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 [민지꼬~★]
위안은 카톡목록을 보다 알베의 상태메세지를 보고 휴대폰을 옆에 덮어뒀다. 전에 알베와 데이트 하던 단발머리의 발랄한 여자애일 것이다. 눈은 벌써 까맣게 아이라이너를 하고 입술은 빨간 그 여자애.
위안은 중학교 3학년, 알베를 상대로 몽정을 했다. 부모님이 같이 출장가신 날이었고, 팬티 한장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며 세탁기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있었다.
돌이켜보면, 집에서 각자나라의 언어를 쓰고 밖에 나와서는 한국어를 하는 줄 알았던 초등학교 1학년 때.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알베가 신기했던 게 시작이었다. 그리고, 동네 꼬맹이들이 작은 위안을 괴롭히던 시절 나서서 구해준 그 날부터였을 거다.
위안은 세탁기 앞에서 담담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예정되어있던 외국인학교가 아닌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알베는 그때부터도 저런 유치한 여자친구를 사귀어왔으니까.
그렇게 3년. 위안은 짝사랑을 고이 넘기기로 이제야 결심했다. 모든 결심은 수능 이후로 정해놓았다.
위안은 휴대폰을 다시 켰다. 전부터 가입해놓고 들락거리던 어플을 본다.
첫사랑은 망했고, 10대의 끝자락에 자신이 게이인지 확인해볼 참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원조교제?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른척 살아왔던 자신의 사고는 그정도로 삐뚫어진 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사업으로 용돈은 항상 부족하지 않았지만, 20만원을 제시한 남자와 종로의 커피빈에서 만나기로 했다. 저녁 8시. 약속시간보다 10분 먼저 위안은 들어가 아이스커피를 시켰다. 늦게 갔다가는 자신이 도망갈 것 같아서.
위안이 초조하게 다리를 떨었다. 어차피 자신이 게이인지는 확인해야한다. 위안은 빨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게이들이 많이 모인다는 커피숍이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남자 둘씩 앉은 무리들이 보였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게 위안은 조금 안심이 됐다.
마크는 바이어를 만나고 커피 한잔을 사러 1층의 커피빈에 들렀다가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됐을 때를 떠올리며 테이크아웃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여기 우리끼린 게이빈이라고 불러.
한국에서 처음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얘기했던 곳이었다.
저쪽 막걸리집이 유명하고. 형, 저기 가볼래?
한국에 온지 8년쯤이 되어가니 이 커피숍자리에 호텔이 들어서고 주변도 많이 변했다.
바쁜 일상에서 오랜만에 한가하게 앉아 감상에 젖어있었을 때 쯤, 옆 자리의 두 남자의 대화가 들렸다.
"그래서 처음이라고?"
"네."
"너 학생 아니야?"
"...아닌데요."
"미성년자인것 같은데."
"...미성년자는 게이 하면 안돼요?"
"그건 아니고. 20? 너 중간에 하다가 도망가면 안된다."
마크는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남자와 학생으로 보이는 작은 남자애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기. 경찰 부를까요? 얘기 다 들었는데."
그 말에, 남자가 몇 마디 변명을 하다가 자리를 떴다.
그리고 마크가 자리에 돌아와 앉자 위안이 쪼르르 앞에 와 앉는다.
"왜 방해해요?"
"너 원조교제 하려는거 아니었어?"
"딱히 그런건 아니예요."
"20은 뭔데."
"그냥 나쁜 짓 좀 해보고 싶어서."
"그럼 돈 훔치려고 그런거야?"
마크가 '모텔에 들어가 남자가 씻는 중에 지갑을 털어 나오는 범죄'를 떠올리며 묻는다.
"아뇨. 내가 진짜 게이인지 궁금해서."
그 말에 핸드폰으로 업무메일을 보내며 위안과 대화를 하던 마크가 처음으로 위안의 얼굴을 본다.
위안은 마크에게 저녁을 사달라고 졸랐다. 아저씨가 20만원 줄거 아니면 밥사줘요.
처음보는 아저씨지만 자신의 탈선에 제동을 건 아저씨가 위안은 마음에 들었다. 나쁜 사람은 아닐것 같아. 그런 기분.
마크는 위안에게 이끌려 근처 회밥집에 들어갔다. 평소 어린애에게 휘둘릴만큼 무른 사람이 아니었지만, 방금까지 원조교제를 하려던 청소년에 그 이유가 자신이 게이인지 궁금해서라는 이유였던 위안이 자신이 처음 게이임을 자각했던 때가 떠올렸기 때문에 말없이 이끌려 준 것이었다.
"소꿉친구를 좋아하게 됐어요. 그걸 알았을 땐 걘 여자친구를 끊임없이 사귀고 있었고."
"힘들었겠네."
위안이 휴대폰의 알베 [민지꼬~★]를 보여주며 얘기했다.
"잘생겼죠?"
