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게 피었던 꽃들은 어느새 소리도 없이 지고야 마는구나. 그저 소리도 없이 틔운 꽃을 숨기고야 마는구나. 날 사랑한 여인마저도 나를 떠나려 한다. 난 누구이며 무얼 했는가. 그리움만 짙게 묻어나온다. 수야, 나의 수야. 그리도 내가 미웠느냐. “그래서 내가 알지 못하게 간 것이냐...” 울음에 목이 매여 차마 말이 더 나오지 않았다. 실핏줄이 터져 벌겋게 충혈이 된 눈에는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분노도 원망도 그리움도. 소는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 잔뜩 끼인 먹구름이 소에 마음에도 내려앉은 듯했다. “왜 갔느냐. 말이라도 해주지. 왜 혼자 남겨두느냐. 왜.” 소의 목소리가 깊은 슬픔으로 떨렸다. 형태도 없는 슬픔는 허공으로 사라진 목소리처럼 쉽게 사리지지 않았다. 수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네 이름을 읊조리는 것밖에 없구나. # 평소와 다르게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뜨자 익숙한 하얀 벽이 보였다. 병원. 익숙한 얼굴. 엄마. 엄마. 눈물이 흘렀다. 이런 내 신세 때문도 자기만을 바라봤을 엄마 때문도 아닌 그가. 혼자 남겨진 그가 걱정이 되어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 미안해.” 그저 눈물만 쏟아내는 것이 하진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울음을 토해내도 단단히 엉킨 응어리는 나올 생각을 않고 있다.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울었다. 하도 울어서 목이 잠길 만큼 울면, 혹여 그가 들을까 하는 마음으로 펑펑 울었다. 이 모습을 안쓰럽게 여겼는지 친구가 미술관 티켓을 손에 쥐어주었다. “요즘 통 기운도 없고 울기만 울고..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혼자 정리할 시간도 있어야할 것 같아서.” 하진은 힘없이 웃어보였다. 고마워.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입을 끔벅였다. 친구는 됐다며 그저 손을 저을 뿐이었다. 하진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손에 쥐여진 티켓을 보았다. “예상했잖아. 언제까지 해수로 살 수는 없어. 넌 고려가 아니라 대한민국으로 다시 돌아왔어. 해수가 아닌 고하진이고,” 잠시 울컥하는 감정을 추스르곤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그는 없어.” 스스로를 찌르는 날카로운 말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보기엔 이것이 맞았다. 더 이상 이 세계에 없는 이를 안고 언제까지나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제는 정말 잊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영원히. 하진은 스스로에게 다짐을 받아내듯 생각하곤 곧장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을 보며 조금씩 감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꽤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 하진이 발길을 돌리려 한 순간 익숙한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 폐하. 하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미안해. 미안해. 혼자 둬서 미안해.” 그저 미안하다고 말하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고려에서도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뿐이었다. 무력감이 전신을 휘감아 도저히 서있을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기 전에 누군가가 하진을 감싸 안았다. “여전하구나, 너. 고려에서도 자신을 돌보지 않았어.” 낯익은 목소리에 하진은 고개도 돌리곤 얼굴을 확인했다. 폐하. 하진은 소인 것을 확인하자잠긴 목으로 연모한다 말했다. 고려에서 마음껏 할 수 없었던 그 말을 몇 번이고 되풀었다. 연모합니다, 연모해요. 말로는 다 할 수 없을 만큼이요. 목이 쉬고 갈라져 잘 들리지도 않았을 테지만 하진은 계속 말했다. 제 진심이 닿길 바라며. 그러자 소는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나 역시도 연모한다.” 수야, 나의 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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