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 ize 글 최지은 | 사진 이진혁(스튜디오 핑퐁)
[편집자주] tvN <미생>의 주인공은 영업 3팀의 계약직 사원 장그래(임시완)지만, 그가 근무하는 원 인터내셔널의 수많은 직원들에게는 각자 자신이 주인공인 순간이 있다. 장그래 동기들의 사수 강 대리(오민석), 하 대리(전석호), 성 대리(태인호) 역시 분량을 떠나 인상적인 캐릭터와 연기로 배우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서른이 될 때까지는 대학로 연극판에서 승부를 내기로 결심했던 전석호, 부산에서 연극을 하다가 새로운 사람들과 연기하고 싶어 서울에 온 태인호, 충동적으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이를 악물고 버텨온 오민석은 어떻게 <미생>과 만났고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었을까. 원 인터내셔널 입사 동기인 철강팀 강해준 대리, 자원 2팀 하성준 대리, 섬유팀 성준식 대리가 된 그들을 만났다.
밖에서 담배 피우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니 정말 휴식 시간에 나온 회사 동료들 같던데 언제 그렇게 친해졌나.
태인호: 얼마 전 대리들끼리 모이는 촬영이 있었다. 우리 셋에 김 대리(김대명), 자원 2팀 유 대리(신재훈), 영업 2팀 황 대리(박진수)까지 있었는데 새벽 3~4시쯤 끝날 줄 알았던 촬영이 좀 일찍 끝나서 다 같이 술을 마셨다.
오민석: 그 자리가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줬다. (웃음)
<미생>과의 첫 만남은 각자 어땠는지 궁금하다.
전석호: 사실은 8월에 <미생> 첫 촬영이 있던 날이 공연 시작 일이었다. “제가 괜히 시간을 뺏자니 그쪽도 바쁘실 것 같으니까 깔끔하게 포기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한편으론 ‘아, 이번에도 망했구나’ 싶었다. 드라마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윤태호 작가님의 작품을, 그것도 <미생>을 못 한다는 게! 정말 아깝지만 이게 내 운명인가 하던 중 다시 감독님이 한번 보자고 하신다는 연락이 왔다.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니까 감독님께 그냥 믿음이 가고 정말 좋았다. 그래서 “사실 9월에 공연이 끝나니까 혹시 작은 역이라도 맡겨주시면 저비용 고효율로 뽑아내 드리겠다”고 부탁드렸다. (웃음) 솔직히 전화 올 줄 몰랐는데 마지막 공연 때쯤 “출근하시오” 하셔서, 했다.
태인호: 나는 오래전부터 가끔 일을 소개해주시던 <미생> 캐스팅 디렉터 최길홍 실장님이 미팅을 잡아주셨다. 하지만 사실 기대는 안 했다. 2008년에 서울 올라와서 드라마 오디션을 세 번 봤는데 다 떨어졌기 때문에. 어쨌든 가서 강 대리 대본을 받아 읽는데 갑자기 감독님이 “잠깐만요. 여기 성 대리 대본 갖고 와봐” 하시는 거다. 회의실에서의 아주 짧은 대사였는데 그걸 듣고 “괜찮을 것 같은데요” 하시더라. 하지만 나는 또 ‘그냥 저렇게 말씀하시는 거겠지’ 하고 집에 갔다. 그런데 그 역을 하게 됐다.
오민석: MBC 드라마넷 <별순검 3>에 출연했는데 시즌 1, 2를 집필하신 정윤정 작가님의 추천으로 미팅을 했다. 그런데 사실 내가 리딩에 약하다. (웃음) 완전 부담감을 안고 강 대리 대본을 읽던 중 감독님이 “괜찮다”고 하셔서 자신감이 붙었다. 이상하게, <미생>에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이 역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걸 알았는데도 왠지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역할이 작든 크든 진짜 감독님과 작품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대본도 있고, 디렉션도 있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 이 평범해 보이면서도 캐릭터가 뚜렷한 인물의 중심을 어떻게 잡고 갔나.
