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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신
남양사람으로 원래 익주출신은 아닙니다. 젊은시절 유표 휘하에서 관직을 역임하며 형주일대 여러 군현을 거쳤습니다. 208년 조조의 남하시에는 자귀를 지키고 있었는데 조조와의 전투를 회피하고 서쪽으로 달아나 유장 휘하에 들어갑니다.
유장은 그를 성도의 현령으로 임명했는데 유능한 일처리로 유장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213년 유비가 면죽으로 침공해 오자 유장의 명을 받고 유비를 저지하러 출병했지만 거꾸로 병사들을 이끌고 유비에게 투항해 버립니다.
이때 비장군 작위를 받았고 익주가 평정되고 나서 건위태수, 홍업장군으로 임명됩니다.
2. 촉과(蜀科)
유비는 익주를 점령한후 국가 체계를 갖추기 위한 일환으로 제갈량에게 법령을 제정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 법을 촉과(蜀科)라고 하는데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제갈량을 필두로 법정, 유파, 이적, 이엄입니다.
제갈량, 법정, 유파, 이엄과 함께 <촉과蜀科>를 만들었다. 촉과의 체제는 이 다섯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적전-
이엄이 익주지방의 사무를 잘 안다는 점도 고려했겠지만 유비의 중신으로 그만큼 능력이 있었다는 뜻이죠.
3. 한중전 당시 행적
(218년에) 도적 마진, 고승등이 모반하여 수만명을 모아 자중현으로 진격했다. 그 당시 유비는 한중에 있었고, 이엄은 다시 병사를 징발할 수 없었다. 단지 그 군의 군사 5천 명을 이끌고 토벌하려 가서 마진과 고승등의 머리를 베었다.
잔여세력들은 뿔뿔히 흩어져 다시 민적으로 회복되었다. 또 월수 만적의 우두머리 고정이 군대를 파견하여 신도현을 포위하자, 이엄은 기병을 이끌고 달려가 구원하여 적은 달아났다. -이엄전-
유장이 평화롭게 다스리던 익주를 유비가 박살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유장 시절 익주는 중원에서 흘러들어온 동주병, 토착 호족, 북서쪽의 강족과 저족, 남쪽의 만이 등이 어우러져 굉장히 혼란스럽던 땅이 었습니다.
그런 혼란에 일익을 담당하던 불온 세력들이 중앙에서 강력한 리더쉽으로 억누르던 유비가 자리를 비운틈을 타서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이엄은 한중대전 동안 후방에서 기동대를 이끌고 그런 세력들을 진압하거나 쫓아내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후방에서 단독군세를 이끌고 수만명 단위의 반란 세력들을 소탕하는 일을 아무한테나 맡길리는 없죠. 유비는 이때의 활약을 보고 그를 탁고유신으로 지명할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4. 상용공략
(219년)여름, 조공은 과연 군을 이끌고 돌아가니 선주가 마침내 한중을 차지했다. 유봉, 맹달, 이평(이엄)등을 보내 상용에서 신탐을 공격했다. -선주전-
이평은 이엄의 바꾼 이름으로 제갈량이 북벌에 종사하던 230년경에 개명했습니다. 219년이면 아직 이름을 바꾸기 전이지만 이평이란 이름의 다른 인물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후대에 정사를 쓴 진수가 이엄대신 그냥 이평이라 적은 모양인데 후방에서 불온 세력들을 토벌한 직후 북상해 유비군 본대와 합류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5. 탁고유신
탁고란 '고아의 장래를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함'이란 뜻으로 탁고유신은 어린 황제의 후사를 부탁한 신하를 말합니다.

(222년) 유비는 이엄을 불러 영까지 오도록 하여 상서령으로 임명했다. 223년에 유비의 질병이 악화되자, 유비는 제갈량과 함께 어린 유선을 보좌하라는 유조를 받았다. 이엄을 중도호로 임명하고 안팍의 군사를 통솔하며 영안에 주둔하도록 하였다. -이엄전-
이후로도 직위는 계속 상승해 223년 광록훈(제사·조회·연향을 맡아보던 벼슬)에 가절을 받았고 226년 전장군에 임명됩니다.
