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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9년 전 (2014/9/29) 게시물이에요







공룡이 살던 시대는 중생대 트리아스기에서 시작해서 쥬라기와 백악기에 걸쳐 있으며

이후에 공룡은 사라집니다.

트라이아스기 2억 3000만년 전에서 1억 8000만년 전까지 5000만년간의 기간으로 최초의 공룡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오랍토르,헤레라사우루스,플라테오사우루스,루펜고사우루스,코엘로피시스 등
쥬라기 1억 8000만 년 전부터 백악기 전의 약 1억 3500만 년 전까지의 4500만년간의 기간
공룡들의 수가 많아지고 크기가 거대해집니다. 물론 매우 작은 것도 등장합니다.
알로사우루스,브라키오사우루스,오레니톨레스테스,아파토사우루스,스테고사우루스,콤프소그나투스
디플로도쿠스,카마라사우루스,딜로포사우루스,케라토사우루스 등
백악기 약 1억 3,500만 년 전부터 약 6,500만 년 전까지의 7000만년간의 기간 입니다.

인간이 탄생된 것은 훨씬 후인 신생대 제3기입니다. 따라서 인간과 공룡은 공존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온것일텐데요 그렇다면 이런 역사적 자료들은 무엇일까요..

 






 

잭 , 1998, p.132).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미국 남서부의 암석 그림에 대한 권위자인 프란 바네즈(Fran Barnes)는 산 라파엘 스웰(San Rafael Swell)에서 백악기의 날아다니는 파충류인 익룡(pterosaur)과 매우 비슷한 암벽 그림을 보고했다. 이 그림은 한 쪽 날개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2.1 m 정도이고, 어두운 적색 염료로 그려져 있었다. 프리몬트(Fremont) 문명의 인디언들이 AD 700~1250 년 사이에 스웰(Swell) 지역에서 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검은 용의 협곡(Black Dragon Canyon)’ 이라는 이름도 머리에 볏(headcrest)과 커다란 날개를 가진 파충류를 닮은 암벽그림에서 유래했다. (Swift, Dennis, 'Messages on Stone,' Creation Ex Nihilo , vol. 19, p. 20). (참조 : 유타주에 프테로사우르스와 거인의 암벽화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474)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느브갓네살 왕 통치시절인 BC 600 년경, 바빌론의 조각가는 이쉬타르 문(Ishtar Gate)과 관련된 건축물에 동물의 모습을 새겨 놓았다. 세월이 흘러 AD 1887년 독일의 고고학자인 로버트 콜드웨이(Robert Koldeway)가 그 문을 재조사할 때 청색 유리로 덮여진 벽돌과 맞부딪치게 되었다. 여기에는 사자, 난폭한 황소(칼데아어(Chaldean)로 rimi 또는 reems), 기묘하게 목이 긴 용(sirrush)들이 줄을 져서 그려져 있었다. 사자와 황소는 그 당시 중동지역에서도 존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 바빌론 사람들이 그렸던 용처럼 생긴 동물은 도대체 어떤 생물체였을까? 외경(Apocrypha)에 ‘Bel and the Dragon’의 책에는 같은 단어 ‘sirrush’ 라는 동물이 등장한다. 거기에 기록된 것들과 발굴된 벽에 그려진 형상 모두는 공룡인 용각류(sauropod)를 묘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지금 베를린의 보더라시아티스케 박물관(Vorderasiatisches Museum)에 보관되어 있다. (Shuker, Karl P.N., 'The Sirrush of Babylon,' Dragons : A Natural History , 1995, pp. 7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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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수마트라 섬의 사람들은 머리에 볏과 긴 꼬리와 긴 목을 가진 생물체에 관한 여러 그림들을 그려 놓았다. 동물들 중 몇은 하드로사우르스(hadrosaurs)와 닮았다. 고대 인도네시아인들에 의해 사냥되고 있는 동물을 그린 이 특별한 그림은 (부다페스트 민족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음) 놀랍도록 코리토사우르스(Corythosaurus)를 닮은 생물체를 묘사하고 있다. (Bodrogi, Tibor, Art of Indonesia , plate #10,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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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BC 3300년 경의 메소포타미아인의 원통 인장에 새겨져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의 동물들은 아파타사우르스(Apatasaurus)의 모습을 조각가가 새겨놓은 듯하다. 그림과 아파타사우르스는 매우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다리와 발은 다른 어떠한 동물보다 용각류(saurapods)를 묘사한 것 같다. 가장 큰 차이는 머리 부분이다. 가장자리 주름 또는 귀 모양의 연골 모양은 정확하게 그려졌을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골격으로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집트인 화가는 근육조직을 매우 현실주의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는 이 그림의 모델을 확실히 용각류 공룡으로 했을까? (Moortgart, Anton, The Art of Ancient Mesopotamia , 1969, plate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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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소 아시아 지역(터키)에 위치한 카리아(Caria)로부터 나온 항아리(urn) 이다. 이 유물은 BC 530 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그려진 동물은 바다 파충류인 모사사우르스(mosasaurus)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바다괴물 뒤에 있는 동물은 바다표범이고, 문어는 돌고래처럼 보이는 것과 같이 바다괴물 아래쪽에 있다. 두터운 턱, 거대한 이빨, 큰 눈, 그리고 지느러미 같은 발은 모사사우르스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몇몇 모사사우르스 종은 카리아 항아리에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눈 뒤에 지느러미가 부착된 것과 같은 머리볏을 가지고 있다. (described in Thomas H. Carpenter, 1991 book Art and Myth in Ancient Greece : A Hand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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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으로부터의 관심을 끄는 다른 공예품은 1971년 지리팔코(Girifalco)라는 작은 마을에서 홍수로 인해 산사태가 난 이후 발견되었다. 마리오 톨론(Mario Tolone)이라 불리는 한 법률가는 이 지역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톨론은 카리아 지역에서 고대 그리스의 칼라브리아(Calabria) 문명(적어도 3000년 전) 사람들이 만들었던 수백여 점의 많은 공예품들과 함께 공룡 모습의 공예품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였다. 위에서 볼 수 있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점토상(terracotta statue)은 18 cm 정도 길이로, 등 뒤에 골판(plates)들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놀랍도록 공룡과 유사하다. 골판들은 삼각형이고, 등을 따라 꼬리까지 계속 이어져 있다. 위에서 바라본 모습(아래쪽 그림)에서, 골판들은 마치 그 동물이 땅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이상하게 곡선을 그리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다리는 마치 엄청난 무게를 지탱해야하는 것처럼 크고 위태위태하다. 그것은 도마뱀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분명히 스테고사우르스(stegosaurus)를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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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내쇼날 지오그래픽스 지의 이슈는 Manshaat Ezzat 최초 왕조의 한 묘지에서 발굴된 화장용 파레트(cosmetic palette)에 새겨져 있는 동물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새겨진 목이 긴 생물체는 활처럼 휘어진 근육질의 목과 뚱뚱한 몸체를 포함하여 다른 고대의 공룡처럼 생긴 생물체들을 그린 그림들과 비슷하다.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다음 그림은 AD 200년경의 로마시대의 모자이크이다. 여기에는 두 마리의 목이 긴 바다 공룡이 그려져 있다. “거대한 공룡의 신비와 성경(The Great Dinosaur Mystery and the Bible)“의 저자 폴 테일러(Paul Taylor)는 그들을 물갈퀴가 있는 공룡인 타니스트로페우스(Tanystropheus)로 비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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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2세기 경에 그려진 또 하나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중 하나이다. 'The Nile Mosaic of Palestrina' 로 불려지는 이 그림은 에티오피아에서 이집트로 흐르던 나일강을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학자들은 로마에서 일하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출신의 화가이며, 지형학자인 드메트리우스(Demetrius)의 작품으로 믿고 있다. 상단부의 동물은 검은 피부의 전사들에 의해서 사냥되던 아프리카 동물로 보인다. 이 에티오피아인들은 공룡과 같은 동물을 추적하고 있는데, 의문의 파충류 위로 보이는 글씨는 그리스 문자인 'KROKODILOPARDALIS' 로 이것은 문자적으로 악어표범(Crocodile-Leopard)으로 번역된다. 여기의 이 그림은 다량의 모자이크 그림들 중 일부로서, 다른 그림에는 이집트의 악어, 하마 등 알려진 동물들의 모습들이 정확히 그려져 있었다. (Finley, The Light of the Past, 1965, p. 93.)