오민석: 나는 리얼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강 대리의 대사는 항상 ‘다나까’로 끝나기 때문에 고민이었다. 자칫하면 ‘실장님’ 연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미도 바꿔보고 존대를 반말로도 해봤는데, 나중에는 그냥 이런 원칙주의자 같은 사람이 실제 있다고 믿기로 하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웠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이 사람은 그 말투에서 캐릭터가 분명히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형이 다니는 회사에 가보니 정말로 후배에게 존대하고 그런 말투를 쓰는 사람이 있더라. 그걸 보고 좀 더 확신이 생겼다.
전석호: 원래 어떤 캐릭터를 만들려고 한다기보다 그 인물을 나에게 동화시켜서 연기하는 편이다. 평소에도 하루 종일 대사를 말하면서 입에 붙게 하고. 그런데 원래 내 말투가 센 편이고 띄어 말하기도 제멋대로라 하 대리와 비슷하다. 친구들은 <미생> 보면서 “다른 배우들 연기는 참 좋은데 너는 왜 연기를 안 해? 날로 먹냐?”고 할 정도다. (웃음)
성 대리는 등장 이후 좀 시간이 지난 뒤에야 본색이 드러나기 때문에 어떻게 연기할지 고민이 됐겠다.
태인호: 초반에는 성 대리가 어떻게 변해가고 어떤 모습을 보일지 잘 몰랐기 때문에 캐릭터 설명의 ‘멱살 잡고 싶은 직장상사 1위’ 같은 말을 참고했다. 워낙 대본의 짜임새가 좋기 때문에 굳이 오버하지 않아도 한석율(변요한)이라는 캐릭터에게 조금만 자극을 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 대리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감독님께 여쭤봤더니 “성 대리는 그냥 나쁜 사람, 직장에 진짜 한두 명씩 있는 미운 상사야”라고 하시더라. 사실 나는 나름대로 이 사람의 숨겨진 동기나 이유를 찾고 싶었기 때문에, <미생>에서 보이는 성 대리의 시간이 이럴 뿐이지 뭔가 과거의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오민석: 그런데 성 대리 캐릭터가 진짜 현실적인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어느 조직에나 있는데, 대부분 ‘그냥’ 그러는 거다.
전석호: 사실 이건 드라마니까 이 사람의 과거가 궁금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내 옆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과거 따윈 궁금하지 않을 것 같다. 쟤는 그냥 저런 사람이니까.
태인호: 그렇지, 그런데 배우에게는 혼자서라도 가지고 싶은 서브 스토리가 있다. (웃음)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퇴근 후엔 뭘 할 것 같나.
태인호: 성 대리는 지하철 타고 가다 ‘잠깐, 내가 오늘 석율이한테 너무 했나?’ 생각하다 ‘에이, 아니야. 나 땐 더 심했어’ 하고 정당화해서 잊고, 여자한테 전화해서 만나고, 또 누군가에게 계산을 미룰 것 같다.
오민석: 강 대리는 의외로 집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할 것 같다. 일에 쏟았던 에너지를 완전히 반대쪽에 쏟아서 스트레스를 풀지 않을까. 게임에 완전히 빠져 있거나, 그냥 소파에 누워 맥주 마시면서 TV만 보거나, 어쩌면 드라마 광일 수도 있다. 시간 맞춰서 연속극 보는.
사우나 장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상체 노출에 대한 심적 부담도 있지 않았나. (웃음)
오민석: 대본을 받았을 땐 이미 몸 만들 만한 시간이 없었다. 백기(강하늘)나 나나 “형, 어떡해요?”, “야, 큰일 났다” 하고는 일단 안 먹기 시작했다. 배 나오는 것보단 일단 마른 게 나을 테니까 운동은 계속 하면서 지방만 태우려고. 마침 당시 촬영장에 밥차랑 야식차가 굉장히 많이 오고 있었는데 “형, 치킨도 먹고 그래요”, “아니야, 너 많이 먹어” 하면서 서로 견제했다. 그래서 촬영 전 우리 둘 다 3, 4kg 정도 빠지는 바람에 사우나 신은 정말 기운 없이 찍었다. (웃음)
전석호: 우연치 않게 유 대리 형이랑 그 장면을 보고 “와, 저런 회사원이 어디 있냐. 배에 왕(王) 자도 있고 비현실적이네. 우리가 현실인데!” 그랬다.
오민석: 그래, 벗기려면 남자 많은 자원팀을 벗겨야 했는데.
