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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아
난 안 늙을 거다
이렇게 물기 나는 채로 평생 살 거다
난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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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똑같은 사람한테 똑같은 수법으로 똑같이 당하면
그때 너 오제훈 나쁜 놈이라고 욕할 자격도 없어
그건 그냥 니가 멍청한 거거든?
아니면
니가 벌을 받고 있는 거던가
─
풍경 가득 푸른 잎이 출렁이고 시원한 소나기가 쏟아진 뒤
찌는 듯한 더위
매미 소리 귀가 따가울 쯤
무너질 듯 폭풍우 오고 나면
어느새 코끝 찡한 바람이 솔솔
너는 나와 함께 했던 시간 내내
어서 내가 지나가 주길
성큼 다음 계절이 다가와 주길 바라고 바랐겠지만
이것 봐
나는 그리 길지 않아
이렇게 찰나인걸
─
언니, 난 그 사람한테 항상
미안해
미안해 해준아
─
제가 주제넘지만 그쪽한테 충고하나만 하자면요
오제훈씨 인생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전 도통 모르겠지만요
전요, 외로워요
외로워서 누가 내 이름 한 번만 불러줘도 울컥해져요
밥 먹었냐는 그 흔한 안부 인사에도 따뜻해져요
스치기만 해도 움찔하고
마주 보기만 해도 뜨끔하고
그러다 떠나버리면 말도 못 하게 시려요
그런 저한테, 그리고 그쪽이 연락을 주고받는 수많은 여자들한테 이런 짓 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이 한번 실패한 뒤에 무엇도 가지려고 들지 않는다는 거 저도 알고 있어요
그치만 왜, 실패를 나아가는 성장판으로 삼지 않는 거죠?
저는요, 어릴 때 잠깐 만났던 남자한테선
마음 감추고 내숭만 떨면 아무도 내 진심 몰라준다는 걸 배웠구요
스무 살쯤 지겹게 싸워댔던 남자친구한테선
헤어지자는 말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어요
그리고 가장 오래 만났던 남자한테선
내 욕심 때문에 상대 진심 짓밟으면 벌 받는다는 거 깨달았어요
그 외에도 비 오는 날은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은 건지
와인은 어떤 게 비싸고 맛있는 건지
맥주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뭐고,
티셔츠의 핏은 어떻게 입는 게 이쁜 건지 조차
다, 모두 다 내 지난 연애를 통해 배웠어요
그리고 그쪽을 포함한
날 간만 보고 도망친 수많은 남자들한테선요
내가 상처받지 않게 치는 울타리가 다른 사람한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그런데 왜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결혼도 해본 오제훈 씨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거죠?
─
왜? 난 우습고 재밌었으면 좋겠는데
-
장례식이?
-
응 외국에서는 장례식이 엄청 유쾌하대
그 사람 좋은 곳으로 가라고 보내주는 의미가 있어서
다들 웃고 즐긴대
"안녕! 잘가세요, 한여름양. 가서 행복하세요."
엄청 빛났던 것 같은데
단숨에 초라해졌어
꼭 누가 불끄고 가버린 것 같아
분명 사방이 빛이었던 한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
내가 먼저 죽으면 언니가 좀 불러주라 내 구남친들
-
왜 불러서 뭐하게? 뺨이라도 한 대 치게?
고맙습니다.
이렇게 별거 아닌 저를 잠시나마 빛나게 해준 당신,
감사합니다.
─
헤어지자는 소리 함부로 하지마
너 그게 무슨 소린지는 알아?
그건 죽을 때까지 다신 보지 말자는 뜻이야
그러니까 니가 헤어져 하는 그 순간, 난 너한테 죽은 사람 되는 거라구
너도 나한테 그런 사람 되는 거고
사람이 사람 죽이는 일을 그렇게 쉽게 해서 쓰겠니?
─
결혼하자 우리
-
해준아 나.. 결혼 안 해
너랑은
나 욕심 많은 거 알잖아 난 편하게 살고 싶어
-
내가 너 불편하게 만들 거 같아?
-
둘 다 불안정한 직업에 둘 다 평범한 집안의 아들딸
둘 다 현재 가진 돈은 1억도 안돼
그래도 물론 불편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난 욕심이 많잖아
그보다 더 내 삶이 나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아마 네 옆에서 평생 불행할 거야
그래도 괜찮아?
-
하나 묻자
한여름, 너 나 사랑하긴 해?
─
난 지금의 내가 너무 거지 같아서
누군가한테 사랑받았던 일들이전부...
꿈같아
─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구겨서 버린 편지 속에
두 갈래로 찢겨진 사진 속에
평생 열지 않을 상자 속에
서랍의 끄트머리와 삭제된 메일함 속에
고함 한번 지르고 온 바닷속에
그리고 언젠가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
그러니
그곳에서 내가 가끔 울고 있더라도
나를 불쌍하다 생각하진 말아요
난 빛나고 아팠어
모두 네 덕분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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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너무 길게 남아 힘들었던 드라마
JTBC 드라마 페스타 단막극 <한여름의 추억>
한여름의 특별할 거 없는 감정들이
담담하게 풀어내는 추억들이 너무나도 대단할 게 없어서,
아마 너와 내가 살면서 언젠가 마주할 이야기일지도 몰라서.
이 드라마가 주는 씁쓸함과 쓸쓸함이
마냥 슬프지 않았다
살면서 스치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배우고,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변해가는 한여름이 곧
나 자신이고 너 자신임을 느낄 때
그래서 나 자신도 누군가에겐 한여름처럼 지나간 사람이었음을 느낄 때
마음에 남는 여운이 엄청나다
─
아주 작은 인연에서도 배울 것을 찾고,
진심과 가식을 구분할 줄 알며,
잘못한 건 반성하고 고치고 나아지는.
그렇다고 마냥 착한 사람은 아니고,
욱하기도 하고, 비굴하기도 하고,
예쁠 때도 있고, 못될 때도 있는 여름이가
부디 당신이었기를.
그래서 마음 안에 늘 살아 숨쉬기를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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