고대 마야인들이 남겨놓은 파충류 특성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새에 대한 조각이 멕시코의 베라쿠르즈 북동쪽 지역인 토토나카팡(Totonacapan)에서 발견되었다. 멕시코의 고고학자이며 저널리스트인 발굴책임자 볼리오(Jos-Diaz-Bolio)는 날아다니는 괴수(serpent-bird)의 조각은 (Taj의 폐허에 위치) 마야인들이 단지 상상으로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고대 마야인들이 살았던 1000년에서 5000년 전에 실제로 그들과 같이 살았던 동물을 묘사하여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그러한 괴수가 고대 마야 문명과 동시대에 존재했다면, 그들이 남겨놓은 조각은 진화론적 가설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특징을 가지는 동물은 대략 1억3천만년 전에 사라졌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Anonymous, 'Serpent-Bird of the Mayans,' Science Digest , vol. 64 November 1968, p. 1)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유사한 암벽 그림(petroglyph)이 아리조나주 하바수파이 협곡(Havasupai Canyon)에서 발견되었다 (사진은 DeLancy 박사에 의해 촬영됨). 오른쪽 그림에서 폴 테일러(Paul Taylor)는 이 고대의 그림과 에드몬트사우르스(Edmontosaurus)의 그림을 비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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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원주민의 전설에는 긴 목과 거대한 몸집, 지느러미 발을 가진 사경룡(plesiosaur)과 같은 생물체를 포함하여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호주 퀸즈랜드 최 북쪽에 쿠쿠 야란지(Kuku Yalanji) 원주민의 연장자들은 비가 많이 오는 숲 속의 물웅덩이에 사는 생물체인 야루(Yarru, or Yarrba)에 관한 이야기들을 말하고 있다. 위의 그림에는 플레시오사우르스와 매우 유사한 생물체가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위장관의 윤곽까지 그려져 있는데, 이 동물은 사냥되어서 도살된 적이 있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The Creation Ex Nihilo Technical Journal, Volume 12 (No 3), 1988, p.345) (참조 ; 호주 원주민들은 공룡을 보았는가?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2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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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인의 도장(seal)에는 가젤(gazelle)을 사냥하고 있는 거대한 익룡(pterosaur)이 새겨져있다. (Giveon, R., 'Scarabs From Recent Excavations in Israel,' Orbis Biblicus et Orientalis 83, 1988, p.70). 익룡의 잎(leaf) 모양의 꼬리 판(tail vane)은 명백하다. 긴 파충류의 머리 위로는 스카포그나투스(Scaphognathus)의 두 배는 되는 볏(crest)을 가지고 있다. 두 날개는 졸렌호펜(Solnhofen)에서 발굴된 람포링쿠스(Rhamphorhynchus) 화석에서 볼 수 있었던 독특한 주름잡힌 모습과 익룡의 갈고리 발톱(claw)을 보여주고 있다. 상세함의 정도는 가젤을 그려놓은 것도 비슷하다. 도장은 BC 1300~1150 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텔아비브 대학의 고고학 연구소에서 보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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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것으로, 베를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집트인이 새긴 조각상(statue)에는 발가락과 갈고리 발톱을 가진 다리, 세 개의 날개 발톱, prototagium (익룡의 화석 형상으로 알려진 팔 위쪽의 날개의 한 부분), 꼬리 판이 그려져 있다. 그 익룡은 매(falcon)를 사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스카포그나투스(Scaphognathus)의 치아 구조를 또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Goertzen, John, 'The Rhamphorhynchoid Pterosaur Scaphognathus crassirostris : A Living Fossil - Until the 17th Century,' 1998, ICC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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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Cambodia) 정글 깊숙한 곳에는 크메르 문명(Khmer civilization)이 남긴 아름다운 사원들과 궁전이 있다. 그러한 사원들 중 하나인 타 프롬(Ta Prohm) 사원은 돌 조각상들과 양각 부조(reliefs)들이 풍부하다. 이곳에 새겨져 있는 동물들은 우리들에게 친근한 것으로 원숭이, 사슴, 물소, 앵무새, 도마뱀 등과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한 기둥에는 공룡 스테고사우르스(stegosaur)처럼 생긴 동물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800년 전에 세워진 불교 사원을 장식한 예술가들이 어떻게 공룡처럼 보이는 생물체를 알고 있었을까? 서양의 과학은 단지 2 세기 전에 공룡의 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사진은 Don Patton이 제공하여 주었음)  

(참조 : 2006. 12. 27일. KBS News : 2006년 미스터리 사진 10선 : 800 여년 전 캄보디아의 한 불교 사원에 새겨져 있는 공룡. http://news.kbs.co.kr/article/news8/200612/20061227/1274793.html)