전석호: 우리 벗기면 난리 난다.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이라고. (웃음)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일해온 입장에서 장그래(임시완)를 비롯해 많은 생활인들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나.
태인호: 일 년에 한두 번 그런 때가 찾아온다. 낮에는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밤에는 웨이터나 발렛 파킹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가 아니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연기를 계속하는 것 같지도 않고, 아르바이트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굉장히 힘들고 외로운 기분이 드는데, 시간이 지나서 제정신이 돌아오면 역시 연기가 재미있으니까 계속 하게 되는 거다.
전석호: 작품이 없어서가 아니라 연기를 계속 하고 있어도 내 안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고독이나 허무함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남에게 노출되는 직업이고 어떻게 보면 잠재적 실직자이기 때문에 그 혼란이 점점 커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창작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많이 치유받는다. 사람들이랑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 얘기하고 함께 열정을 쏟으면서 ‘나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가고 있다’는 동지애를 느끼는 거다.
오민석: 나는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갑자기 연기를 시작했는데, 처음 드라마에 데뷔했을 때 약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제 잘되나 했더니 갑자기 고꾸라지고 매니저가 없어졌다. 혼자 대학로 가서 공연도 했고, 작품은 많이 했지만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니까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냥 공부를 계속하지’ 같은 말을 듣는 게 괴로웠다. 실제로 연기를 그만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지금의 소속사 대표님이 같이 일하자고 찾아오셨다. 아무도 나를 모를 때 “당신은 잘될 겁니다”라면서 손잡아준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미생>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감을 얻고 있는 지금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
태인호: 일단, 기분이 이상하다. 어, 어…이런 거구나? 부모님들이 좋아하시니까 선물을 해 드린 기분도 들고. 무엇보다, 내가 좀 더 열심히 하면 또 다른 작품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돈을 좀 벌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님도 나이 드시고, 결혼도 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것보다도 내가 연기할 수 있는 ‘거리’를 계속 찾아가다 보면 필요한 것들이, 엄청나게 크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정도로는 따라오지 않을까 싶다.
전석호: 나는 원래 주류에 속하는 사람은 아니고, 노출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 주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게 좋고, 외부의 반응을 떠나 처음 한 드라마 현장의 분위기가 정말 좋다. 그리고 나 역시 어디 가서도 이렇게 해야겠다, 형들이 한 것처럼, 이성민 선배가 한 것처럼 해야겠다 같은 배움을 얻고 있다. <미생>은 최고의 스타트다. 우리 일을 직급으로 따져 보면 아마 나도 딱 대리 정도일 거다. 가장 열심히 일해야 할 때이기도 하고. 어디까지 올라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회장 되고 싶다. 그런데 그건 부와 명예를 얻고 싶다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마음껏 한다는 거다.
오민석: 지금 우리가 이렇게 주목받는 건 정말 감사하지만 솔직히 이게 그렇게 오래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전석호: 한겨울 밤의 꿈, 우리는 <미생>과 함께 사라지리라. (웃음)
오민석: 들어올 때 즐기자. 금방 없어질지 모른다. (웃음) 하지만 막 얻게 된 인기보다도 좋은 건, 이렇게 자유롭고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고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다 같이 친하게 지낼 수 있는 현장에 내가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미생>이 끝나고 다른 현장에 또 가더라도 많이 그리울 것 같다.
[편집자주] tvN <미생>의 주인공은 영업 3팀의 계약직 사원 장그래(임시완)지만, 그가 근무하는 원 인터내셔널의 수많은 직원들에게는 각자 자신이 주인공인 순간이 있다. 장그래 동기들의 사수 강 대리(오민석), 하 대리(전석호), 성 대리(태인호) 역시 분량을 떠나 인상적인 캐릭터와 연기로 배우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서른이 될 때까지는 대학로 연극판에서 승부를 내기로 결심했던 전석호, 부산에서 연극을 하다가 새로운 사람들과 연기하고 싶어 서울에 온 태인호, 충동적으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이를 악물고 버텨온 오민석은 어떻게 <미생>과 만났고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었을까. 원 인터내셔널 입사 동기인 철강팀 강해준 대리, 자원 2팀 하성준 대리, 섬유팀 성준식 대리가 된 그들을 만났다.

