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와 다른 작품들(기존 홍콩 느와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총격신을 빼고, 스토리와 캐릭터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데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무간도>의 감독 맥조휘,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디파티드>는 전혀 리메이크라고 할 수 없다. 처음 각본을 받았을 때 나는 이것이 홍콩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각본가 윌리엄 모나한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고, 거기에 끌렸을 뿐이다.
-<디파티드>의 감독 마틴 스콜세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신세계>가 갱스터 누아르 장르의 장점들을 잘 이어받은 영화라는 얘기가 듣고 싶었다.
-<신세계>의 감독 박훈정,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신세계>가 개봉 뒤 2주째 1위를 지키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을 쓴 것으로 유명하고 전작 <혈투>에 이어 두 번째 연출작 <신세계>로 돌아온 박훈정 감독. 영화 <신세계>는 조직에 잠입한 경찰(이정재), 그를 통해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경찰 과장(최민식), 잠입한 조직에서 뜨거운 우애를 나누게 되는 진짜 조폭(황정민)을 둘러싼 배신과 암투를 그린 느와르이다. 소재와 캐릭터를 봤을 때 <무간도>, <디파티드>, <대부>등 이미 명작이 된 느와르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신세계>. 실제로 박훈정 감독은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작품들에 영향을 받았음을 시인한다.
영화 <대부>(1972)의 한 장면
사실 <신세계>는 ‘조직에 잠입한 경찰’이라는 소재를 듣는 순간 <무간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미 홍콩 느와르, 아니 전체 느와르 영화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 평가 받는 <무간도>는 거장 마틴 스콜세지에 의해 <디파티드>란 작품으로 리메이크 되었다. 원작 팬들은 <디파티드>를 보고 혹평을 가했으나 어쨌든 마틴 스콜세지는 <디파티드>로 그해 오스카 감독상과 작품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그렇다면 박훈정 감독이 영향 받았음을 스스럼없이 인정한 영화 <무간도>와 그것을 리메이크 한 <디파티드>, 그리고 <신세계>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을까?
<신세계>와 <무간도>, <디파티드>의 공통점이라면 ‘정체성의 혼돈’이라는 주제의식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과 범죄 조직원이라는 극과 극의 신분을 오가는 인물들은 오랜 위장생활에 지쳐있으며 자신의 원래신분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원래 신분을 아는 사람은 그를 조직에 잠입시켰던 소수의 상관들뿐이다. 더구나 경찰 기록은 삭제하면 그만이다. 때문에 이들의 정체성은 굉장히 위태로운 경계에 서 있다. 어느 쪽도 아닌 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인물들은 이미 현실에서 ‘디파티드(세상을 떠난)’되었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무간지옥’과도 같은 임무 속에서 괴로워하면서도 더 나은 ‘신세계’로 탈출하기를 꿈꾼다.
영화 <무간도>(2002)의 한 장면
이렇게 비슷한 주제의식을 품고 있는 세 영화지만 그 속에서 스토리, 인물관계, 캐릭터, 배경 등을 다르게 풀어간다. 같은 듯 다른 세 영화 <무간도>, <디파티드>, <신세계>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무간도>와 <디파티드>의 주인공 캐릭터는 경찰행세를 하는 갱스터와 갱스터 행세를 하는 경찰로 명확하게 나뉘어 대립한다.
하지만 <신세계>에서는 조직원 행세를 하는 경찰 ‘이자성(이정재)’만 등장하여 그의 갈등과 혼란, 그를 둘러싼 조직원들 간의 암투, 경찰과 조직의 치열한 세력다툼을 그리고 있다. <신세계>를 <무간도>에 대입시켰을 때 이자성과 대립되는 신분의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이자성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그의 '선택'을 보여주는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조직원들 간의 암투, 조직원들을 이간질하며 압박하는 최과장의 계략 등은 이자성을 궁지로 몰아가며 결국 그가 조직원과 경찰 사이에서 선택을 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디파티드>에는 인종차별이라는 문제가 이야기를 관통한다. 주인공인 ‘빌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설리반(맷 데이먼)’은 보스턴의 슬럼가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다. 이들은 미국에서 차별받는 아일랜드인(아이리쉬)로서 서로가 처해있는 상황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같은 정체성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 '빌리'와 '설리반' 모두 미국 주류사회에서 밀려나 차별 받는 '이방인'이다.
<신세계>에선 인종차별이라고까지 볼 순 없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되는 ‘화교’가 등장한다.주인공인 잠입경찰 ‘이자성(이정재)’은 전라도 화교출신이다. 그를 믿어주는 ‘브라더’ ‘정청(황정민)’또한 화교로서 그와 대립하는 조직원들은 그에게 ‘새끼’라며 욕을 내뱉는다. 더군다나 일명 ‘연변거지’까지 등장한다. 눈에 띠게 촌스러운 복장을 하고 한국으로 와 자기들끼리 ‘티내지 말자’며 유머러스한 상황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들은 대한민국 외부에서 온, 우스꽝스럽지만 굉장히 위협적인 ‘이방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홍콩을 배경으로 한 <무간도>에서는 인종차별이나 이방인에 대한 문제가 애초에 끼어들 틈이 없다. 사실 주인공들의 성장배경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무간도>에서 아예 언급되지 않는다.(대신 <무간도2>에서 이들의 과거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들은 경찰과 조직 폭력배라는 명확한 선악의 대립으로 영화 내내 맞선다.
