈은 등 뒤의 준석을 바라본다. 준석의 이마에서 땀 한 줄기가 흘러내린다. 바 안이 그렇게 덥지도 않은데, 아마 그 일의 트라우마 때문에 식은 땀이 나고 있는 것 같다. 준석아, 괜찮아? 다정하게 물어도 준석의 입은 열릴 줄 모른다. 그저 굳은 얼굴로 땅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뭐야, 준석이 왜 그래?"
"아마 그 날이 떠오르나봐."
"그 날? ..........아."
"나 준석이랑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가자. 경훈은 준석의 어깨를 팔로 감싼다.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경훈의 몸이 가까이 와닿아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 약하게 떨리는 몸이 그 충격을 대신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괜찮아 준석아, 나 여기있어. 이제 그런 일 없어, 응? 경훈은 준석을 낮은 목소리로 다독이며 바 밖으로 나선다. 실외로 나와 차가운 공기가 닿자마자, 준석은 한숨을 내쉰다. 한숨은 곧 하얀 입김 한 줄기가 되어 얼굴 위로 피어오른다. 하얗게 질린 게 걷기도 힘들어보여 바 건물 벽에 기대놓으니, 스르륵하고 밑으로 흘러내려가 쭈그려앉는다. 심호흡을 하기 시작하는 준석을 보며, 경훈은 안쓰러워진다. 음료수라도 하나 사 와서 맥여야 하나,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눈높이를 맞추려고 같이 쭈그려앉으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경훈의 팔꿈치를 잡아온다. 경훈은 팔꿈치가 잡힌채로 홱 뒤를 돈다. 뭐야, 누구야!
".............유훈씨."
"역시, 경민씨 맞네."
유현이다. 흰 얼굴과 대비되는 매끄러운 남색 셔츠와 검은색 슬랙스. 오늘도 멋드러진 유현의 모습에 경훈은 순간 유현을 위아래로 훑는다. 그런 경훈의 눈빛에 부끄럽다는 듯 유현은 고개를 푹 숙이며 씨익 웃는다. 소매를 길게 빼어 이마에 난 땀을 닦던 준석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올려 둘을 번갈아 바라본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요?"
"글쎄요. 혼자 외롭게 지내는 게 잘 지내는 건 아니겠죠?"
"혼자...라뇨? 그 때 그 애인은..."
"아, 휘용씨요. 헤어졌어요."
저기, 그 때 그 사람 이름이 남휘종이라는 것 같던데요? 준석은 눈썹을 들어올린다. 저렇게 이름 하나도 모르니까 헤어지지, 쯧쯧. 그러나 경훈은 아... 라며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야, 넌 왜 안타까워 하냐? 준석은 경훈에게로 시선을 돌려 노려본다.
"....다시 새벽이 되면, 달은 흐릿해지고 태양을 기다리죠."
"네?"
"내가 말했죠, 경민씨는 나한테 태양이라고. ..우리 다시 시작하지 않을래요? 이제는, 절대로 내 태양을 지게 하지 않을게요."
........뭐 임마? 준석은 눈이 충격으로 커지며 유현을 바라본다. 유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경훈을 바라본다. 준석은 입술을 깨문다. 이 인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경훈의 스타일로 생겼다. 얄쌍하고 길쭉하니, 얼굴도 허얘서 야살스럽게 생긴게. 경훈도 저런 모습이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인정한 바 있었고. 그래서 지금 준석은 더욱 불안하다. 게다가 경훈은 아무런 말도 없이 유현만 가만히 바라본다. 너 지금 고민하는 거야! 왜 고민해, 왜! 어느새 트라우마 같은 건 다 잊고 마음 속으로 아우성을 치는 준석이다. 그런데 대답 없이 서 있던 경훈이 갑자기 씨익 미소를 지어보인다.
"어차피 밤 되면 또 질 태양이잖아요."
"..경민씨."