태인호: 얼마 전 대리들끼리 모이는 촬영이 있었다. 우리 셋에 김 대리(김대명), 자원 2팀 유 대리(신재훈), 영업 2팀 황 대리(박진수)까지 있었는데 새벽 3~4시쯤 끝날 줄 알았던 촬영이 좀 일찍 끝나서 다 같이 술을 마셨다.
오민석: 그 자리가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줬다. (웃음)
<미생>과의 첫 만남은 각자 어땠는지 궁금하다.
전석호: 사실은 8월에 <미생> 첫 촬영이 있던 날이 공연 시작 일이었다. “제가 괜히 시간을 뺏자니 그쪽도 바쁘실 것 같으니까 깔끔하게 포기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한편으론 ‘아, 이번에도 망했구나’ 싶었다. 드라마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윤태호 작가님의 작품을, 그것도 <미생>을 못 한다는 게! 정말 아깝지만 이게 내 운명인가 하던 중 다시 감독님이 한번 보자고 하신다는 연락이 왔다.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니까 감독님께 그냥 믿음이 가고 정말 좋았다. 그래서 “사실 9월에 공연이 끝나니까 혹시 작은 역이라도 맡겨주시면 저비용 고효율로 뽑아내 드리겠다”고 부탁드렸다. (웃음) 솔직히 전화 올 줄 몰랐는데 마지막 공연 때쯤 “출근하시오” 하셔서, 했다.
태인호: 나는 오래전부터 가끔 일을 소개해주시던 <미생> 캐스팅 디렉터 최길홍 실장님이 미팅을 잡아주셨다. 하지만 사실 기대는 안 했다. 2008년에 서울 올라와서 드라마 오디션을 세 번 봤는데 다 떨어졌기 때문에. 어쨌든 가서 강 대리 대본을 받아 읽는데 갑자기 감독님이 “잠깐만요. 여기 성 대리 대본 갖고 와봐” 하시는 거다. 회의실에서의 아주 짧은 대사였는데 그걸 듣고 “괜찮을 것 같은데요” 하시더라. 하지만 나는 또 ‘그냥 저렇게 말씀하시는 거겠지’ 하고 집에 갔다. 그런데 그 역을 하게 됐다.
오민석: MBC 드라마넷 <별순검 3>에 출연했는데 시즌 1, 2를 집필하신 정윤정 작가님의 추천으로 미팅을 했다. 그런데 사실 내가 리딩에 약하다. (웃음) 완전 부담감을 안고 강 대리 대본을 읽던 중 감독님이 “괜찮다”고 하셔서 자신감이 붙었다. 이상하게, <미생>에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이 역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걸 알았는데도 왠지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역할이 작든 크든 진짜 감독님과 작품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대본도 있고, 디렉션도 있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 이 평범해 보이면서도 캐릭터가 뚜렷한 인물의 중심을 어떻게 잡고 갔나.오민석: 나는 리얼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강 대리의 대사는 항상 ‘다나까’로 끝나기 때문에 고민이었다. 자칫하면 ‘실장님’ 연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미도 바꿔보고 존대를 반말로도 해봤는데, 나중에는 그냥 이런 원칙주의자 같은 사람이 실제 있다고 믿기로 하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웠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이 사람은 그 말투에서 캐릭터가 분명히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형이 다니는 회사에 가보니 정말로 후배에게 존대하고 그런 말투를 쓰는 사람이 있더라. 그걸 보고 좀 더 확신이 생겼다.
전석호: 원래 어떤 캐릭터를 만들려고 한다기보다 그 인물을 나에게 동화시켜서 연기하는 편이다. 평소에도 하루 종일 대사를 말하면서 입에 붙게 하고. 그런데 원래 내 말투가 센 편이고 띄어 말하기도 제멋대로라 하 대리와 비슷하다. 친구들은 <미생> 보면서 “다른 배우들 연기는 참 좋은데 너는 왜 연기를 안 해? 날로 먹냐?”고 할 정도다. (웃음)
하 대리의 항상 뚱하고 떫어 보이는 표정은 의도한 건가.