"외국인이네."
"나도 외국인이예요."
마크와 위안은 몇시간이나 이야기를 했다. 주로 위안이 혼자 떠드는거였지만, 위안은 3년간 혼자 속앓이 하던 걸 처음으로 다 쏟아내었다.
"아저씨. 카톡해용!"
위안은 마크의 차 꽁무니에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불행 끝에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 아저씨 오늘 저녁에 바빠요?
- 심심해~~~~~~~~~
- 바쁜가보당... ㅠ.ㅠ
위안의 카톡에 마크는 피식 웃고만다. 연말에 여러 모임과 회식이 있었지만 마크는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위안을 위해 시간을 빼두었다.
처음엔 자신의 10대를 떠올리며 만났지만, 지금은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으로 위안을 만났다.
원조교제라는 깜찍한 생각을 했던 것과는 달리 위안은 생각보다 바르게 자란 아이였고,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으로 자신을 택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많은 부담을 주지도 않았다.
-오늘은 괜찮아.
-오예! 아저씨, 맨날 얻어먹었으니깐 오늘은 내가 쏠게요!
-학생이 무슨. 20만원 벌자고 원조교제하려던 애가.
-그 얘긴 그만해요. 짜증난다 아저씨!!!!
-그럼 7시에 광화문 5번출구로 나와
마크는 카톡을 보내고는 다시 업무를 시작한다.
"그렇게 기침을 하면서 오늘 왜 만나자고 했어?"
"옮길까봐 그래요?"
위안은 마스크를 끼고 나왔다. 감기에 걸렸는지 기침을 하고 춥다며 보자마자 마크의 팔짱을 껴왔다.
"요즘 애기들은 독감예방주사 안맞나?
"나 낼모레면 스물인데 애기취급하지 마시죠?"
위안이 발끈한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는다.
"추우니까 우동먹으러 가요. 딱히 내가 사기로 해서 싼거 먹자는 건 아니예요."
잔망스러운 위안의 말에 마크가 고개를 끄덕인다.
밥을 먹으면서 대학교 원서 얘기, 논술 얘기를 하는 위안의 이야기를 듣는다.
학교는 y대에 갈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알베도 아마 y대에 갈 것 같아요. 그래서 난 k대에 갈까도 생각했는데... 뭐 이젠 괜찮을듯.
뭐 그런 이야기들.
"아, 맞다. 걔 민지인가 뭔가 걔랑 헤어진듯."
"그래?"
"아마 곧 다른 여자친구 사귀겠죠. 신경 안써야되는데, 맨날 카톡 상태메세지를 보게 돼요. 내가 생각해도 찌질한데."
"그 친구랑 연락은 하고?"
"응. 여자친구랑 헤어졌는지 저녁에 게임하자고 카톡 오더라구요. 그런 쓰잘데기 없는 얘기같은건 해요."
"친구들한텐 커밍아웃 할 생각은 없어?"
"글쎄. 남자친구 생기고나서 고민할래요. 그런건. 아직 나 남자랑 안자봤잖아."
당돌하게 얘기하는 위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저씨는 연말인데 연애 안해요? 아저씨같은 남자는 남자든 여자든 줄 설 것 같은데."
"바빠서."
"나 만날시간에 아저씨 연애해야되는데 내가 방해하는 것 같당."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표정으로 국물을 후르륵 마시며 위안이 얘기한다.
"요즘에 하는 생각인데요. 아저씨 같은 사람이면 연애하고 싶어. 마침 아저씨도 게이고. 나한테 시간도 내주는데, 도전해볼까 싶어."
쑥쓰럽긴 한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얘기하는 위안의 말에 마크가 웃는다.
"미성년자잖아."
"며칠만 있음 성인인데?"
위안이 스스로 매일 만나면 알베 얘기만 해놓고 저런 얘기를 꺼낸걸 염치없다고 생각하고는 혼자 웃는다.
"됐어용. 아저씨 나 만나려고 그렇게 열심히 산거 아니었을텐데. 엄청 멋있고 섹시한 형 만나세요, 아저씨는."
그 말에 마크가 더 크게 웃는다.
위안이 감기에 걸려 추워하던 날, 위안은 마크의 집에 가자고 졸랐다.
한옥마을에 사는 외국인이라니. 아저씨 진짜 특이해! 위안이 콩콩 뛰며 즐거워한다. 나 진짜 꼭 가보고 싶어요!!
마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승락했다. 추운 날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며 문 앞에 선다.
"와. 진짜 신기해."
서울에 산지 오래됐지만 여긴 처음 와 본다며 위안이 즐거워한다.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더니 손님방이라고 소개해준 방의 침대에 떡하니 눕는다.
"아저씨, 여기 내 방같아. 딱 느낌이 그래."
위안이 즐겁다는듯 옆으로 구르며 떠든다.
소파에 짐을 놓고 앉자 따라 나온 위안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옆에 앉는다.
