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아니, 황자 님. 저는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밤을 넘기면 이 세상에는, 이 고려에는 해수가 없겠죠.
이 서신이 황자 님께 마지막으로 보내는 서신이겠네요. 부디 잘 전달이 되길..
황자 님. 황궁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황궁을 나왔어요. 밖에서 살아보니 훨씬 자유롭더군요. 그런데 마음은 자유롭지 못 했습니다.
황궁을 나오면 황자 님을 잊고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황자 님과의 추억들이 제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그리웠어요.
황자 님께서는 매일 잘 일어나셨을까. 세 끼 식사는 제대로 하실까.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치셨으면 어쩌나. 잠은 제대로 주무실까.
하루를 황자 님 걱정으로 시작해서 끝냈지요. 그래서 병이 났습니다. 10년이 남았다는 의원의 말과는 달리 이렇게 일찍 갈 날이 왔네요.
황궁 밖에서 살면서 황자 님을 한 번이라도,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만나고 싶었어요.
황자 님 품에 안겨서 다시 행복한 하루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안되겠죠. 어렵겠죠.
마음이 아려옵니다. 무거운 자리에 올라 마음도 몸도 피곤하고 지치셨을 텐데 많이 걱정이에요.
황자 님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이 삶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강건하세요. 이제는 눈물도 흘리지 마세요. 웃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해수 올림.
해수는 붓을 내려놓고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었다. 종이 위에 ' 해수 올림 ' 이라는 글자를 힘겹게 적어내렸다.
가늘고 흔들린 글씨체. 왕소와 비슷한 글씨체였지만 글자에 힘이 없었다. 다시 쓸까 했지만 더 이상은 글자를 쓸 힘이 없어 생각을 접었다.
해수는 고이 접어둔 서신을 탁자 한구석에 올려두고 침상에 올라와 누웠다. 더 이상은 움직일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고요한 방 안에서 창밖으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14황자가 들어왔다.
" 해수야, 몸은 괜찮아? "
" 힘이 없습니다. 기운이 없네요. "
한마디 한마디를 힘겹게 내뱉는 해수를 보고 14황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널 보러 온 사람이 있다. 폐하께서 오셨어.. "
또다시 문이 열리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왕소가 문 앞에 서있었다.
" ...폐하..? "
방으로 들어오지 않은 채 멍하니 해수를 바라보는 왕소의 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눈앞에 있는 해수가 많이 야윈 게 충격이었다.
" ...해수야. "
이게 정말 꿈이 아닌 건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진짜 4황자님인 건지 해수는 믿기지 않았다.
손으로 볼을 살짝 꼬집어보니 사실이 맞구나 싶어서 해수는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위태로웠다.
" 폐하를 뵙.. "
인사를 하려 몸을 숙이는 순간 힘이 빠져 넘어지려 했다.
" 해수야! "
" 수야! "
14황자, 왕소는 놀라서 뛰어와 해수를 잡으려 했다.
허공에 떠있는 손은 왕소의 손이었다. 14황자는 해수를 잡고 침대에 앉혔다.
" 폐하. 나가있을 테니 해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불러주세요. 기운이 많이 없는 아이입니다. "
" 고맙다. 정아. "
그렇게 14황자는 문을 열고 나가고, 문이 닫혔다.
그렇게 고요한 침묵이 이어졌고, 그 침묵을 깨버린 건 해수였다.
" 보고 싶었습니다. 황궁을 나온 후로 매일같이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보네요.
14황자님을 졸라서 황자님의 소식을 가끔 들었습니다. 가까이서 보질 못하니까요.
왜 이제야 오셨어요. 좀 더 일찍 ..오시지.. "
해수의 말 끝이 흐려졌다. 두 사람의 눈가는 촉촉했다.
" 널 만나면 모든 걸 내팽개칠까 봐서 못 찾아왔다. 가끔 사람을 보내 너의 소식을 들었는데 네가 많이 야위었다더구나.
오늘 정이가 찾아왔다. 네가 아프다고, 그래서 더 이상은 참지 못할 듯싶어 왔다.
마음이 쓰려. 해수야. 널 보니까 널 놓지 말걸. 내 옆에 둘 걸 후회 중이다. "
해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황자님의 품이 그리웠습니다. 이리 와서 저를 안아주시지요. 마지막은 황자님의 품 안에서 맞이하고 싶습니다. "
왕소는 해수 옆에 앉아 자신의 품에 해수를 눕히고 안았다.
" 마지막이라니, 그런 소리 하지 마. 넌 내가 다시 황궁으로 데려갈 거다. 나와 함께 가자. "
" 아니요. 저는 이제 힘이 없습니다. 숨통이 조여와요. 그래도 행복합니다. 황자 님을 다시는 못 뵐 줄 알았어요.
절.. 보러 와주셔서 감사해요. "
해수의 말에는 힘이 사라졌다. 잠에 들 듯한 목소리다. 왕소는 해수를 더 끌어안았다.
" 아니다. 해수야. 아니야. 앞으로도 내 옆에 있어야지. 자면 안 된다 해수야. "
왕소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품 안에 색색 숨소리를 내던 해수는 다시 입을 열어 한 글자 한 글자 힘겹게 뱉어냈다.
" 황궁에서 나오면 황자 님을 잊을 수 있을까 했어요. 그 삶에 지쳐버렸거든요.
하지만 아니더군요. 황자 님과의 행복했던 추억들이 제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무슨 행동을 하던 황자 님 생각 밖에 안 났습니다. 다시는 보지 못할 얼굴이라 더 괴로웠어요.