전석호: 아니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나도 깜짝 놀랐다. 그동안 연극만 해왔으니까 내가 연기할 때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드라마를 할 때도 TV에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하지 않고. 그런데 대본에서 얘가 안영이(강소라)를 떨떠름하게 여기는 게 저절로 얼굴에 드러난 것 같다. 어느 순간 네티즌 표현대로 ㅡAㅡ 자 입이 되어 있더라. 내가 봐도 진짜 밉상이던데. (웃음)
태인호: 그래서 나는 하 대리를 정말 만나보고 싶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거든. (웃음)
전석호: 아니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나도 깜짝 놀랐다. 그동안 연극만 해왔으니까 내가 연기할 때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드라마를 할 때도 TV에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하지 않고. 그런데 대본에서 얘가 안영이(강소라)를 떨떠름하게 여기는 게 저절로 얼굴에 드러난 것 같다. 어느 순간 네티즌 표현대로 ㅡAㅡ 자 입이 되어 있더라. 내가 봐도 진짜 밉상이던데. (웃음)
태인호: 그래서 나는 하 대리를 정말 만나보고 싶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거든. (웃음)
성 대리는 등장 이후 좀 시간이 지난 뒤에야 본색이 드러나기 때문에 어떻게 연기할지 고민이 됐겠다.태인호: 초반에는 성 대리가 어떻게 변해가고 어떤 모습을 보일지 잘 몰랐기 때문에 캐릭터 설명의 ‘멱살 잡고 싶은 직장상사 1위’ 같은 말을 참고했다. 워낙 대본의 짜임새가 좋기 때문에 굳이 오버하지 않아도 한석율(변요한)이라는 캐릭터에게 조금만 자극을 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 대리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감독님께 여쭤봤더니 “성 대리는 그냥 나쁜 사람, 직장에 진짜 한두 명씩 있는 미운 상사야”라고 하시더라. 사실 나는 나름대로 이 사람의 숨겨진 동기나 이유를 찾고 싶었기 때문에, <미생>에서 보이는 성 대리의 시간이 이럴 뿐이지 뭔가 과거의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오민석: 그런데 성 대리 캐릭터가 진짜 현실적인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어느 조직에나 있는데, 대부분 ‘그냥’ 그러는 거다.
전석호: 사실 이건 드라마니까 이 사람의 과거가 궁금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내 옆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과거 따윈 궁금하지 않을 것 같다. 쟤는 그냥 저런 사람이니까.
태인호: 그렇지, 그런데 배우에게는 혼자서라도 가지고 싶은 서브 스토리가 있다. (웃음)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퇴근 후엔 뭘 할 것 같나.
태인호: 성 대리는 지하철 타고 가다 ‘잠깐, 내가 오늘 석율이한테 너무 했나?’ 생각하다 ‘에이, 아니야. 나 땐 더 심했어’ 하고 정당화해서 잊고, 여자한테 전화해서 만나고, 또 누군가에게 계산을 미룰 것 같다.
오민석: 강 대리는 의외로 집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할 것 같다. 일에 쏟았던 에너지를 완전히 반대쪽에 쏟아서 스트레스를 풀지 않을까. 게임에 완전히 빠져 있거나, 그냥 소파에 누워 맥주 마시면서 TV만 보거나, 어쩌면 드라마 광일 수도 있다. 시간 맞춰서 연속극 보는.
오민석: 하 대리는 성 대리랑 술 먹을 것 같다.
전석호: 하 대리는 대리 중에서도 위로 올라가려는 욕심이 제일 센 것 같다. 이제 안영이는 어느 정도 일을 해주고 있으니까 그냥 ‘일하는 애’라 생각해서 뒷전일 것 같고, 자기 일 하느라 야근은 기본에, 성 대리랑 술 한잔 먹으면서도 진취적인 얘기를 늘어놓을 것 같다. 강 대리는 역시 사우나 가겠지.
전석호: 하 대리는 대리 중에서도 위로 올라가려는 욕심이 제일 센 것 같다. 이제 안영이는 어느 정도 일을 해주고 있으니까 그냥 ‘일하는 애’라 생각해서 뒷전일 것 같고, 자기 일 하느라 야근은 기본에, 성 대리랑 술 한잔 먹으면서도 진취적인 얘기를 늘어놓을 것 같다. 강 대리는 역시 사우나 가겠지.