제갈량은 1차 북벌을 준비하면서 이엄에게 후방을 맡겨 그를 강주에 주둔시키고, 진도(조운에 버금갔다는 기록이 있어 팬이 꽤 많았던 인물이죠.)등을 영안에 주둔시켜 모두 이엄이 통솔하게 했습니다.
6. 구석을 받으라?
이엄은 선제 유비로부터 승상 제갈량을 보좌하여 어린 유선을 보좌하라는 유명를 받았음에도, 유선 즉위후 제갈량으로 하여금 조조가 받았던 것과 같은 구석(九錫)을 받고 왕을 칭하라 권합니다.

이건 다른게 아니라 찬탈을 권한겁니다. 제갈량이 왕이 된다면 그를 역도로 몰아 죽이고 자신이 조정통수권을 장악한다는 계획이었는지, 아니면 제갈량이 왕이 되고 장차 황제가 되면 자신은 신생 제갈왕조의 일등 공신이 되어 영화를 누릴수 있다는 계산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실 부흥과 촉한 성립에 대립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는 자만이 할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쇼킹한 사실이죠..)
그래도 이때가지 함께 유조를 받든 이엄을 믿고있던 제갈량은(탁고유신이라 내몰고 싶어도 어렵지만)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나와 족하는 서로 사귄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서로를 알지 못합니까. 하지만 족하께서 나라를 진흥시킨 일로 나를 가르치고 상규적인 규제에 얽매이지 말라고 타이르시니 더는 침묵하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본래 동쪽의 하찮은 촌부였으나 선제께 잘못 임용되어 직위가 더없이 높은 신하가 되었고 녹봉과 상은 천만을 헤아려 받고 있습니다.
지금 조씨 도적들을 토벌하는 일도 이룩하지 못했고, 지기들에게도 아직 보답하지 못했거늘, 감히 제환공, 진문공과 영광을 비기고 갑자기 스스로 고귀하고 높은 자리에 오른다면 그것은 도의가 아닐 것입니다. 위를 멸하고 조예를 참하며 폐하가 옛 서울로 돌아가신다면, 나는 동료들과 함께 고귀하게 될 것이니, 그때는 구석이 아니라 십명(十命)이라도 받을 것입니다."
십명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석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받을 건데 뭐하러 지금 그런 영예를 구하겠는가 하고 농담삼아 전한거죠.
7. 여러가지 막장행각
230년 조진이 대군을 이끌고 남하해 촉을 공격할때 제갈량이 2만 병력을 이끌고 증원군으로 오라는 명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머뭇 거리다가, 제갈량이 경험없고 미숙한 이엄의 아들 이풍을 강주도독으로 임명하자 그때서야 한중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조진은 이미 퇴각한 뒤 였습니다.
또한 촉의 군부 2인자인 자신에게 독자적인 관부(府)가 없다며 제갈량이 맡긴 군량수송 임무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제갈량이 한중에 있는 자신의 승상부 업무를 맡긴 다음에야 수송임무를 받아들였습니다.
익주 동부의 파, 파동, 파서, 탕거, 부릉. 5개 군을 따로 떼어 파주라는 이름의 주를 창설하고 자신을 파주자사로 임명해줄 것을 요구한 적도 있는데, 북벌에 요구되는 군정의 일원화에 어긋나는 처사였기에 제갈량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권세욕에 눈이 멀어 자꾸만 엇나가는 이엄을 타이르기 위해 제갈량이 쓴 글이 남아있는데
"나는 80만 곡을 녹으로 받으나 지금은 남은 것이 없고, 첩에게도 신분에 어울리는 옷이 없소."
8. 북벌을 말아먹다.
231년 우여곡절 끝에 제갈량은 북벌에 나서고 이엄은 한중에서 군량을 조달하게 됩니다. 같은 탁고유신으로 이엄을 끝까지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 었으나 이엄은 제갈량의 그런 비둘기 같은 믿음에 뱀같은 욕심으로 답했습니다.
이엄은 태업을 일삼다가 장마에 잔도가 상당부분 침수되는 것을 내버려뒀고 길이 파손되었다는 핑계를 대며 군량을 보내지 않아, 결국 촉군의 퇴각을 초래했습니다. 사마의와의 정면대결에서 승리하며 잘 나가던 북벌은 또다시 엉뚱한곳에서 뒤통수 얻어 맞고 실패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엄은 이를 제갈량의 탓으로 돌려 그를 실각시키고 자신이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 했습니다.
