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미남
비요른 안데르센 (Bjorn Andresen)
1955년 1월 26일 (스웨덴) ~
슬하 1녀
1971년도 루카노 비스콘티 감독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를 통해 처음 배우로서 알려짐 사실 이 영화 자체가 꽤 지루한 편이라 대중적 흥행은 그리 거두지 못했지만, 이 영화에 등장한 비욘의 이미지는 희대의 미소년으로서 전설이 되어버렸음
유달리 일본에서 큰 인기가 있어서 일본을 2번 방문하며 음반을 내기도 함
일본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이나 오르페우스의 창의 유리우스의 모델이라고도 함
은하영웅전설이 실사화 되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역으로 가장 잘 어울릴 얼굴일거라는 찬사까지 있을 정도
아름다운 미소년 외모로 인해 게이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본인은 확고하게 부정하였음
한 번은 어느 호주 작가가 저서인 The Beautiful Boys에 그의 사진을 허락없이 표지로 사용하는 바람에 크게 분개한 적도 있음
작가의 말로는 그 사진을 찍은 사진사에게 허락을 받았다지만,
비욘은 사진을 사용할 때는 거기 담긴 사람의 허락을 받는 것이 상식이 아니냐며 항의했다고
한국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기네스북에 꽃미남으로 올라있다는 문구가 널려 있는데,
공식적인 인물정보 등에는 이런 자료가 전혀 없음
외국 사이트에도 이런 언급이 없는 걸 보면 기네스북 얘기는 사실무근일 가능성이 높음
애당초 기네스북이라는 물건 자체가 정량적으로 순위를 매길 수 있는 기록들만 주로 싣는 물건인지라 더더욱 사실무근일 것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나이가 든 지금은 음악교사를 하고 있다 함
뭐 곱게 늙었네, 미노년이라는 의견도 보이긴 하지만...세월은 어쩔 수 없다는 평이 더 많은 것이 사실..
알랭 들롱 (Alain Delon)
1935년 11월 8일 (프랑스)
본명은 알랭 파비앵 모리스 마르셀 들롱(Alain Fabien Maurice Marcel Delon).
1935년 11월 8일 프랑스 출생의 영화배우이자 전 지구적 꽃미남. 70년대 미남의 대명사. 원조 옴므 파탈
한국에서는 "아랑 드롱"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었음
영화 수입업자들이 생각없이 일본식 발음대로 표기하다보니 대중들도 이렇게 발음하게 된 듯
필름 누아르가 전성기였던 1970년대에는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외국 남자배우
1935년 11월 8일 프랑스 일드프랑스의 소에서 태어남
어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줄곧 계부 밑에서 자랐는데 사이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함
부모의 이혼과 모성애에 대한 애정결핍 등으로 학생 시절의 품행도 그렇게 좋지 않아서
학교를 여섯 번이나 옮겼지만 계속되는 비행으로 결국 중퇴했을 정도로 반항아에 문제아였음
17살엔 외인부대의 낙하산 부대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했고 전역 후에는 온갖 일을 다 해봤다고 함
과일시장 하역 인부부터 레스토랑 접시닦이에 뒷골목에서 건달 생활도 해봤다고 하는데 이때 조직폭력배에 발을 담근 듯
턱의 칼자국부터 이후 보디가드의 죽음까지 연관지어 볼 때 조폭연루설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보임
이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온갖 일을 하다가 1957년 Y.알레그 감독에게 발탁되어 "여자가 다가올 때"로 데뷔
이 전에 킹콩(1933년판),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유명한 미국영화 제작자
데이비드.O 셀즈닉(1902~1965)에게 발탁되었으나 이를 거절하고 프랑스에서 데뷔
이후 "아가씨 손길을 부드럽게"로 인기를 얻은 후 공전의 히트작 "태양은 가득히"로 세계적인 톱스타 반열에 오르게 됨
이후에도 수없이 리메이크 된 이 영화에서 알랭 들롱은 가난하지만 잘 생긴 남자 "톰 리플리"역을 맡았는데
다부진 몸과 여주인공 마리 라포레에게 키스하던 매혹적인 눈빛으로 전 세계 여성을 사로잡았음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머님 세대의 미남 배우하면 알랭 들롱이였음
외모만 잘생긴 배우가 아니라 연기력도 호평을 받은 편
워낙에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인지라 스캔들도 많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와의 스캔들