"그보다 사과해줘요, 내 남자친구한테."
앞에다 대놓고 이런 말 들으면 내 남자친구가 기분 나쁘잖아, 그죠? 경훈은 유현의 어깨를 잡아 쭈그려 앉아있는 준석에게로 돌린다. 유현은 놀란 눈으로 준석을 바라본다. 경민씨... 남자친구...? 그러나 유현보다 더 놀란 것은 준석이었다. .......뭐? 입을 딱 벌리고 아무 말도 못한채로, 준석은 유현 어깨 너머로 경훈을 바라본다. 경훈은 미소를 짓고 있다가, 준석이 자신을 바라보자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성규의 고함에 현민은 입술을 깨문다. 아니, 지금까지 쉴 틈도 없이 일했다고! 나도 힘들어! 그러나 성규는 현민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계속해서 고함을 질러댄다.
- 너만 바쁘고 힘들었어? 나도 오늘 힘들었어. 제작사 갔더니 까이지, 집에 와서 음악 작업 다시 하지. 그래도 그 사이 짬이라는 게 있잖아, 거기가 무슨 감옥도 아니고 폰을 막 뺏고 그래? 아니잖아. 너가 무신경하다는 거 밖에 더 돼?
"여기 회사잖아. 왜 이렇게 이해를 못 해줘. 지금 형 상황이랑 나랑 같아?"
- 아, 지금 너 내가 백수라고 무시하는거냐? 그래, 미안하다. 일 하나 못하고 이러고 집에서 뚱땅 거리고 있어서 지인짜 미!안!
"형!"
- 끊는다. 백수는 더 노닥거려야 되거든.
여보세요, 여보세요!! 현민은 전화기에 소리친다. 그러나 이미 성규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니,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도 연락하려고 발 동동 구르다가 이제서야 짬 내서 전화하는 건데, 아무것도 모르고!! 나는 그저 여기서 급 낮은 알바라 시키는대로 일할 뿐이라고!! 억울한 현민은 핸드폰에 대고 버럭 화를 낸다. 그러나 아무도 듣지도 못하는 화인데 어쩌겠어. 현민 혼자 속 터지는 거지. 그렇게 현민은 5분 동안이나 발을 구르며 화를 내다가, 분을 가라앉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연주가 기다렸다는 듯 스프링처럼 자리에서 튕겨나왔다. 현민씨, 이리 와 봐. 현민씨!
"저번에 정리한 자료 기획안 하나가 누락되어 있는데?"
"예? 그럴리가 없는데..!"
"현민씨가 똑바로 봐. 파일 한 장이 비워져 있잖아!"
연주는 벼르고 있었다는 듯 있는 힘껏 성질을 낸다. 현민은 연주가 내민 파일을 받아 본다. 중간 한 장이 비어있다. 분명 내가 꽂을 때는 빈 곳이 없었는데....? 그럴 리 없는데... 현민이 주눅들기 시작하자, 연주는 더욱 기를 펴며 현민을 몰아세운다. 거 봐요, 현민씨가 봐도 없죠! 일을 이렇게 하면 어떡해요, 분명 똑바로 하라고 했잖아요! 현민은 파일을 손에 든 채로 고개를 푹 숙인다. 그 때였다.
"어....연주씨. 내가 이거 참고하려고 가져간...건데... 내 쪽지 못 봤어?"
대리 하나가 눈치를 보며 이 쪽으로 걸어온다. ...예? 연주와 현민은 고개를 돌려 그 대리를 바라본다. 이거 지금 하는 기획안에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갔어.. 그는 들고 있던 문서 뭉치를 내밀어 보인다. 대리의 손에 든 것은 이 자리에 현민이 끼워넣었던 디자인 기획 문서였다. 연주는 순간 표정이 뜨악해진다.
"내가 분명 포스트잇으로 그 위에 며칠자 문서 가져간다고 써놨어.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현민씨한테 그만 해, 응?"