이집트에 살고 있는 날아다니는 뱀(flying serpent)에 대한 유럽인들의 보고는 1600 년대 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프랑스의 자연학자 프로스퍼 알핀(Prosper Alpin)은 1580년에 이집트의 매력적인 자연사를 기술했는데, 그는 날아다니는 뱀의 모습을 머리에 작은 피부 조각 같은 볏(crest), 손가락처럼 두꺼운 그들의 꼬리, 종려나무 가지처럼 긴 몸체, 나뭇잎 모양의 꼬리 등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Alpin, P., Histoire Naturelle de l'Egypte , tr. by R. de Fenoyl, 1979, pp. 407-409). 모든 형태들이 오늘날 화석을 재구성했을 때와 같았다. 프랑스에서 16세기의 것으로 연대가 측정된 나무판에 새겨진 그림은 놀랍도록 정확하게 익룡의 모습과 일치한다. 두 날개는 깃털 대신에 늑골이 있는 막(ribbed membranes)으로 분명히 나타나 있었다. 머리의 작은 볏은 눈 앞쪽에서 시작되었고, 분명한 꼬리 판(tail vane), 이집트인의 도장에서와 같은 골질의 볏(bony crest)의 뒤와 위쪽으로 두 개의 피부가 펄럭이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로좀지 힐(Gorozomzi Hills, Salisbury로 부터 25 마일 떨어진)에서 발견된 일련의 동굴 벽화에서는 놀라운 미스테리 동물이 발견되었는데, 벽화에는 인류가 태어나기 수천만년 전에 멸종한 20 m의 키에 30톤이나 나가는 브론토사우르스(brontosaurus)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 사람은 단지 BC 1500년경에 (200 여년 전까지도) 아프리카 로데시아(Rhodesia) 지역을 지배했던 원주민이었다. 그리고 전문가들도 이 원주민들이 다른 생물체들도 또한 그렸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것은 다른 그로좀지 힐 동굴 벽화에서 매우 정확하게 코끼리, 하마, 영양, 기린 등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미스테리 그림은 동굴이 있는 지역의 소유주인 베반 파커(Bevan Parkes)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파커에 의해서 발견된 암석 벽화의 미스테리와 더불어 다른 하나의 수수께끼는 춤추는 곰(bear)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과학자들이 아는 한도에서 곰은 아프리카에서는 결코 살지 않았다. (Anonymous, 'Bushmen-Paintings Baffling to Scientists,' Evening News, January 1, 1970, London Express Service, printed in Los Angeles Herald-Examiner , January 7, 1970.)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다음의 그림은 짐바브웨 (이전에는 Rhodesia) 북쪽, 므피카(Mpika) 근처 나치쿠푸(Nachikufu) 동굴에서 나온 암벽 그림이다. 거기에는 하얀색으로 세 마리의 긴 목과 긴 꼬리를 가진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Clark, Desmond J., The Rock Paintings of Northern Rhodesia and Nyasaland, in Summers, Rogers, Rock Art of Central Africa, 1959, pp. 28-29,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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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 년경 아프리카 말리(Mali)의 밤바라(Bambara)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철로 된 조각들(Iron sculptures)에는 목 주름(neck frill)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세 뿔을 가진 동물이 새겨져 있었다. 다음의 그림에서 가운에 뿔은 앞쪽으로 향해 있고, 목 주름은 동물의 등쪽으로 반쯤 이어져 있는 것이 케라톱스 계열의 공룡(ceratopsian dinosaur)인 카스모사우르스(Chasmosaurus)를 매우 닮아 있었다. 긴 꼬리, 웅크리고 앉아 휘어진 몸체, 펴진 다리 또한 케라톱스 계열의 공룡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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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에 로마시대 형태의 납으로 된 사람이 만든 유물들이 아리조나주 툭손(Tucson) 근처에서 발굴되었다. 데이비드 해처(David Hatcher)의 책 ‘북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의 잃어버린 도시들(The Lost Cities of North & Central America, p.331)에 기록된 것처럼 이 유물들에는 독특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특별히 한 자루의 칼에 분명한 공룡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그 칼은 아리조나 역사학회에서 지금도 보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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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판과 뿔을 가진 생물체가 카나다 온타리오주, 슈피리어호 주립공원의 미쉬페치우(Misshepezhieu) 지역 아가와 록(Agawa Rock)에서 크리 인디언(Cree Indian)의 그림이 발견되었다. 또한 오른쪽의 것은 나스카(Nasca) 문명의 것으로 보이는 한 개의 잉카유적지에 묻혀있던 돌(Inca Ceremonial Burial Stones)의 사진이다. 1571년에 스페인 정복자는 페루지역에서 이상한 동물이 그려져 있는 돌들의 발견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오늘날 1100 개 이상의 이러한 돌들이 카브레라(Javier Cabrera) 박사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1930 년대 초, 그의 아버지는 이카(Ica)의 수많은 페루인들의 무덤에서 이러한 부장품 돌들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러한 몇몇의 돌들에 공룡과 같은 모습의 동물들이 그려져 있는 것에 주목하였다. 오른쪽 사진은 지질학자 돈 패턴(Don Patton)이 수집한 하나의 'therapod stone' 이다. 리마(Lima) 대학을 은퇴한 카브레라 박사는 이러한 발견들이 과학자 사회에서 가치있는 것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신뢰성은 긴 목의 동물이 그려져 있는 도자기와 공룡처럼 보이는 동물이 반복적으로 수놓아져 있는 나스카 무덤(AD 700 년경)에서 나온 아름다운 벽걸이 융단(아래 왼쪽)이 리마 박물관에 전시되었을 때 강화되었다. 정말로, 이카의 돌들에 새겨져 있는 모습들은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체르카스(Stephen Czerkas)가 발견한 것과 유사하게 등에 주름을 가진 용각류(sauropod) 공룡을 나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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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견된 용각류 디플로도쿠스(diplodocid)의 피부가 찍힌(인상) 화석은 알려진 공룡들과는 매우 다른 외관임을 밝혀냈다. 화석화된 피부는 척추의 가운데 줄(row)이 있었고.... 몇은 꽤 좁았고, 다른 것들은 넓었으며, 더 원추형이었다.” (Geology, 'New Look for Sauropod Dinosaurs,' December, 1992, p.1,068) (참조 : 페루 고대 무덤의 공룡 예술품들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763)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1945년 고고학자인 줄스루드(Waldemar Julsrud)는 멕시코 아캄바로(Acambaro)의 변두리 지역인 엘토르 산(El Toro Mountain) 아래에 묻혀있는 점토로 된 작은 입상들을 발굴했다. 결국 33,000개 이상의 흙으로 구워진 조각상(ceramic figurines)들이 고대 츄피쿠아로(Chupicuaro) 문명(BC 800~AD 200)이 발달했던 지역에서 발굴되었다. 줄스루드 발견의 진위는 그 많은 토상들 중에 공룡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도전을 받았다. 1954년 멕시코 정부는 조사를 위해서 한 팀의 고고학자들을 파견했다. 1955년에 UNH의 인류학 교수인 헵굿(Charles Hapgood)은 광범위한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실시된 열발광 실험을 포함한 종합적인 조사를 수행하였다. 1990년에 또 한번의 조사가 멕시코 정부와 함께 일을 하는 고고학자인 닐 스티디(Neal Steedy)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그래서 줄스루드의 발굴품들은 많은 조사들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멕시코 정부는 암시장에서 몰래 이 유물들을 거래한 두 사람을 감옥에 보내기까지 하였다. 더욱이 공룡은 매우 기민하고 활발한 자세로 형상화되었는데, 최근의 과학적인 증거들과도 잘 일치하였고, 이것을 만든 사람들이 이 생물을 실제로 관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카의 돌에서와 같이 일부 용각류들은 분명한 등 주름(spinal frill) 을 가지고 있었다. (참조 : 멕시코 아캄바로의 공룡 조각상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462, 아캄바로의 점토상들에 대한 12명의 목격자들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2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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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년에, 저명한 보석 디자이너인 임마누엘 스타웁(Emanuel Staub)은 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부터 가나(Ghana)에서 얻어진 작은 일련의 금 조각들(gold weights)에 대한 복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것들은 동물학자들이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동물들의 모습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중 하나는 스타웁이 보았을 때까지 알려진 어떠한 동물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Shuker, Dr. Karl P.N., In Search of Prehistoric Survivors , 1995, p. 20). 그 동물의 뒷다리 부분(마치 두 발 동물과 같은)에 대한 독특한 사진으로, 이 수수께끼의 금 동물상(gold figurine)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적당한 위치에서, 스타웁은 이 신비로운 동물 조각이 놀랄 만큼 공룡을 닮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이 조각상은 오늘날까지 적도지역의 원시 늪지대에 살고 있다고 말해지는 용각류인 모켈레 므벰베(Mokele-mbembe)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여진다.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다음 그림은 나머(Nar-mer) 왕의 승리를 보여주고 있는 히에라콘폴리스(Hierakonpolis)로부터 나온 긴 목을 가진 용(dragon)을 그린 석판(slate)으로 된 파레트(palette, 갑옷의 겨드랑이 받이)와 살아있는 모습으로 여러 곳에서 표현된 한 쌍의 공룡처럼 생긴 동물을 묘사하고 있는 고대 파레트이다. (taken from p. 93 of Pritchard's book The Ancient Near East in Pictur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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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마니토 스프링(Manitou Springs)에 있는 한 박물관에는 이상하게 생긴 조각되어진 공예품이 있다. 그것은 볏을 가진 머리, 양쪽에 눈, 그리고 부리 모양의 입을 가진 대략 30cm 정도 되는 인디언의 주술 막대기(Indian prayer stick)이다. 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은 놀라우리만치 익수룡(pterodactyl)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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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슨족 방패(Saxon shield)에 그려져 있는 이 그림은 익룡(pterosaur)과 같은 생물체가 쉬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날개는 비늘같은 측면을 따라 뒤로 접혀져 있다. 이빨들로 가득한 긴 부리, 볏(crest), 명백한 꼬리 날개(tail vane) 등 모든 것은 너무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날아다니는 파충류 widfloga(멀리 나는 생물)는 색슨족에게 잘 알려져 있었고, 이 방패는 써튼 후(Sutton Hoo) 매장지로부터 출토되었다. 그것은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전시되어져 있다.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중세에 익룡처럼 생긴 동물을 묘사한 또 하나의 그림은 아타나시우스 키르허(Athanasius Kircher)의 1678년 책 ‘지구 아래의 세계(Mundus Subterraneus)‘에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은 너무도 상세해서 피터 웰른호퍼(Peter Wellnhofer, The Illustrated Encyclopedia of Pterosaurs, 1991, p. 20.)는 아마도 그 그림은 발견된 화석에 기초하여 그렸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것이 더 고대의 보고에 기초한 것처럼 보인다. 키르허의 책에 등장하는 빙켈리트(Winkelried)는 스위스에서 그의 정착 시절 초기에 용(dragon)을 죽였던 것으로 추정되어진다. 익룡과의 가장 명백한 해부학적 불일치(앞 다리)는 용을 묘사하기 위해서 최근의 추가되어진 것이었다. 1919년 스미스(G. E. Smith)가 쓴 책, ’용들의 진화(The Evolution of the Dragon)‘에 의하면, 고대 사람들의 견해는 뱀과 같은 몸체, 박쥐와 같은 가죽 날개, 그리고 두 다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앞 다리들은 16세기 까지 추가되어지지 않았다.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1496년에 영국 칼리슬의 주교(Bishop)였던 리차드 벨(Richard Bell)은 칼리슬 성당(Carlisle Cathedral)에 묻혔다. 그 무덤은 여러 동물들이 아로 새겨진 놋쇠(brass) 띠로 둘러져 있었다. 비록 중세 이후 그 위를 걸어 다녔던 무수한 발자국에 의해서 닳아져 있었지만, 공룡과 유사한 특별한 동물의 그림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새들, 개, 뱀장어 등의 사이에서 분명히 새겨져 있는 목이 긴 이들 두 생물체는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었다는 증거로서 간주되어야만 한다. (참조 : 벨 주교 무덤의 놋쇠 띠에 새겨져 있는 베헤모쓰!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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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룡은 고대 바빌론에서 살육되었다.