로미 슈나이더와 알랭들롱 59년 멜로 영화 "사랑은 오직 한 길"에서 만난 독일 영화계의 스타이자 "태양은 가득히" 에 카메오로 출연한 로미 슈나이더와 사랑에 빠졌지만 이후 결별 로미 슈나이더는 죽을 때까지 알랭 들롱을 잊지 못했다고 함 이후에도 브리짓 바르도, 미레이유 다르크, 마리안느 페이스풀과 연애를 했고 공식적으로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본부인 나탈리 들롱과의 사이에서 낳은 공식적 장남 안토니 들롱은 배우로 활동 중이며 네덜란드계 모델 로잘리 반 브레멘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과 아들도 연예계 준비 중이라고
나탈리 들롱, 안토니 들롱
로잘리 반 브레멘 또한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멤버였던 니코와의 사이에서 실제적 장남 크리스티앙 아론(아리)을 낳았음 그러나 이 사생아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아 니코는 아들로 인정받게 하려고 친자 인정 소송까지 벌였으나 알랭 들롱은 현재까지 절대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 그럼에도 정작 알랭 들롱을 가장 많이 닮은 자식은 이 사생아 자식이라는 것이 아이러니
니코
우울하면서도 차가운 특유의 매력과 싸늘한 미모로 이후에는 주로 느와르에 출연했으며 "프렌치 느와르"의 전성시대를 염 푹 눌러쓴 중절모, 깃을 세운 트렌치 코트를 입고 범죄자를 주로 연기했으며 이런 모습은 "시실리안", "암흑가의 두 사람" "아듀 라미", "볼사리노" 등에서 볼 수 있음 미남 배우의 대명사지만 로버트 테일러나 로렌스 올리비에 같은 귀족적인 미모와는 거리가 멈 그래서 그런지 대개 밑바닥 인생을 주로 연기했는데 그게 또 잘 어울렸음 젊었을때 뒷골목 건달 출신인것도 그렇고 외인부대 생활을 해서 그런지 기품이라던가 선량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미모혹자는 그를 두고 시궁창에서 핀 장미라고 평했음 나이를 먹은 뒤에는 영화 출연보다는 영화 제작과 복싱 프로모터로 활약했는데 2008년에 아스테릭스 : 미션 올림픽 게임에서 시저로 오랜만에 출연했음
외모에서도 신의 축복을 받았지만 목소리도 신의 축복을 받았는지 가수 제의도 자주 받았고
나중에는 미스 이집트 출신의 가수 Dalida와 "Paroles Paroles" 라는 곡의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음
우리 나라에선 무이자송으로 불리는 굴욕을 맛봤지만...
여담으로, 젊은 시절에 배가 고파서 레스토랑 앞에 우두커니 서 있으면 종업원이 그를 불러 공짜 밥을 먹여주기도 하고 옷가게 점원이 공짜로 옷을 주기도 했다고 함 젊은 시절의 미모를 보면 그럴법도. 젊은 시절엔 차가운 꽃미남, 조각 미남이었으나 현재는 미중년을 거쳐 미노년으로 진화
미모에 비해 인간성이 개그지인 것은 유명한 사실로 '젊었을 때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그녀들의 사랑이 나를 배우로 만들어줬다'고
말할 정도인데 속뜻은 '나를 사랑하는 여자들을 등쳐먹고 성공했다'는 의미
그가 거친 줄리엣 그레코, 로미 슈나이더 등은 모두 만났을 당시 알랭보다 훨씬 성공한 스타였음에도
무명 시절 알랭을 진심으로 사랑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나서 차였음
성공의 발판으로 삼고 나서 새 여자가 생길 때마다 전 여친을 차버리는 행각에도 불구하고
희한한 점은 그녀들 중 알랭 들롱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한 남자들이 여자들을 상대로 '나 나쁜 남자니까 좋아했다간 상처받는다'는 개드립 치기도 하지만
본인이 나쁜남자라고 자처하는 이런 놈들은 거의 대부분이 명확한 이로,
150% 여자들에게 주제 파악 못한다고 뒷담까이는데 비해 알랭 들롱에게 버림받은 여성들은
하나같이 그를 진심 사랑했고 잘 되길 빈다고 말하고 있음
이들 중 가장 비참한 케이스가 바로 평생 알랭에게 버림받고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죽은 로미 슈나이더
친구로라도 알랭의 곁에 남으려고 애쓰던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내 삶은 그를 잊지 못해 추락했다' 고 말했다고 함
(그래도 로미 슈나이더는 들롱과 결별 후에도 어느 정도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음
더 큰 문제는 들롱 이후에 찾아왔는데 2번의 이혼을 더 한데다가 결정적으로 아들의 사고사가 그녀의 마음을 무너뜨렸음
그녀는 결국 이러한 상처를 견뎌내지 못했음)
그야말로 원조 나쁜 남자이자 마성의 옴므 파탈
그리고 가공의 자기 포장과 언플 대마왕이기도 함
본인이 잘못해 놓고는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됐다고 어떻게든 정당화하는 자기 변호와 미화는 가히 수준급
또한 프랑스에서도 자신을 3인칭으로 칭하면서 '그는~ 알랭 들롱은~' 등으로 자신을 부르는 행각과
탈세 등으로 무지하게 까이면서도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내 자기 변호를 하고야 마는 남자
심지어 60년대에는 보디가드 살인 사건 용의자로 불려다니면서도 미디어와 공화국 대통령을