이거 내일쯤 내가 다시 끼워넣을게! 대리의 말에 연주는 더더욱 사색이 된다. 확인을 안 한 것은 현민의 쪽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잘못한 것 없는 사람을, 연주는 무턱대로 몰아붙인 것이었다. 이거, 아... 어떡하지? 엄지손가락을 까득까득 깨물다가, 연주는 천천히 현민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사과는 해야겠고, 창피해 죽겠고!! 그렇게 망설이다 어렵게 들어올린 연주의 눈에는, 뚝뚝 눈물을 떨어뜨리는 현민이었다.
"혀, 현민씨...?"
"내가.....뭘 .... 잘못했..."
"저기, 현민씨?"
"대체 내가 뭘 잘못했냐고!! 으아아앙 - "
성규부터 연주까지, 현민은 억울해 죽을 지경이다. 둘 다 왜 이래, 나한테.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난 잘못한 게 없는데에에에!!!!! 결국 사무실 안에서, 모든 사원들이 다 듣고 있는 와중에 아이처럼 울어버린다. 으아아앙 - 흐으 - 아아앙 - 그렇게 연주는 어쩔 줄 몰라하고, 현민은 목놓아 울고 있고. 퇴근합시다! 라고 신나게 외치며 들어오는 연승이 아니었더라면, 둘은 언제까지고 그 상태로 있었을 것이다.
현민은 눈이 팅팅 부은 채로 회사 문을 나선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회사 앞에는 아무도 없다. 김성규, 진짜 미워. 저번에는 꼬박꼬박 데리러 오더니, 오늘은 나 잘못한 거 하나도 없는데 혼자 화나 내고. 이젠 아예 데리러 오지도 않네. 기분이 점점 더 나빠지는 현민이었다. 입술을 삐죽 내밀며 집으로 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가방을 덥석 잡아온다. 뒤로 질질 끌려가며, 현민은 고개를 돌린다. 뒤에서 연주가 새빨개진 얼굴로 가방을 힘껏 잡아당기고 있었다. 어... 하 사원님.
"... 나 친한 오빠가 일식집을 하는데, 매출 올려줘야 돼요."
"네?"
"같이 먹으러 가고 싶진 않은데! 같이 먹으러 갈 사람이 없으니까! .....나랑 같이 가요."
"..저 집에 가야 되는데.."
"선배가! 사준다면! 네, 하고 끌려오는 거에요!"
연주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현민에게 성질을 낸다. 그러니까 가자고! 참 나,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면 될 걸. 이 분도 피곤하게 사시네. 현민이 빤히 바라보자, 연주는 더욱 짜증을 낸다. 왜, 뭘 봐! 눈은 팅팅 부어가지고. ...사원님 때문에 운 거잖아요. 현민의 말에 연주는 민망한지, 아무 말 없이 택시를 잡으러 나선다.
일식집이라는 데가, 이렇게 큰 곳이야? 이런 곳에 발을 들여본 적이 없는 현민은 으리으리한 외관에 입을 딱 벌린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휘황찬란함에, 현민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거이 골목에서 이런 곳은 본 적이 없는 현민이었다. 현민의 반응에 연주는 왠지 모르게 뿌듯해진다. 멋지지? 우리 오빠 이런 사람이야! 라더니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간다. 현민이 따라들어가자, 연주는 직원들에게 친구처럼 친근하게 말을 걸고 있다. 친한 오빠가 하는 곳이라더니, 틀린 말은 아니네.
"연주씨랑 이 분이서, 두 명이서 온 거야? 누구?"
"우리 막둥이 직원이랑 한 잔 하러 왔지!"
"..........진짜 막둥이인 거 같은데, 몇 살이에요?"
