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스케이터다
또래 친구들이 '학생'이라고 불릴 때
나는 '피겨 스케이터'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 자기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조차 모르는 아이들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고.
꿈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나를 독하게 단련해왔는지를 떠올려 보면
매 순간 행복할 수만은 없었다.

"5년 후는 2010년 이니까 벤쿠버 올림픽에 나가서 경기하고 있겠죠
더 열심히 해서 한국 피겨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고 싶어요."

경기가 시작 되는 빙판 위에서, 나는 혼자다.
그 순간에는 모든 것들이 어둠 속으로 밀려가버리고
덩그러니 나만 남는다.

난 훈련을 하다보면 늘 한계가 온다.
어느땐 근육이 터져버릴 것 같고
어느땐 숨이 목 끝까지 차 오르며
어느땐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다가온다.
이런 순간이 오면 가슴속에 무언가 말을 걸어온다
이만 하면 됐어
충분해
다음에 하자
이런 유혹에 포기하고 싶을때가 있다.
하지만 이때 포기한다면, 안한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럼 그렇지...."
"우리 같은 환경에서는 힘들어."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는 말 들이다.
또 나를 응원하고 도와주시는 분들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경을 탓하며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 환경을 모르고 시작한 것이 아니니까.
아쉽고 불편하고 때로는 화가 날 정도로 내 처지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무언가를 탓하며 주저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불편하고 험난한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기꺼이 가는 것.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
엄마는 가끔 힘들어 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탄탄히 다져진 길이 물론 더 쉽고 편하겠지
하지만 없는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만큼 보람되지는 않을거야."

"앞으로 또 닥칠지 모르는 일들이지만 큰 두려움은 없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을 겪어왔고 우습지만 이젠 너무 익숙해서 무덤덤한 것도 사실이다.
무언가가 아무리 나를 흔들어댄다 해도 난 머리카락 한 올 흔들리지 않을 테다."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 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고 한다.
물을 끓이는건 마지막 1도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1분을 참아내는 것이다.
이 순간을 넘어야 그 다음 문이 열린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수있다.

실수를 해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머지를 잘 해내면
그 만큼의 점수를 받는다는 걸 깨닫게 됐다.
후회와 미련을 두는것은 정말 '미련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
뒤를 돌아보고 자책할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는게 중요했다.
남들은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데 내가 왜 늦게 출발했을까 자책하는건 소용없는 일이니까.

그저 꿈꾸는 것만으로는 오래 행복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꿈을 이루고 싶었다.
승부욕이 강한 나는 일등을 하고 싶었고
그것이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의 경쟁상대는
'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먹고싶은걸 모조리 먹어버리고 싶은 나
조금 더 자고싶은 나
친구들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나
아무 간섭도 안 받고 놀러다니고 싶은 나
하루라도 연습 좀 안 했으면 하는 나
내가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대상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나'였던 것이다
이런 나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래 즐겁게 하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이유 중 절반 이상이 실력유지가 힘들어서였다.
운동선수뿐 아니라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 걸음 나아가는 것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실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최고와 완벽에의 도전하지만 늘 성공률 100퍼센트를 유지할 수는 없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니까.
나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때문에 늘 완벽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완벽에 가까워 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중요한것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아니라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느냐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한번 더 도전해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우연을 가장한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을 붙잡아 행운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처음부터 겁먹지 말자
막상 가보면 아무것도 아닌게 세상엔 참으로 많다

언제나 나의 꿈은
언제나 바보 같다
꿈은 꿈일 뿐인데
바보 같이 또 꿈을 꾼다
엄마는 더 바보다
내가 넘어지는 소리도 못 듣고
내가 넘어져 내민 손도 못 본다
아무리 엄마를 불러도 엄마는 앞만 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울지 않게 됐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 엄마가 운다.

수천번의 점프로 휘어진 발목
수만번의 회전으로 뒤틀린 허리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독하게 나를 단련해왔는지를 떠올려 보면 마냥 행복할 수 만은 없다
하지만 다시 7살로 돌아가더라도 피겨 스케이팅을 선택할 것 같다
피겨 스케이팅은 내 인생의 전부다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신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라고 한다.
기적을 바라기만 하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적은 신이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노력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 시즌에서 내가 거둔 성적은 부상과 싸우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내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나를 기특하게 여긴 신께서 보내주신 선물이 아닐까.

내가 부당한 점수 때문에 흔들려서 스케이팅을 망쳤다면
그것이야말로 나 스스로 지는 결과가 아니었을까.
나에게 닥친 시련을 내가 극복하지 못했다면
결국 내가 패하기를 바라는 어떤 힘에 스스로 무릎을 꿇는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지지않았다.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결과는 받아 들여야 한다.
끝이 났으니 끝이라 생각할뿐
경기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미련이 없다.
-소치올림픽 인터뷰-

"나는 성공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꿈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훌륭한 선수, 노력하는 인간 '김연아'로 기억되고 싶다."








출처 : 김연아의 7분 드라마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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