상대로 편지를 보내 온갖 거창한 말로 자신이 무죄임을 항변한 바 있음
그러나 그가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난 것은 어디까지나 수사 결과가 아니라, 막판에 결정적 증거가 사라진데다
사건에 연계된 권력층 때문으로 실제로는 구속 직전까지 고려했던 강도높은 수사가 진행됐을 정도로 유력한 용의자였음
게다가 수사가 중지된 것도 마피아가 경찰 내부에까지 압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을 정도
그야말로 얼굴에서부터 인생까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인생을 살아온 인간의 표본
한국방문전 프랑스 언론에서 "아시아방문하러 간다는데 거기서는 어떤 로 욕먹나 봅시다"고 보도..
역시나 방한시 하도 별난 성격파탄자라서 사람들이 통역가인 이다도시에게 저 사람 좀 진정시켜라,
같은 나라 출신이잖아 하니 이다도시가 도망치고 싶어했다고...
그나마 이다도시에게는 사랑 때문에 여기서 사냐는 등 그나마 좀진정은 했다나..
이후 프랑스 언론은 "역시나 알랭들롱의 행실은 유럽 밖에서도 돋보였습니다.지가 황제인줄 알았다네요"라 보도..
이혼한 부인 나탈리와 나탈리와 낳은 아들 안토니 들롱도 있는데, 이친구는 젊었을때는
"엄마 아빠의 못생긴점만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중년이 되자 그래도 아버지의 중후한 풍모가 외모에서 배어 나옴
할리우드에서 일하지만 그저그런 이류배우
안토니 들롱
참고로 그가 연기한 역할 중에 실제 알랭 들롱의 성격과 똑같은 캐릭터는 야망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냉혹한 청년 '톰 리플리'라고 함. 이것만 봐도 성질머리나 인간성은 ....
여담으로 알랭 들롱은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시상자이기도 했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Leonardo DiCaprio)
1974년 11월 11일 (미국)
조지(아버지 : 이탈리아계 미국인과 독일 혼혈의 미국인)와 이멀린(어머니 : 러시아계 독일인)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아들
이멀린이 디카프리오를 임신했을 때 미술관에 갔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 앞에서 엄마 배를 발로 차서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으로 지었다고 함CF나 TV 드라마 단역 등에 출연하면서 어린시절부터 방송 활동으로 연기를 시작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남다른데 재혼한 아버지의 의붓형제가 CF에 나오는 걸 보고 자극받은 것이 점이라고 함영화 데뷔는 1991년 B급 호러영화 크리터스 3으로 시작 물론 조연급이긴 하지만 진짜 어렸던 디카프리오를 만날 수 있음근데 생긴건 10대 초반 꼬마로 보이는데 이거 찍을때만해도 17살(…) 그런데 17살 꼬마가 벌써 이마에 주름이 있었음..본격적으로 디카프리오라는 이름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킨 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출연하게 된 1993년 '이 소년의 삶(This Boy's Life)'이라는 영화에서 계부 로버트 드 니로에게 학대 당하는 의붓아들로 출연하면서부터울다가 미친듯이 웃는 연기는 정말 소름 돋을 정도 다음 해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지적장애인 막내 동생 '어니' 역을 맡아 주연을 맡았던 조니 뎁을 위협하는 경지의 연기력과 외모로 순식간에 헐리우드 스타로 낙점받았음 실제로 지적장애가 아니냐는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이 작품으로 디카프리오는 각종 비평가 신인상을 수상하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오르게 됨이후 마약 빠는 10대 청소년의 방황을 가감없이 그린 바스켓볼 다이어리, 미치광이 천재 시인 랭보로 열연한 토탈 이클립스에 출연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꽃미남 이미지를 위한 초석을 다지고, 타이타닉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공식 세계 꽃미남으로 거듭나며 전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휘어잡았음특히 타이타닉이 긴 상영 시간과 거듭되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역대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음제임스 딘과 리버 피닉스에 이어서 10대들의 우상으로 추앙 받았음 하지만 타이타닉의 파워로, 그렇게 탁월한 연기력을 지녔음에도 얼굴만 잘 생긴 배우로 한동안 대접받는 것에 진력이 난 탓인지,한동안 