 

길가메쉬는 공룡을 죽였고, 전리품으로 그 목을 잘랐다. 고대 바빌론의 수메르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영웅 길가메쉬에 대한 이야기에는 공룡(dragon)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그는 그의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큰 백향목 나무들을 구하기 위해 먼 땅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는 50명의 용사들과 숲에 도착하였는데, 나무와 갈대를 먹고사는 파충류와 같은 거대한 동물을 발견한다. 이야기에는 길가메쉬가 그 동물을 죽이고 전리품으로 그 목을 잘랐다고만 간단히 전해지고 있다.1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2) 스칸디나비아에서 에드몬트사우르스 
 

한 오래된 전설은 큰 소와 같은 크기의 몸을 가진 파충류 같은 동물을 묘사하고 있다. 그 동물의 두 뒷다리는 길고 강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는 세계 도처에서와 같이 공룡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2


한 오래된 전설에는 큰 소와 같은 크기의 몸을 가진 파충류 같은 동물이 전해져 오고 있다그 동물의 두 뒷다리는 길고 강했다. 그러나 앞다리는 매우 짧았다. 그리고 턱은 비교적 컸다. 많은 공룡들 중에서 길고 강한 뒷다리에 비해 짧은 앞다리를 가진 독특한 공룡이 있다.3 또한 많은 것들이 큰 턱을 가지고 있다. 적합한 공룡의 예가 에드몬트사우르스(Edmontosaurus)와 이구아노돈(Iguanodon)이다.


 

(3) 트리세라톱스를 죽임으로 영예로운 이름을 얻게된 도시.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프랑스의 Nerluc 이라는 도시는 그곳에서 공룡(dragon)을 죽인 것을 기념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이 동물은 황소보다 컸고, 머리에 길게 뻗은 날카로운 뿔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다른 뿔을 가진  여러 공룡들이 있었다.


트리세라톱스(triceratops)가 한 예이다. 잘 알려진 오래된 과학책인 Historia Animalium 에는 1500년대 까지 공룡은 멸종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4 그러나 당시에 공룡은 매우 드물었고, 크기도 비교적 작았다고 기록되어있다.5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4) 1572년 이탈리아에서 관측됨. 

 

Ulysses Aldrovandus 라는 과학자는 이탈리아 북부의 농장 길을 따라 가다가 목격한 작은 공룡(dragon)에 대해 세밀하게 기록하여 놓았다.


Ulysses Aldrovandus 라는 과학자는 이탈리아 북부의 농장 길을 따라 가다가 목격된 작은 공룡(dragon)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하여 놓았다. 그 날은 1572년 5월 13일 이었다. 볼품 없고 극히 드문 그 생물체는 비교적 작아서 농부가 지팡이로 머리를 때렸을 때 죽어버렸다. 동물은 쉿소리를 내며 길 위로 나타나 농부의 황소를 놀라게 한 것 이외에 다른 일은 없었다. 과학자들은 죽은 시체를 받아서 몸을 측정하였고 세밀히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이 동물은 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하였다. 동물은 긴 목, 매우 긴 꼬리, 뚱뚱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의 파충류와 같은 다수의 이러한 동물들은 기본적인 서술들이 매우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6


*다음은 Aldrovandus (간혹 Aldrovandi 라고 불림)에 의해 기록된 상세한 설명중 일부이다.

  공룡은 1572년 5월 13일 처음 목격됐는데 뱀처럼 쉿소리를 냈다. 공룡은 Malonolta라 불리는    Dosius 근처 Master Petronius의 작은 숲에 숨어 있었다. 오후 5시경 카말두루스의 Baptista라 불리는 목동이 Bologna시의 외곽으로 1 마일 정도 떨어진 개인농장의 숲 근처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Baptista는 소가 끄는 수레를 뒤따라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가 무엇인가를 보고 멈춰 서버렸다. 그는 소를 발로 차며 계속 가라고 소리를 쳤다. 그러나 소는 움직이기를 거부하고 앞으로 나가지 않고 무릎을 꿇어버렸다. 이때 그는 쉿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 앞에 이상하게 생긴 작은 공룡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가지고 있는 나무지팡이로 머리를 때렸고 그 동물은 죽어 버렸다. 그는 이 파충류가 사람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용감히 머리를 들고 서있는 것에 당황했다. 그 동물은 분명히 파충류였고 그가 처음 본 형태였다고 말했다. 그 동물은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사람에게 해를 끼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작은 놈이었는데, 발달된 발톱과 이빨이 없는 것으로 보아 Aldrovandus는 아마도 어린 새끼였다고 믿었다. 시체는 단지 60cm 정도 이었다. 그 동물은 발을 사용하여 뱀처럼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그 동물은 뱀처럼 쉿소리를 내었고, 머리를 공중으로 바짝 들고있었다. 가느다란 목 둘레에는 흰색의 테를 가지고 있었다. 그 동물은 매우 긴 꼬리와 긴 목, 두터운 몸체를 가지고 있었다. Aldrovandus는 그 동물을 박물관에 잠시동안 전시해 놓았었다.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5) 중국에서 사육된 공룡들

 

몇몇 고대의 중국책들은 심지어 새끼들을 가지고 있는 공룡 가족들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 당시 중국의 왕들은 매우 특별한 경우 공룡들을 왕의 마차를 끄는데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수천의 공룡(dragon)에 관한 이야기와 사진들이 중국의 고대의 책들과 예술품들에서 발견되어지고 있다. 류(Yu)라고 불리는 유명한 중국 사람에 대한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거대한 전세계적인 홍수 후, 류는 중국 땅을 조사했고, 그것을 여러 부분으로 나눴다.


그는 바다로 흘러나가도록 수로들을 만들었고, 그것은 땅이 다시 살아나는데 도움을 주었다. 류가 새로운 농지들을 만들었을 때 많은 뱀들과 '공룡들(dragons)”이 습지에서 떠나갔다. 몇몇 고대의 중국책들은 심지어 새끼들을 가지고 있는 공룡 가족들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 당시 중국의 왕들은 매우 특별한 경우 공룡들을 왕의 마차를 끄는데 사용했다고 한다.7 고대 중국의 책에는 심지어 공룡의 피, 지방, 뇌, 타액을 의료용으로 사용했다고 까지 기록되어 있다.8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6) AD 900 년에 아일랜드에서 관측된 Stegosaurus.