다시 한 번만 황자 님을 만나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오늘에서야 이뤘네요.
저는 이제 행복합니다. 이제껏 고되었던 마음들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에요.
황자님의 부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총애를 받아서 행복했어요. 그게 전부였어요.
황자 님을 좋아하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같이 있을 때는 제일 행복했습니다. 기뻤어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입니다. "
말을 다 한 해수가 숨을 들이켜더니 기침을 내뱉었다. 급하게 이불로 입을 감쌌지만 이불은 빨갛게 변해버렸다.
" 해수야! 말을 줄이거라. 그냥 이렇게 있자.
다 내 탓이야. 널 내보내는 게 아니었다. 순간적인 감정이 날 차지해버려 네가 너무 미웠다.
널 정이와 황궁 밖으로 내보낸 후에 매일 자책했다. 그래도 궁을 답답해했던 네가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널 내 옆에 둘 걸 그랬어.. 내가 미안하다. 수야. "
" 황자 님. 저는 이제 눈을 감아도 될 것 같습니다.
황자 님이 제 눈앞에 계시잖아요. 편안해졌어요. 피토를 할 때면 고통스러웠는데 지금은 편합니다.
황자 님을 만나니 이제는 언니가 보고 싶어요. 오상궁님도 다시 만나 뵙고 싶고, 은이 황자님의 인형극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운 사람들이 절 불러요. 이제는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황자님을 더 보고싶고, 만지고싶은데 그러질 못하겠네요. 제가 고려에 없어도 서로 은애할 수 있겠죠?
늦어도 괜찮습니다. 운명일 테니까, 기다릴 테니까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요.
우리 신분 없는 세상에서 만나 마음껏 사랑해요. "
해수의 눈은 평소보다 반절은 감겨있었다. 눈앞에 희미하게 보이는 왕소를 만져보려 했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왕소는 해수의 손을 잡고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수야. 그런 말하지 마. 제발.
널 잃기 싫다. 널 잃으면 난 어찌 살라고 그러는 거야! "
" 슬퍼하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울지 마세요 "
" 내가 안 괜찮다. 해수야. 내가 안 괜찮아.. "
왕소의 어깨가 들썩였다. 눈물이 목을 막아 목소리가 갈라져버렸다.
그렇게 해수를 품에 안고 흐느꼈다.
" 은애합니다. 폐하.. 강 건..하세요. "
왕소의 볼을 쓰다듬던 해수의 팔이 떨어졌다.
왕소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품에 안고 있던 해수를 세워 어깨를 흔들어봤지만 해수는 그의 품으로 다시 안겨들어왔다.
품 안에 있는 해수는 미동도 없었고, 숨 쉬는 소리조차 사라졌다.
" 해수야. 일어나 봐라. 일어나 봐.. 수야! 아니 된다. 안 돼! "
방 안의 소리가 시끄러워 급히 뛰어와 문을 연 14황자는 해수를 안고 울부짖고 있는 왕소와 그의 품 안에 안겨 눈을 감고 있는 해수를 보자마자 뛰어들어왔다.
" 해수야! 폐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
" 해수야. 아니야. 이건 아니다. 나와 같이 황궁으로 돌아가야지.
우리 같이 그림자놀이도 다시 하고, 같이 탈을 쓰고 황궁 밖으로 나가 놀아야지..
같이 별도 보고, 내게 아직 못 해준 재밌는 이야기가 남아 있잖아.
네가 이러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해수야. 일어나 봐.. 제발.. "
14황자는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해수를 안고 울고 있는 왕소를 말렸다.
" 페하.. 그만하세요. 수를 보내주세요. 많이 힘들어했던 아이였습니다. 편안한 표정.. 오랜만에 봅니다. "
왕소는 해수의 눈물 자국을 만지며 말했다.
" 정아. 해수가 숨을 쉬질 않는다. 햇살처럼 예뻤던 아이가 많이 야위었어. "
수야. 해수야. 넌 내게 유일하고 영원한 황후다.
네 말대로 네가 고려에 없어도 우리 서로 은애하자.
내 황후. 나만의 황후.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려.
은애한다. 나의 해수야.
노래 모티브로 쓴다는게 이상하게 변질됐네..
그래도 읽어줘서 고마워 뾰♥


인스티즈앱 ![달의연인) [왕소×해수] 이별. (부제: 그대를 잊는다는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10/30/20/b5e47f4093bfe1ffb0d6356c3ba053ac.jpg)
![달의연인) [왕소×해수] 이별. (부제: 그대를 잊는다는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10/30/21/4af5233abb74a19dec0d3aaaf85773b1.jpg)
![달의연인) [왕소×해수] 이별. (부제: 그대를 잊는다는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9/10/20/2e04dd7ff60085aea254762e5a5f3c34.gif)
![달의연인) [왕소×해수] 이별. (부제: 그대를 잊는다는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10/30/23/93823498364e157b033b09cef820dd8f.jpg)
![달의연인) [왕소×해수] 이별. (부제: 그대를 잊는다는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10/30/23/c9c7475f320170825a3afa49b927046f.gif)
![달의연인) [왕소×해수] 이별. (부제: 그대를 잊는다는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10/30/23/cf1c3b975e0c607a6aa9e9cb146105ee.gif)
![달의연인) [왕소×해수] 이별. (부제: 그대를 잊는다는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10/30/23/5d0fcf9fce273068b92afda45278d599.jpg)
![달의연인) [왕소×해수] 이별. (부제: 그대를 잊는다는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10/30/23/c1d78e36ca37e83a0462e5fe99af4bee.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