공백기를 유지하다가 대니 보일 감독의 비치에 출연하여 비밀스러운 낙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리차드를 연기했음 오랜만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평가는 영 좋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태국 정부와 주민들로부터 피피 섬을 파괴하였다는 원망을 들었음이것을 계기로 디카프리오는 현재까지 환경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음그 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캐치 미 이프 유 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 등의 영화에서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인간상을 주로 연기함이후에도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른 영화인 블러드 다이아몬드나 레볼루셔너리 로드에도 주연으로 출연하는 등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뛰어난 편 연기력에 대한 비판도 쑥 들어갔음. 얼굴로만 영화를 찍었다면 남자팬이 없었을 것인데, 뛰어난 연기 때문인지 남녀노소 가릴것 없이 팬이 많음 하지만 2000년도 중후반에는 대놓고 오스카 상을 받을만한 작품만 골라 나오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듣고 있음 그리고 연기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던가 혹은 오버가 좀 심하다는 평도 간간히 듣고 있음 여담으로 갱스 오브 뉴욕에서는 연기에 힘을 너무 줬다며 까였는데 이건 팬들도 인정하였다고..그리고 인셉션의 경우, 이 영화에 나온 배우들은 전부 크게 주목받았는데, 정작 디카프리오 본인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음 혹은 디카프리오가 2000년도 중후반 즈음부터 연기했던 캐릭터들은 거기서 거기같다고 함또 특유의 앳된 목소리는 호불호가 갈리는데, 디카프리오가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하면 표정은 진지한데 목소리는 앳되서 몰입하기 힘들다는 평이 많음하지만 최근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언체인드에서 악역을 맡았는데 특유의 목소리나 웃음소리가 거슬리지않았음팬들도 레오가 극중 완벽하게 '캘빈 캔디'화 된것을보고 상당히 흡족해했다고토비 맥과이어와는 죽마고우인데 디카프리오가 세계적 배우가 되었을때 소속사에서는 토비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했지만 단호히 거부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음그 후 본인에게 온 스파이더맨 역을 거절하고 스파이더맨에 토비를 적극적으로 추천한 인물이기도 함2012년 크리스마스에 3D로 나온 위대한 개츠비에 함께 출연했음
토비 맥과이어와 디카 프리오
토비 맥과이어 말고도 디카프리오의 절친이라 하면 루카스 하스(인셉션 초반에 내쉬로 출연)가 있음 디카프리오의 파파라치 사진엔 늘 루카스가 보일정도 타이타닉으로 만난 케이트 윈즐릿과도 아주 절친한 사이 타이타닉 찍을 동안 아주 친하게 지내다가 타이타닉을 찍은 후, 디카프리오가 우울한 시기를 보내면서 연락이 끊겼는데 몇 년 뒤에 윈즐릿이 디카프리오의 생일을 기억하고 선물을 보내오면서 다시 친해졌음 하지만 2012년에 케이트에게서 디스당함 (뚱뚱해졌다고 독설날림)
또한 케이트 윈즐릿은 샘 멘데스 감독과 이혼후 세번째 결혼식을 올렸는데,결혼식장에 들어갈때 디카프리오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고 함
그렇게 많이 주목되진 않지만 할리우드에서 인맥과 신망이 두터운 배우
연애에 관해서는, 일단 확고한 이성애자 <토탈 이클립스>를 찍을 때 '폴 베를렌느' 역을 맡은 데이빗 듈리스(해리포터에서 늑대인간역)와 키스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찍은 직후 토했다는 설은 꽤 유명
타이타닉으로 확 뜬 이후 자신에게서 '잭 도슨'의 모습을 바라는 여성이 많다며 불만을 토로한 바 있음
금발 모델킬러 처음으로 모델 여친을 데리고 등장한 것은 1996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레드 카펫으로,그때부터 꾸준히 지첼 번천, 바 라파엘리, 블레이크 라이블리 와 사귐 디카프리오 본인도 장신인데(183cm~185cm 정도) 본인만큼 키가 크고, 모델이나 혹은 모델처럼 길고 늘씬한 몸매, 금발의 백인 여성을 좋아함이렇게 단정짓는 것은 지금까지 사귀어온 여성을 보면 이상형이 확고하다는 것을 정말 잘 알 수 있기 때문
카르멘 카스, 지젤 번천, 바 라파엘리
블레이크 라이블리, 에린 헤더튼
