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후께서는 저에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으십니다.’
담담한 얼굴로 나를 패배자라고 부르는 그 여자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살아있는 자가 이기는 세상, 살아있기에 다음이 있어 이대로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너와 달리 난 살아 있고 죽은 후에도 역사에 기록 될 최종적인 승자였다.
드디어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구나.
‘부디 만수무강 하세요. 황후.’
[2]
4황자 왕소가 황위에 올랐다. 선대 황제인 정종 왕 요가 죽기 직전 소에게 황위를 넘긴다는 칙서를 남겼기 때문이다.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났던 사이였는데 어째서 4황자에게 황위를 넘긴 것인지 모르겠으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소리에 의하면 적이라도 동복 (同腹) 형제에게 황위를 넘겨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나이가 어린 14황자보단 비를 내리게 해 민심을 얻은 4황자에게 황위를 물려주었다고 한다. 소문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이미 4황자는 황위에 올랐다.
“황제 폐하 드시옵니다.”
정종의 장례가 끝났지만 궁궐 안 밖은 아직 흑백으로 가득 했다.
“소자, 어머니께 문안 인사드리옵니다.”
예를 갖춰 태후에게 인사를 한 황제는 자신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 태후를 보고 입술 한쪽 끝을 올렸다. 소가 큭―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태후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동안 외면했던 황제의 얼굴을 보았다. 화장을 하였지만 미세하게 보이는 내가 낸 상처이자 수치.
“그리 못마땅해하시던 아들이 황제가 된 것을 본 기분이 어떻습니까?”
이죽거리는 모습이 나를 보는듯하다. 그렇게 외면했건만 역시 소도 나의 아들이라 이건가.
“하늘의 자리에 앉은 기분이 어떠하냐. 너 같은 애가 언감생심 꿈도 못 꿔볼 자리였을 텐데”
“참으로 좋더군요. 세상 모든 것이 내 아래에 있고 또…”
“또?”
“이렇게 어머니와 대등하게 마주 보니 말입니다.”
“건방진 녀석. 선황께서 살아있었을 때 네놈을 처리했어야 했다. 네놈만 없었다면 정이가 황위에 올랐을 것 이고 요가 준 영광의 자리를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인데…!!”
태후는 악을 쓰며 외쳤다. 항상 고고한 표정을 유지해오던 태후가 저리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니 황제는 기뻤다.
“예전에는 말이죠.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었어요. 이제는 필요 없지만…”
황제가 태후에게 다가갔다. 짧은 거리였으나 긴 시간 동안 걸은 듯 착각할 정도로 발걸음이 무거웠다. 태후의 앞에 선 황제는 허리를 숙여 모후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제 어머니 대신, 나에게 사랑을 줄 사람을 찾았거든요.”
태후는 입술을 꾸욱 깨물고 치맛자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항상 어머니에게 이긴 적이 없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되었네요.”
“내 수치 따위가…!”
“죽은 자는 살아있는 자를 이기지는 못하지만 그 살아있는 자를 또 다른 살아있는 자가 이길 수 있죠.”
말을 마친 황제가 허리를 곧게 펴며 태후의 얼굴을 응시했다.
“부디 만수무강하세요 태후.”
자신과 닮은 얼굴은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오 상궁의 얼굴을 하고서는 똑같은 말을 하고 태후 궁을 나섰다.
“오 상궁…”
대 귀족가의 여식으로 태어나 황제에게 시집을 왔다. 황제를 사랑했다. 사랑했기에 부인은 나 하나여야 했고 자식도 황제와 나 사이에서 나온 자식들이여만 했다. 하지만 황제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부인은 많았으며 자식은 그와 나만의 사이에서 나온 자식들만 있는게 아니였다. 높은 자존심을 가지고 있던 그녀로서는 이만한 굴욕도 없었다. 그래 황제의 사랑을 가지지 못한다면 차기 황제의 모후로서 권력이라도 쟁취하여 세상을 내 발아래에 두고자 했었는데 삼일천하(三日天下)로 끝났구나.
“ 네가 그랬었지‥ 내가 너를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고‥”
태후는 웃었다. 맞다. 난 너를 한번도 이긴적이 없다. 이것은 그냥 회피이며 정신 승리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내가 여태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외면했다. 하지만 마지막이 되어서 이것을 인정하다니‥
“네가 이겼다‥난 너를 이긴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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