사우나 장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상체 노출에 대한 심적 부담도 있지 않았나. (웃음) 오민석: 대본을 받았을 땐 이미 몸 만들 만한 시간이 없었다. 백기(강하늘)나 나나 “형, 어떡해요?”, “야, 큰일 났다” 하고는 일단 안 먹기 시작했다. 배 나오는 것보단 일단 마른 게 나을 테니까 운동은 계속 하면서 지방만 태우려고. 마침 당시 촬영장에 밥차랑 야식차가 굉장히 많이 오고 있었는데 “형, 치킨도 먹고 그래요”, “아니야, 너 많이 먹어” 하면서 서로 견제했다. 그래서 촬영 전 우리 둘 다 3, 4kg 정도 빠지는 바람에 사우나 신은 정말 기운 없이 찍었다. (웃음)
전석호: 우연치 않게 유 대리 형이랑 그 장면을 보고 “와, 저런 회사원이 어디 있냐. 배에 왕(王) 자도 있고 비현실적이네. 우리가 현실인데!” 그랬다.
오민석: 그래, 벗기려면 남자 많은 자원팀을 벗겨야 했는데.
전석호: 우리 벗기면 난리 난다.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이라고. (웃음)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일해온 입장에서 장그래(임시완)를 비롯해 많은 생활인들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나.
태인호: 일 년에 한두 번 그런 때가 찾아온다. 낮에는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밤에는 웨이터나 발렛 파킹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가 아니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연기를 계속하는 것 같지도 않고, 아르바이트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굉장히 힘들고 외로운 기분이 드는데, 시간이 지나서 제정신이 돌아오면 역시 연기가 재미있으니까 계속 하게 되는 거다.
전석호: 작품이 없어서가 아니라 연기를 계속 하고 있어도 내 안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고독이나 허무함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남에게 노출되는 직업이고 어떻게 보면 잠재적 실직자이기 때문에 그 혼란이 점점 커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창작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많이 치유받는다. 사람들이랑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 얘기하고 함께 열정을 쏟으면서 ‘나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가고 있다’는 동지애를 느끼는 거다.
오민석: 나는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갑자기 연기를 시작했는데, 처음 드라마에 데뷔했을 때 약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제 잘되나 했더니 갑자기 고꾸라지고 매니저가 없어졌다. 혼자 대학로 가서 공연도 했고, 작품은 많이 했지만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니까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냥 공부를 계속하지’ 같은 말을 듣는 게 괴로웠다. 실제로 연기를 그만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지금의 소속사 대표님이 같이 일하자고 찾아오셨다. 아무도 나를 모를 때 “당신은 잘될 겁니다”라면서 손잡아준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미생>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감을 얻고 있는 지금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
태인호: 일단, 기분이 이상하다. 어, 어…이런 거구나? 부모님들이 좋아하시니까 선물을 해 드린 기분도 들고. 무엇보다, 내가 좀 더 열심히 하면 또 다른 작품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돈을 좀 벌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님도 나이 드시고, 결혼도 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것보다도 내가 연기할 수 있는 ‘거리’를 계속 찾아가다 보면 필요한 것들이, 엄청나게 크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정도로는 따라오지 않을까 싶다.
전석호: 나는 원래 주류에 속하는 사람은 아니고, 노출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 주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게 좋고, 외부의 반응을 떠나 처음 한 드라마 현장의 분위기가 정말 좋다. 그리고 나 역시 어디 가서도 이렇게 해야겠다, 형들이 한 것처럼, 이성민 선배가 한 것처럼 해야겠다 같은 배움을 얻고 있다. <미생>은 최고의 스타트다. 우리 일을 직급으로 따져 보면 아마 나도 딱 대리 정도일 거다. 가장 열심히 일해야 할 때이기도 하고. 어디까지 올라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회장 되고 싶다. 그런데 그건 부와 명예를 얻고 싶다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마음껏 한다는 거다.
오민석: 지금 우리가 이렇게 주목받는 건 정말 감사하지만 솔직히 이게 그렇게 오래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전석호: 한겨울 밤의 꿈, 우리는 <미생>과 함께 사라지리라. (웃음)
오민석: 들어올 때 즐기자. 금방 없어질지 모른다. (웃음) 하지만 막 얻게 된 인기보다도 좋은 건, 이렇게 자유롭고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고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다 같이 친하게 지낼 수 있는 현장에 내가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미생>이 끝나고 다른 현장에 또 가더라도 많이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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