현재 여자친구 토니가른 (그러고 보니 거의 대부분이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들이네..) 데미 무어,클레어 데인즈나 흑인 모델 나오미 캠벨등의 예외도 있지만,대체로 모델,그것도 너무 다 원할 커머셜 모델 스타일말고 하이패션 쪽에서 선호할 개성있는 마스크의 모델들2011년 말부터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델 에린 헤더튼(무려 15살차이) 사귀다가 10개월만인 11월 초에 헤어짐결혼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하며 본인 말로는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여성을 찾고 있다고 함늘상 오만한 바람둥이로 그려지곤 하는 가십지들과는 달리 주변인들의 평가는 활달하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평하지만 절친에게조차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는다는 소리를 정도로 선을 긋는게 명확한 인물
디카프리오는 영화에 출연할 때마다 주변인을 카메오로 등장 시키곤 하는데 영화를 잘 보면 짤막하게 스쳐지나가는 디카프리오의 어머니를 볼 수 있음 어머니와의 정이 아주 돈독한데, 이 모자 사이는 정말 각별해서 신인배우 시절엔 레드카펫에 어머니와 함께 등장한적도 많으며 해외 홍보 투어시에도 어머니를 동반하였음2013년 내한때도 어머니와 함께 왔었음. 또 자신의 어머니만큼이나 외할머니도 굉장히 아낀다고 함이혼했지만 아버지와 관계도 친밀하게 맺어오고 있으며 2008년 이탈리아계 아메리칸들을 위한 재단(NIAF)의 특별상 수상때 아버지와 함께 공식적으로 참석하기도 했음
자신이 직접 영화사 "Appian Way"를 설립하여 에비에이터에서는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 환경 다큐멘터리 <11번째 시간>의 제작과 각본, 해설을 도맡아 했음 때문에 채식주의자이기도 함. 실제로 디카프리오의 트위터에 방문해보면 죄다 환경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오펀, 레드 라이딩 후드등을 제작하기도 했음 앞으로도 여러 영화에 제작에 참여할 예정이며, 영화감독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여러 동물의 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으며, 기부에도 손이 큰 유명인 중 하나사실 배우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원래 꿈은 해양 생물학자였다고 함사실 일본 애니메이션 팬이라 일본 방문 때마다 초합금 시리즈를 싹쓸이해가는 기행을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음 2012년에만 장고,개츠비,월가의 늑대 세편을 촬영하는 강행군을 펼친뒤 체력이 바닥이 났는지 잠정 무기한 활동중단을 선언이후 파파라치들에 의해 동료 연예인들과 마이애미에서 휴식을 취하는 디카프리오의 사진이 계속 올라왔음
2013년 3월7일 드디어 그가 장고의 프로모션을 위해 일본을 거쳐서 한국에 입국입국장에서 부터 많은팬들이 그의 사인을 받기위해 북새통을 이뤘고,리츠칼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쇼케이스를 가졌음 하지만 중후한 외모의 아저씨가 된 그에게 여성사이트들의 여성팬들은 20대 리즈시절땐 일본만 주구장창가더니 아저씨 다된 이제서야 오냐며 원망을 보냈더라는 후문여담으론 로버트 드 니로에 이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페르소나와도 같은 배우스콜세지 영화에선 거의 다 출연했을 정도할리우드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배우인데도 유독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만 상복이 없음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에 한국인 친구들이 많았다고 함 친구들 집에 놀러가서 김치를 먹기도 했다고그런 추억 때문인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김치라고 함디카프리오가 출연을 거절한 작품 중에는 현재 배우들의 등용문이 된 작품이 여러 편 있음 기획 단계부터 아예 디카프리오를 염두하고 만들어진 프라이멀 피어의 주인공 애런 역은 에드워드 노튼이 맡게 되면서 그의 놀라운 데뷔작이 되었고, 디카프리오의 출연작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역은 크리스찬 베일이 맡게 되면서 베일이 기존 아역배우 이미지에서 탈피해 성인배우로 등극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음영어발음이 미국 아나운서만큼 정확한 편 여담으로 웃음소리 혹은 환호소리는 "워호! 옷호호호~"...손발이 크고 못생겨서 콤플렉스라고그래서 타이타닉에서 로즈의 누드 그림을 그려주는 장면에서 제임스 카메론이 실제로 그림을 그리며 손 대역을 맡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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