"아저씨 왜 애인 못사귀는지 알겠다. 결벽증있죠?"
"음... 조금?"
"맞네~ 어쩐지 너무 깨끗하더라."
"다 내가 치우는건 아니고 도우미 아주머니가 치워."
"그래두. 여튼. 좋당. 내 친구들 집 가면 돼지우리가 따로 없는데. 뭐, 알베 방은 깨끗하지만요."
위안이 그 말을 뱉고는 어휴, 기승전알베. 나 진짜 답없지 않냐며 마크옆에 붙어 징징거린다.
"대학교 가면 꼭 멋있는 남자친구 만날거예요."
"그 남자친구 앞에서도 알베 얘기 계속 하려고?"
"아니. 입 딱 다물고 첫사랑 짝사랑 안 해본 척 해야지."
그말에 마크가 웃으며 위안의 볼을 당긴다.
"데려다줄게. 일어나자."
마크의 차 안에서 위안은 마크의 집에 놀러가 들떴던 마음이 집근처로 가까워지자 가라앉기 시작했다.
"집에 가기 싫은뎅."
"왜."
"엄마아빠도 출장갔고. 조 옆이 알베집이고. 여튼 별로예요."
그 말에 마크가 고개를 끄덕인다. 혼자있으면 외로워하는 아직 19살 청소년 답다고 생각한다.
"아저씨가 딱 내 남자친구 하면 좋겠당."
"아까부터 간본다 너."
"그냐앙. 아저씨는 엄청 멋있고 섹시한 형 만날 거 같구, 못먹는 감 찔러나 보는 마음으로다가~"
가벼운 위안의 말에 마크가 웃고는 단지 앞에 차를 세운다.
"잘가."
"아저씨두."
그리고는 위안이 마크의 볼에 쪽 하고는 뽀뽀한다.
"나 진짜 아저씨랑 연애하면 좋겠어."
그리고는 용수철처럼 튀어나간다.
마크는 잠시 멈춰 위안이 옆에서 손을 흔드는 걸 보고는 출발한다.
저런 꼬마애의 볼 뽀뽀에 두근거릴만큼 오래 연애를 하지 않았던가 생각하면서.
"장위안."
"어?"
알베는 차 뒷꽁무니에 손을 흔드는 위안을 봤다. 정확히는 차 안에서 어떤 남자의 볼에 뽀뽀를 하고 나오는 위안부터 방금 전의 장면까지. 저런 비싼차는 누가 타나, 차가 멈출때부터 계속 보던참이었다.
"뭐야?"
"...뭐?"
위안은 당황한것처럼 보였지만 곧 무슨상관이냐는 표정으로 뭐?에서 왜?라고 물으며 방어적인 팔짱을 낀다.
"너 원조교제해? 그것도 남자랑?"
"아 뭐래. 미-아."
위안이 등을 돌려 걷는다. 아니 어딜피해.
알베가 쫓아가 어깨를 잡는다.
"내가 봤는데? 이거 뭐지 진짜???"
"아니 무슨상관이신데요. 넌 너 연애나 신경써."
위안도 굳이 이런 상황에 알베가 시비를 걸자 짜증이 난다.
"연애? 너 연애해? 저 아저씨랑?"
"너한테 할 얘기 없어."
알베가 잡은 어깨의 손을 뿌리치고는 위안이 다시 걷는다.
알베는 잠시 휴- 하고 화를 삭힌다. 뭐지. 앞서 걸어가는 위안의 뒷모습을 보면서 알베가 우두커니 섰다.
왜 화났지? 남자랑 만나는 게 화날 일인가? 그건 따지자면 그렇지만, 알베는 스스로 개방적인 편이었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약자보호를 지향하며, 아니 이건 고. 친구들과 맥주를 한잔 하고 왔더니 머릿속이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1. 위안이 남자를 사귄다. 2. 위안이 게이일 수도 있다. 3. 난 게이를 혐오하지 않는다.
그럼 화날 이유가 없는데, 왜 화가 나는건지 스스로 조용히 생각하며 위안의 뒤를 따라 걷는다.
1. 위안이 커밍아웃하지 않아서 화가난다.
- 커밍아웃은 꼭 해야할 필요가 없다.
2. 위안이 연애를 해서 화가난다.
- 나도 연애를 한다.
알베는 도무지 자기가 화가 나는 이유를 찾지 못해 위안이 집에 들어간 뒤에도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린다. 난 위안을 어느정도 여동생을 보듯이 생각했고, 여동생이 남자친구가 생겨서 화가났다고. 음. 그런거라면 말이 된다. 기욤의 여동생과 몰래 사귀다 걸려서 기욤에게 주먹으로 맞은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런데도 왠지 화가난다고 생각하며, 알베는 위안의 집 벨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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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뒷편은 있읍니다. 쓰자마자 추가할거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