 

아일랜드의 한 작가는 꼬리 위에 뒤쪽을 향해 나있는 날카로운 돌기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짐승을 만났음을 기록해 놓았다. 


그 짐승의 머리는 말의 머리 정도로 작은 크기였다. 그리고 강한 발톱이 있는 두터운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 모습은 공룡 Kentrosaurus나 Stegosaurus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 짐승은 꼬리에 날카로운 돌기, 두터운 다리, 강한 발톱, 긴 두개골을 가지고 있었다. 

 


(7) AD 900년에 아프리카와 아라비아에서 관측된 Ramphorhync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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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그리스의 탐험가 Herodotus는 고대 이집트와 아라비아에서 살았던 날아다니는 작은 파충류에 대해 기록하였다.


존경받는 그리스의 탐험가 Herodotus는 고대 이집트와 아라비아에서 살았던 날아다니는 작은 파충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동물들은 놀랍게도 작은 Ramphorhynchus와 같은 소리를 내었는데, 그들은 뱀과 같은 몸과 박쥐와 같은 날개를 가졌다. 많은 수가 부토 시(아라비아) 근처에서 살해되어졌다. 그는 척추 뼈와 늑골들의 퇴적더미들을 계곡에서 보았다고 하였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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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odotus는 이 동물들은 가끔 향내 짙은 숲에서 발견되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크기는 작았고, 여러 색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수가 유향나무 숲에 모여 있곤 했는데, 작업자들이 나무에서 과즙을 채취하려할 때에는 날아다니는 파충류들을 멀리 쫒아내기 위해서 냄새나는 연기를 피우기도 하였다.


그리스의 유명한 Aristotle도 이와 같은 생물체가 이디오피아에서도 존재했었다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유사한 동물이(90cm 길이) 인도에도 있었음이 지리학자 Strabo에 의해 기록되고 있다.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8) 짐바브웨의 익룡(Pterodactyls)

 

짐바브웨 북부에 사는 원주민들 사이에는 '콩가마토(kongamato)' 라고 불리는 이상한 날아다니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것은 새가 아니고, 박쥐와 같은 맨 날개를 가진 붉은 색의 도마뱀과 같았다. 날개 끝 사이의 거리는 1.2 ~ 2.1 m 정도였다.


과학자들이 살아있거나 멸종된 여러 동물의 사진들을 원주민에게 보여 주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콩가마토와 가장 비슷한 동물로 Pterodactyl 사진을 지적했다.  


테로사우르스(pterosaurs)의 많은 수가 홍수에 의해 죽었다. 여기에는 많은 수의 허약한 날아다니는 파충류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의 많은 화석들이 발견되어져 왔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모든 테로사우르스는 사라졌는가? 거의 확실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희망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과학자들은 소수가 아직도 살아있을 수 있다는 증거를 하나 가지고 있다. 짐바브웨 북부에 사는 원주민들은 '콩가마토(kongamato)' 라고 불리는 이상한 날아다니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것은 새가 아니고, 박쥐와 같은 맨 날개를 가진 붉은 색의 도마뱀과 같았다. 날개 끝 사이의 거리는 1.2 ~ 2.1 m 정도였다. 과학자들은 살아있거나 멸종된 여러 동물의 사진들을 원주민에게 보여 주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콩가마토와 가장 비슷한 동물로 Pterodactyl를 지적했다.  

이 동물들은 지운다 늪지(Jiunda Swamp)라고 불리는 매우 거대하고 울창한 늪지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자들은 다른 장소에서도 이와 같은 동물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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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날아다니는 파충류에 대한 보고는 유럽에서 앵글로-색슨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10


그리고 권위있는 보고서에는 1649년 말 스위스의 필라투스 산 근처에서 날아가는 파충류가 목격됐음이 보고되고 있다.11 또한 시옥스 인디안(Sioux Indian) 전설에도 천둥새(thunderbird)라고 불리는 날아다니는 파충류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 동물은 번개가 친 후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목격됐다. 그것은 인디언 이야기에 전해져 오고 있다.12  


 

 

 

 

1. 산타 크루즈의 바다 괴물 (1925년 발견된 공룡의 시체)

(http://www.genesispark.org/genpark/santa/santa.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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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플레시오사우르스(Plesiosaur)가 1925년 캘리포니아의 몬테레이 만(Monterey Bay)에 있는 무어스 해변(Moore's Beach, 지금은 Natural Bridges State Beach)에 떠밀려 올라와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목의 길이가 6 m (20피트) 정도 되었다. 몇몇 과학자들은 극히 드문 고래(beaked whale)의 일종이라고 하였고, 많은 사람들은 플레시오사우르스의 일종이라고 믿었다. 사체에 대한 철저한 조사 후 유명한 박물학자인 E. L. Wallace는 이 생물체는 고래가 아니며, 공룡인 플레시오사우르스가 확실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 공룡이 빙하에 보존되어 있다가 얼음이 녹으면서 사체가 노출되었다고 하였다. (얼음에 보존되었다는 기간이 수만년도 아니고 무려 최소 6천5백만년이다. 이 광대한 기간은 대륙이 갈라지고 산이 만들어졌으며 각종 새들과 온갖 포유류들이 태어났다는 기간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Randall Reinsted가 1975년에 쓴 책 Shipwrecks and Sea Monsters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또한 Monterey의 바다밑 협곡(Submarine Canyon)에 대한 논의를 실은 잡지 Skin Diver 지의 1989년 11월호에 게재되었다. 이 신비의 바다밑 협곡은 태평양쪽으로 수 마일이 뻗어있는데 잘 연구되지 않은 바다 협곡(chasm)중 하나이다.

 

 

 

2. 쥬이오 마루호의 그물에 올라온 사체

(http://www.genesispark.org/genpark/catch/catch.htm)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1977년 4월 쥬이오 마루(Zuiyo-Maru) 라는 일본 어선이 뉴질랜드 근해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 배의 그물에 거대한 사체가 걸려 올라왔다. 무게 1800kg 정도의 썩어가는 사체는 갑판 위로 끌어 올려졌다. 몇 장의 사진이 찍혀졌고, 지느러미(fin) 한 개가 남겨진 후 잡은 고등어를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 바다로 버려졌다. 목격자에 의한 사진은 공룡(plesiosaur)을 가리키고 있었다. 1977년 일본에서는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기념우표가 발행되었다. 1978년 연구에서 여러 과학자들은 이것은 단지 썩어가는 상어(basking shark)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러나 의문들은 계속 남았다. 관찰되었던 큰 뒷 지느러미들(large hind fins), 머리 앞에 콧구멍들을 가진 작고 단단한 머리, 부패되어가는 지방(decaying fat)의 존재, 붉은 살점(red flesh)들을 가지고 있는 점 등으로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은 그것을 사경룡으로 믿고 있다.

 


(이 사체가 상어인지 공룡인지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학계 내에서도 공룡으로 주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발표된 여러 편의 논문에는 공룡일 가능성이 높음이 다시 주장되고 있다 : New Zuiyo Maru Cryptid Observations Strong Indications It Was a Marine Tetrapod, John Goertzen, CRSQ Vol 38 No 1 pp 19-29 June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2001. : 홈페이지/ 자료실/ 화석/ 공룡에서 번역된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쥬이오 마루호의 신비한 동물에 관한 새로운 정보 1, 2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47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48).

또한 Zuiyo-maru carcass Plesiosaur or Basking Shark? Creation Ex Nihilo Technical Journal 13(2):83-87, 1999, (http://www.angelfire.com/mi/dinosaurs/zuiyomaru.html)도 참고하세요) .