신분증 검사 좀 할까요? 순간 직원의 말에, 연주는 표정이 굳는다. 맞다, 얘 미성년자였지...! 아차 싶은 연주의 표정이 나오자, 현민은 씨익 미소를 짓는다. 지갑을 뒤져 민증을 현민이 꺼내보이자, 직원은 잠시 사진을 빤히 바라본다. ..단기간에 살을 많이 뺐나봐요? 직원의 말에 현민은 끄덕인다. 한 20키로 뺐나..?
"...뭐 연주씨 믿으니까. 위조는 아니겠지. 연주씨, 아무데나 들어가요."
"응 오빠! 서비스 주는거 잊지 말기!"
와, 애교 보소. 현민은 자리에 앉으면서 연주의 엄청난 숨겨진 모습에 감탄한다. 나한테나 이렇게 애교부렸으면 좋았을텐데. 현민의 눈길은 또다시 연주는 뭐! 라며 성질을 낸다.
"근데, 신분증 뭐야?"
"...애인 친구꺼 빌린거에요."
"와, 무서운 미성년자네. 이래도 되는거야?"
"성인이 미성년자 술집 데려와도 되는 거에요?"
흥, 회사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더니 말은 잘하네! 연주는 입을 삐죽 내밀더니 안주와 술을 골라 시키기 시작한다. 내 멋대로 시킬거니까, 괜찮지? 연주의 말에 현민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한시간 뒤, 현민은 후회했다. 도쿠리라는 일본 술이 얼음이 든 병에 담겨 나왔을 때, 그저 예뻐보여서 현민은 홀짝거리며 마셨다. 그러나 지금은, 벌써 눈앞이 뱅뱅 돈다. 애써 고개를 들어보니, 연주도 얼굴이 사과처럼 새빨갛다. 두 눈이 풀려서, 맹하게 현민을 바라보고 있다.
"야, 내가아 - 성격이 원체 이래먹어서. 미안타... 애를 울려써 내가아..."
이제서야 미안하다고 말을 할 줄 아네. 현민은 고개를 가만히 끄덕인다. 성격 못돼보이긴 했어요. 이게! 현민의 말에 연주는 버럭 화를 내더니, 눈에 힘을 준다.
"근데 무슨 일 이써써? 왜 그러케 통곡을 해싸!"
"아, 저 애인이. 막, 연락 안된다고 화내가주구... 일하느라 그런겅데에, 바람피는 것도 아니고!"
"뭐냐아? 니 애인도 그러냐? 내 애인도 그래!"
이것들이 쌍으로 말이야, 엉? 연주는 버럭 성질을 낸다. 그런데 술이 취해서 그런지, 현민도 합세하여 버럭 화를 낸다. 아니, 하 사원님 남자친구도 그래요? 이거 아주 나쁜 사람들이네!! 현민의 말에 연주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아니, 지도 바쁘면서. 왜 이러케 폰을 막, 안 놓고 있냐고오 - 좀, 일에 집중하자고!"
"제 말이요!! 지랑 가치 이쓸 돈 버느라고 일하는겅데!!"
"내말이!! 지 때매 쓰는 식비만 한 달에 200이야 200!! 둘 다 안 벌면 누가아 그 돈을 대줘어!!!"
야, 화난다. 마셔마셔!! 또 사케 다른 거 시킬까? 연주의 말에 현민은 오케이!! 라고 외친다. 우리 오늘 마시고 죽어버리자구요!! 좋아요!!! 그런 둘을 바라보며, 직원들은 고개를 젓는다. 이거, 괜찮겠어요? 그러자 연주의 친한 오빠라는 사장은 괜찮아, 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연주씨 애인 번호 내가 아니까, 데리러오라고 하면 되지. 연주와 현민은 직원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다시 술잔을 깔끔하게 비운다. 좋다, 좋아!!
"하응, 아아, 아윽."
"후우, 으, 좀 더 빨리 움직여봐."