<신세계>에는 남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여성캐릭터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중간 연락책인 ‘신우(송지효)’는 어디까지나 위장경찰 신분으로서 이자성에게 오더를 전달하는 임무를 충실히 실행할 뿐이다. 이자성과 신우 사이에 어떠한 사적인 감정이 끼어들지 않는다. 그것은 이자성의 부인도 마찬가지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혼란에 빠져 괴로워하는 이자성에게 그의 부인은 어떠한 위안도 되지 못한다. 이자성에게 그의 아내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집에 있는 여자’일 뿐이다. 영화 속에서 아내를 바라보는 이자성의 눈빛엔 사랑이나 위안 같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간도>에서는 비중은 비록 적지만 ‘진영인(양조위)’와 ‘유건명(유덕화)’ 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자가 3명 등장한다. 진영인의 아이을 낳아 기르는 예전 여자친구, 진영인의 심리 상담가(진혜림), 유건명의 아내이다. 주인공들의 과거를 다루고 있는 <무간도2>에서 잠깐 등장하는 진영인의 여자친구는 그의 아이를 지웠다고 하지만 <무간도>에서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녀는 진영인과 헤어진 후에 그에게 말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었다. 또한 진영인은 자신의 심리 상담가에게서 유일하게 안정을 찾고 그녀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는다. 유건명은 곧 결혼해 좋은 아파트에서 아내와 함께 살 준비를 하고 있다.
<디파티드>는 <무간도>보다 더 거친 갱스터들의 세계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마돌린(베라 파미가)’이 유일하다. 사실 ‘마돌린’ 캐릭터는 <무간도>에서 등장하는 3명의 여성들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이다. ‘마돌린’은 ‘빌리’의 심리상담가이면서 그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설리반’과는 진지한 관계로서 함께 살고 있다. 더욱이 ‘마돌린’의 대사를 통해 그녀가 임신한 아이는 ‘빌리’의 아이로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음으로서 그녀가 <무간도> 속 세 여성의 ‘합체판’ 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세 영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조직에 잠입한 경찰'과 그를 '잠입시키는 경찰 상관'이다. 보통 이들의 직급은 '과장' 혹은 '국장'으로 표현된다.
<무간도>에서 진영인과 그를 잠입시켰던 경찰 국장 ‘황국장(황추생)’의 관계는 일종의 아버지와 아들 같다. 황국장은 오랜 잠입생활로 지친 진영인의 짜증을 다독거리며 무심한 듯 그의 생일을 챙겨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진영인이 영화 내에서 웃음을 보이는 것은 심리 상담가와 황국장 앞 뿐이다. 황국장이 살해된 직후 그의 시신을 보는 진영인의 절망어린 표정이 그 모든 것을 말해준다.
<디파티드>에선 잠입경찰 ‘빌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퀴넌’국장 또한 <무간도>의 그것과 비슷하다. 퀴넌국장은 불안에 떠는 ‘빌리’를 안정시키며 저녁식사를 권하고 자신의 집으로 들인다. 퀴넌 국장이 살해된 직후 그의 시신 앞에서 빌리는 애써 울음을 감춘다. <무간도>와 <디파티드>에서 경찰국장과 잠입경찰 주인공의 관계는 단순히 직장 보스와 부하직원의 관계를 넘어 사적인 감정을 내보이는 내밀한 틈이 있다.
하지만 <신세계>의 ‘강과장(최민식)’과 ‘이자성’은 끝임 없이 대립하는 관계다. 10여년에 걸친 위장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이자성은 강과장의 멱살을 잡으며 ‘이번이 끝이라고’하지 않았냐며 강하게 저항한다. 이자성에게 있어서 강과장의 존재는 자신을 압박하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이다. 이자성은 강과장이 풀어놓은 덫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처절하게 몸부림 치는 쥐와 같다. 강과장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자성을 철저히 이용하며 압박을 가해오고 이자성은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 몰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제목인 무간도의 ‘무간’(無間)의 의미는 ‘끝이 없음’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 중에서도 가장 낮은 지옥. 끝없이 고통 받는 ‘무간지옥’을 뜻하는 무간도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불교적 설정을 영화 속으로 가져왔다.
< 무간도>는 서로 속고 속이는 경찰과 범죄조직의 대결, 특히 진영인과 유건명의 대결을 낮게 깔린 구름이 펼쳐진 건물 옥상, 홍콩의 밤거리 등을 배경으로 한 차가운 톤으로 이들을 둘러싼 비정한 세계를 표현한다.
<디파티드>는 ‘빌리’가 몸담게 된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갱스터의 실상을 보스톤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담아냈다. <무간도>에서는 다루는 폭력의 수위와 액션신이 최소화 되어 있지만 <디파티드>에선 그 수위가 한껏 높아진다. 보스 ‘코스텔로’는 피 칠갑을 한 채로 돌아다니며 아침식사 자리에서 잘린 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든다.
< 신세계> 또한 <디파티드> 못지않다. 배신자에게 시멘트를 먹여 처리하는 엽기적인 오프닝 신에서부터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는 폭력과 살인으로 점철돼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신세계>에서 액션신이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대신 보여줄 땐 제대로 섬뜩하게 보여준다. 조직원들 간에 벌어지는 폭력은 <디파티드>가 그리는 세계 못지않게 피로 점철되어있다. 그러나 <신세계>의 조직원들이 <무간도>, <디파티드>의 그들과 다른 점이라면 기업형 범죄조직 ‘골드문’의 일원답게 언제나 양복과 구두를 쫙 빼입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들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손에 사시미와 쇠파이프를 든 채 상대를 난도질한다.
사진안보이면 : http://bluehome.kr/bMovie/9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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