 

3. Champlain 호수의 'Champ'

(http://www.genesispark.org/genpark/champ/champ.htm)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Champlain 호수의 괴물에 관한 이 유명한 사진은 1977 년 Sandi Mansi에 의해 촬영되었다.  Abenaqi 인디안 시절에서부터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 생물체를 보았다고 주장하였었다. 이 호수는 매우 깊은데 뉴욕주와 버몬트주의 경계에 위치하며, St. Lawrence Seaway를 통하여 바다와 연결되어있다. 첫 번째의 관측 기록은 Samuel de Champlain이 1609년 7월 호수에서 탐사를 시작하였을 때 목격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탐사에서 프랑스 탐사가는 '말과 같은 머리에 나무통과 같은 굵은 몸을 가진 6 m 가량의 괴물(serpent)”로서 기록하고 있다. 그 이후에 이상한 수중괴물에 관한 목격은 300여명의 사람들에 의해 보고되어졌고, 많은 기록이 1984년에 쓰여진 Joseph Zarzynski의 책 ‘Champ - Beyond the Legend‘ 에 실려있다 .

'Dennis Hall 은 개인적으로 그 생물을 여러 번 목격했고 몇 장의 사진과 비디오테이프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사실 그는 괴생물체를 포획할 수도 있었던 사람이었다. 1970년에 데니스는 호수 경계 습지대에서 30cm (12inch) 정도의 특이한 파충류를 발견했었다. 그 생물체는 살아있는 다른 파충류와는 달랐는데, 이상한 갈라진 혀를 가지고 있었다. Dennis의 아버지는 이 이상한 짐승이 생물도감에 있는 어떤 살아 있는 파충류와도 다르다는 것을 지적했던 버몬트 주립대학의 과학자들에 의해서 검사될만한 가치가 충분한 생물체라고 생각했다. 많은 미지의 생물체와 같이, 이것도 수수께끼 괴물로 남으면서 어느 정도 잊혀졌다. Dennis Hall은 그 생물체를 선사시대의 파충류에 관한 책에서 본 것과 매우 닮았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수천만년 전에 멸종했다는 Tanystropheus가 Dennis가 본 30cm 생물체와 똑 같았었다. Tanystropheus는 Champ와 같은 모습으로 비교적 큰 몸집에 꽤 긴 목을 가지고 있으며, 물과 육지에서 같이 살 수 있는 반수생(semi-aquatic) 생물이다.' (Kirk, John, In the Domain of the Lake Monsters , pp. 132-133.)

‘풀리지 않는 신비(Unsolved Mysteries)’ 라는 프로그램에서 Champ는 아마추어에 의해 적어도 2번 비디오로 촬영되어 보여졌다. 일본 초음파 탐사팀은 호수 전체를 조사했고, 그들 아래로 매우 큰 물체가 지나갔음을 보고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Champ가 공룡인 플레시오사우르스(plesiosaur)으로 믿고 있다.

 




 

4. 1970년 마사추세츠 해변에 떠밀려온 괴물체

(http://www.drdino.com/cse.asp?pg=articles&specific=15)


1970년 11월 16일, 15m 정도의 긴 사체가 한 밤중에 마사추세츠 Situate 항구 해변에 떠밀려 올라왔다. 그 사체가 보호되고 조사되어지기 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사체는 훼손되고 말았다. 그것을 보았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다괴물이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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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켈레 므벰베, 살아 있는 공룡!
(Mokele-Mbembe, The Living Dinosaur!)


 

모켈레 므벰베 :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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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 by Bill Rebsamen

 

서언

 

콩고, 카메룬, 가봉이 있는 중앙아프리카의 정글에는 긴 목, 긴 꼬리, 세 발톱의 둥그런 모습의 발자국을 가진 동물에 관한 보고가 있다. 이러한 특징과 가장 잘 어울리는 동물은 사우로포드(sauropod) 공룡이다. 리코우알라(Likouala) 지방의 몇몇 마을 주민들에게 흙이나 모래에 모켈레 므벰베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했을 때, 그들은 사우로포드 공룡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사우로포드 공룡의 그림을 보여줬을 때, 그들은 그 그림이 모켈레 므벰베라고 말했다. 모켈레 므벰베의 뜻은 '강물의 흐름을 멈추는 것 (One that stops the flow of rivers)'을 의미한다. 그 지방의 프랑스 신부는 그것을 '괴물같은 동물(monstrous animal)'이라고 불렀다. 모켈레 므벰베는 또한 에멜라엔토우카 (Emela-ntouka코끼리 킬러, 또는 물에 사는 코끼리 라는 뜻), 므비엘루-므비엘루-므비엘루 (Mbielu-mbielu-mbielu등에서 판자가 자라는 동물 이라는 뜻), 느구마 모네네 (Nguma-monene거대한 뱀이라는 뜻)와 같은 다른 동물들에 대한 포괄적인 용어로도 사용된다.



생김새 


1) 몸 (Body) 

모켈레 므벰베는 사우로포드 공룡의 특징인 긴 목과 긴 꼬리를 가지고 있는 동물로서 묘사되어져 왔다. 그것의 몸체 크기는 하마와 코끼리 사이 정도인 것처럼 보이며, 그 길이는 5~10 m 사이인 것으로 보고되어지고 있다. 목의 길이는 1.6~3.3 m 이며, 꼬리의 길이도 1.6~3.3 m 사이이다. 카메룬에서의 보고서는 Mokele-mbembe의 길이가 23 m(75 피트)까지 되는 것으로 보고했다. 또한 머리의 뒤로 하나의 주름(frill)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졌다. 주름은 수탉에서 볼 수 있는 볏(comb)과 비슷하다. 또한 머리 위로 하나의 뿔(horn)을 가지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2) 피부 (Skin) 

피부의 색깔은 적갈색(reddish-brown)이 유력하지만, 회색에서 갈색까지의 색깔 범위를 가지고 있다. 털(hair)에 대한 보고는 없었다.


3) 발자국 (Tracks) 

세 발톱을 가지고 있으며, 직경 30~90 cm 사이의 둥근 모습이다. 발자국들 사이의 거리 2.1~2.4 m 이다.


4) 소리 (Sound) 

보고서들 사이에 논란이 있지만, 기본적인 믿음은 모켈레 므벰베는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모켈레 므벰베가 일반적으로 다른 동물들에 대한 명칭으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거친 콧김을 내뿜거나, 울부짖거나, 으르렁거리거나, 꾸르륵 소리를 내거나, 포효하는 소리를 내는 에멜라엔토우카와 혼동되고 있다.



서식지 (Habitat) 


모켈레 므벰베는 콩고 인민공화국의 습지지역인 리코우알라(Likouala)강과 인접한 연못이나 습지에서 산다. 한쪽 강에서 다른 강으로 건너가는 경로로서 호수들은 사용되고 있다. 



먹이 (Diet) 


리코우알라 습지 지역에 사는 피그미들의 말에 의하면, 모켈레 므벰베의 주 먹이는 말롬보 나무(Malombo plant) 이다. 오직 식물들만 먹기 때문에, 모켈레 므벰베는 초식동물로 분류되어진다. 말롬보 나무는 실제로는 두 종류의 나무를 말한다 : Landolphia mannii  and Landolphia owariensis.