뻔뻔하게도 "군량이 아직 충분한데 어찌하여 돌아옵니까?"하며 놀란척 하고는 유선에겐 "우리 군대가 거짓으로 퇴각한 것은 적을 유인하여 함께 싸우려는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제갈량은 이엄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두가지고 있었으므로 이후 이루어진 조사에서 이엄이 군량이 상당 부분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침수되었다 속인 사실이 드러났고 이는 드물게도 제갈량의 분노를 폭발시켰습니다.
9. 실각
앞뒤 볼것도 참수해야 정상인데 탁고유신에 군부의 실력자인 이엄이라 그렇게는 못했고
"선제께서 붕어하신 뒤로 이평은 임지에서 작은 은혜를 베풀기를 원했고 자신을 지키고 명예를 추구하며 나라의 일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북벌할때 이평의 군사들에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평은 이 일을 직접 하기에는 어려우며 올 의사가 없었으므로, 다섯개 군을 차지하는 파주자사로 임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작년에 신이 서정할 때 이평에게 한중을 관리하도록 했는데, 이평은 사마의(위의 군부2인자) 등은 관부(府)를 설치하여 관리를 임명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평은 천성이 비열하여 출병할 기호를 틈타 신을 핍박하여 자신에게 이익을 얻도록 하려고 했음을 알았습니다.이 때문에 표를 올려 이평의 아들 이풍이 강주를 관리하도록 하고 융성한 대우를 해줌으로서 군무를 완수토록 했습니다.
이평이 한중에 있을때, 모든 사무를 그에게 위임하자 신하들은 지위가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모두들 신이 이평을 너무 우대한다고 질책했습니다. 그때는 국가의 대사가 아직 확정되지 못했으며 한실이 기울어 위험하였으므로, 이평을 질책하기보다는 그를 칭찬하는 것이 차라리 나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이같이 신은 이평의 속셈이 다만 명예와 이득을 추구할 따름인 줄로 여겼사온데, 이평이 이처럼 본말을 전도할 줄은 진정 생각 밖이었습니다. 만약 이 일을 제때에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화를 빚어낼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신이 불민한 탓이오니 더 말씀을 올린다면 신의 잘못만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엄전-
자아비판 곁들여 가며 군부 핵심인사 20여명이 연명으로 탄핵 상소를 올려 이엄은 폐서인이 되어 자동에 유폐되고, 아들 강주도독 이풍은 중랑장으로 좌천되었습니다.
10. 죽음
이풍은 비록 좌천은 당했지만 재산을 몰수당하지는 않았고, 제갈량 직속으로 승상부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제갈량은 이풍에게 편지를 보내 그를 위로하고 국사에 힘쓸것을 권했으며 일부러 성도나 강주가 아니라 한중에 있는 승상부에 두어 가까운 자동에 있는 아버지 이엄을 보살피도록 배려했습니다.
낮두꺼운 이엄도 그런 마음씀씀이에 차마 제갈량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못했고 언젠가 그가 다시 자신을 써줄것을 기대하다 234년 제갈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다 병들어 죽었습니다.
11. 맹달에게 보낸 글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자주하시는 분은 잘 아시겠지만 상용은 형주, 사예, 익주의 3주로 통하는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그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유비는 한중을 얻자마자 유봉, 맹달등을 보내 그곳을 함락시켰고 조비가 맹달을 두텁게 대했으며 장완은 상용을 급습한다는 계책을 내놓았죠.
상용일대 호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그곳을 지키던 맹달은 자신을 지지해주던 조비와 하후상, 환계등이 모두 사망하고 입지가 좁아지자 촉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그 작업에 동원된게 맹달과 절친했던 이엄으로 제갈량과 이엄이 각자 맹달에게 글을 보내 그를 회유했는데 내용은 짧으나 두 사람 인품의 우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제갈공명과 함께 유비의 부탁을 받아 책임이 막중하오. 좋은 동반자를 얻고 싶소. -이엄-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마치 물흐르듯하며, 해야할 일과 버려야 할 일을 걱정할 때 주저함이 없는 것이 정방(이엄의 자)의 성격입니다. -제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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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께서 윗옷을 반쯤 벗은채 계셨다는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