동민의 말에, 남자는 동민의 몸 위에서 콩콩 뛰듯 빠르게 상하운동을 시작한다. 아아, 좋다. 조금만 더 하면, 쌀 것 같아. 동민은 눈을 나른히 감고, 아래에 느껴지는 감각에 입을 벌린다. 남자가 아래에 힘을 주어 조이자, 동민은 윽, 하며 입술을 깨문다. 좋아, 좀 더 처박아. 아아 - 조금만, 더, 더. 그렇게 사정기가 차오르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응? 뭐지? 동민은 한 손으로는 남자의 골반을 잡고 아래로 찍어누르며, 다른 손으로 전화기를 들어 바라본다. 오현민. 현민의 전화였다. 이게, 이 시간에 왜 갑자기 전화야? 동민은 급한 일이라도 있을까봐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 저, 실례합니다. 현민씨가 많이 취해ㅅ...
- 야아, 니가 오현민이 애인이냐아!!!!!!!!
한 여자는 정중하게, 한 여자는 뒤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분명 오현민 번호로 온 전화인데, 여자들 둘이라? 동민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댄다. 여보세요?
- 야 하연주. 입 다물어.
- 왜 애를 울리냐아!!!
- 왜 나를 울리냐아!!!
이젠 현민의 목소리까지, 두 남녀의 아우성 속에 여자는 곤란한 말투이다. 듣고, 하, 있어요. 말해요, 후. 남자는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듯 끈적하게 허리를 돌리기 시작한다. 아, 몸 한 번 잘 굴리네. 동민은 사정감이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전화기에 말을 한다. 그러자 여자는 다시 할 말을 이어간다.
- 네. 현민씨가 많이 취했는데, 제가 집을 몰라서요. 그런데 현민씨가 이 번호로 연락해보라길래... 댁이 어딘지 알려주실수 있으세요?
".........지금 취한 오현민을 데리고 저희 집에 오신다고요?"
- ...현민씨 애인분 아니세요? 현민씨가 이 번호로 연락하라구.. 그래서 자기 거기에 데려다 놓으라고 하시던데..
돌았냐, 어린이. 취해서 아주 인사불성인가보네. 동민은 화가 솟구친다. 몸을 벌떡 일으켜 남자를 침대로 던진다. 남자는 야릇하게 자신을 바라보며 침대에 엎드린다. 동민이 손을 남자의 아랫배에 끼우더니, 그대로 엉덩이만 올린다. 그리고는 남자의 뒤에 동민은 세차게 박기 시작한다. 아응, 아아! 시끄러운 남자의 교성에, 동민은 그대로 베개에 남자의 얼굴을 처박는다. 전화하는데, 시끄럽게.
"주소, 제가 문자로 보낼테니까. 얘 폰 보고, 여기로 오세요."
- ...저, 현민씨 핸드폰 비밀번호 걸려있던데...
"4자리, 맞죠."
- ...네.
"그거, 0720이에요."
내 생일. 동민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린다. 더 이상 말을 잇다간, 섹스하고 있는 거 외간여자한테 들키겠어. 동민은 한 손으로 문자를 치며, 다른 한 손으로는 남자의 허리를 붙잡는다. 빠르게 허리를 흔들자, 베개에 처박힌 얼굴을 들고 남자는 미친듯이 교성을 내지른다. 아아, 오빠, 진짜, 끝까지 박아. 아아앙, 좋아, 하아앙!!! 동민은 문자를 전송하더니, 핸드폰을 탁자에 던져놓는다. 그리고는 남자의 그것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아앗, 거기는...!!"
"시간 없어. 빨리 싸."
그리고 동민은 조금 더 강하게 쳐올렸다. 아응, 나 쌀 것 같아..!! 남자는 야한 말을 하며 온 몸으로 쾌락을 느낀다. 그래, 얼른 싸라. 곧 손님 오시니까. 동민도 곧 이 섹스를 끝낼 요량으로, 남자에게 빠르고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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