행동 (Behavior) 


모켈레 므벰베는 식사를 하거나 습지의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할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물 아래에서 산다. 모켈레 므벰베는 하마(hippopotamuses)들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들을 보게 되면 죽여버린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먹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마들은 모켈레 므벰베가 사는 곳에서는 발견되어질 수 없다. 그리고 모켈레 므벰베는 보트를 뒤집고, 사람을 물거나 꼬리로 쳐서 죽인다고 보고되어졌다. 그러나 사람을 먹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목격 (Sightings) 


2000년 4월, 카메룬, 보움바 강(Boumba River), 2명의 콩고 보안요원들에 의해 



탐험 (Expeditions) 


2001년 2-3월, CryptoSafari, 카메룬 

2000년 11월, Gibbons-Wetzel, 카메룬 

1992년, Operation Congo 2 

1992년, 일본 탐험대



 

 

 

※추가글  바로위의 글 모켈레 므벰베 (현존하는 공룡)에 관한 탐사기입니다

 

콩고 공룡을 찾아서
: 살아있는 공룡 모켈레 므벰베 탐사기 
(In Search of the Congo Dinosaur)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을 가능성, 증거들.jpg | 인스티즈 William J. Gibbons





'아프리카에서는 항상 새로운 무언가가 나온다' - BC. 5. 헤로도투스 (Herodotus)


  

   과학 분야에서 가장 흥분되는 기대는 공룡이 아직도 깊은 밀림 속에 살아있을 가능성이다. 진화론과 진화가 일어나는데 필요한 오래된 연대는 살아있는 공룡을 수용하기위해 궁지로 몰리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몇몇 과학자들이 살아있는 용각류(sauropod) 공룡으로 믿고 있는모켈레 므벰베(Mokele-mbembe) 라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늘날 공룡이 살아있기에 유력한 지역은 광대하고 탐험되지 않은 적도지역 아프리카의 늪지일 것이다.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의 동식물에 대한 초기 보고의 대부분은 선교사들과 탐험가들로부터 나왔다. 1776년 프로야트(Abbe Lievain Bonaventure Proyart)는 그의 책 『아프리카의 로안고(Loango), 카콩가(Kakonga) 및 기타 왕국의 역사』에서 프랑스 선교사들이 정글에서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동물의 발자국들을 발견했다고 기록하였다. 1914년에 출판된 핑커톤(Pinkerton)의 번역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그것은 거대한 괴물임에 틀림없다. 발톱(claws) 자국이 땅에 나있었는데, 둘레의 길이가 90 cm 정도 되는 흔적을 만들었다. 발자국의 형태와 배열을 관찰한 후, 그 동물은 이 부분에서는 달리지 않았으며, 한 발톱자국에서 다음 것까지 2.1 내지 2.4 m 떨어진 거리를 움직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큰 자국은 단지 코끼리 크기의 동물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지만, 코끼리는 그런 발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괴물이었을까? 1913년, 독일 정부는 그 당시 카메룬 식민지를 조사하기로 결정하고, 폰 스타인(Freiherr von Stein zu Lausnitz)을 탐험대장으로 선택해서 탐험대를 이끌도록 했다. 폰 스타인은 ‘콩고 강, 우반지(Ubangi) 강 하류, 상하(Sangha) 강, 그리고 이켈렘바(Ikelemba) 강 유역의 특정 지역에 사는 흑인들이 너무나 두려워하는’ 동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아주 흥미로운 보고서를 적었다. 그들은 그 동물을 ‘모켈레 므벰베(Mokele-mbembe)’ 라고 불렀다.

 

   “그 동물은 갈회색으로.... 대략적인 크기는 코끼리만 하며, 길고 매우 유연한 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진다. 어떤 사람은 악어 꼬리처럼 긴 근육질의 꼬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동물 가까이로 다가가는 카누(canoes)들은 죽음에 처하게 되며, 그 동물은 카누를 단번에 공격해서 사람들을 죽이지만 시체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 동물은 굴곡이 심한 곳에 있는 강기슭 진흙에서 강물에 의해 침식된 동굴에서 산다고 한다. 그것은 먹을 것을 찾아 심지어 낮에도 강기슭을 오르며, 일상적인 먹이는 야채뿐(전적으로 초식)이라고 한다.”

 

1976년, 파충류학자인 텍사스의 제임스 포웰(James Powell)이 열대림 악어를 연구하기 위해 가봉(Gabon)을 여행하기 전까지는 모켈레 므벰베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포웰은 팡(Fang) 사람들로부터 느야말라(N'yamala)라고 불리는 엄청난 크기의 강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미가엘 오방(Michael Obang)이라고 불리는 그 지방의 주술사(witchdoctor)는 1946년에 정글 웅덩이에서 나오는 느야말라를 보았으며, 그것과 똑같은 것으로 공룡 책자에서 디플로도쿠스(diplodocus) 중의 한 그림을 골랐다. 포웰은 나중에 이러한 정보를 시카고 대학의 생물학자이자 미지의 생물체 연구 국제협회(International Society of Cryptozoology)의 부회장인 로이 맥칼(Roy P. Mackal) 박사에게 전해주었다.

 

1979년, 맥칼과 포웰은 모켈레 므벰베의 활동을 조사하기 위해 콩고 공화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맥칼은 그들의 탐사를 리코우알라(Likouala) 지역에 집중해야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곳은 주기적으로 침수되는 거대한 늪지로서 대부분의 지도에는 공백으로 되어 있는 곳이었다. 우반지 강에 위치하고 있는 임폰도(Impfondo)의 북쪽 마을에서, 맥칼과 포웰은 1955년부터 콩고에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오하이오 출신의 유진 토마스(Eugene Thomas) 목사님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토마스는 모켈레 므벰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서, 그 괴물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을 부르러 보냈다. 처음에 맥칼은 자신이 살아 있는 공룡이 지나간 자국(trail) 위에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모든 목격자들은 맥칼이 보여준 공룡 책에서 모켈레 므벰베의 모습이 아파타사우루스(apatasaurus)와 디플로도쿠스(diplodocus)의 그림과 꼭 닮았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강조했다.

 

“목격자들의 묘사에 의하면 그 동물은 길이가 4.5m 에서 9m 이며, 대부분이 머리와 목과 꼬리라고 하였다. 머리는 뚜렷하게 뱀 같고, 꼬리는 길고 가늘며, 몸통은 대략 코끼리 또는 적어도 하마 정도이고, 다리는 짧고, 뒷다리는 3개의 발톱을 가지고 있다. 그 동물의 색은 적갈색(reddish brown)이고, 머리 꼭대기에서 목 뒤 아래까지 수탉과 같은 등 주름(frill)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목격자들은 모켈레 므벰베가 강, 하천, 및 늪지의 호수에 살며, 희귀하고 위험하다는 데에 의견일치를 보였다. 시간이 흘러서 맥칼과 포웰은 미국으로 돌아갔고, 보고서를 애타게 기다렸다. 맥칼은 1981년에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콩고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리코알라(Likouala aux Herbes) 강에서 남쪽으로 향했다. 그는 멀리 떨어진 텔레(Tele) 호수까지 가려고 했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곳은 적어도 모켈레 므벰베 한 마리가 1960년에 바곰브(Bagombe) 피그미족에 의해서 창으로 찔려 죽었다는 늪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작고 얕은 수역이다. 불행히도, 아직 탐험되지 않은 바이(Bai) 강에서 그 호수까지 이어지는 좁은 수로는 낙엽으로 꽉 차 있어서, 통나무로 파서 만든 무거운 카누로는 나아가는 게 불가능했다. 탐험대가 에페나(Epena) 마을 바로 남쪽에 있는 강 굴곡부를 돌고 있었을 때, 흥분으로 인한 동요가 일어났다. 멀리 떨어져 있는 둑 근처에서 커다란 동물이 갑자기 잠수하면서, 42cm 높이의 파도를 일으켜 맥칼의 카누를 쳤다. 악어는 그러한 파도를 일으키지 않으며, 그러한 정도의 파도를 일으킬 하마는 그 지역에 살지 않는다. 왜냐하면 피그미족의 말에 따르면, 모켈레 므벰베가 그것들을 모두 멀리 쫓아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1981년에는, 캘리포니아 파사데나(Pasadena) 출신 엔지니어인 허만 레거스터(Herman Regusters)는 자신의 탐험대를 이끌고 콩고로 가서 실제로 텔레(Tele) 호수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호수를 탐험하는 동안, 레거스터와 그의 아내 키아(Kia)는 고무보트에서 9m 정도 떨어진 물에서, 길고 우아한 목에 뱀 같은 머리를 가진 동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그 동물은 차가운 파충류의 시선으로 놀란 탐험가들을 몇 초 동안 바라본 후 물 속으로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탐험이 끝날 무렵, 레거스터 팀은 어느 날 밤에 거대한 동물이 그들 캠프 근처의 습지를 지나가면서 내는 귀를 찢는 듯한 울부짖음을 들었다.


1983년에, 콩고의 생물학자인 마셀린 아그나그나(Marcellin Agnagna)는 그 자신의 탐험대를 이끌고 텔레 호수로 갔다. 그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늪지를 5일 동안 탐험한 후에, 아그나그나와 그의 동료들은 물 속으로 움직이는 커다란 동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도마뱀처럼 작은 머리와, 긴 목, 그리고 크고 넓은 등을 가지고 있었다. 아그나그나는 그의 Super 8 이라는 영화촬영기(cine camera)로 그 동물을 찍으려고 했으나, 너무 흥분한 나머지 렌즈를 매크로 기능(가까운 거리의 물체를 촬영하기 위한 것)에서 장거리 기능으로 전환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다시 한번, 생생한 필름 증거가 세상에 공개되는 것이 교묘하게 좌절되었다.


나 자신이 콩고로 (처음으로) 탐사를 떠난 것은 1985년 11월부터 1986년 5월까지 이루어졌다. 비록 느린 행정 절차로 인해 수 주 동안 브라자빌(Brazzaville)에서 지연되었지만, 고맙게도 토마스 목사가 여러 정부 부서에 있는 인맥을 이용해서 우리의 여행을 도왔다. 우리는 무성한 숲을 가로질러 5일간의 도전적인 강행군 끝에 드디어 텔레 호수에 도달했는데, 지나오는 동안 우리는 고릴라, 침팬지, 큰 비단 뱀, 악어, 거북이들을 목격했지만, 커다란 괴물은 만나지 못했다. 우리도 또한 콩고의 시골 사람들 사이에 므켈레 므벰베에 대한 공포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때때로 그것이 정보 수집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의 안내원은 매일 사냥을 했는데,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식별할 수 없는(미확인 종의) 원숭이를 쏘았다. 그 사체(피부와 머리)는 포름알데히드에 보존해서, 후에 런던에 있는 영국 자연사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 원숭이는 나중에 Cerocebus galeritus, 즉 볏이 없는 망가비 원숭이(crestless mangabey m)라는 새로운 아종으로 분류되었다.


나의 두 번째 탐사는 1992년 11월에 시작되었는데, 선교사들이 무료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던 임폰도(Impfondo)에 있는 사역지에 의약품을 긴급히 배달하게 되어 그 기간이 두 배로  되었다. 이번에는 아직 탐험되지 않은 바이(Bai) 강 북쪽으로 향했으며, 조밀한 늪지를 가로질러 북서쪽으로 향했는데, 거기서 우리는 지도상에 나타나있지 않은 두 개의 작은 호수를 발견했다. 또 다시 안내원들이 그 지역에 머무는 것을 두려워해서, 우리는 늪지에 대한 탐험을 단축하여야만 했다. 비록 리코울라(Likouala) 지역의 대부분의 주민들은 어디에 가면 모켈레 므벰베를 목격하고 촬영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외부에서 온 백인들에게 그 동물에 대해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로 하여금 주요한 발견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것은 단지 두려움과 미신에 불과했다.


1994년에, 콩고에서 내전이 발생해서 그곳으로의 세 번째 탐사에 대한 가능성이 없어졌다. 이러한 시점에서 나는 탐사를 계속하기 위해 중앙아프리카 내의 대체 장소를 찾기 시작했으며, 카메룬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결정했다. 콩고에 인접한 그 나라의 남쪽은 거의 탐험되지 않아서, 폰 스타인(Freiherr von Stein)이 1913년에 그것을 묘사한 바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우거진 삼림에, 늪지, 그리고 깊고 넓은 강들이 많았다. 2000년 11월에, 나는 뉴햄프셔, 콩코드 출신의 데이브 웨첼(Dave Woetzel)과 함께 카메룬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바카(Baka) 피그미들과 정글에서 정기적으로 사냥을 했던 카메룬 국민인 피에르 시마(Pierre Sima)와 협력했다. 추가적인 필수품을 구입한 후에,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도로를 따라 가며 남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남은 시간들을 허리 깊이의 늪지를 가로질러 무거운 걸음걸이로, 한 피그미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가면서 보냈다.

 

1986년부터 2000년 4월까지 걸친 우리의 노력은 모켈레 므벰베의 활동을 직접 목격한 목격자들을 만남으로서 보상받았다. 비록 바카(Baka) 사람들은 그 동물을 라킬라 벰베(La`Kila-bembe)라고 불렀지만, 그들은 콩고의 켈르(Kelle) 피그미들과 일치되게 설명했고, 그 괴물들이 카메룬 남부의 강과, 습지, 하천에 아직도 살고 있다는 것을 확증했다. 또한 피그미족들도 그 괴물에 대해 설명할 때 일련의 피부 돌출(dermal spikes)이 목, 등, 꼬리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이것은 1991년에서야 고생물학자들에게 알려진 용각류(sauropod) 공룡의 신체적 특징이다. 그리고 무거운 목 주름장식과 머리 위에 최대 4개의 뿔로 무장한 커다란 사지동물(quadruped)을 포함해서, 그 숲과 늪지에 서식하는 다른 이상한 동물들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도 얻었다. 목격자들은 코끼리를 죽여서 창자를 꺼낸다고 소문이 난 이 동물과 똑같이 닮은 것으로 공룡 트리케라톱스(triceratops)의 그림을 즉시로 골라냈다.


놀랍게도 콩고의 피그미족들과는 달리 카메룬의 바카 피그미족들은 카메룬 남쪽에 있는 신비한 동물에 대해 초자연적이거나 신화적인 믿음을 부여하지 않아서 우리의 질문에 기쁘게 대답했고, 그것들에 관해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검증을 위해, 우리는 그들에게 북미 곰과 같은 다른 동물들의 사진도 보여줬는데, 그들은 그것들을 알아보지 못했으므로, 그들 보고의 정확성과 성실함의 정도가 확립되었다. 우리의 진보에 매혹되었고, 우리는 모켈레 므벰베에 대한 조사에 있어서 중요한 진보를 이루었다는 생각으로 상당히 고무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2002년 2월에, 나는 4명의 기독교인 탐험대와 함께 카메룬으로 돌아왔다. 적절한 수송수단을 찾는 문제로 많은 소중한 시간이 소모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목표 지역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또 다시 우리의 친구 피에르 시마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목격자들과 인터뷰를 해서 모켈레 므벰베와 그 지역의 다른 신비로운 동물들에 관해 훨씬 더 가치 있는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건기였기 때문에 강물 수위는 매우 낮았고 실제적인 현장 조사를 위한 시간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거의 모든 목격자들의 말에 따라, 모켈레 므벰베를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때인) 우기에 되돌아와야만 했었다.


나는 우리가 모켈레 므벰베가 있는 위치를 찾아서 촬영할 수 있는 가능성에 아주 가까이 왔다고 믿기 때문에, 현장의 정확한 위치에 관한 세부사항이 부족하더라도 독자들이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


만약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나는 올해 10월에 카메룬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피에르 시마와 협력할 것이다. 나의 5번째 탐사인 이번에는 아마도 최후의 살아있는 화석인, 모켈레 므벰베(Mokele-mbembe)를 마침내 촬영할 것이다!

 

* Mr. Gibbons는 모켈레 므벰베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로 탐험대를 4번이나 이끌었다.

 








추천  4


 
못 읽겠다 궁금한데
9년 전
서 빈  사랑하는 꽃거지
오오오 신기하다
9년 전
설마 자료 출처가 한국창조과학회는 아니죠? 설마...아니겠죠...뭔가 더 말하고 싶지만 경고 먹을거같다...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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